며칠전 읽은 소설《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에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나온다. 딸의 머리채를 잡고 던져버리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늙은 족장을 집에 데려와서는 자신의 열네살 딸을 팔아치울 계획을 갖고 있다. 열네살 딸은 한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소유물로써 존재하며 그렇게 다른 남자에게 넘겨질 판이다. 여기에 딸의 의도나 목적, 동기는 없다. 집에 찾아온 늙은 족장의 눈에 띄었고, 그러므로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건네져야 했다.

《가부장제의 창조》의 <제5장 부인과 첩>은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룬다. 여성학 서적을 읽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유물로써의' 여성.

보존되어 있는 세 가지 주요 메소포타미아법전들-함무라비법전(CH), 중기 아시리아법(MAL), 히타이트법(HL)-과 성서 율법은 역사적 분석을 위한 풍부한 자료다. (p.181)

보존되어 있는 법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당시의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살았는지를 보여주는데, 나이지리아의 최근 소설을 읽다보니 그 때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나,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멀리 왔는가...하는 것.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 보자.

약혼자가 결혼 전에 죽은 신부는 시아버지에 의해 그의 아들들 중 한 명에게 주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만일 한 남자의 신부가 죽으면, 장인은 그의 다른 딸들 중 한 명을 그에게 부인으로 줄 수 있다. MAL §33 은 아들이 없는 젊은 과부는 남편의 형제 중 한 명이나 그의 아버지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녀와 결혼할 남편의 친척이 없을 경우에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이 법들은 결혼교환이 개별 부부들이 개입된 거래가 아니라, 한 가족의 여성구성원들에 대한 또 다른 가족의 남성구성원들의 권리가 개입된 거래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이 개념은 유대인들의 수혼제(嫂婚製, 과부가 고인의 형제와 결혼하는 풍습-옮긴이)의 기초를 이룬다. (p.206)

여자가 다른 남자 가족에게 '주.어.질' 수 있다. '주어지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한 만화가의 아내가 이십대 젊은 여자일 때 예쁘게 꾸미고 얼른 좋은 남자랑 결혼하라는 유튜브를 올렸는데, 이 얼마나 가부장제에 충실히 복무하는 마인드인가. 가부장제에 들어가고 충실히 복무하기 위해서는 이십대에 예쁘게 꾸며야 가장 잘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셈이다. 게다가, 이십대에 가장 잘 '팔릴 수' 있고, 그렇게 팔리는 걸 자기의 권력으로 생각한 것 같은데, 그거 아니죠. 그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평소 그 만화가에 대해 '대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는 어떤 여자와 대화하는 걸까' 했는데, 아내의 마인드도 남편과 같았다. 가부장제 만세죠?

여성은 그들의 성적 활동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식활동에 의해서도 더 높은 지위로 배정될 수 있었다.

유산이나 낙태에 관한 법들은 성과 계급의 관계에 대한 더 많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메소포타미아의 법은 피해자의 계급에 따라 처벌이 달라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여성들의 경우, 이것은 대체로 피해자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남성의 계급을 의미한다. 그래서 함무라비법은 일반 시민의 딸인 경우 그 처벌은 5세켈의 벌금인 데 비해, 귀족의 딸을 때려서 유산하게 하면 10셰켈이다. 만일 때려서 귀족의 딸이 죽으면, 그 처벌은 가해자 딸을 죽이는 것이고, 피해자가 시민의 딸이면 처벌은 벌금이다. 다시 한번, 가해자 딸의 생명은 동해복수법(同害復讐法)에 따라 죄지은 아버지의 생명을 대신한다(CH§ 209~214).

아시리아법은 더 넓은 범위에서 가능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MAL§50 은 결혼한 여성을 유산하게 만든 남자는, 자기 부인이 똑같이 취급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p.207)

성접대도 마찬가지. 아니, 대체 '성접대'라니, 이런 단어가 애초에 왜 존재해야 할까. 단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 끔찍하잖아. 성으로 접대를 한다는 생각자체도 끔찍하지만, 성'접대'를 할거면 지들 성을 접대하지, 왜 여자들 데리고 와서 그 여자들 성으로 접대를 해? 접대는 지들이 하는 거니까, 지들 성으로 해야할 거 아니야. 남자1이 남자2에게 접대를 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일 거다. 저 좀 잘 봐주십쇼, 하고. 그게 돈이든 지위든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든, 어쨌든 접대를 함으로써 뭔가 얻게 된다면 그건 바로 자신일 터. 그런데 왜 접대를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여성의 것'을 가져오는가. 왜 남자1과 남자2의 거래에 여자가 수단으로써 활용되는가. 이게 어떻게 성접대야. 타인의 몸을 가져와 '사용'하는데. 그건 성폭력이지. 남자1과 남자2가 본인의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으로써 그건 여자를 물화 시키고 타자화 시키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성폭력이다. 왜 내 성으로 니가 접대해?




위의 인용한 문장을 보면 현재의 성접대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죄를 지은 건 남자인데 그 벌을 받는 것은 그 남자에게 '속한 여자' 였던 것. 가해자가 살인을 했고 그것이 동등한 복수의 법을 적용해 살인으로 처벌할 것이었다면, 그 살인은 가해자에게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딸'에게 적용되어졌다. 다른 여성을 괴롭힌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가 처벌 받아야 하는데 그 남자의 '아내'가 처벌받았다. 딸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아내는 다른 여자를 유산시킨 게 아닌데, 그런데 그녀들은 남자들을 대신해 벌을 받아야 했다. 내가 대신 벌을 받는 것도 억울해 미치겠는데, 나는 집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남자들이 어디가서 죄짓고 다니는 건 아닐지 신경써야겠네.

이에, 나는 여자를 산 채로 화형시켰던 사티가 생각났다.





어제, 정부의 금지조치가 내려졌음에도 엄청난 수의 인도인 군중이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되는 신부이게 찾아와 경의를 표했다. 18세의 신부는 화장용 장작더미 위에서 남편의 머리를 무릎에 뉘고 조용히 앉은 채로 불태워졌다.지난 9월 4일, 결혼한 지 8개월 된 신부 칸와르Roop Kanwar는 무늬를 넣은 비단으로 지은 결혼예복 사리를 입고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 앉아 사티를 거행했다. 이 분신자살은 예부터 인도에서 정절을 드러내는 궁극적 행위로 여겨진 관습이지만, 이미 몇 세기 전부터 불법화되었다.이 젋은 신부의 행동 덕분에 라자스탄 주의 서부에 위치한, 자이푸르에서 80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는 이 사막 마을은 순례객들의 성지가 되었다. (p.238)









MAL§ 55는 처녀에 대한 강간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만일 결혼한 남성이 친아버지 집에 사는 처녀를 강간하면

강간이 도시 내에서 범해졌건, 트인 벌판에서 일어났건, (공공의) 거리에서 밤에 일어났건, 혹은 도시의 축제에서 일어났건, 처녀의 아버지는 처녀를 범한 남자의 부인을 취해서 그녀를 불명예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부인을 남편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자기가 취할 것이다. 아버지는 능욕당한 딸을 그녀를 능욕한 남자에게 배우자로 줄 것이다.

만일 강간한 남자에게 부인이 없다면, 그는 그 아버지에게 숫처녀의 값을 지불해야 하고 그 소녀와 결혼해야 하며 결코 그녀와 이혼할 수 없게 된다. 만일 소녀의 아버지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아버지는 돈은 벌금으로 받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딸을 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강간이 희생자의 아버지와 남편에게 해를 입힌다는 개념이, 고통받은 여성들에게는 절망적인 결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203)

강간당한 내가, 나를 강간한 놈하고 결혼까지 해야되냐? 야... 진짜 .....아니, 강간은 내가 당했는데 왜 명예는 아버지 명예가 떨어지죠? 강간은 내가 당했는데 왜 나는 나를 강간한 놈하고 결혼까지 해야해? 다들 미친거야 진짜? 내가 숫처녀인데 숫처녀의 값을 누구에게 지불해 썅?! 내가 숫처녀인데 숫처녀 값은 어떻게 매길건데? 누가 매기는건데?

이 미친세상에서, 여성들이여, 어떻게 살아오고 버텨냈습니까. 물론, 버티지 못하고 살아남지 못하고 아주 많은 여성들이 죽음의 길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가기도 했지만, 아, 여성들이여, 어찌도 이리 고단한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오래전에 본 티비 프로그램에서 한 여성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 제목은 생각이 안나는데, 인간극장 류의, 보통 사람의 삶을 보여주고 얘기를 듣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그 날 주인공인 여자는 자신이 다니는 공장의 남자동료가 자기에게 구애했고 여자는 그를 거절했었다고 했다. 자신은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으므로. 그러자 공장 동료가 그녀를 강간했고, 그녀는 강간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와 결혼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죽어서(왜 죽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그 무덤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이 어마어마한 범죄가, 강간이라는 범죄가 텔레비젼에 나오는데 그 남자를 잡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단 강간이 용인되어 온것일테고, 그리고 아주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면 강간한 남자와 함께 사는 걸 택해야 했다. 강간당한 여자는 여자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거니까.

김형경의 소설 속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나온다. 운동권 여자가 같은 운동권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결국 그 남자랑 결혼하는 걸 택하는 삶. 대학교육을 받았고,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알고,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강간 앞에서는 강간범과 결혼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삶이야, 이게 어떻게 삶이니.

이 소설은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일까?

많은 남자들이 이 여자를 '사귀고' 싶은데, 사귀자고 해도 사귀어주질 않으니, 제뜻대로 되질 않으니, '강간해서 갖자'로 방법을 찾는다. 맙소사. 하아-

강간의 역사가 이토록이나 길고,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만 생각했던 역사가 이렇게 긴데, 세상이 과연 바뀌기는 할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지만, 바뀌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려나. 혹여라도 지쳐버리면 이 견고한 여성 물화, 성적대상화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될까봐 지치기도 쉽지 않다.

이 책의 <제6장>은 '여성에게 베일 씌우기' 라는 제목이다. 자, 겁내지 말고, 지치지 말고 계속 읽어나가자.

여러분, 기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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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7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9-03-26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죄를 지은 아버지의 형벌을 딸이 받는 것으로 정해진 당시의 법에 가장 경악했어요. 복수라는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여성의 정조에 대한 범죄를 ‘재산권에 대한 침탈’로 이해했다는 것이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성접대’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남성이 ‘접대’ 받았을 때 제일 좋아하는 것이 ‘여성’, ‘여성의 성’이고, 그게 필요하다면 ‘여성’을 ‘공급’해 ‘접대’하겠다는 거죠. 여성이 사물화 되었기 때문에, 남성 의지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인간이 아니니까요. 나의 필요(접대)를 위해 대접(성접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거겠죠.

다락방 2019-03-27 15:10   좋아요 0 | URL
제가 위에 썼던 것처럼, 접대는 ‘내가‘ 가진 것으로 해야 하는 거잖아요. 내 집, 내 돈, 내 성의,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진‘ 것으로 해야한다고 봤기 때문에 ‘여성‘을 접대한것 같아요. 여성은 나와 같은 하나의 인간이라기 보다 ‘내 꺼‘ 니까요. 내가 돈 주고 살 수 있는,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것‘.
예전부터 법에서까지 여자를 남자의 소유로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아버지의 것이다가 남편의 것이다가... 어휴........ 같은 인간이 아닌거에요, 정말.

비연 2019-03-27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사이드>의 저 장면. 인도의 사티. . 조용히 앉은 채로 불태워진 18세의 신부. 정말 소름이 돋았었어요, 너무 끔찍해서. 아직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니. 도대체 여성을 뭘로 보는 건지. 그냥 소유물? 물건? .. 그러니 선물로 주고 그러겠죠. 접대하라고. 정말이지 아직도 멀었다 멀었다. 라는 생각만이 들면서 그날 잠이 안 왔었어요..ㅜㅜ

다락방 2019-03-27 15:12   좋아요 0 | URL
죽은 남편과 함께 산 채로 태우면서 그렇게 정절을 지켜 남편과 죽은 여자를 ‘성녀화‘ 시키니, 그 문화는 여자들에게 강요될 수밖에 없겠죠. 그걸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니,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서 산 채로 불타 죽는 걸 보면서 숭배할 수 있을까요. 너무 끔찍해요 진짜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