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 처음 서재를 만들고부터 내 퍼스나콘은 쭉 '안젤리나 졸리'였다. 오랜 서재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은 왜 안젤리나 졸리를 좋아하냐, 왜 안젤리나 졸리를 퍼스나콘으로 쓰느냐 물었었고, 그 때마다 나는 답했었다. '그 사람은 혼자로도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서' 라고.


내가 보는 안젤리나 졸리는 그랬다. 자기 혼자서도 당당하고 빛나고 강하고 센 여자였다. 남자 따위 없어도 살 수 없는 그런 여자로 아주 오래전부터 내게 인식되어져 있었다. 나중에 브래드피트랑 결혼하긴 했지만, 브래드 피트가 그녀에게 있어도 좋았고 없어도 좋았다. 그러니까 브래드 피트의 명성이라든가 하는 것에 기대가는 것이 아닌, 안젤리나 졸리 스스로의 명성, 스스로의 힘. 나는 그녀가 가진 그것이 좋았다. 어쩌면 나는 그런 여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니 그녀는 나의 롤모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내가 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라 봐도 좋았을 것이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 대해 멋있다고 생각하고 롤모델로 삼게 되는 것은, 또한 부러워하는 것은, 내가 되고자 하는 바를 혹은 내가 원하는 바를 그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거나 실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못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하네, 내가 못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기꺼이 해냈어! 거기에서 오는 짜릿함.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저렇게 멋지게 살아갈거야, 같은 걸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는 롤모델을 만드는 게 아닌가. 나에겐 딱히 롤모델이랄 사람은 없었지만, 굳이 들라고 하면 안젤리나 졸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도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 그 과정에서 연애나 결혼은 있을 수도 있고 또 없을 수도 있는,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인 사람. 많은 부분을 내가 오해하고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게 내가 보는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남자들이 만드는 영웅, 남자들이 부러워하는 다른 남자의 모습에 대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한심한게 다 뭐야, 정말이지 부끄러웠고 다 죽어버리라고 하고 싶었다. 세상 부러워할 게 없어서 강간범이나 연쇄살인범을 부러워하다니, 그런 사람들을 찬양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가 부러워한다는 것, 열망하고 감탄하고 영웅시한다는 것은, 내 안에 '그렇게 되고 싶은 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며 광광대는 사람이 그들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그들은 연쇄살인범을, 강간범을 영웅시하는가, 왜 그들을 미화하는가, 왜 그들을 부러워하고 왜 그들에게 감탄하는가.


이 책의 9장은 <강간 영웅 신화> 다.



강간 과 영웅이 같이 쓰일 수 있다니, 이것부터가 부조리하지 않은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창조한 전설적 첩보원 제임스 본드는 소련의 방첩 기관 스메르시SMERSH와 싸워서 이길 때마다 여자를 얻어낸다. 상대에게 새로이 성적 흥미를 품으면서 본드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얼마나 오래 함께했든 그녀 안에는 그가 한 번도 침범할 수 없었던 은밀한 방 하나가 항상 있었다. ……지금 그는 그녀가 깊숙이 흥분에 들끓어 쾌락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그녀의 내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저 은밀함 때문에 그녀의 몸을 정복하는 일은 매번 강간처럼 톡 쏘는 맛이 났다." (p.446-447)



그러니까, 이거야? 톡 쏘는 맛? 톡 쏘는 맛이 강간의 맛이야? 그래서 강간하는거야?

어떻게 강강처럼 톡 쏘는 맛이 났다고, 그래서 여자의 몸을 정복한다는 걸 글로 자랑스레 써제길 수 있을까? 인용된 문장은 <카지노 로얄>의 것인데, 와, 나는 저걸 모르고 영화를 잘도 봤구나. 맙소사...



하지만 작가들은 보통 과장하기 마련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가들이 과연 전쟁이든 여성이든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전쟁이 뭔지 진짜로 알았던 남자, 13세기 몽골 대정복을 이끌었던 칭지즈칸은 그의 지위에 걸맞게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성스러운 임무를 설명했다. "남자의 인생에서 최고의 업적은" 자신이 설파한 바를 실제로 실천한 남자가 말했다. "적을 무찔러 내 앞에 끌어낸 후,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다. 그들을 사랑했던 이들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무릎 사이에 있던 말을 빼앗고, 그의 여자 중 가장 탐나는 이를 품에 넣는 것이다." 이만큼 영웅적 강간을 뚜렷하게 정의한 언급은 없을 것이다. 여성은 적이 소유했던 말과 다를 것 없는 전사의 전리품이라는 단언. 남자다움, 성취, 정복과 강간의 직접적인 연결 관계를 이보다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표현한 예는 없는지라 칭기즈칸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p.447, Andreas Capellanus, The Art of Courtly Love)



나는 작가들이 강간을, 여성의 몸을 드러내고 미화하는 것에 정말이지 구역질이 난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김훈도 자신의 글에서 갓난 여아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저 안은 따뜻할 것이다' 따위의 문구를 썼다는데, 도대체 어느 아빠가 딸아이의 성기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것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아빠라면, 그게 아빠인가.. 나는 그게 너무 끔찍한거다. 내 남편이 내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그딴 생각을 한다는 걸 안다면, 나는 그안에 잠재된 그 무엇이 너무 무서워서 당장 갈라서자 할것이다. 아니면 딸아이 데리고 그로부터 도망을 치던지 말이다. 어째서 남자들은 갓난아이에게도 성적대상화를 시키는가. 성적대상화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왜 물불 못가리고 다 그런식으로 덤벼대는 것인가. 너무 머저리같고 너무 한심하고 너무 찌질하다. 






다수가 자진해서 거주하고 있는 이성애 세계 내에서 남성들은 오직 피해자가 여성이고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에만 성폭력을 이데올로기의 수준으로 승격시킨다.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는 그 파괴적인 원리를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표정이다. 오랜 판매 경험을 토대로 조성된 전통에 따라 이성애 취향에 맞춰 제작된 평범한 포르노그래피는 커다란 금기를 하나 갖고 있는데, 바로 남자가 남자에게 '그것을 하는' 장면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극단적인 예를 살펴볼 필요는 없다. 평범한 책과 영화, 노래에서도 여성을 짓밟는 폭력을 묘사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남성을 찬미하는 작품들의 인기가 얼마나 공고한지, 그런 주제에만 한 권 분량을 통째로 할애한 책도 있다. 문화가 유포하는 이런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수용할 것인지는 성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p.452-453)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라니!



잭 더 리퍼는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모습으로 남성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1888년 가을 런던 이스트엔드에서 다섯 명의 창녀의 뒤를 밟아 신체를 훼손하고 살해한 신원불명 남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 살필 필요가 있다. 나는 <레이트 레이트 쇼Late Late Show>에서 리퍼가 등장하는 영화를 몇 편 접했는데,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뿐이었다. 여성인 나로서는 곧 닥쳐올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자욱한 거리를 걷는 여성 피해자에게 동일시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마 여성이라면 누구나 나처럼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놀랍게도 남자들은 잭 더 리퍼를 언급하며 '영웅'이라는 단어를 적용했다. 노엘 애넌Noel Annan처럼 흠잡을 데 없는 비평가(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학장으로, 교육자이기도 하다)조차도,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에 글을 쓰면서 잭 더 리퍼를 "빅토리아 시대의 공포 영웅"이라고 불렀다. (p.453)



한번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San Francisco Chronicle》의 찰스 매케이브Charles McCabe가 칼럼 한 편을 통째로 할애해 리퍼를 주제로 다뤘다. 그는 리퍼를 최고 중의 최고라고 부르면서 "내 어린 시절의 위대한 영웅, 술 취한 창녀에게 인간 도살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혼자 다 해낸 숙련된 전문가"라고 썼다. 매케이브가 열광하며 떠든 소리-그는 리퍼를 영국의 '국보'에 견주었다-는 리퍼 숭배 현상에 대해 약간의 통찰을 제공해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리퍼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가 대체로 섹스와 엮여 있으면서 동기 없이 이루어지는 살인이라는 새로운 살인 유파를 창설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여성을 토막살해하는 일은 결코 동기 없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매케이브는 칼럼에 이렇게도 썼다. "리퍼는 ……역사상 중요한 살인자들 중 유일하게 이름을 모르는 자이다." 이 역시 바보 같은 소리지만, 리퍼에 대한 열광의 기원을 알려준다. 잭 더 리퍼가 중요한 살인자이자 신화적인 존재가 된 이유는 바로 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았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교묘히 들키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p.453-454)




리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웃사이더The Outsider》(0956)의 작가이자 도발적인 저서《현대 살인백과 A Casebook of Murder》(1969)에서 여자들을 학살하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표현한 바 있는 흥미로운 영국 작가 콜린 윌슨Colin Wilson을 빠뜨리고 넘어갈 수 없다. 윌슨은 리퍼가 분명 재능 있고 우월한 상위 5퍼센트에 속할 것이라고 전제하고는 그 "행위를 통한 프로파간다"에 깊이 사로잡혔다. (p.455)



리퍼가 설사 재능있고 상위 5퍼센트에 속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그게 그를, 여자를 연쇄 살인한 그를 영웅시할 이유가 된단 말인가? 우리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랫동안, 범죄자의 재능으로 범죄를 감춰왔는가? 나는 텔레비젼에 여전히 그 얼굴을 자랑스레 들고 다니는 숱한 남자 연예인들을 보는 것이 괴롭다. 그들이 했던 말과 행동들, 그리고 범죄가 있는데 당당하게 광고를 찍고 영화를 찍고 개그를 하는 것을 보노라면 역겹기 짝이 없다. 이게 바로 강간문화다. 강간을 저질러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바로 이것.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 사람이 그런 행실을 했어도 연기는 잘하잖아, 그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어도 재밋잖아... 그래서? 그래서 뭐? 그 범죄자들을 말고는 연기나 노래를 할만한 사람이 세상에 없단 말인가? 그 사람처럼 노래하고 그 사람만큼 연기하고, 그 사람만큼 웃긴 사람이 세상에 없단 말인가? 설사 세상에 그 사람보다 더 재미있고 더 연기 잘하는 사람이 없다 해도, 우리가 그의 연기나 노래로, 코미디로 그의 범죄를 용서해주는 것은 이 사회에 어떤 사인을 보내고 있는가?


리퍼를 왜 영웅화 하는가? 리퍼가 영웅이라면, 멋있다면,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들의 심리에는 어떤 것들이 깔려있는가. 그게 너무 소름끼치는 거다. 왜 그가 멋있어? 응, 내가 하지 못한 걸 했으니까. 뭘 하고 싶은데? 응 그가 이미 했던 것.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는 것, 연쇄적으로.



연쇄살인범, 강간범을 영웅시한 것은 한두명만이 한 일이 아니라, 남자들 전체가 한 일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했다.



믹 재거와 롤링스톤스가 그들의 가장 장대한 공연용 곡 중 하나인 <한밤의 소요자Midnight Rambler>로 보스턴 교살자를 기념하고 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믹 재거의 트레이드마크인 스카프는 교살 도구가 된다.

한 잡지 기자는 <한 밤의 소요자> 연주에 청중이 보인 광적인 반응을 이렇게 묘사했다. "키스 리처드가 길고 위험할 정도로 관능적인 기타 전주로 장악하는 동안, 믹은 천천히 밝은 금빛 띠를 푼다. 첫 줄에 '보스턴 교살자에 대해 들어본 적 있겠지'라고 뜨면서, 갑자기 조명이 어두어지고 어두운 붉은 색의 투광 조명 앞에 믹 재거의 실루엣만 남는다. 그는 무대 위에서 살금살금 움직이며 날씬한 엉덩이를 지닌 다성적 존재로 부활한 잭 더 리퍼가 된다. 그는 금빛 띠를 채찍처럼 움켜잡고 내려친다. …… '나도, 나도,' 그들이 소리친다. '나도 때려줘요, 믹." (p.456)




하드록의 전성기에 믹 재거와 롤링스톤스만 유별나게 폭력적 섹슈얼리티를 과시한 것은 아니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과 지미 헨드릭스는 둘 다 이미 죽었지만, 이들이 거둔 폭발적인 성공은 자가 발정적인 강한 한 방을 위해 무대 위에서 여성을 학대하는 흉내를 내며 쌓아올린 것이었다. 이 시기에 어빙 슐만Irving Shulman이 쓴 브루클린 갱의 삶에 대한 1940년대 후반의 동명 소설에서 이름을 딴 '앰보이 듀크스The Amboy Dukes'라는 밴드가 등장했는데, 슐만 소설에서 절정이 되는 장면은 듀크스 무리에게 '몸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이웃 소녀를 강간하는 장면이다. (우리가 익히 발견해왔듯, 낭만적인 마법 뒤의 적나라한 시상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하지만 롤링스톤스는 그중에서도 압권으로, 그들이 캘리포니아 직옥의 천사들과 잠시 연합한 결과 벌어진 비극은 폭력을 찬미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극명히 보여준다. (p.458)




덜컥, 숨이 막힌다.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죄자를 영웅시해 노래를 만들고, 공연장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내다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의 10장으로 가면 여성이 강간을 원한다는 강간 판타지에 대해 나온다. '수전 브라운 밀러'는 우리 여성들이 그렇게 아프게 되는걸, 죽는 걸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강간 판타지를 가진 여자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물을 수 있다. 그 여성이 가진 강간 판타지는, 그렇다면, 진정 그 여성의 판타지인가? 작가와 비평가 가수들이 모두 한 데 모여서 세상에 강간에 대해 노래하고 찬양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그런 강간문화가 존재하지 않았어도 여성에게 과연 강간 판타지가 생겨났을 것인가.




여성이 강간당하기를 원한다고? 우리가 굴욕과 멸시, 신체의 온전성을 침해하는 폭력을 갈망한다고? 우리가 남의 손아귀에 붙잡혀 끌려가 강간당하고 피폐해지기를 원하는 심리적 욕구를 갖고 있다고? 페미니스트가 이런 터무니없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 하는가?

슬프게도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우리는 그런 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중문화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중문화 속에서 숨쉬며, 그것을 흡수하는 것은 물론 거기에 기여하기까지 한다. 사실 조사를 하다보면 위에 언급한 문화적 메시지들이 자주 서로 충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때는 모든 여성이 강간을 원한다고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애초에 강간 같은 것은 없으며 여성들이 강간당했다고 소리치는 이유란 성관계 후에 앙심이 생겨 복수하려 드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잘못은 언제나 여성에게 있다. (p.486-487)




내가 누누이 말해왔지만, 어떤 걸 욕으로 하느냐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여자를 욕으로 쓰는 사람, 동성애자를 욕으로 쓰는 사람. 그것이 욕을 내뱉는 그 사람을 말해준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구를 영웅시 하느냐로도 역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연쇄살인범을, 강간범을 영웅시하며 따르는 사람,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에게, 대체 '그렇게 되고 싶다'는 것 말고 다른 어떤 게 더 있단 말인가. 자신 안에 많은 여자를 강간하고 싶은 마음, 정복하고 싶은 마음,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자기 대신 그걸 해준 사람을 보고 영웅시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아직 못했는데, 저 사람은 했네, 위대해!




사람은 모두 다르고 각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도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다 떠나서' 그 사람은 그래도 재미있잖아, 천재적이잖아, 하며 범죄자를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나는 '그럴 수 있지'라고 할 수가 없다. 왜 가장 중요한 걸 제쳐두고 '그래도 능력있잖아'가 따라오는가. 나는 싫다. 그만큼 능력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다. 범죄자의 재능을 가져오며 범죄를 숨겨주는 사람들, 범죄를 뒤로 미뤄두는 사람들을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어. 그 범죄가 여성혐오에 관한 것이라면 더 그렇다. 일전에 '이사카 고타로'가 자신의 책 《골든 슬럼버》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입을 빌어 '강간에는 명분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살인이라면 복수라는 명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강간에 대해서라면 어떤 명분도 있을 수 없다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간혹 복수라는 이름으로 강간하는 남자들이 나오는 건, 그 복수가 그 여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여자를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남자를 향한 것이다. 그 복수가 진정한 복수인가, 결국 그들이 해를 입히고 다치게 한 건 누구인가.




현재 이 책의 10장을 읽고 있고, 그렇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12장은 <여성이 반격한다> 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벌써부터 이 부분을 읽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결국, 여자들은 말하고 살아남는다. 말하고, 살아남기 위해 반격한다. 그게 11월, 12월 그리고 1월을 지내는동안 페미니즘 책을 같이 읽으며 내가 느낀 바다. 여자들은 반격한다. 반격하고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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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쟝 2019-01-3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래서 안젤리나졸리를!! 다락방님 이야기 들으니 그녀가 진짜 멋져보이네요.
그나저나 강간이 톡쏘는 맛이라니ㅡ 여남 인식차이 끝판왕 표현이네요 진짜.. 노어이..

다락방 2019-01-30 13:09   좋아요 1 | URL
강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노라니 여남의 인식차이도 그렇지만 뭐랄까, 한 쪽 성은 유독 더 멍청하고 한심한 것 같아요. 무엇이 잘못인지 계속 인지하지 못하고 살면 결국 다른 한쪽 성에 비하여 뒤쳐지게 되겠죠.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그녀가 그러라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저 스스로 그녀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아서 제가 좋아라 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01-30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저는 스타트도 늦었고 막판 스퍼트도 늦다보니 지금 저도 10장 읽는 중인데(지금 쓴 시점에 다락방님은 거의 다읽은 듯..;;) 얼른 다 읽고 오늘밤이나 내일 부터 글도 쓰려고 하는데 내일!이 마지막날이었네요. 얼른 읽어야겠네요!!

아 그리고 다락방님께서 안젤리나 졸리를 얘기하시니 작년 말에 난민 문제로 한국에 와서 법무부 장관도 만나고 정우성배우랑도 만나고 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갑자기?)

쟝쟝 2019-01-30 21:04   좋아요 1 | URL
여기 29일에 본격 읽은 제가 있사옵니다!! (ㅋㅋㅋㅋㅋㅋ) 누가 쫓아오진 않지만 너무 급히 읽다 체하시지 말기_!!

다락방 2019-01-30 21:09   좋아요 2 | URL
저 다 읽었습니다! 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 서서 가면서도 들고 읽었어요. 고된 퇴근길 이었습니다. 자, 끝까지 힘내세요, 여러분! 그리고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블랙겟타 2019-01-30 21:13   좋아요 0 | URL
그그럼 쟝쟝님 믿고.. 조금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놔도 괘괜찮겠죠? 하하..

역시...다락방님. 퇴근 길의 상황속에서도 완독을.저도 마무리를 하러.

쟝쟝 2019-01-30 21:11   좋아요 1 | URL
아 다락방 이언니 멋지시다. 롤모델 없었는데 롤모델 삶고 싶다🥺

쟝쟝 2019-01-30 21:17   좋아요 1 | URL
전 겟타님 믿고 ㅋㅋㅋ 천천히 완독할께요 🥰

다락방 2019-01-30 21:38   좋아요 1 | URL
무릇 여자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무우라도 베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다면 한다! 완독을 위해서라면 퇴근길도 마다않는 강한 정신!!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