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책을 다 읽고 잤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때문에 좀 속상했다. 그 사건이 이 책에 굳이 필요했을까. 내가 다 읽었단 얘기에 친구는 '그 이야기 너무 싫지 않냐'고 물어왔고, 나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넣어야 했나 싶다'고 말했다. 그 일은,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고 또 이 전체적인 시리즈에서도 부러 넣지 않았어도 좋을 이야기였다. 그 사건 때문에 릴라가 더 공허함을 느끼는 노년을 맞게 되었지만, 그렇게 해서 더 공허하게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굳이 그 사건을 넣은 이유를 모르겠다. 시리즈를 통틀어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은, 분명 존재했던 게 사실이고, 시대적 배경으로 사실이었고, 그러니 그것을 이야기의 흐름에 넣은 것은 작가 나름대로의 의도이며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배치한 것은 작가가 굉장히 영리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라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그 사건을 뺐어도 이 시리즈가 더 나빠지거나 더 심심해지지는 않았을텐데. 그게 좀 속상했다. 좀 찜찜하기도 하고.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기 시작한 E 는 읽으면서 내내 이 책을 내가 읽기를 원했었다. 제발 좀 읽으라고, 언제 읽을 거냐고, 이 책은 진짜 니가 좋아할거라고 계속 얘기했었다. E 는 이 책에 이입이 너무 잘되고, 자신의 인생책이 될 것 같다고 했는데, 나는 E 가 기대한만큼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그런데 E 가 내게 왜 읽으라고 했는지는 알겠더라. 내가 E 보다 먼저 완독한 지금, 내가 먼저 다 읽을거라 생각한 E 는 어제 내게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레누와 내가 겹쳐졌다고. 그러면서 '네가 가슴 아플까봐 내가 먼저 말하진 못했는데, 레누가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너 생각 나기도 했지만,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하는 거 보고 니가 이입 너무 잘할거라고 생각했어' 라고 했다. 아, 나를 너무 잘 아는 E 여........ '레누는 계속 너같았어' 라고.......
어느 지점에서 E 가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는지를 나는 너무나 잘 알겠고 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런데, 내가 결정적으로 레누랑 다른 게 있었으니, 나는 평생 그렇게 누군가를 경쟁자이자 친한 친구로 의식하며 살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경쟁이 사실 별 필요가 없었다. 뭐 다른 점을 찾자면야 그보다 많겠지만, 같은 점 역시 무시하지 못하게 많은 것.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마다 레누가 나같았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을 할 때마다 나는 레누가 되었다. '나라고 별 수 있었을까' 하게 됐던 것.
나와 레누가 가장 같았던 지점이 E 가 내게 말한것처럼, '글 쓰는 것'과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한 것'인데, 이게 가장 비슷하면서 또 가장 다르기도 한데, 일단 그 행위들에 있어서는 나와 같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 나와 다르다. 왜냐하면 레누는, 엄청 잘나가는 책을 썼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도 하고, 레누의 책은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번역되고 막 그랬어? 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책이 한국에서도 안팔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뭐가 레누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그냥 다락방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또 다른 건, 레누가 평생에 걸쳐 사랑한 그 단 한사람은, 개쓰레기였다는 사실. 그래서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사랑이었건만, 이루고나서 '헐 이게 뭐여...' 할 수 밖에 없게 됐다는 것.
레누는 그와 사랑을 하고나서, 그를 사랑했던 기나긴 세월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아, 너무 가슴아프지 않은가.
'그를 사랑했던 기나긴 세월이 그날 아침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던 기나긴 세월이 그날 아침 송두리째 사라지진 않았다. 송두리째 사라졌다면 나는 진짜..어휴................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레누가 사랑한 사람에 비하자면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지만, 막 아주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가 강하지 않았다는 게 내가 그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아니다. 다만, 그가 좀 더 강했으면 내가 좀 더 행복해졌을 거라고 생각할 뿐.
아오 너무 가슴 시리지 않냐.
'그를 사랑했던 기나긴 세월이 그날 아침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회사에 올해 환갑이 되신 직원분이 계신데 이 분은 가끔 마라톤에 참여하신다. 이번에도 4월에 신청하셨다길래, '지난번에 발 아프다 하셨는데 괜찮으시겠냐' 물었더니, 발은 여전히 아프다는 거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몸도 안만들고 게을러지게 된다고, 그래서 식구들이 말리는데도 굳이 신청하는 거라 하셨다.
"사람이 목표가 있어야 되거든. 그래야 게을러지지 않아요."
마침, 나는 오늘 아침에 목표 있는 삶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어쩜 이렇게 회사 와서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내가 생각한 그대로를 말씀하시네.
아주 오래전, 이십대 후반 무렵에 J 라는 남자사람을 알게됐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친구였는데, 첫만남에서부터 나는 그에게 강하게 끌렸고, 그도 나를 되게 '신기한 캐릭터'라며 좋아했다. 그는 당시에 막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내고서는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하루는 내게 연락을 했다. 나는 그와 내가 아는 게 Y 가 중간에 있었던만큼, Y 없이 내게 연락한다는 게 뭔가 .. 신기했지만(?), 싫지 않아서 따로 연락을 하곤 했었는데, 마침 자기가 강남에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본다는 거다. 강남이니만큼 면접 후에 나를 만나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 나는 아, 좋긴 하지만 나 퇴근후에 만나려면 니가 나를 좀 기다려야 할텐데? 말했더니, 그는 내게 기다릴테니 오라고만 했다. 그렇게 그는 면접을 보고난 후에 강남의 한 까페에서 나를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서 그날 저녁을 함께 먹고 술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헤어지는 길에 집에 가면서 내게 문자를 보냈다. "최근에 이렇게 많이 웃어본 적이 없다, 너랑 오늘 하루 웃은게 최근에 웃은거 다 합친것보다 더 길다'고 한 거다. 사실 나는 이런 말이 아니었어도, 그가 좀 좋았다. 우리 손도 잡았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만난 첫날부터 ㅋㄷㅋㄷ 어쨌든 그가 좀 좋았지만, 그는 나보다 어렸고, 뭐랄까, 집도 강남이고... 목표가 대기업이고......나는 그가 좀 좋았는데, 그때의 나는 자주 쭈그러지는 사람이어서, 그 뒤로 그가 우리 회사랑 가까운 어느 대기업에 취업하고, 수시로 내게 전화를 걸어와 퇴근후에 밥먹자고 하는데도, 나는 '야근해야 해'라며 거절했었다. '야근해도 밥은 먹고할 거잖아, 밥 먹고 야근해' 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야 안먹고 할래' 이러고 그를 만나기를 좀 피했어. 나는 너무나 쭈그러진 사람이었지. 내가 감히 어떻게 얘를..뭐 이런 감정이 좀 있었더랬다. 걔랑 키스하는 꿈도 꾸고 그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부끄러워서 이거 쓰다가 얼굴 좀 빨개지고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까지 쓰고 혹시 Y 나 J 가 이 글을 볼 수도 있을까? 싶어서 좀 쫄림)
나야 그놈을 좀 좋아하면서 쭈그러들긴 했지만, 그놈이 나를 이성으로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나를 뭐랄까, 늘상 되게 특이한 캐릭터라고 생각을 해서 재미있어 했다. 싸이월드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 내 글에 댓글을 남긴 한 여자사람에게 "어? 누나도 이 다락방이란 사람을 알아? 이 사람 너무 신기하지?" 이랬었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 이놈아. 어쨌든 나는 그가 다니던 대기업과 관련있는 회사에 다녔던 사람이라 어느 하루는 그 대기업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영업부 직원이 해야할 일인데 다 출장을 가서 하는수없이 내가 대신 간 적이 있었다), 그에게 '나 니네 회사 가' 라고 메세지를 보냈더니, '오면 연락해!'라고 해서 그의 회사의 접견실에서 그를 만나 잠깐 수다를 떨다 온 적도 있다.
아, 그런데 이런 썰을 늘어 놓으려던 게 아니라 목표. 목표 얘기를 하려던 거였지.
나는 '목표'란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이 친구 생각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그 후에 계획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거였는데, 정말로 입사후 몇 년 됐을 때였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된거다. 싸이월드를 통해서 프로포즈 이벤트도 보게되었고, 또 싸이월드를 통해서 그가 나중에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그의 삶을 보면서 '와, 정말 계획대로 딱딱 잘 사네'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친구를 보면서 '나는 무계획의 사람이구나, 나는 계획 같은 거 안세우고 그냥 막 사는 무대뽀의 사람이구나' 생각을 했었다. 그게 나쁘다 좋다의 개념이 아니라, 아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했던 것. 그러다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됐다. 나야말로 계획적인 사람이었고 목표를 꼭 정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다만, 내 목표 혹은 계획이 '대기업 입사, 결혼, 출산과 육아' 가 아니었던 거다. 나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그 길을 보면서 갔고, 그래서 내가 가진 목표를 다 이루어냈다. 그 누구보다 계획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사람이 나였고, 내가 가진 목표를 다 실행했다고 생각한 순간, '다 이루었으니 이제 닐니리 땡이다'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다음 목표를 또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던 거다.
나는 게으른 삶을 추구하고 게으르게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지만, 게으르게 살 수가 없는 사람이란 걸 나이들수록 깨닫는다. 가만히 있질 못하고 자꾸 뭔가를 하려고 꼼지락 거리고 빨빨거리고 그러는 거다. 그런데 이게 바로 내가 삶을 힘있게 살아가는 내 식의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목표가 있기 때문에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붙이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목표가 있으면-이 목표는 꿈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 방향을 보고 걷는 거다. 수시로 흔들릴지라도 어쨌든 저기, 내가 닿아야 할 곳이 있으므로 그곳을 보고 걷는다. 그러다보면 거기에 정확히 도달해 깃발을 확- 빼지는 못하더라도, 그 근처에는 갈 수가 있어. 나는 이렇게 사는 게 내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여유롭고 게으르게 사는 걸 추구하지만, 그렇게 살 수가 없는 사람이라, 나는 항상 이렇게 나를 땅에 발붙이게 할 무언가를 자연스레, 나도 모르는 사이 설정하는 것 같은 거다. 거기에는 오래 사랑한 사람을 반드시 만나겠다는 목표 같은, 언제 올지 모를 먼(어쩌면 아주 가까운) 미래의 목표도 있지만,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한 것도 나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목표 삼아 실천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를테면, 어젯밤 내가 세운 가깝고 작은 목표는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물 있는 걸로 밥을 비벼먹는다'
는 거였다. 나는 자기전까지 이 목표(혹은 계획)을 잊지 않았고, 내 목표에 대해 아빠께도 말씀드렸다. 참고적으로 내 목표가 무엇인지 혼자 다짐하고 혼자 실행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가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어도, 도움을 받게 될 수도 있거든. 아무튼 나는 아빠께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 비벼먹을거야, 혹시 내가 까먹으면 밥 비벼 먹으라고 말해줘, 라고 말씀드렸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는 나 밥 비벼 먹으라고 계란프라이를 해놓으신 것. 이것봐, 목표에 닿기 위해 도움을 받게 된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오늘 아침 나의 식사!
참기름도 잔뜩 뿌린 비빔밥. 호박, 콩나물, 시금치.. 하나 또 있는데 그 나물은 이름을 여동생이 말해줬는데 까먹었다. 아무튼 그거랑 고추장 넣고 슥슥 비벼서 맛있게 먹었다.
이거봐, 나는 자꾸 이렇게 목표가 있어가지고 게으를 수가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빔밥 먹겠다는 목표만 아니었으면 좀 꼼지락거리다 일어나도 됐을텐데, 저거 나물 넣고 비비는데 시간 걸리니까 초큼 더 일찍 일어났다니까?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액션을 취하기 때문에 삶이 단단해진다. (응?)
아무튼 아침에 비빔밥 먹었단 얘기를 거창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