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개정판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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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를 순화하자는 언어순결주의의 주장이 담겨있으려니 했다. 제목만으로는 정반대의 주장으로 읽은 것이다. 게다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감염'을 '오염'으로 읽은 것 같다. 이는 고종석의 이름 석자만 들어봤을 뿐,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고,또한 한국어가 '오염'되었다는 나의 편견과 세뇌당한 사고가 어느 정도 작용한 탓이다. 어떻게 보면, 이 제목은 한국어뿐만이 아니라 언어라는 것에 대한 보편적이고 거스를수 없는 공통의 특질을 나타내고 있다. 언어순결주의나 순수 혈통이라는 것들의 존재자체가 상상 속 신화일 뿐이라는.    

오랫만에 학교 때 국어책을 읽듯 정독했다. 서체도 크기도 딱 교과서만하다. 게다가 적확하고 읽기 쉬운 국어로 잘 쓰여져 있으니 말이다.  수년 전에 뜨겁게 달궈졌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에 대한 논의가 제일 흥미롭다. 그 자신도 가장 많은 장수를 할애하고 있기도 하고. 복거일의 글은 읽지도 않고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글들만 잠시잠깐 보았던지라,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니!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리나는대로 읽고 쓰는 독창적인 한글을! 이런 지독한 사대주의가 어딨담! 그런데, 그의 제안(그 용어만으로도)을 거부하고 싶었던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 안에 민족주의적인 사고와 정서가 자리해,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했던 것 같고, 나야말로 사대주의적 사고에서 기인한 자격지심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앞도 뒤도 없이 무조건 방어적인 거부반응이 일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국어도 한국어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 준 책.  

집단적 수준의 주체성이 아닌 개인적 수준의 주체성.

   
  국어 순화의 '순화'는 제 5공화국 초기 삼청 교육대의 저 악명 높은 '순화교육'의 '순화'다. 실상, 순결을 향한 집착, 즉 순화충동은 흔히 죽임의 충동이다. 믿음의 순결성, 피의 순결성, 이념의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 역사의 구비구비에 쌓아놓은 시체더미들을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국어순화'의 충동에 내내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p.150  
   
   
  여기서 강조돼야 하는 것은 영어공용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다.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라틴어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중세의 엘리트들이 지식을 독점했듯이 말이다...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 한 사회가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을 특정 계급이 독점하는 사회와 전 구성원이 공유하는 사외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잇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p.206   
   

나는 고종석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앞에 말한 복거일과 관련된 논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좀 흥분을 좀 풀어제끼고 있는데, 욕 얻어먹는 최원식에, 큭... 하고 고소했다.  

   
 

...최원식의 무성의한 글에서 독자를 가장 불쾌하게 하는 것은 논쟁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궤변을 일삼는 것이다. "서구주의와 국수주의는 단순한 대립물이 아니라, 일종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서구주의의 뒤집혀진 형태가 국수주의다."....... "갑와 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갑의 뒤집혀진 형태가 을이다"따위의 말투는 논리와 수사를 멋들어지게 결합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멋쟁이 지식인들이 애용하는 이런 '지적'논법의 명제들이 어떤 맥락에서는 그리고 깊은 수준에서는 더러 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맥락, 그런 수준의 진실들은 굳이 말한 필요도 없는 진실이다. 그리고 발언의 맥락이 그런 깊은 수준이 아닐 때는 궤변이 되고 만다. ..... 

예컨대 나는 최원식의 말투를 빌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박정희와 장준하는 단순한 대립물이었던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자유주의의 전화가 파시즘이고, 파시즘의 전화가 민주주의고....그래서 색즉시공이 공즉시생이다...." 이런 말투는 도사들에게나,.....

 
   

 '우리는....'  이외의 다른 챕터들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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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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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와우, 와우! 저 지루한 표지와 책 제목에 속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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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월 책을 그렇게 안 읽은 것도 아닌데, 리뷰를 한편도 못 썼다. 읽고나서 뭐라도 정리해서 써보자 결심했었건만, 훌쩍 반년이 지났다. 아무 생각없이 내 서재에서만 놀던 때와는 달리, 여기저기 많이 기웃대면서 입 헤벌리고 감탄하고 탄복하며 서평들을 읽다보니 점점 더 내 서평을 쓰기가 두려워진다. 극복해야할텐데. 어찹 여긴 나혼자밖에 없잖아? 힛!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  생각보다 더 독해서 놀랬다. 이 정도로 우리나라를 주무르고 있을 줄이야. 삼성불매에 대한 생각을 더 굳히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아고타 크리스토프):  제목이 이게 뭐람, 표지는 또 이게 뭐람. 이런 이유로 정말 끌리지 않았지만, 알라딘 서평에 혹해서 읽은 책. 마뜩찮던 내 선입견을 홀랑 뒤집어준 책. 와우... 정말 대단한 작가님. 가슴이 아린 정도를 넘어서 뭐랄까 가슴 속 깊은 곳을 울리는 슬픔이 남는달까.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최규석): 최규석 작가 작품. 둘리를 이렇게 만든 사람? 나와~! 모두 다 주루룩..... 도열. 

레볼루션 no.3(가네시로 가즈키) :  영화 GO의 감독이 쓴 작품. GO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학원물 분위기, 좋다. GO를 보고 서경식의 책들을 쭉 사들였었더랬다.  

미식 견문록(요네하라 마리):  유명하신 요네하라 마리 여사님의 책으로 나는 처음. 이것보다는 지금 읽고 있는 '대단한 책'이 훨씬 흥미롭고, 좋다.   

마음(나쓰메 소세키):  이로써 소세키의  대표작들은 거의 대부분 읽은 듯한데. 이 작품이 왠지 젤 맘에 남는다. 일본 근대에 관한 배경지식이 궁금하다. 조금 더 확장된 독서가 가능할 듯.   

어젯밤(제임스 셜터):  글쎄, 난 아직 잘... 단편인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꼽씹고 꼽읽고 그랬다.   

About a Boy(Nick Hornby):  세상에... 5개월만에 드뎌 다 읽었다.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너무 좋다. 결핍에 관한 이야기지만, 서로 치유해가는 과정이 따뜻하다. 초반, Marcus 엄마의 자살 시도 장면에서 친구가 생각났다. 남은 사람들로서는 "How could you do that?"이 그들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믿어지지 않아 나도 얼마나 묻고 또 물었던지.  

반면에, 병원에서 깨어난 엄마의 말.. "파티가 계속되고 있는데, 나는 너무너무 피곤해서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표현은 또한 엄마의 맘을 잘 표현하는 말일 듯. 강조하듯이 Marcus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만 나는 너무 피곤할 뿐이라고....하던 부분들......... 친구가 생각나서 나도 많이 아팠다.   

혼비 아저씨의 책이 한 권 더 남아 있다. 혼비 아저씨의 책은 원서로 읽는 것도 좋을 듯. 어렵지 않고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한껏 즐길 수 있을 듯.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전쟁과 관련된 사진에 관한 통찰. 그것만으로 전부를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 사진 속에서 보는 고통받는 자들을 그저 '타인'으로만 인식하고 동정하고 안도하는 것들을 넘어서야 하지 않나.  과연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들 : 대단한 책(요네하라 마리), 더 로드(코맥 매카시), 캐치 -22(조지프 힐러), Eat, Pray, Love(순서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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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휴가내고 '시'를 봤다. 여운이 꽤 오래가는 영화다. 이창동 감독은 항상 돌아보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요즘 종종 이렇게 뜬금없는 시간에 깨서 잠이 안 온다. 벌써 노인네가 된 것인지. 몇번의 경험으로 다시 잠들긴 글렀다 싶어 책을 보기 시작했다.<그 후>를 끝내고 <존재의 세가지 비밀> 상권을 끝내고. 5시 반. 아.. <존재의..>는 정말 너무 심하다. 오삼년 만에 운동화끈 질근 묶고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5시 반이 밝고 훤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앞서가던 어느 할아버지의  뒷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는데, 그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 생각. 그 때부터 울면서 30분을 걸었다.  

아프다고 병원에서 판정 받으셨을 때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생전 사랑한단 말 안 하던 딸래미가 말씀 잘 못하시고 누워계실 때에라야 아빠,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니 얼마나 울컥거리셨을까, 그래서 심장박동수가 순식간에 솟구쳤던 것이었겠지. 다음에 또 온다고 하시면 꼬옥 잡으시던 손아귀 힘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만 같고.... 그 날도 아빤 날 많이 기다리지 않으셨을까 싶으면 맘이 무너지고, 아.... 6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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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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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 

야만인을 기다리며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야만인'. 그들을 기다리며 혼자 치르는 혹은, 내부에서 벌이는 전쟁. 현실세계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게 섬득하다. 이중적 위치에서의 인간으로써의 고뇌. 그 경계에 서서 온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는 삶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고, 아픔이고, 딜레마이지 않을까. 특히, 후반부 내면의 독백들을 읽으면 가슴이 저리다. 최고의 책! 아끼게 될 작가!  

*"제국의 국민들은 새로운 출발, 새로운 장, 새로운 페이지를 믿는 사람들이다."라는 글을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에서 재인용해서 썼던 적이 있다. 각주에 J.M 코엣지 라고 썼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 작가, 이 책에서 나온 말이었다. 책을 읽다가 깜짝 했는데, 오늘 들고 있던 글을 들쳐보니 그렇다. 꽤 오래전이었는데, 이렇게 스쳐갔었구나....   

 나는 희미한 조소가 내 입가에 어리는 걸 느낀다. 나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이 질문이 염치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면, 날 용서하게. 당신은 사람들을 그렇게 다룬 다음,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는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이 질문을 하고 싶네그려. 이건 사형집행인들과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내가 늘 물어보고 싶었던 걸세. 잠깐! 조금만 더 들어주게. 나, 정말로 진지하게 질문하는 걸세. 자네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네. 나는 자네가 무서워 죽겠네그려. 내가 자네에게 새삼스럽게 그 얘기를 할 필요도 없겠지. 자네도 그걸 알고 있을테니까 말이야. 여하튼, 일이 끝나고  나서 음식을 먹는 게 쉬운 일인가? 내 생각에는, 그런 사람들은 손부터 씻고 싶어할 것 같거든. 하지만 손을 씻는 것도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성직자가 끼어들어야 할 정도의 일이거든. 일종의 정화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일세.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않나? 영혼을 정화시키는 의식 말일세. 여차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그렇지 않고서냐 어떻게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겟나? 가령, 식탁에 앉아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빵을 잘라 먹는 일 같은 일상적인 삶 말이네"  

그가 돌아선다. 

그들이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을 대하고 있다는 걸 알도록 만들자! 무서우면 무섭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자! 저 자들은 완강한 침묵을 먹고사는 인간들이다. 침묵을 지키면, 저자들은 개개인에 대해, 그들이 인내심을 갖고 열어야 하는 자물통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물속의 고기들이나 허공의 새들이나 아이들과 같은 시간 개념 속에 사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가? 그건 제국의 잘못이다! 제국은 역사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제국은 부드럽게 반복되는 순환적인 계정의 시간이 아니라, 흥망성쇠와 시작과 끝, 그리고 파국이라는 들쭉날쯕한 시간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어떻게 하면 끝장이 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시대를 연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제국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아니 행방불명된 백성들에게조차 강요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야만인들에게 제국의 역사를 강요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것이 수치스러워할 이유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읽은 두 권의 책

만들어진 신   

그래, 그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종교'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라는 확인.  그렇다고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신 분들이 회의에 빠지거나 '신은 없었다'로 돌아서지도 않을 것 같다는 확신.  종교란 그런 것.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아프리카라는 곳은 원래 빈곤한 곳.이라는 생각이 왜 자리하고 있었던 걸까. '타인의 고통'에 이렇게 무감해져 있었다니.  

세계 곡물 생산량을 보면 지구 전체 인구를 먹여살리고도 남는다는데, 굷어 죽는 인구가 세계 1/6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읽는 안타까움. 이 곳에까지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의 손길이 미치고 있었다는 건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같이 산 '빈곤의 종말'을 읽을 엄두가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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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0-04-2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의 >는 일단 보관담에 담아둡니다. 그러게요, 정말 편치 않은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