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전면개정판) -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옮김 / 시유시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1

작년 겨울이었다. 오랜 친구 하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구조대는 반파된 차에서 녀석을 꺼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내 친구를 구한 것은 긴급한 응급조치와 빠른 후송, 그리고 지체 없이 이어진 수술이었다. 결국 그는 목숨을 보전했고 지금은 거의 완전하게 건강을 회복했다. 가슴을 쓸어내릴만한 이야기다. 만약 구조대가 10분만 더 늦게 도착했더라면, 혹 수술이 얼마라도 지체되었더라면 내 친구는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 할 수도 있었던 노릇이었다. 이 사례는 분명 효율성의 승리로 기록될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충분히 느린 속도로 차를 몰았더라면 애초에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과연 무엇이 내 친구를 사고로 몰아갔는가 하는 의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던져보면 그 최종적 용의선상에도 분명 효율성이라는 단어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막스베버는 사회가 분업화되고 구조가 복잡성을 띠면서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를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용어로 통찰했다. 이러한 근대적 합리성은 ‘관료제’를 탄생시켰고 관료제는 적어도 70년대까지 세상의 모든 조직을 지배했다. 책의 저자 조지리처는 베버의 적자로 그가 주장하는 ‘맥도날드화’는 근대적 합리성과 관료제의 최신 버전이다. 그는 이 책에서 '맥도날드화'를 돋보기처럼 들이대고 병든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 2
 
주문한지 3분 만에 포장된 햄버거 세트가 나온다. 쟁반에 가지런히 담긴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 캐첩, 스트로우, 티슈를 들고 가까운 창가자리에 앉는다. 흘러나오는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햄버거를 완전히 해치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해야 10분. 사실 그 이상 천천히 먹고 싶어도 자리가 불편하다. 나와 거의 동시에 옆자리에 궁둥이를 들이 밀었던 사람은 벌써 다 먹고 나간지 오래다. 가게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손님이 몰려들어 내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고 있다.

이 재빠름, 이 효율성이 언제부터인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말도 필요 없고 어정쩡한 제스츄어도 필요 없다. 단지 이것. 한 마디와 크레딧 카드 한 장이면 우리는 놀이공원에서 짜릿한 스릴을 구입할 수 있고, 예쁜 여성과 섹스를 구입할 수 있다. 뿐 만이냐 옮긴이의 말처럼 의료, 영화, 스포츠, 쇼핑, 마케팅, 출생, 죽음, 심지어 죽음 이후의 영역에까지 효율성은 달콤한 사탕가루처럼 묻어있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맥도날드화이며 그 대가로 우리가 바쳐할 것이 다름 아닌 인간다움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맥도날드엔 손맛이 없고, 놀이공원엔 리스크가 없으며, 예쁜 여자는 사랑이 없다. 인터넷 쇼핑은 에누리가 없고, 컴퓨터 경마에는 말발굽에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 냄새가 없다. 보람 상조에 월 3만원씩 내면 죽음의 순간 오물로 화한 내 육신은 깔끔하고 빠르게 수습되겠지만, 그 직원들이 진정으로 슬퍼하고 눈물 흘려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처럼 맥도날드화가 자랑하는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종업원, 고객, 제품에 대한 완벽한 통제는 어느 순간 이 합리적인 불합리에 직면한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우슈비츠. 보라, 유대인들을 빠르고 쉽게 살해하기 위해 거대한 소각장을 건설한 효율적 마인드, 개체수를 조절해 적절한 인구를 유지하는 계산가능성, 일단 들어온 자들은 100% 소각된다는 예측가능성. 이 일련의 과정이 나치라는 ‘고객’의 의뢰를 의해, 교도관이라는 ‘종업원’들의 작업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물론 그 생산물이란 앙상한채로 죽은 유태인이라는 ‘제품’.  

리처는 이러한 맥도날드화의 내재적 한계가 역사적 사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고등교육은 육류처리를 닮아가고 있으며, 의료시스템에서 환자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맥도날드화에 대한 대응’을 다루고 있는 10장에서 노골적인 어법으로 맥도날드화에 대한 혐오를 내비치고 그것을 저지하고자 하는 바램을 드러낸다. 그가 마지막으로 인용하는 딜런 토마스의 시구는 자못 비장하다. 

"그 깊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라"   

#. 3

흑인 마을에 간 어느 백인 선교사가 커다란 지옥도를 걸어놓고 흑인들을 겁박했다. 신을 믿지 않는다면 죽어 지옥에 떨어지리라. 그림을 본 흑인들은 겁에 질려 흩어졌다. 그러나 웬걸? 다음주 주일에 교회에 모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노하며 연유를 묻는 백인 선교사에게 흑인 하나가 그랬단다.

“그림에서 지옥에 간 사람들은 모두 백인뿐이더군요.”

지금 여기에서 맥도날드화란 어떤 의미일까? 정말 그것이 악마와의 계약일까? 최소한 나는 악마적 맥도날드화를 피부로 체감하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는 맥도날드가 생겼다가도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고,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동네 밥집은 메뉴 하나 늘지 않지만 점포의 크기는 두 배로 늘었다. 비근한 예지만 내가 자주 가는 병원의 의사는 늘 친절하며, 우리 동네 슈퍼에서는 ‘씨즐리언’도, ‘유대인 베이컨’도 팔지 않는다. 이건 그의 분석틀이 지역적 국한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조지 리처의 염려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지나친 효율성의 추구가 인간의 인간다움을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불안이 지나치게 맥도날드화의 어두운 면만 부각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점을 의심해 볼 여지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맥도날드화의 선례를 찾아볼까? 내가 생각하기에 현대인들의 수명이 이전과 비교해 월등하게 늘어난 이유도 맥도날드화 즉, 효율성의 극대화가 이뤄낸 성과다. 그 중심에는 의료와 행정과 서비스를 통합한 신식 병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리처가 병원 서비스를 맥도날드화의 부작용으로 평가절하 하게 된 이유는 미국의 후진 의료서비스 체계에 있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조지 리처가 염려하는 많은 부분들은 ‘맥도날드화’의 부작용이라기 보다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풍토병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는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저서와 자료들을 가지고 좌충우돌하지만 그 조차도 대부분은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것들이 아닌가.

그래서 리처의 현실인식 보다는 마지막 장에서 소개하는 맥도날드화에 대한 대안 부분이 더 재미있다. 마트에 대항하는 식품협동조합, 주립 대학에 대항하는 소규모 대학들, 베스킨라빈스에 대항하는 수제 아이스크림, 반 노동자적 포디즘에 대항하는 스웨덴의 샤브나 볼보 같은 자동차 기업들. 또 개인적 차원의 대응 모색까지.. 이러한 글쓴이의 탐구는 현대사회에서 인간답기 원하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4

베버의 시대는 암울했다. 산업혁명과 1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식인은 낮선 모든 현상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조지 리처는 막스 베버의 적자. 그래서 세상을 독해하는 그의 눈빛도 베버의 예민한 눈빛을 닮았다. 그래서 그의 분석은 지나친 시니시즘에 빠져있다. 하지만 그러한 불완전한 구석이 있더라도 세상을 읽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성과는 눈부시다. 

맥도날드화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인간의 역사는 유구한 세월을 거쳐 오며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왔고, 때로는 어리석게 퇴보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명석한 길을 찾아 진보하기도 했다. 맥도날드화란 과거 어느 시점에 취한 선택의 결과이며 또 다른 선택의 기로이리라.

전태일은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당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스스로 자신의 심장에 불을 당겼다. 그는 온 몸으로 맥도날드화를 거부했다. 그가 한줌 재로 스러진 이후 한국의 노동현실은 숱한 변화가 있었다. 때로는 퇴보했지만 대체로는 진보했다. 아직도 열악한 노동은 많지만 그 정도를 과거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줄어드는 노동시간과 그나마라도 늘어나는 임금, 손톱만큼씩이라도 나아지는 복지.

나는 숱한 전태일이 불을 당긴 그 진보를 믿는다. 그리고 그 치열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펼쳐진 지금의 역사를 신뢰한다. 내가 맥도날드화를 겁내지 않는 건, 그 역사가 달고 있는 저울추의 무게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전망한다.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은 효율성과 더불어 뜨끈뜨끈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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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2-1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 잘 읽었어요. 책 한권을 보는 것 같아요.^^ 괴물의 탄생 독서 모임할 때도 비슷한 대안이 나왔었죠.

그런데 페이퍼는 안 써요? 응?

뷰리풀말미잘 2009-12-15 11:47   좋아요 0 | URL
쓰, 쓸게요. 안 그래도 쓰고 싶은 얘기가 한참 밀렸어요. ㅎㅎ

Arch 2009-12-15 11:56   좋아요 0 | URL
나 완전 기다린다! ^^

2010-07-05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0-07-10 09:18   좋아요 0 | URL
별로 재미없습니다. :) 뭔가 막 추천해드리고 싶은데 지금 막 생각이 안나네요.

2010-07-12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0-07-12 18:52   좋아요 0 | URL
의외로 공대 출신이셨군요:) 개인적으로 이공계 출신들을 우대합니다. 샤프한 매력이 있지요. 진중권이나 박노자 김규항의 책들이 좋아요 고종석의 칼럼이나 유시민의 글도 좋구요. 위 저자들중에는 직접만나본 사람도 있고,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애정이 가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거나 다 좋은 필자이긴 하죠. 원하시는 장르인지 잘 모르겠지만 정신과 미녀 전문의 정혜신의 남자vs남자 사람vs사람 추천합니다. 인물론, 심리학, 사회과학이 파티하는것 같은 책들이에요.

봄밤 2014-07-05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생각나서 찾고 있었어요. 아, 책보다 더 좋은 리뷰를 보고가요. 그냥 갈 수 없어서 안부를 남겨요. 여름, 건강히 계셔요.

뷰리풀말미잘 2014-07-07 09:08   좋아요 0 | URL
리뷰보다 더 좋은 댓글이네요. 링크 타고 서재 구경 잘 했습니다.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 또 어디서 나타났지?

봄밤 2014-07-07 19:51   좋아요 0 | URL
뷰말님의 예전글에 지내다가요. 어찌나 계속 읽고 싶게 쓰셨는지. '잘'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부족해요. 뷰리풀말미잘님의 '지금'을 기다립니다!

뷰리풀말미잘 2014-07-07 21:53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쓸 때 좀 더 열심히 쓸걸!
 

#. 1 

박아둔 쁘락치 녀석과 커피를 마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녀석이 한숨을 푹 쉬더니 그런다.   

"미잘 뒷 얘기 장난 아닌거 모르죠?"  

"나처럼 비중없는 사람이 무슨 뒷 얘기 나올게 있다고."  

쁘락치는 한참동안 열심히 내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서 읊어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사실이거나 사실에 가까운 얘기들이다. 내가 어디서 뭘 했고, 무슨 말을 했고, 심지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내 스스로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 뒷담화의 도마에 올랐던 모양이다. 그 뒷담화의 도마에서 나는 센척하고 건방진데다 얍삽한 놈으로 토막나 분류됐다. 구체적인 근거까지 꼬리표처럼 붙어서. 내가 쁘락치 하나를 심어 놓을 때 내 주변에는 누군가가 심어놓은 수 많은 쁘락치가 있었던 거다. 왠지 조금 억울한 느낌. 

내게 적대적인 세력이 있다는 건 나도 익히 아는 바다. 그 집단의 수장인 J는 모르긴 몰라도 내 이름 적힌 지푸라기 인형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눈치다. 그가 내게 가지고 있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나한테 관심 많은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인사만 하면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하는 그 감정. 그를 주축으로한 그 세력이 최근에 나에 대한 성토의 장을 연 모양이다. 어쩌다 그 자리에 끼게 된 내 마음 약한 쁘락치는 그들이 나를 욕하는게 마음이 아파서 나서 변호를 시도했고, 제대로 쿠사리를 먹고 잔뜩 의기소침해졌다.   

"왜 미잘이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하죠? 그들은 미잘을 알지도 못하잖아요!" 라고 쁘락치는 얘기했지만 그건 니가 내 쁘락치니까 그렇지. 순진한 놈아.  

사실 그 적대적인 세력은 어느 정도는 내 실수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나는 별로 신경 못 써주는게 미안할 만큼 그들의 비난을 받아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멤버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는 점은 좀 당혹스럽다. 날 싫어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이름도 모르는 어중이 떠중이까지 모아 놓는 건 좀 자존심 상한다고 가서 말해볼까.

#. 2    

내가 그랬다.  

쁘락치야. 너 자본론 서문에서 마르크스가 이런말 한 거 알어?  "니 갈 길이나 가, 그리고 멍청이들이 멋대로 지껄이게 그냥 내버려둬!" 그런거 저런거 신경쓰면서 세상 살면 피곤하다. 너 인생에서 니 편 다섯명만 있으면 성공한거야. 나 한번도 평판에 연연하고 살아 본 적 없다. 누구에게 뭘 의지하고 기대본 적도 없다. 처신에 신경쓴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유없이 남에게 모질게 대해 본 적도 없다. 남에게 어려운 일 시키기 미안해서 내가 떠 앉아 한게 센척이고, 옹기종기 모여서 위 아래 따지고 노는 꼴 무시한게 건방진거고, 그 실수 하나가 얍삽한걸로 보일 정도면 그 동안 내가 너무 깨끗하게 살았다는 거 아니겠니?     

프락치가 그랬다.  

"그 자리에 Y도 있었어요."  

아주 오랫만에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이 저릿하다.

#. 3   

솔직히 말하면..  

그래서 나 오늘 좀 속상하다.  

이렇게 유치한 일로 마음이 아플 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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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0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02 09:34   좋아요 0 | URL
그런데 미잘이 미모로움을 시기하는 사람이 많군요!!

뷰리풀말미잘 2009-12-02 09:46   좋아요 0 | URL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 확실히 그것도 좀 있는 거 같아요.

2009-12-02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12-0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랫만에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이 저릿하다, 라는 문장이 오늘 유독 저릿하네요.
사람들이 마음이 아픈건 대부분 유치한 일들 때문이죠....

뷰리풀말미잘 2009-12-02 10: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속이 쓰린 건 아침을 안 먹었기 때문이구요. ^^ 흰 쌀밥에 삼겹살 쌈 싸서 꼭꼭 씹어 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솟을 것 같은 아침입니다. 다락방님은 식사 하셨습니까?

다락방 2009-12-02 10:27   좋아요 0 | URL
저는 아주 맛있는 소불고기 엄청 먹고 출근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어여쁜 말미잘님께 뜨거운 소불고기 한접시 가득 담아 대접하고 싶어졌어요. 저릿할때는 따뜻한 걸로 뱃속을 채우고 기절하듯 잠을 자면 좀 나아질테니 말예요.
제가 드린다고 생각하시고 일단 지금은 소불고기 사서 한 그릇 드시구요,
저녁엔 말씀하신것처럼 삼겹살 드세요. 음, 삼겹살은 역시 소주가 최고에요.


쓰다보니 굉장히 개인적이 되는데, 쓰다보니 욱, 해서 말이죠.
저도 어제 오늘 컨디션이 엉망이에요. 사실은 따지고 보면 제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고 그냥 무심히 넘겨도 될 일인데 제가 자꾸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별것도 아닌 일인데 말이죠. 그러다보니 회사고 뭐고 때려치고 도망 가버리고 싶은데, 제 사정이 또 회사를 때려쳐서는 큰일날 사정이에요.

날은 추워지고 스트레스는 좀처럼 줄어들질 않고
정말이지
고기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날들이에요. 과연 이 순간이 지나가고 더 좋은 순간이 오긴 올까요? 어떻게 하면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일들을 신경쓰지 않으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까요?

오늘 아침은 말미잘님과 제가 같이 우울의 수렁에 푹 담가져 있는 것 같아요. 누가 그 안으로 밧줄을 던져 넣어주려나요...

2009-12-02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12-02 13:18   좋아요 0 | URL
제 밧줄 잡고 올라오라고 하고 싶어요. 난 이제 좀 괜찮으니까.
모두모두 힘내요, 응? 서울발 급행열차를 타고 모두에게 행복한 삼겹살을 사주고 싶어요. 착한체냐하면, 네 착한체 맞아요.^^

뷰리풀말미잘 2009-12-02 14:06   좋아요 0 | URL
대변인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요. ㅎㅎ 오늘 댓글 만선이네요.

Mephistopheles 2009-12-0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치는 바람에 그대 모습 보이면 오늘도 쓸쓸히 이 길을 걷게 만드는 분과 대립을 하고 계시군요..그저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속 편할지도 모릅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12-02 10:04   좋아요 0 | URL
저는 늘 겨울에 살았는데요.. 아름다운 여름같은 건 본 적도 없는데요.. 메피님 아침부터 그렇잖아도 신파모드 미잘 눈물샘 자극 할 겁니까? -_-+

Mephistopheles 2009-12-02 11:35   좋아요 0 | URL
노랫가사일 뿐입니다.흐흐흐

뷰리풀말미잘 2009-12-02 14:07   좋아요 0 | URL
'M' 에게 였던가요. ㅎㅎ

Forgettable. 2009-12-0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결심대로 헛소리하지 않기 위해 24시간을 기다렸다가 쓰려고 했는데,
12시간이 지나니 말들이 다 걸려져서 할 말이 없게 되어버렸어요. -_-
진정 난 헛소리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걸까요??

그 자리에 F는 없을거에요. 평~~~~생~ 다음생에에서도!그 다음생애에서도!
살다보면 유치한 일 때문에 마음이 저릿하기도 하지만
또 유치한 일 때문에 괜찮아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유치하다능ㅎㅎ

Arch 2009-12-02 13:19   좋아요 0 | URL
난 하나도 안 유치한데? 12시간 기한 지킬 필요없습니다. 응?

뷰리풀말미잘 2009-12-02 14:04   좋아요 0 | URL
제가 달 댓글을 제 대변인께서 대신 달아주셨네요.

뽀님 여기에서 태양까지 보내는 메시지도 10분이면 갑니다. 메시지가 오고가는 시간이 24시간이면 그건 우주적 스케일의 버퍼링이네요. 기다리다 말라죽습니다.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12-02 14:20   좋아요 0 | URL
24시간이면 말하려던 걸 참았다는 거까지 잊어버릴 시간이예요.

뷰리풀말미잘 2009-12-02 14:31   좋아요 0 | URL
응가도 참기 어려운 시간이라구요!

Arch 2009-12-02 15:01   좋아요 0 | URL
응가 참으면 똥독 올라요. 얼굴이 누래질 수 있다구요!

뷰리풀말미잘 2009-12-02 16:06   좋아요 0 | URL
헉. 아치가 누런 이유가 있었어..

푸하 2009-12-07 20:21   좋아요 0 | URL
음... 그자리에 p도 없을 거에요.

2009-12-02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14: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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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5 1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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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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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3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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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3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3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3 15: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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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3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7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7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1 

  

심장이 발작적으로 피를 짜 온 몸으로 퍼트린다. 맥박이 무서울 정도로 커다랗게 들린다. 최대치로 긴장한 허벅지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호흡이 뒤엉켜 입이 열리고, 열린 입으로 비릿한 피 냄새가 난다. 아무리 숨을 몰아쉬어도 가슴은 짜부러 지는 것처럼 갑갑하다. 온 신경이 피아노 줄처럼 팽팽해지는데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칼이 자꾸만 눈을 찌른다.

유혹은 달콤하다. 멈추는 순간 이 모든 고통은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니까. 그래서 그 순간 무릎을 들어올리게 만드는 건 육체의 작용이 아니라 정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오기와 자존심, 혹은 당면한 현실에 대한 책임감 그런 것들이 러너의 호흡을 쥐어짜낸다.

언젠가 황영조는 인터뷰에서 훈련 중에 여러 번 자살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왜 차라리 멈추지 않고 달려오는 트럭에 뛰어들었을까. 찰라, 그의 자존심은 육체의 한계를 부정했고, 극한에 몰린 육체는 신경계의 컨트롤을 거부했을 것이다. 자기 내부에서 벌어진 이 카오스는 그의 몸은 우주의 일반적 특성과 무한히 닮아가도록 몰아붙인다. 엔트로피의 무차별적인 확산. 오온의 이산. 혹은 주화입마. 그 통제 불가능의 상태에서 그는 죽음으로 내달렸으리라.

마주 달려오는 차가 없었을 뿐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만약 그 순간 이를 악물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꽤 많이 달라져 있을거다.  

6분 16초. 기록이라기에도 뭣한 기록이지만, 나는 그걸 아직도 기억한다.

#. 2  

2시간19분15초. 1990년, 스무 살의 나이로 데뷔한 전국체전에서 이봉주가 세운 기록이었다. 2위의 기록이였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주목받기엔 조금 모자라는 기록이었다. 하긴, 그만한 기록에 도달하고도 쓸쓸히 육상계를 떠나는 선수는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절치부심했고 그로부터 3년 후인 93년 호놀룰루 마라톤에서 2시간13분16초의 기록으로 첫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때야 비로소 언론은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프로 선수 이봉주로서는 한 숨 돌린 셈이었다. 기록은 2시간13분16초. 가까스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셈이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가 진정으로 극복해야 할 것은 그의 옆자리, 황영조라는 거인이었으니까. 그의 마라톤 인생 초반부의 주제는 단연 황영조의 극복이었다. 

황영조는 이봉주와 70년생 동갑내기로 5000m, 10000m 국가대표 시절부터 트랙을 함께 달렸다. 황영조가 고등부10000m에서 세운 29분 31초의 기록을 세우며 일찍부터 주목받았던 것에 비해. 이봉주는 이렇다 할 이력이 없었다. 2005년까지 깨지지 않았던 황영조의 10000m 29분 31초의 벽은 이봉주에게 난공 불락의 성이나 다름없었다. 황영조, 장거리에서 독보적인 커리어를 세운 이 육상계의 아마데우스는 어느 새 마라톤 무대로 영역을 넓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92년 바르셀로나에서 예상을 뒤엎은 역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나는 아직도 몬주익 언덕을 기억한다. 코스는 최악의 오르막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날씨마저 좋지 않았다. 지구력이 좋던 일본 선수 모리시타는 마지막 관문 몬주익 언덕까지 늑대처럼 끈질기게 따라 붙었다. 걸어 올라가기도 벅차게 보이는 그 언덕길에서 황영조는 오히려 이를 악물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바로 등 뒤를 추격하던 모리시타와 격차는 그제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최후의 투혼을 불사르며 1위로 결승 테이프를 끊었고, 쓰러져 오래 일어나지 못했다. 스타디움에서 전광판으로 그의 역주를 지켜보던 손기정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한국 육상사상 최대의 명장면이었다. 그날 황영조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 냈을 뿐 아니라 한국 육상계가 가지고 있던 역사적 트라우마를 해체했다.

이후에도 황영조는 94년 보스턴 마라톤과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 그늘에서 이봉주는 늘 모차르트를 쫒는 살리에르처럼 취급당했다.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황영조의 독주는 96년에 위기를 겪었다. 그해 그의 기록은 전에 없이 부진했는데 그는 어쩐 일인지 그 부진을 극복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포기했다. 훗날 황영조는 말한다. “솔직히 더 뛸 수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딸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과 아시아 경기대회 금메달 한국 최고기록등 모든 걸 이뤘다. 더 뛸 의미가 없었다. 운동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는게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 서서히 미래를 설계해야 했다...” 불과 스물여섯의 나이었다. 

언론은 96년 이봉주의 올림픽 출전이 정해졌을때 단지 황영조의 빈 자리를 꿰어찼을 뿐이라고 빈정거렸다. 그래서 애틀랜타의 30도 가까운 폭염을 헤치고 2위를 차지한 그의 '은메달'은 92년의 황영조의 ‘금메달’과 자주 비교되곤 했다. 그로서도 개운찮은 날들이었을 거다. 

이봉주를 생각하면 늘 맹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이봉주가 자신 앞의 웅덩이를 다 채운 건 이제는 노회하지 않았냐는 부정적 평가가 나오던 98년 무렵이 되어서였다. 그의 나이는 이미 스물여덟, 육상선수로서는 황혼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금줄이 쳐져 있는 것 같던 2시간 7분의 벽을 보란듯 뛰어넘으며 평생을 헤메던 황영조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물줄기였다.

사람들의 예상을 연파하며 30대 초반의 이봉주는 거침없이 달려댔다. 30이 되던 해. 그는 도쿄에서 지금까지 한국기록으로 남아있는 2시간7분20초의 대기록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1년 후 세계 3대 마라톤 중 하나라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또 1년 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그의 이름은 전광판의 가장 윗줄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도 언제까지나 건재할 수는 없었다. 그 무렵 그는 어느 대회에서인가 무릎에 통증을 느끼고 주저앉았고 경기를 포기한 적이 있다. 원래 무릎관절, 특히 충격을 완화시키는 연골은 사용하면 할 수록 소모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 시점에 이봉주는 이미 선수로서 그 육체에 허락된 모든 하드웨어를 소진 한 후였다. 그대로라면 훗날 정상적인 생활에서도 무리가 갈게 뻔한 일이었다. 그는 주춤했고, 그러는 사이 그의 몇 되지 않던 경쟁자는 상당한 숫자로 불어났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은퇴선언을 하지 않고 젊은 시절처럼 죽을둥살둥 달렸다. 새로 등장한 아프리카의 젊고 강한 철각들은 노회한 제왕의 권좌를 무섭게 위협했다. 그의 입지는 매해 줄어들었고 순위에 들지 못하는 경기가 그렇지 않은 경기보다 훨씬 많아 졌다. 나는 나의 영웅이 비참해 지는것을 보는게 어려웠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을 보지 않은 건 그런 이유였다. 그냥 차라리 메달과 멀찌감치 떨어진 기록을 바랬다. 그 무릎이 더 상하기 전에 빨리 은퇴할 수 있게. 하지만 그는 베이징에서 14위라는 어중간한 등수를 기록한다. 그의 의지를 익히 아는 팬으로서는 절망적인 일이었다. 그 정도로 그는 은퇴를 생각할 위인이 아니니까.  

기어이 그는 2008년에도 올림픽에 출전했다. 예상대로 패기등등한 아프리카의 젊은 선수들이 하이에나처럼 이봉주를 물어뜯었다. 이봉주는 서서히 페이스를 잃으며 순위권에서 멀어졌다. 그것이 한계였다. 28위. 서른 여덟 살, 서른여섯 번째 풀 코스 완주였다. 끝까지 그를 응원하던 팬들도 이제는 그를 마음에 담을 준비를 했다. 

#. 3

이봉주를 만난 적이 있다. 97년 춘천국제마라톤으로 기억한다. 그는 덤덤했다. 조금 있으면 처절하게 2시간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사람이 저렇게 덤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깊이가 아득했다. 

왠일로 그날 이봉주는 순위에 들지 못했다. 경기를 마친 그는 소처럼 무던한 얼굴로 퇴장했다. 나는 97년 춘천국제마라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의 웃는 얼굴을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 그들 중 현역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봉주는 순간의 기복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저 몬주익의 영웅이 갖지 못한 유일한 덕목이었다. 

육상에서 한 인간이 20년간 세계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소름끼칠정도의 평정심과 빈틈없는 자기관리, 죽음을 기억할 만큼 괴로운 훈련을 20년간 지속할 수 있다는 건 거의 구도자의 멘털리티에 가깝다고 본다. 베이징에서도 이봉주는 억울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이제 힘이 딸리고 스피드가 예전만 못하다는 걸 누구나 아는데도 그는 97년 그 때처럼 그냥 덤덤했다.  

또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는 이후로 다섯번의 풀 코스를 더 뛰었다. 기록은 전성기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09년 10월 21일, 정확히 20년 전 스무살에 그가 데뷔했던 전국체전이었다. 마흔 한번째 풀코스 경주를 뛰는 불혹의 이봉주는 그날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 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그가 몇 등을 하던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든 팬들이 한 마음이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전설이었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그날 그의 기록은 2시간 15분 25초.  

그가 결승점을 통과할 때, 그의 앞에는 기적처럼 단, 한명의 선수도 없었다. 

코끝이 시큰했다.  




#. 4

이봉주의 승리를 떠올릴때마다 마음 아프게 기억하는 사실이 있다.  

그는 짝발이다. 양쪽 발의 사이즈가 서로 다른 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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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11-2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영조나 이봉주나 모두 훌륭한 선수들이지만...왠지 이봉주가 더 오래 사람들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09-11-28 18:32   좋아요 0 | URL
그 오랜 세월동안 이렇다할 스캔들 하나 없었던 사람이죠. ^^ 오래 기억될 겁니다.

2009-11-28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8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1-2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선수들은 은퇴한 뒤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던데...군대나 운동선수들의 훈련보다 사회생활이 더 힘든 것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09-11-29 22: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황영조 선수지요. 저 개인적으로도 그런 점들이 있구요. ^^ 대한민국 사회가 정글같아서 그런걸까요. 군대나 운동이 사람의 사고를 단순하게 만들어서 그런걸까요.

노이에자이트 2009-11-30 21:42   좋아요 0 | URL
그건 다른 나라도 다 마찬가지 같아요.남자들은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어디 군대만 그런가요.사회생활도 제정신으론 못할 짓이 많지요.뱃속 창자를 전깃줄에 걸어놓아야만 할 상황(이 말뜻 아시죠?)이 얼마나 많습니까...

뷰리풀말미잘 2009-12-01 01:43   좋아요 0 | URL
아, 오늘 걸어놓은 창자 넣고 오는거 깜빡했네요.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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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오직 즐거움. 책 고르는 기준으로 미루어 보건대 내게는 에피큐리언의 피가 흐르나보다. 예전 에피쿠로스 학파의 현자들은 쾌락을 일시적인 것과 지속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지속적인 쾌락을 지고한 것으로 치부했다. 이 분류법은 책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는 좋은 소설이지만 두 번 읽으면 지루하다. 반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좋은 소설인데다가 두 번 읽어도 재미있다.

그걸 구분하는 기준이 뭘까? 나는 정보의 집적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유했다면 원하는 모든 책을 살 충분한 여유가 있었을 것이므로 굳이 지속적인 쾌락과 일시적 쾌락을 분류하지 않았을 테지만, 부유하지 않은 나는 적은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야 하는 서민이라 또 읽어도 재미있을 만큼 정보의 집적도가 높은 책을 선호하게 된 거다. 같잖게도 내 책장에 어려워 보이는 책이 많은 이유는 단지 내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아마 서평단이 아니었더라면 “고등어를 부탁해”를 읽을 기회는 없었을 거다. 이건 얇고, 쉬워보이는데다가 싸지도 않다. 가난한 에피큐리언이라면 쉽게 손이 갈 만한 책은 아니다.

#. 2

‘고등어를 부탁해’는 수필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이러한 때깔을 가진 글을 일러 보통 “잡문”이라 하는데 잡문이라고 마냥 녹록하게는 생각하지는 마시라. 내공과 기품을 갖춘 잡문은 장르적 권위에 안주하는 쓰레기들 보다는 몇 수 위다.

잡문이란 무엇일까? 이 분야의 권위자 아치가 인용한 미셸 투르니에에 따르면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잡문'이라는 단어는 논쟁들, 지엽말단의 문학, 지나친 자유, 언어의 가치 하락에서 유래하는 폭력들로 이루어진 무질서한 총체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의 인격이 자신을 드러내고 활짝 피어나는 것은 오직 비정상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그 사회와의 대립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잡문의 시기에는 천재성과 범죄성 사이에 불가피한 친화력이 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문학의 일종으로 보기에는 지엽말단적이며, 지나친 자유를 추구하고, 때로 명민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이 ‘비정상’에 범주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상에서 아우슈비츠를 연결하는 천재성, 미국으로 어학연수가는 딸내미에게 콘돔 그릇을 내미는 ‘일종의’ 범죄성 사이에서 끈적하게 감정이 이입되는 친화력을 본다. 이 잡문의 뭉텅이는 장르의 엉덩이들을 툭툭 걷어차며 활보한다. 소설이었다면 이렇게 경쾌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이 진정한 잡문인 이유는 촉수를 뻗는 범위가 워낙 전방위적이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교육자로서 그녀의 고민들은 역사와 정치, 교육과 섹스를 가리지 않고 페이지에 쓸어담는다. 이 책이 수필문학이 아니라 “인문” 분야로 분류되는 것도 그 고민의 농도가 수필이라는 얇은 접시가 감당하기엔 너무 진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이 행간에 쌓이는 순도높은 정보의 집적. 그런 묵직한 고민들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길기만 하면 지구도 번쩍 들어올릴 수 있다던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같은 오리지날 한국 아줌마의 말빨.   

본 적 없어서 ‘자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냄새가 어떤지는 알고 있다. 그건 남국의 과일처럼 상큼한 냄새다. 그곳 베를린에는 그런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사는 가족이 있다.  

‘돈보다는 시간을, 순간의 안락함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강요와 간섭보다는 자유와 존중을’ 삶의 모토로 내 건 베테랑 건축가 겸 아줌마 그녀와, 따뜻한 물주머니와 전기담요의 환경적 가치를 비교하는 독일인 환경주의자 남편, 난독증에 스타일은 후지지만 공부도, 취직도 수월하게 해 치운 엄친아 아들과, 콘돔 사용 요령을 아빠에게 시험해 보고 싶어하는 깜찍무쌍한 딸래미. 이 불온 발랄한 가족의 삶은 그 동안 내가 봐 온 어떤 가족의 유형과도 다르고, 독특하다. 독자들은 ‘가족’에 대해서도 새로운 감수성을 쌓을 기회가 될 것이다.

어떤 페이지든 시선이 머무는대로 읽는 재미가 읽는 책이다. 가난한 에피큐리언은 흐뭇하게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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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을 꿈꾸거든 버려라
    from 날아라! 도야지 2009-11-19 14:31 
    고등어를 금하노라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임혜지 (푸른숲, 2009년) 상세보기 경제력과 행복지수는 비례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통계청이 발간한 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명목 GDP는 IMF 집계치 기준 9,291억 달러로 세계 15위에 올랐다고 한다. 반면 영국 신경제재단이 전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행복지수(HPI)는 68위를 차지했다. 이 행복지수의 평가항목은 경제적 요인, 자립, 형평성, 건강,..
 
 
치니 2009-11-1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재미있겠는데요. 잡문으로써 범위가 전방위적이고 그 내용이 묵직한 건 말미잘님 글도 마찬가지. :)

뷰리풀말미잘 2009-11-18 22:39   좋아요 0 | URL
호호- 치니님도 참.

2009-11-19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9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9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9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11-19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게 그런 책이었어요? 잡문인데 읽기에 좋다는거죠? 흐뭇하게 만족할만한 잡문이라니- 오옷.

뷰리풀말미잘 2009-11-19 17:56   좋아요 0 | URL
예 흐뭇하게 읽은 책입니다. ^^ 다락방님도 좋아하실까요? ㅎㅎ
 
<그들의 무덤은 구름속에>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이야기
아네트 비비오르카 지음, 최용찬 옮김 / 난장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 1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중심인물로 유명한 아도르노는 1949년에 쓴 「문화비판과 사회」라는 논문에서 ‘아우슈비츠이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 라고 일갈했다. 논문은 1955년‘프리스멘’(Prismen)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유명해졌으며, 꽤 지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훗날, 아도르노는 그 말을 철회하게 되는데 온갖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대학자에게 그 말을 철회하게 만든 것은 한편의 시, 파울첼란의 ‘죽음의 푸가’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파울첼란은 누구인가? 유대계 독일인이던 그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며, 부모를 아우슈비츠에서 잃은 시인이다. 그 무렵의 슬픔과 고통을 시로 읊던 시인은 결국 삶과 화해하지 못하고 1970년 4월 세느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것이 그 가엾은 유대인이 끔찍한 폭력의 트라우마를 해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책의 제목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는 '죽음의 푸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 2

마이다네크에서 나치에게 살해된 역사가 이그나시 쉬퍼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것은 너희들의 유언을 후세에 전해주는 사람들, 즉 이 시대의 역사를 쓰게 될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살해된 민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는, 결국 살인자들이 살해된 민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폴란드 유대인이나 바르샤바 게토, 마이다네크의 게토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세계의 기억을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결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 中-  
   



수백만의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소각하기 위한 공장이 사라진지 불과 반세기다. 유대인들의 족보의 한 두 단계만 거슬러 올라가도 뻥 뚫린 빈자리에는 딱쟁이도 앉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의 더께가 쌓일수록 기억의 창고는 점차로 희미해지고, 야만과 싸우는 우리의 칼날은 그 날카로움을 잃어간다.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광주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민족을 이야기하는 어른들도 알제리, 우간다, 이라크에서 한 민족의 단위가 위기를 맞고 있음을 외면 한다.

데탕트와 세계화의 양지 아래서 우리는 너무 많이 평화의 홍보자료들만 읽어왔다. 그래서 이 시대의 역사인식은 지역과, 그것도 멋대로 제단한 '민족'이라는 발 믿의 그늘에 안주하거나, 혹은 전무하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기술과 돈에 대한 욕망이 메꾸는 형국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성찰 없이 미래에 맞서 나갈 수는 없다.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미래에서 역사에 대한 성찰 없이 머리만 큰 괴물은 어떤 악몽을 만들게 될 지 모를 일이니까. 바야흐로 지나온 모든 세대보다 앞으로 한 세대가 품고 있는 위험의 크기가 훨씬 더 큰 세상이다. 

우리가 선대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이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세계 시민으로서의 교양이다.

#. 3

이 책은 아직 야만을 기억하는 세대가 평화의 온실에서 자란 세대들에게 뒤 늦게 던지는 소통의 실마리다. 저자 아네트 비비오르카는 유태계 역사학자로 자신의 아이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는 간략한 정황의 설명과 주요 개념들을 지루하지 않고 충실하게 제시한다. 책 뒤의 옮긴이의 칭찬대로 자연스럽게 반 유대주의의 기원, 유대인 학살, 바르샤바 게토, 학살의 책임과 소재, 기억의 의무 같은 주요 얼개가 전달되는 것이 부드럽다. 또한 이런 종류의 글은 폭력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부각해 전달함으로서 또 다른 폭력의 사태를 야기시키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고려하는 친절한 글쓰기에서 아이를 키워본 부모의 내공이 느껴진다.  

내가 아직 청소년이던 시절에 이 책을 봤다면 역사를 인식하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전문을 소개한다.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그것을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한낮에 마시고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밤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사람이 갇히지 않는다
한 남자가 집에 산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날이 저물면 그는 독일을 향하여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라고 쓴다
그가 그것을 쓰고 집 앞으로 나오면 별이 빛난다  그는 제 사냥개를 휘파람으로 부른다
그는 제 유대인을 불러내 땅에 무덤을 파게 한다
그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이제 춤곡을 연주해라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아침에 마시고 한잔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에 산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날이 저물면 그는 독일을 향하여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라고 쓴다
술람미 너의 잿빛 머리라고 쓴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사람이 갇히지 않는다

그는 소리친다  땅 속 더 깊이 꽂아라  너희들 이쪽 너희들 저쪽은 노래하고 연주해라
그는 허리띠의 쇠붙이를 움켜잡고 그것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푸르다
삽을 더 깊이 꽂아라 너희들 이쪽 너희들 저쪽은 계속해서 춤곡을 연주해라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한낮에 마시고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에 산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
술람미 너의 잿빛 머리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소리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이 낳은 명인이다
그는 소리친다 바이올린을 더 어둡게 켜라  그리고 너희들은 연기되어 공중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너희들 무덤은 구름 속에 있고 거기서는 사람이 갇히지 않는다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한낮에 마신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명인이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 마시고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명인이다  그의 눈은 푸르다
그는 총알로 너를 맞춘다  그는 너를 정확히 맞춘다
한 남자가 집에 산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
그는 제 사냥개를 풀어 우리를 몰이한다  그는 우리에게 공기중의 무덤을 선사한다
그는 뱀을 가지고 놀고 꿈꾼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명인이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
술람미 너의 잿빛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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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1-04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아름답다는 말을 꿀꺽 삼켰어요.

뷰리풀말미잘 2009-11-04 18:07   좋아요 0 | URL
무플을 방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저는 솔직히 그게 뭔 말인지 잘은 모르겠어요.

Arch 2009-11-05 08:51   좋아요 0 | URL
무추천도 방지했답니다. 우리 서로서로 도와요, 미잘^^
해석해주고 싶지만 오독이 분명할 것 같아 내 느낌대로만 생각할래요. 히~

뷰리풀말미잘 2009-11-05 19:52   좋아요 0 | URL
역시 당신뿐이에요.

2009-11-08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8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0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0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9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9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