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무덤은 구름속에>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이야기
아네트 비비오르카 지음, 최용찬 옮김 / 난장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 1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중심인물로 유명한 아도르노는 1949년에 쓴 「문화비판과 사회」라는 논문에서 ‘아우슈비츠이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 라고 일갈했다. 논문은 1955년‘프리스멘’(Prismen)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유명해졌으며, 꽤 지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훗날, 아도르노는 그 말을 철회하게 되는데 온갖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대학자에게 그 말을 철회하게 만든 것은 한편의 시, 파울첼란의 ‘죽음의 푸가’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파울첼란은 누구인가? 유대계 독일인이던 그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며, 부모를 아우슈비츠에서 잃은 시인이다. 그 무렵의 슬픔과 고통을 시로 읊던 시인은 결국 삶과 화해하지 못하고 1970년 4월 세느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것이 그 가엾은 유대인이 끔찍한 폭력의 트라우마를 해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책의 제목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는 '죽음의 푸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 2

마이다네크에서 나치에게 살해된 역사가 이그나시 쉬퍼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것은 너희들의 유언을 후세에 전해주는 사람들, 즉 이 시대의 역사를 쓰게 될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살해된 민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는, 결국 살인자들이 살해된 민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폴란드 유대인이나 바르샤바 게토, 마이다네크의 게토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세계의 기억을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결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 中-  
   



수백만의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소각하기 위한 공장이 사라진지 불과 반세기다. 유대인들의 족보의 한 두 단계만 거슬러 올라가도 뻥 뚫린 빈자리에는 딱쟁이도 앉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의 더께가 쌓일수록 기억의 창고는 점차로 희미해지고, 야만과 싸우는 우리의 칼날은 그 날카로움을 잃어간다.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광주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민족을 이야기하는 어른들도 알제리, 우간다, 이라크에서 한 민족의 단위가 위기를 맞고 있음을 외면 한다.

데탕트와 세계화의 양지 아래서 우리는 너무 많이 평화의 홍보자료들만 읽어왔다. 그래서 이 시대의 역사인식은 지역과, 그것도 멋대로 제단한 '민족'이라는 발 믿의 그늘에 안주하거나, 혹은 전무하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기술과 돈에 대한 욕망이 메꾸는 형국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성찰 없이 미래에 맞서 나갈 수는 없다.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미래에서 역사에 대한 성찰 없이 머리만 큰 괴물은 어떤 악몽을 만들게 될 지 모를 일이니까. 바야흐로 지나온 모든 세대보다 앞으로 한 세대가 품고 있는 위험의 크기가 훨씬 더 큰 세상이다. 

우리가 선대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이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세계 시민으로서의 교양이다.

#. 3

이 책은 아직 야만을 기억하는 세대가 평화의 온실에서 자란 세대들에게 뒤 늦게 던지는 소통의 실마리다. 저자 아네트 비비오르카는 유태계 역사학자로 자신의 아이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는 간략한 정황의 설명과 주요 개념들을 지루하지 않고 충실하게 제시한다. 책 뒤의 옮긴이의 칭찬대로 자연스럽게 반 유대주의의 기원, 유대인 학살, 바르샤바 게토, 학살의 책임과 소재, 기억의 의무 같은 주요 얼개가 전달되는 것이 부드럽다. 또한 이런 종류의 글은 폭력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부각해 전달함으로서 또 다른 폭력의 사태를 야기시키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고려하는 친절한 글쓰기에서 아이를 키워본 부모의 내공이 느껴진다.  

내가 아직 청소년이던 시절에 이 책을 봤다면 역사를 인식하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전문을 소개한다.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그것을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한낮에 마시고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밤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사람이 갇히지 않는다
한 남자가 집에 산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날이 저물면 그는 독일을 향하여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라고 쓴다
그가 그것을 쓰고 집 앞으로 나오면 별이 빛난다  그는 제 사냥개를 휘파람으로 부른다
그는 제 유대인을 불러내 땅에 무덤을 파게 한다
그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이제 춤곡을 연주해라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아침에 마시고 한잔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에 산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날이 저물면 그는 독일을 향하여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라고 쓴다
술람미 너의 잿빛 머리라고 쓴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사람이 갇히지 않는다

그는 소리친다  땅 속 더 깊이 꽂아라  너희들 이쪽 너희들 저쪽은 노래하고 연주해라
그는 허리띠의 쇠붙이를 움켜잡고 그것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푸르다
삽을 더 깊이 꽂아라 너희들 이쪽 너희들 저쪽은 계속해서 춤곡을 연주해라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한낮에 마시고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에 산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
술람미 너의 잿빛 머리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소리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이 낳은 명인이다
그는 소리친다 바이올린을 더 어둡게 켜라  그리고 너희들은 연기되어 공중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너희들 무덤은 구름 속에 있고 거기서는 사람이 갇히지 않는다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한낮에 마신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명인이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 마시고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명인이다  그의 눈은 푸르다
그는 총알로 너를 맞춘다  그는 너를 정확히 맞춘다
한 남자가 집에 산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
그는 제 사냥개를 풀어 우리를 몰이한다  그는 우리에게 공기중의 무덤을 선사한다
그는 뱀을 가지고 놀고 꿈꾼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명인이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
술람미 너의 잿빛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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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1-04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의 검은 젖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아름답다는 말을 꿀꺽 삼켰어요.

뷰리풀말미잘 2009-11-04 18:07   좋아요 0 | URL
무플을 방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저는 솔직히 그게 뭔 말인지 잘은 모르겠어요.

Arch 2009-11-05 08:51   좋아요 0 | URL
무추천도 방지했답니다. 우리 서로서로 도와요, 미잘^^
해석해주고 싶지만 오독이 분명할 것 같아 내 느낌대로만 생각할래요. 히~

뷰리풀말미잘 2009-11-05 19:52   좋아요 0 | URL
역시 당신뿐이에요.

2009-11-08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8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0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0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9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9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