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박아둔 쁘락치 녀석과 커피를 마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녀석이 한숨을 푹 쉬더니 그런다.
"미잘 뒷 얘기 장난 아닌거 모르죠?"
"나처럼 비중없는 사람이 무슨 뒷 얘기 나올게 있다고."
쁘락치는 한참동안 열심히 내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서 읊어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사실이거나 사실에 가까운 얘기들이다. 내가 어디서 뭘 했고, 무슨 말을 했고, 심지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내 스스로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 뒷담화의 도마에 올랐던 모양이다. 그 뒷담화의 도마에서 나는 센척하고 건방진데다 얍삽한 놈으로 토막나 분류됐다. 구체적인 근거까지 꼬리표처럼 붙어서. 내가 쁘락치 하나를 심어 놓을 때 내 주변에는 누군가가 심어놓은 수 많은 쁘락치가 있었던 거다. 왠지 조금 억울한 느낌.
내게 적대적인 세력이 있다는 건 나도 익히 아는 바다. 그 집단의 수장인 J는 모르긴 몰라도 내 이름 적힌 지푸라기 인형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눈치다. 그가 내게 가지고 있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나한테 관심 많은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인사만 하면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하는 그 감정. 그를 주축으로한 그 세력이 최근에 나에 대한 성토의 장을 연 모양이다. 어쩌다 그 자리에 끼게 된 내 마음 약한 쁘락치는 그들이 나를 욕하는게 마음이 아파서 나서 변호를 시도했고, 제대로 쿠사리를 먹고 잔뜩 의기소침해졌다.
"왜 미잘이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하죠? 그들은 미잘을 알지도 못하잖아요!" 라고 쁘락치는 얘기했지만 그건 니가 내 쁘락치니까 그렇지. 순진한 놈아.
사실 그 적대적인 세력은 어느 정도는 내 실수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나는 별로 신경 못 써주는게 미안할 만큼 그들의 비난을 받아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멤버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는 점은 좀 당혹스럽다. 날 싫어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이름도 모르는 어중이 떠중이까지 모아 놓는 건 좀 자존심 상한다고 가서 말해볼까.
#. 2
내가 그랬다.
쁘락치야. 너 자본론 서문에서 마르크스가 이런말 한 거 알어? "니 갈 길이나 가, 그리고 멍청이들이 멋대로 지껄이게 그냥 내버려둬!" 그런거 저런거 신경쓰면서 세상 살면 피곤하다. 너 인생에서 니 편 다섯명만 있으면 성공한거야. 나 한번도 평판에 연연하고 살아 본 적 없다. 누구에게 뭘 의지하고 기대본 적도 없다. 처신에 신경쓴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유없이 남에게 모질게 대해 본 적도 없다. 남에게 어려운 일 시키기 미안해서 내가 떠 앉아 한게 센척이고, 옹기종기 모여서 위 아래 따지고 노는 꼴 무시한게 건방진거고, 그 실수 하나가 얍삽한걸로 보일 정도면 그 동안 내가 너무 깨끗하게 살았다는 거 아니겠니?
프락치가 그랬다.
"그 자리에 Y도 있었어요."
아주 오랫만에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이 저릿하다.
#. 3
솔직히 말하면..
그래서 나 오늘 좀 속상하다.
이렇게 유치한 일로 마음이 아플 수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