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날 점심, 슈가 백에서 꺼낸 건 딱 두 가지, 무려, 김치와 햇반. 내가 엔카, '北の宿から'(북쪽의 창)을 흥얼거릴 때 실소를 금하지 못하던 인간이 가방에서 김치랑 햇반을 도시락이랍시고 꺼내다니. 뭐냐, 이 미친 일본인은.
슈가 노르만 파크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김치 한 조각을 입에 쑤셔넣고 우물거리면서 그런다. “글로벌 시대 아니겠어?” 나는 그날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엄청나게 글로벌한 경험을 하고 만다. 무려 일본인에게, 김치를 빌어먹는.
그 다음주 주말, 은혜를 갚기 위해 슈를 집에 초대했다. 스테이크를 해 준다고 했더니, 자기는 코리안 음식이 좋단다. 이왕이면 스파이시한 걸루다가. 결국 나는 겁없는 일본인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제육덮밥을 시전했다. “‘노리’랑 ‘기무치’도 있는데 줄까?” 하니까. 그런다. “하이! ‘김’이랑 ‘김치’를 주세요!. I can eat rice with only kimchi!”
그래서 물어봤다.
“그러하다면, 일본인들은 김치를 잘 먹나보지?”
슈가 그런다.
“はい!”
“사 먹니?”
“はい!”
“니네, 김치가 한국음식인줄은 알고 먹니?”
“はい!”
“그럼 독도는 누구 땅인데?”
“Japan!”
이년이.. 내가 김치 얘기 나올 때 부터 이럴 줄 알았다.
“Put my Kimchi down.”
“Ko..Korea..?”
“Enjoy your meal.”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김치를 우물거리던 슈.
“しかし、竹島は日本の..”
“알아들었다. 내 김치 내려놔라.”
“Oh my God! 미잘상.. 먹을 거 가지고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슈 요시오카와 오붓한 런치타임을 즐기고 있는데 마침 하우스 메이트, 홍콩 간지남 새뮤얼이 퇴근을 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엿 듣다 끼어들어서는 버릇없는 고양이처럼 내 신경줄에 발톱자국을 내고 만다.
“미잘, 손님한테 그러면 쓰나. 그런건 어디까지나 폴리티컬 프라블럼 아냐?”
나는 탕 하고 수저를 내려놨다. 이 자식 잘 생겨서 오냐오냐 했더니, 뭐? Political problem!?
“Look, Samuel. It’s not a ‘political problem’, Sue’s grandfather tortured my grandfather. Got it? 그런데도 난 슈에게 무려, 점심식사를 대접한다고! 이 데탕트를 방해하지 마라.”
옆에서 슈가 '내가 너한테 김치 줘서 고맙다고 초대하는 거라며..' 라고 중얼중얼 거렸지만 난 개떡같은 일본식 옹알이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을 만큼 대단한 영어의 고수가 아니다. 또 정중하게 발언권을 요구하고 침착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일본어의 고수도 아니다.
“うるさい!!(시끄러!!) 게다가, 원래 땅은 국가의 것도, 민족의 것도, 인간의 것도 아니야. 또 나는 한국의 내셔널리스트가 아니고! 다만, 나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당연한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작금의 시츄에이션이 싫을 뿐이야.”
새뮤얼이 그런다. “하지만, 아마 일본 사람들도 한국 정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거야.”
이자식. 아주, 국제 신사처럼 행동하고 있네!
“한국 사람은 누구나 독도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어, 독도가 우리의 땅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일본 사람들도 그런가? 슈! 너 독도가 어디있는지 알아?!”
“ 日 .. 日本海?
“하, 니네 내말 잘 들어,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니까 독도에 대한 지리, 생태, 역사정보를 한국말로 알려줄게. 하지만 이걸 들으면 니네도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거야.”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주목하는 슈와 새뮤얼.
“우선 독도의 지리정보는 다음과 같아. 울릉도동남쪽뱃길따라이백리외로운섬하나새들의고향그누가 아무리자기네땅이라고우겨도독도는우리땅경상북도울릉군남면도동일번지동경백삼십이북위삼십칠평균기온십이도강수량은천삼백독도는우리땅”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들.
“자, 이번엔 독도의 생태정보를 말해주지. 오징어꼴뚜기대구명태거북이연어알물새알해녀대합실십 칠만평방미터우물하나분화구독도는우리땅.”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들.
“이번엔 역사정보다! 지증왕십삼년섬나라우산국세종실록지리지오십쪽셋째줄하와이는미국땅대마도는일본땅독도는우리땅러일전쟁직후에임자없는섬이라고억지로우기면정말곤란해신라장군이사부지하에서웃는다독도는우리땅.”
이사부가 지하에서 웃는다고! 의기양양해진 나는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이 정도는 알고 있지! 이제 알겠냐? 독도가 누구땅인지!”
절망스러운 표정의 슈, 뭔가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새뮤얼.
이게 웬, 점심먹다 독도는 우리땅 완창한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