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에서는 '20세기를 뒤흔든 사건' 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오고 있는데요, (1) 난징 대학살 (2) 러시아 혁명 (3) 중국 혁명 (4) 1차 2차 세계대전 (5) 한국 전쟁 (6) 베트남 전쟁 (7) 쿠바 혁명 (8) 냉전의 전사들 (9) 냉전의 종식 (10) 20세기의 회고 까지 총 10편, 각각 5부씩 전부 50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적지않은 분량의 기획입니다. 2006년 12월에 난징 대학살(1937년)이 방영된 이후, 현재까지 러시아 혁명(1917년)까지 방영된 상태인데, 한 편을 촬영하는데 적어도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아 50부작이 마무리되려면, 올해를 훌쩍 넘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여튼 이번 MBC 특집 다큐멘터리 5부작 <러시아 혁명>은 국내 최초로 러시아 혁명을 다루고 있다는 점 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제작팀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밝힌 기획의도를 통해 "러시아 혁명은 한편으로는 20세기 현대사 이해의 열쇠를 제공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한국 사회가 떠안고 있는 ‘이념 갈등’과 ‘분단’이라는 난제를 반추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문제의 해법을 암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근대사 중 정치분야는 시민혁명, 경제분야는 산업혁명 부터 시작이죠. 오늘날 보통선거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4% 선거권(영국)으로 상징되는 시민혁명의 모순, 아동 노동과 빈민굴로 상징되는 산업혁명의 모순이 폭발하는 것이 바로 세계대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이 새로운 대안의 모색, 즉 사회주의였다는 것은 공정하게 평가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살펴보더라도, 사회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혁명은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제외된 채, 그저 '1917년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 으로 되어있을 뿐입니다. - 이것이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증은 뒤로 하고서라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전개와 그 이후 냉전 체제의 성립을 개연성 있게 설명할 수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점에서, 제작팀의 기획의도를 높이 살 만 합니다.

- 한국의 역사가 그 한복판에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후로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또 재편되는 식민지,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성격은 전쟁 자체 보다 전후 회의(베르사이유 회의)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전후 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종전 직전에 성립된 소비에트 러시아가 이러한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점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체제 성립의 배경이 됩니다. 이것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언급 없이, 1920년대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러시아 혁명> 역시 사건 자체의 소개와 영향에 큰 비중을 두다보니, 한국 역사와의 연관과 영향에 대해서는 (기획의도에서 밝혀진 포부에 비하면) 다소 소홀하게 다룬 측면이 있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이나 소비에트 대회에 한국 대표가 참여했다는 사실, 스탈린 숙청기나 중앙아시아 대이주 때에 많은 한국인 공산주의자들도 숙청당했다는 사실 정도가 나열적으로 언급되었다는 느낌입니다.

- 내용은 크게 5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는 [~1917.2] 로서 "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라는 상황적 배경과 혁명의 시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는 [1917.2~1917.10] 로서 2월 혁명 이후 부터 10월 혁명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혁명은 차르(황제)가 통치하는 러시아에서 일어났고, 2월 혁명의 결과는 가진 자들만의 의회,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발전이라는 서구 시민혁명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2월 혁명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연이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2월 혁명의 결과였던) 의회를 무시하고 소비에트 체제, 정부를 수립합니다.3부는 [1917.10~] 로서 소비에트 정부 수립 직후  사회 경제적 주요 과제(전쟁, 토지, 공업발전) 에 대한 소비에트 정부의 대처를 다루고 있고, 4부는 내전과 스탈린 혁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5부는 1930년대 스탈린 독재 형성기에 이루어진 온갖 숙청과 내부적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혁명은 결국 스탈린 독재 체제로 귀결되었다." 라는 것이 제작팀의 결론이었죠. ^^

- 방송사 일정 및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았을 제작진의 노고를 백번 이해하면서도, 순수하게 작품 자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자면, 4부에 등장하는 내전이 3부로 들어갔다면 좀 더 매끄러운 전개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과, 5부가 1~4부의 비중에 밀려 1930년대~1990년대까지를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마무리 역할을 제대로 하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 아니었나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기획 의도 대로라면, 스탈린 독재 체제로의 귀결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1980년대 후반까지는 폭넓게 조명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가장 불만이었던 부분은, 스탈린 독재 체제가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 나치즘과 파시즘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다소 관념적인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스탈린 독재 체제의 성립 과정을 충분히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분없이 '볼셰비즘' 이라고 일원화시킨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볼셰비즘이 스탈린 독재 과정에서 해체되었고,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 전체주의라는 하나의 맥락에서 소련,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을 동일하게 다루는 방식이 더 올바르지 않을까요?

-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파편적으로 보아왔던 러시아 혁명에 대해 좀 더 개연성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전까지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만 조명해왔던 내전과 관련해서, 연합국의 일원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 직후 나머지 연합국 -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 과의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적 배경이나, 스탈린 독재의 관점에서만 조명해왔던 1930년대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역시 2차 세계대전 직전이라는 상황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인의 이해관계에서만 바라본다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독립을 외면받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에 기대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으며 내전에도 적군의 일원으로 참여하지만, 스탈린 독재 이후에 다시 한번 러시아에 의해서도 외면받는 - 강제이주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상기한다면 외면 정도가 아니지만 - 일련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오로지 사회주의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20세기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라는 큰 주제의 일부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주제와 분량 면에서 큰 제약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다큐멘터리가 하나의 시작이라면, 생략되었던 몇가지 세부적인 측면을 제기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아래에 메모해둡니다. (제가 정리하고자 하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MBC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더 좋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해 줄 것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1. 제국주의 차르 러시아, 사회주의 사상의 시작과 러시아로의 유입, 차르 러시아의 대응, 1905년 혁명에서의 가퐁 신부의 역할.

2. 소비에트 러시아의 민족 정책의 변화 (소비에트 러시아 - 스탈린 독재 체제 - 소련 해체 이후까지)

3. 2차 세계대전에서의 소련, 동유럽 및 한반도 주변 국가의 수립과 소련식 경제 발전 (스탈린 독재 체제의 성립을 기점으로, '소비에트 러시아' 와 '소련' 을 구분하고자 합니다.)

4. 1970년대 이후 소련식 경제 발전의 한계와 모순, 소련 및 동유럽 국가 지배층의 자구책과 아래로부터의 저항

5. 소련 공식 해체의 일련의 과정, 이후의 사회 경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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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1-1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저도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번 봐야하는데...

비로그인 2007-01-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b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이 좋은 프로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꼭 찾아서 봐야겠어요. 퍼갈게요. 고맙습니다.^^

sb 2007-01-1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아직 못보셨군요. 좋은 비평 기대하겠습니다.
[FTA반대마음행로님] 저도 반갑습니다. 다큐멘터리 채널이라고는 MBC가 고작입니다만, 충분히 좋은 다큐멘터리들이 많군요. 좋은 프로그램 있으면 소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