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과학
샌드라 하딩 지음, 이재경, 이박혜경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0. 2023년 연말의 득템


연말, 곧 한 해의 끝이 시작되었다. 약속들이 잡힌다. 약속이 퇴근 시간에 바투 잡히지 않으면 지하철역 너댓 개의 거리는 걸어간다. 12월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고 있는 올 연말은 더 걸을 만하다. 걸음은 빠른 편이다. 시간이 남는다. 어디서 삐댈까? 고민하며 속도를 늦춰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오. 그런데 헌책방이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간다.


앗! 그런데... 대물을 낚았다!
짜~잔~



알라딘 중고시장에서도 고가로 거래되는 샌드라 하딩의 <페미니즘과 과학>이다. 2002년에 출판되었다 절판된, 정가가 1만2천원인 책.
서가에서 책을 뽑아 고이 사장님께 드렸더니, 대뜸 "5천원만 주세요."
대박! 땡큐 사장님~
사실 저 짧은 시간 동안 마음 속에서는 사장님께서 알라딘 중고가격 검색하시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ㅋㅋ
이 날 밤 나는 그날 있었던 마음 쓰이는 일과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다 잊고, 코알라가 되었다.


2. <사이보그 선언>(1985)과 <상황적 지식들>(1988)의 징검다리

술이 깬 다음에야 책을 찬찬히 읽기 시작한다. 일단 해러웨이 나오는 부분만 살펴봤다.
4장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남성중심주의"와 6장 "페미니스트 경험론에서 페미니스트 입장론적 인식론까지"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4장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1981)에 대한 논평이다. 6장은 해러웨이보다 훨씬 더 명확한 어휘와 논리로 맑스주의를 비판한다. 더 찬찬히 봐야 하겠지만 일단 말장난하지 않고 진지해서 마음에 든다.  


제일 재미있는 것은 7장 "다른 '타자들'과 정체성의 분열"인데,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1985,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8장)에 대한 매우 진지한 논평이다. 일반 독자라면 딱히 눈치채지 못했을 해러웨이의 변화가 지목되고, 해러웨이와 자신의 일치점과 차이점에 대한 고찰이 인상적이다. 해러웨이는 하딩의 이 논평에 응답하며, "상황적 지식들"(1988)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9장으로 실려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3. 밑줄을 긋다가


절판되서 못 구하게 된 이 책은 그야말로 페미니스트 고전이라 칭할 만하다. 책을 다 살펴본 것은 아니어서 번역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해러웨이 번역은 워낙 어려우니 너무 극악무도하지 않으면 이해해주고 넘어가도 된다. 어쨌든 이 책은 내게 너무 귀하다. 나보다 더 진지하게 페미니즘과 과학, 해러웨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완전 새 책인데, 괜히 줄 그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이미 몇 개의 표시를 한 다음에야 들었다. 아뿔싸!) 

   


도나 해러웨이는 인본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설명에서 근본적인 세 가지 경계들이 현대 사회 경험 속에서 깨져 버렸다고 지적한다. 첫째,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는 완전히 깨어졌다. 놀이공원으로 보내지지는 않았다 해도 독특성의 마지막 교두보는 오염되었다 - 언어, 도구 사용, 사회 행동, 정신적 사건, 어느 것도 인간과 동물의 분리를 진정으로 확실하게 이루어 내지 않는다." 둘째, 현대의 기계들이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정신과 육체, 자생적인 것과 외적으로 고안된 것 사이의 차이와, 유기체들과 기계들에 적용되곤 하던 다른 많은 구분들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의 기계들은 불온하게도 살아 있고, 우리 자신은 자력으로 움직일 힘이 놀라울 정도로 없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경계의 실패의 부분집합은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 사이의 구분의 부정확성의 증대이다(Haraway 1985, 68-70). - P250

그러나 ‘인간‘이라는 인본주의적 가공물은 동물이나 기계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혹은 물리적인 것들과 비물리적인 것들이라는 구분 가능한 요소들로 - 이러한 것들이 물질과 정신인지, 몸과 영혼인지, 신경물리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인지, 내분비학적인 것들과 문화적인 것들인지 -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본질화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의 계, 특 ‘여성‘을 본질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 페미니스트 경험론 및 입장론의 정당화 전략들이 호소력을 갖는 사회 경험을 한 ‘여성‘은 없고 대신에, 여성들이 있다. 즉 멕시코계 미국 여성들과 라틴계 미국 여성들, 흑인, 백인, 한국 전자 공장에서 일하는 ‘해외의‘ 여성들과 카리브의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있다. - P250

‘유색인 여성들‘이라는 개념 속에서 해러웨이는 그것이 되살려 내는 많은 미국 페미니즘 이론이나 인본주의 담론들 속에서처럼 - 통합의 정치학으로 본성화되거나 본질화된 정체성보다는 ‘대항 의식(oppositional consciousness)‘과 연대의 정치학에서 나온 정체성과 세계에 대한 관점을 본다. - P250

나아가, 그녀는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이 기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대상 관계 이론들, 그리고 여성을 남성적 섹슈얼리티의 희생물로 보는 급진적 페미니즘 속에 우리 시대에 적절한 정치학과 인식론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있다고 본다. 이 세 가지 분석들 모두 자아 본래의 통일로 복귀하는 것이 ... 바람직하다는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 해러웨이는 이렇게 계속 주장한다. 우리의 ‘분열된 정체성들(fractured identities)", 말하자면 흑인 페미니스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레스비언 페미니스트 등을 포용함으로써 생겼던 설명상의 이점을 보라. 본성화되고, 본질화되고, 특유의 ‘인간적인‘ 것들이라는 가공물에 대한, 그리고 이러한 가공물에게 행해진 왜곡, 전도, 착취, 억압에 대한 우리의 반대 속에서 정치적 인식론적 연대를 구하면 왜 안 되는가? 페미니즘 관점의 영원한 당파성을 인식함으로써 열려진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구하면 왜 안 되는가?

- P251

해러웨이의 주장은 서구 인본주의의 기본적인 금기들을 광적으로 훼손하고서 나온 지식 주장들만을 정당화하는 인식론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페미니즘 입장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대항 의식‘을 가진 - 정확히 서구 과학의 정신적 동력이었던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갈망하는 것에 대한 반대 - 정치적 투쟁에서 나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 ... - P251

이러한 페미니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에 대해서, 우리는 근대 과학의 정당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흔히 제기되는 인식론의 가정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가정들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식 주체‘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우리의 비본질적이고, 비본성적이고, 조각난 정체성들과 ‘본래의 통일성‘에로의 복귀의 망상에 대한 거부이다. 그러나 지식 주체들은 분리되었지만 세계는 하나가 될 수 있다. 본질적인 이분법들로 구성되어 있는 밖의 ‘하나의‘ 세계에 대한 가정에, 설명을 통해서 이것을 다시 연결시키는 것이 과학의 일인데, 대조적으로 대항 의식의 종류만큼 상호 관련되고 부드럽게 연결된 많은 현실들이 있다.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말하려는 목표를 포기함으로써, 대신에 우리는 페미니즘 연구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당파성을 포용하는 것이다. - P252

해러웨이는 페미니스트 입장론 전략(feminist standpoint strategy)과는 분명히 반대로 설명을 전개하지만, 나는 그 설명이 입장론 전략의 두 가지 주요 요소들을 유익하게 통합시킨다고 생각한다. 첫째, "누가 이야기를 가졌는가(who‘s got one)"에 대해서 입장론적 인식론보다 해러웨이의 개념이 인종과 젠더 지배의 상호 관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둘 다 대항 의식의 형성에 의존하고 있다. 둘째, 많은 주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대조적으로 페미니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입장론적 접근들처럼 매우 정치적이다.(각주 42. ... 해러웨이는 그녀가 탐구하는 페미니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도덕주의와 전위 정치학을 피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며, 특정한 종류의 도덕주의를 포용하는 것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많은 ‘부모격의‘ 담론과 불일치를 보이는 것도 역시 여기서이다. - P252

내가 보기에, 해러웨이의 분석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적 가정들 안에 너무 갇혀 있기 때문에 약해진다. 이것은 사실상 정치경제학에 대해서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녀의 노골적인 가정 속에서 알 수 있다. 그녀는 원리상 발달심리학은 역사 제도의 규칙성과 기저의 인과적 경향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또한, 우리가 처음으로 급여를 받았을 때나, 여성이라면 처음 성인으로 사회적 이익을 위해 성적 호의를 교환하기 시작할 때라야, 우리는 독특한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 P25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러웨이의 공헌을 포함하여) 페미니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지 ‘죽은 것들의 역사‘, 즉 ‘남성‘, ‘그의 문화‘, ‘그의 지식‘ 그리고 그의 본성화되고 본질화된 ‘여성‘ - 인본주의 과학이 만들고 근대적 형태로 유지하는 데 분명한 역할을 했던 그 개념들-의 역사 그 이상의 것들을 탐구하는 데에 풍부한 개념적 도구들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강력한 내부 긴장을 발생시킨다. 즉 입장론적 인식론들은 포스트모던주의 인식론들이 위험한 거짓 이야기라고 여기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관한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말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장론적 인식론이 당파적이긴 하지만 ‘덜 거짓된‘ 이야기들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모더니스트 조상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까?

승계 과학 프로젝트들을 포기하는 문제는 페미니즘 이론이나 페미니즘 정치학이 가부장제 이론 및 정치학에 대해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 P253

... 만일 인본주의를 곡해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우리 서구 수혜자들이 - 많은 페미니즘 사상가들도 이러한 수혜자들이다 - 분열된 자아의 대항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 종의 대다수 성원들을 위한, 단지 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당파적인 과학의 이론화에 참여하겠다면, 우리에게는 우리들 대부분이 품어 왔던 것보다 더 강고한 연대의 정치학이 필요하다.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이익을 얻고 있는 구조적 인종 차별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투쟁해야만 한다. 입장론적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대항 의식은 "모두가 참여하게 된 사회 관계의 표면 아래를 보는 과학"만이 아니라, "그러한 관계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으로부터만 자라날 수 있는 교육"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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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록비 2024-02-07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구해보고 싶었는데 부럽네요 ;;;

2024-02-08 0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9 0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9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