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중에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봤던 것은 손에 꼽을 만하다. <네 멋대로 해라>, <내이름은 김삼순> 정도?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그 보수적 정서를 대변하는 TV, 그리고 그 보수성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 이렇게 생각했기에, TV를, 그리고 드라마를 의도적으로 멀리했고, 결국 즐겨 본 드라마도, 좋아하는 드라마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런 나에게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위아래가 뒤집히는 충격이었다. '남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 즉, 퀴어 코드를 품고 있는 TV 드라마라니! 이건 부시가 이라크전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조선일보 사설이 민주노동당을 두둔하는 것과 같은, 경천동지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민망할 정도로 미묘한 장면 - 최한결이 고은찬은 남자인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열렬히 키스하다!
여기에다 젊은 연인의 심리를 2000만 화소 풀 프레임 DSLR로 찍어서 '뽀샤시'한 '뽀샵질'로 감질나게 다듬은 듯 쿨~한 대사, 선남선녀가 그득하지만 소박함도 잃지 않는 HD의 착한 화면, 등... TV 드라마에 냉소적인 나도 화들짝 놀라며 실실~ 헤헤~ 거리며 빠지기에 충분한, '생각있지만 매혹적인' 줄리 델피같은 드라마였다.
이런 '개념탑재' 드라마에서조차 '독'을 발견했다니, 너무 까칠한 것은 아닌가? 맞다. 난 드라마 별로 좋아하지 않고, 어떤 드라마건 '티'를 찾아내려고 혈안이다. 아니, 나란 존재가 원래 좋은 꼴은 못 보는 인간이라, 무엇이건, 그것이 책이건 영화건 음악이건 드라마건, 심지어 친한 지인에게서까지도 못마땅한 것을 기어이 찾아내고 만다.
그래, 용기를 내어 <커.프>를 용서하기 힘든 몇가지 사실을 지적하자. 그 첫번째는 퀴어 드라마인 척 하면서 가장 정상적인 사랑을 갈구한 점. 최한결은 '남성' 고은찬을 사랑했다. 이민까지 가자고 하면서 고은찬이 남성인 것에 고민하고, 그렇게 정말 고은찬을 사랑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러한 번민을 '해소되어야 할 갈등'으로 설정하고, 종래에는 '봐라, 고은찬은 여자다, 그러므로 최한결의 사랑도 납득할만한 갈등의 해소를 경험한다.'고 뻔뻔스레 주장한다. 극의 전개상 최한결의 '동성애 경험'은 웃어 넘길 수 있는 한 순간의 실수가 되며, 결국 이 드라마의 퀴어 코드는 반-퀴어 코드로 순식간에 반전된다.
둘째, 이 사회에 가득한 가족이기주의를 가장 적나라하게, 그러나 굉장히 합리적인 양 다룬다는 점. 고은찬은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 점원일 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사장의 배우자감으로 낙점되고, 회사돈으로 유학을 갔다 온 후, 결국 2년만에 회사의 의욕적인 신사업을 이끄는 경영자가 된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을 교묘히 가리고, 마치 시청자를 경영진의 가족인 양 감정이입시키는 드라마의 수법에, 우리는 그들의 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은 간단하다. '회사돈으로 사장의 부인에 특혜를 주어 신사업을 맡겼다'는 것. 신문 사회/경제면에서, 또는 만평에서 비판적으로 다뤄져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범죄'다.
셋째, 가장 논쟁적일 수 있는 관점이기도 한데, 2년의 세월동안 아무도 그의 사랑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 특히 최한결과 고은찬의 사랑은 멀리 떨어져 있는 2년의 유구한 세월이 마치 이틀인 양, A급 '신동품'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는 <커.프.>가 그 쿨함에도 불구하고, 동화적인 이상향의 사랑을 순진하게도 떠받들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들의,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굉장한 비현실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드라마가 진행되는 몇개월 안 되는 짧은 기간동안에는 그들의 사랑이 히말라야와 같은 엄청난 기복을 겪었지만, 일단 드라마가 원하는 정상궤도로 진입했음이 확인된 이후에는, 그 사랑들이 대평원과도 같은 초현실적 평탄성을 계속 유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사랑이 품고 있는 야생마와도 같은 격렬한 본성에 대한 모독이며, 천변만화의 사랑을 거세시켜 바보로 만들고는,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으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의 무의식적 표출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제대로 본 것은 후반부의 대여섯편에 불과하지만, 최한결과 고은찬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듯하고 쿨한 사랑 속에, 체제의 안정된 감정선을 공고히하는 은밀한 독이 숨겨져 있는, 보수주의의 뻔뻔한 선전물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독을 한껏 들이켜고 얼큰 취하여, 현실에 대한 도피적인 위안을 삼아왔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독이 가득 든 커피잔에 퐁당 빠져서 황홀한 월/화요일을 보냈음을 기꺼이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