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두 편의 한국영화는 모두 일상적이지 않은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보인다. 정신질환자들간의 사랑은 고사하고 평상시에 정신질환자 자체를 구경하기 힘들고, 비롯 의붓관계이기는 해도 오누이간의 사랑은 패륜적인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랑들이 그리 흔하지 않은 종류의 것이기는 해도,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을 띤다. 하나는 극도로 외향적이고 자유분방한 형태, 또 하나는 가슴뚜껑 안에서 조용히 보글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형태다. 전자는 라디오의 청취자 사연에 소개돼도 좋을만큼 알콩달콩한 추억을 동반하는 '성공한 사랑', 후자는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맺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실패한 사랑'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기대주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라는 의미 때문에 상당한 기대를 품고 봤던 이 영화들은 그러나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다. <싸이보그...>는 <복수 삼부작>으로 익숙해질만큼 익숙해진 박찬욱 감독의 경쾌한 영화화법이 조금 덜 참신하고 덜 야심찬 영화적 공간안에서 반복되고 있었고, <천년학>은 노거장의 한층 더 깊어진 관조적 시선만이 한 곳에서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듯, 노인의 무기력함이 지배적이다. <복수 삼부작>과 <취화선>의 맹렬한 공격적 아름다움이 수그러든 것이 아쉽다. <싸이보그...>는 박찬욱 감독의 희망과는 달리 '베토벤 8번 교향곡'의 포스 넘치는 즐거운 소품과는 약간 거리가 있고, <천년학>은 100번째 영화라기보다는 100살짜리 영화의 느낌이다.

그래도 이 영화들의 의미를 찾아 보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싸이코'들의 사랑도, 의붓 오누이의 사랑도, 성공한 사랑도, 실패한 사랑도, 모두 우리네 인생의 핵심이다. 자유분방한 정신분열적 사랑이 웃음가득한 충만을, 자폐적인 의붓 오누이의 사랑이 고독한 달콤씁쓸함을 경험하게 해 주는데, 바로 그러한 경험들이 인생의 가장 뜨거운 '엑기스'라고, 그러므로 '싸이코지만, 그리고 천년학이지만 괜찮아, 왜냐하면 사랑이 함께하니까'라고 이 두 영화는 나에게 소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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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지기 2007-08-1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때문에 한참 웃었네요. 천년학인지만 괜찮아^^

전자인간 2007-08-17 10:03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무슨 패러디 영화 제목같네요. ^^

비로그인 2007-08-1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인간이 '사랑 이야기'에 관한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전자인간 2007-08-17 10:05   좋아요 0 | URL
'싸이보그'도 사랑을 하는데요, 뭘... '전자인간이지만 괜찮아'는 어떨까요? ^^

비로그인 2007-08-17 10:30   좋아요 0 | URL
이 얘기하고 싶었어요.
두 영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 제목만 써주면 다른 하나는 소외되는거잖아요.
그리고 '전자인간이지만 괜찮아'는 직접 전자인간님을 대하지 못한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어필하기 어렵겠는데요.

전자인간 2007-08-17 10:43   좋아요 0 | URL
흠.. 나름대로는 <싸이보그..>의 '지만 괜찮아'를 빌어 왔으므로, <싸이보그..>가 서운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천년학>은 제목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반면, <싸이보그..>는 부분이라 소외받을 수도 있겠군요.
 

블로그는 민주적인 소통방식인가? - 질문 자체가 잘 못 되었을 수 있다. 블로그는 소통방식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라캉이 말한 것처럼, 그 가치를 인정하리라 예상하는 '환상 속의 상대자'에게 보내는 '부치지 않은 편지'에 가깝다. 이메일처럼 특정 상대자에게 보내는 형식도 아니고, 게시판처럼 불특정 상대자에게 공개하는 형식도 아니다. 블로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가게처럼, 아무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 아바타나 아이디가 사이버 공간상에서 개인에 상응한다면 블로그는 사이버 공간상에서 가게에 상응한다. 집은 아니다. 집은 그 대문을 열어놓고 누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블로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통하지만, 사실 온갖 손님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자작 수공예 상품들로, 때로는 기성 히트 상품들로 진열장이 가득 찬 자그마한 쇼핑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기도 하다. 꾸준히 다듬어 상품가치를 높여서 시장에서의 경쟁을 뚫고 많이 팔리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블로그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방문자수와 댓글수가 이윤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의 이윤이 적정 선을 넘어서면 다시 새로운 자본으로 재투자되고, 여기에 블로그 주인장의 근면한 노동이 결합되면, 양의 피드백 회로가 작동되어 결국은 블로그의 거대기업화를 이끌어 낸다.

블로그의 거대기업화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그 하나는 주인장의 부지런함. 또 하나는 주인장의 글솜씨다. 부차적인 요인이 몇 가지 더 있는데, 그 중에 주인장의 사교성은 앞서 말한 두 가지 요인보다도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몇 가지 요인들에 의해 매일 방문자 수가 수백에 총 방문자 수가 백만에 육박하는 초거대 블로그와 매일 방문자는 거의 자기 자신뿐인 망한 블로그가 갈린다. 그런데, 그 분화는 몇 가지 요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카오스 이론의 사회과학적 연구대상이라 할 정도의 비선형성이 그 특징이다. 블로그의 이러한 비선형적 양태는 매우 훌륭하고 주옥같은 글이 담긴 블로그가 방문자 수에서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그저 그런 블로그가 되는 이유가 된다. 다이아몬드로 가스층을 형성하였지만 임계 질량에 미치지 못하여 그냥 성운에서 진화가 멈춘, 되다 만 별의 꼴이 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동역학에 의하여, 눈물나게 훌륭한 글에 추천이 겨우 한 두개 밖에 달리지 않는 경우를 심심챦게 본다. 그러나 좋은 글이라면 추천과는 상관없이 '이주의 마이리뷰'로 선정될 수 있었기에, 나같은 게으름뱅이도 이렇게 훌륭한 글, 그리고 서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주의 마이리뷰'도 추천수로 선정한다고 한다. 엷은 중력장을 갖고 있지만, 황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성운을 앞으로는 보기 힘들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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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저도 동감하는 문제이구요. 정말 좋은 글을 쓰신분들중 ..블로그를 안하시는 분들은 돌아오시라는 의미로 꼭 즐찾을 해놓아요.. 정말 놀라운 글들은 묻히는 경우가 많아서 너무 안타까워요.. 그런분들 글을 좀 퍼와서 출처 밝히고 선전이라도 하고 싶은..그런데 추천수로 정하다니.. 너무하는군요 라는 말밖에는 ..!!

전자인간 2007-07-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결정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라딘도 역시 하나의 자본주의적 기업일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에, 괜한 기대는 하지 않는게 낫겠다고 조용히 읊조리기도 합니다.

마늘빵 2007-07-25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를 그렇게 추천수를 통해 선정한다고 발표를 했었는데, 몇몇 분들이 - 저도 포함 - 그렇게 하면 공정하지 않을 것 같고 부작용이 따를 것 같다고 지적했답니다. 서재지기님들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마을지기님이니 좀 더 기다려봐도 될 듯 합니다.

근데 한가지 질문, 서재권력 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저는 이에 대해 부정적입니다만, 저 단어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겠다 싶습니다. 현재 토론때마다 가끔씩 등장하는 언어인 서재권력 이라는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전 이걸 허구라고 보거든요. 없는데 마치 있는것처럼 꾸밈으로써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거 같습니다. 전자인간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전자인간 2007-07-26 08:05   좋아요 0 | URL
제가 뭘 안다고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하십니까요? ^^ 허접한 답변이 될 우려를 무릅쓰고 간단히 답변드린다면...
'권력'을 들뢰즈적인 이론틀을 빌어와서 (어줍잖게) 정의하자면, '리좀형태로 탈주하는 욕망의 궤적을 홈패인 공간에 가두는 안티-욕망의 장(field)' 쯤이 될라나요?(뭔 소리지?) 어쨌든 말씀하신 '권력'이라는 것이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므로 위와 같은 정의를 내려 봤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알라딘 거대 서재가 타자의 욕망을 억누르고 홈패인 공간에 가두느냐 여부가 아프락사스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겠지요. 이건 서재 주인장에 따라 갈릴 문제라고 봅니다. 타자의 욕망이 서재 주인장의 욕망의 탈주선과 서로 교차하면서 제 삼의 탈주선을 긋는다면, 그것은 '권력'보다는 '기계(들뢰즈가 말했던 의미로서의)'로 불리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권력이겠지요. ^^

마늘빵 2007-07-26 12:54   좋아요 0 | URL
아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들뢰즈는 영... 몰라서;;;

전자인간 2007-07-26 13:00   좋아요 0 | URL
요는, 서재 주인장에 따라 다를 거라는 말씀입니다. ^^

마늘빵 2007-07-2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고 추천하고 찜 좀 하겠습니다. :) 님 덕분에 생각할 꺼리가 하나 더 생겼어요.

투명고냥이 2007-07-2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주의 마이리뷰의 선정 방식의 변화는 결코 좋지 않은 방법이네요.
아프라삭스님 말씀처럼 되면 좋겠네요.
쓰신 글 무척 잘 읽고 동감합니다.

전자인간 2007-07-26 08:06   좋아요 0 | URL
네, 추천수로 '이주의 마이리뷰'를 뽑는 방식이 관철되면, 개인적으로 알라딘, 참 재미없어질 것 같습니다. 아프락사스님같은 분들이 반대하셨으니, 희망을 가져볼 만 합니다만...

비로그인 2007-07-2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인간님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서재 종종와서 고견 듣고 가겠습니다 ^^

전자인간 2007-07-26 11:5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체셔고양이님.
제 뜻이 오해없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네요.
이제까지도 가끔 그래왔지만, 앞으로 저도 님 서재에 종종 들르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7-07-26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는 방법은 각양 각색이지만,생각의 종착지는 하나일때 반가워집니다.
잘 읽고 가요.

전자인간 2007-07-26 11:56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의 종착지에서 다른 길로 오신 분들을 만나는 것도 대단한 즐거움입니다.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7-07-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초롬 너구리예요 ^^ 님의 글이 정말 제 마음을 대신 다 표현해주신 것 같아 감사드려요 (흠, 전 언제쯤 제 머리에 있는 걸 100%는 아니더라도 잘 쓸 수 있을까요? ^^;;;) 여하간, 옥석을 가려내는 눈은 모두 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이 제도를 실행할 경우에 오는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자인간 2007-07-26 13: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너구리 드 보통님 ^^ 너무 많은 분들이 저의 생각에 동의해 주셔서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저로서도 제 머리에 있는 걸 100% 다 적지는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과찬의 말씀이네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07-07-26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며시 와서 아주 꾹 추천하고 갑니다.
인기있는 블로그가 반드시 양질의 블로그는 아닐 터, 그런면을 잘 정리해주신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주의 마이리뷰를 추천으로 정한다는 것에는 저도 반대합니다!!

전자인간 2007-07-26 13:25   좋아요 0 | URL
어익후, 이러다가는 알라딘의 방침에 반대한 반대파의 앞잡이로 찍히겠는걸요~. 반갑습니다. 다락방님, 저의 의견에 동의하셔서 더욱 반갑습니다.

마늘빵 2007-07-27 01:45   좋아요 0 | URL
반대가 대세군요. 글쎄 부작용에 대해서 알라딘 측이 많이 고민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원래 하던대로 하는게 더 낫지 싶은데.

향기 2007-07-27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쯤 이렇게 도도히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을까요? 한참을 부러워 하다가 꾹 추천하고 갑니다. ^ ^

전자인간 2007-07-27 09:14   좋아요 0 | URL
제 글쓰기가 국문과 학생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다니요!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7-07-28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http://blog.aladdin.co.kr/zigi/1451605) 좀더 본질적인 의미의 논평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알라딘에 갑자기 지적이고 교양 넘치는 사람이 뚝 떨어져서 님의 글들을 이해하고 이를 파워풀하게 관철시켰으면 하는 소망을 하게 됩니다 ^^;
"엷은 중력장을 갖고 있지만, 황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성운" 이걸 철학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시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는 판단중지입니다~

전자인간 2007-07-28 19:52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의 글과 서재지기님이 남긴 댓글을 읽어 보았습니다만, 역시나 서재지기님의 답변은 기업으로서의 알라딘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보다 더 이윤을 많이 가져다 줄만한 책과 리뷰에 대해 '이주의 마이리뷰' 적립금을 투자하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올바른' 투자일테니까요.

승주나무 2007-07-28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 아프 님//'서재권력'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서재권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타나는 발화시점과 그것을 논하는 발화주체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아예 그런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문단권력'도 결국 그런 거 아닐까요.. 어차피 '..권력'이 '현상'이라면, 현상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무에 관한 논쟁보다는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가 주된 의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참, 아프 님의 서재도 아닌데 이렇게 말해도 되나? 그냥 논의가 있길래 남겨봅니다~

마늘빵 2007-07-28 15:23   좋아요 0 | URL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음 근데 있다고 해도 보통 요즘 이 말을 붙이는걸 보면, '열혈 알라디너' = '서재권력'이 되는거 같더군요. 이 등식은 아니죠. :)

누에 2007-07-3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엷은 중력장을 갖고 있지만, 황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성운'은 지하서재의 책더미 속에 파묻혀있던데... ^^

전자인간 2007-08-01 15:40   좋아요 0 | URL
다이아몬드 성운을 찾으려면 고고학자가 되어야겠군요. ^^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굴레를 벗고 자주의 새 역사를 여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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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 사이에서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많은 명제들 중에서도, '혁명같은 사회 변혁기에는 강력한 지도자의 독재가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은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는 진부한 격언에 비춰보거나 스탈린 또는 모택동의 사례를 볼 때는, 혁명 후의 첫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강력한 지도력으로 일정 기간 밀어붙이지 않고서 혁명이란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즉, 이런 의문들 말이다. - 로베스피에르 없이 프랑스 혁명이 수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카스트로의 장기집권 없이 쿠바가 사회주의 혁명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조금 다른 의미일 수는 있어도,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연적 또는 필수적인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이 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또 하나 답하기 어려운 명제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혁명 이후가 그 이전에 비해 풍요로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혁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또는 주변의 강력한 제국주의 때문인가?' 후진 농업국이었던 러시아가 혁명 이후에 엄청난 고도 성장을 이뤘고 결국 고도 산업국가가 되었던 것을 보면, 혁명이 민중을 배고프게 하기는 커녕 훨씬 풍요롭게 한다고 봐야 하겠지만, 혁명이후 두어 세대만에 벌어진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은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혁명의 비교열위를 나타낸다고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소련 체제는 혁명이 지향했던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쿠바 경제가 낙후한 이유는? 쿠바가 진정한 사회주의를 이룩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같은 수퍼파워가 금수조처를 취해서 무역으로 인한 부의 창출이 거의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쿠바가 그나마 이만한 복지를 갖추고 버텨나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 생각된다. 생각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이런 가정도 가능하리라. '주위에 미국같은 훼방꾼이 없고 인접한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들과 사회주의적 무역이 가능했다면, 쿠바는 진정한 민중들의 지상낙원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법이란 없기에 역사적으로는 무의미한 추측이지만, 대단히 도발적이고 파괴력 있는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다.

차베스가 이끈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고서 느꼈던 당혹감은 바로 전술한 두 가지 명제가 내포하는 당혹감과 일맥상통한다. 그 당혹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차베스의 혁명은 초기의 강력하지만 건강한 권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차베스의 혁명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라는 막강한 도전을 꿋꿋이 이겨내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전자는 혁명 내적인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 후자는 혁명 외적인 방해세력에 대한 조바심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볼리바리안 혁명은 민중이 지켜낸 혁명이므로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은 최소화될 수 있으며, 정당성이 담보된 혁명은 중남미에 혁명의 도미노와 거대한 연대를 이루어 낼 것이므로 방해세력에 대한 조바심도 최소화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고 있다.

저자들의 자신만만한 주장처럼 볼리바리안 혁명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전술한 두 가지 명제에 대해 자유주의적 좌파의 견해, 즉 '외부로부터 교란받지 않는 진정한 사회주의적 혁명은 자본주의보다 비교우위에 있지만 (그것이 꼭 경제적인 효율성의 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님), 민중을 위한 사회주의적 독재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차베스의 혁명이 조금은 위태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차베스가 장기 집권 전략을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아옌데의 칠레 좌파 정권이 미국이 배후에 있는 쿠데타에 당했듯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리바리안 혁명의 현재까지의 모습은 희망적이다. 국영석유회사(PDVSA) 수익을 바탕으로 한 '미션 로빈슨', '미션 리바스', '미션 수크레' 등의 빈민 교육 개혁, 그리고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라는 무상의료 제도의 도입이 보여주듯, 그 혁명은 매우 순수하게 민중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만명의 의료인을 지원해 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와 제 2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진행중인 에보 모랄레스의 볼리비아 등, 미국과 맞짱뜰 수 있는 좌파 연대가 점점 세를 불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베네수엘라가 지속가능하고 전염성 강한 진짜 혁명을 완수하여 내 가슴한켠에 도사리고 있는 의구심과 조바심을 일소해 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은 그러한 희망을 불순물없이 열정적으로 농축하여 독자의 가슴에 심어 놓는다. 그 순진하리만치 높은 순도가 우려스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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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2007-07-21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민중의 독재, 필요하다]


베네주엘라에서 볼리바리안 혁명이 가능했던것은
민중이 베네주엘라 혁명의 주체세력이 되었기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에서 사회변혁이 성공한 후에도 그 성과를 이어가자면,
여전히 민중을 그 변혁운동의 주인으로 세우는 계속적인 개혁과 혁명적 조치들의 필요한 것이겠죠.
그 내용은 여러가지 있을 것입니다.
남미에서 반제국주의 공동 연대전선을 구축하는 문제, 내부의 개혁과제, 자기 대오를 정비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이어가는 문제, 낡은 반변혁세력의 공격을 방어하는 문제, 경제문제 등 책임질 문제가 많겠지요.
그런 걸 책임지기 위해선 민중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중의 독재는 자본가를 억압하고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지
1인의(또는 일단의 정치세력) 정치강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과정은 민주적인 의사수렴과 민중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전자인간님이 흔히 자본가들이 이야기하는 대립구도:
자본주의는 민주적이고
사회주의는 독재적이라....는 그들의 편견과 주장에 포로가 된 것은 아닌지?


혁명이 혁명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은
그들이 단지 정권을 바꾼게 아니라, 누대에 걸쳐 지속되어온 가진 자들의 질서와 체계를
완전히 뒤엎은 것이기에 레볼루션이라 하지 않을까요???

그걸 완강하게 지키자면 민중의 독재- 민중성을 기반으로한 정권창출, 통치행위, 반민중세력에 대한 민중의 독재-는 필연입니다.

그리고 너무 조바심치지 마세요.
아무리 나빠도 지금보다는 낫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천성이 낙천적이지 못한 저이지만
...운동하면서 그나마 낙관적으로 살아갈수 있는건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낫다'는 확신과
또 '그럴 때까지 내가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든요.

전자인간 2007-07-2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가들이 심은 편견의 포로가 된 것은 물론 아니고요..
제가 걱정하는 것은 베네수엘라 혁명이 민중에 의한 혁명이 아니라, 차베스에 의한 혁명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스탈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저 역시 러시아의 혁명이 민중에 의한 혁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스탈린에 힘이 집중된 결과, 결국은 스탈린에 의한, 스탈린을 위한 혁명으로 모양새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우려는 이런 것이고, 그것은 천성적으로 노파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에서도 썼지만, 아직까지 베네수엘라는 잘 하고 있다고 봅니다. ^^

하늘지기 2007-08-1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제 책상위에서 몇달째 뒹굴고만 있어요^^

전자인간 2007-08-17 10:20   좋아요 0 | URL
맘만 먹으면 하룻밤만에도 읽을 수 있습니다. 매끄럽게 읽히는 책은 아니긴 합니다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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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맥주 한 파인트를 들고 머리가 둘 달린 토끼를 쫓아 가다가 뒤죽박죽 무정부적인 우주를 헤메고 나서 냉소적인 표정을 머금고 썼을 법한 소설. 플롯이란 것 자체가 이 소설이 조롱하듯 풍자하는 대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개연성과는 거리가 먼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를 거부하며 벌어지는 SF. 자기모순적이고 우스꽝스럽지만 스스로를 설명하는 가장 적당한 표현, 즉 '갈수록 부적절한 제목인 히치하이커 삼부작의 다섯번째 책(The fifth book in the increasingly inaccurately named Hitchhiker's Trilogy)'이 표지에 인쇄되었던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약어는 HHGTTG 또는 H2G2, 이하 '안내서')를 쓴 더글라스 아담스 (Douglas Adams)는 코믹 SF계의 셰익스피어다. 그의 모든 문장은 아이러니를 불러 일으키면서도 냉소적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바로크스러운 아름다움이 넘친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만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한 번 보자.(실제로 아무 페이지나 펼친 후 적는 것이다.) - '아서는 하마터면, 어느 날 밤 벽난로 옆에서 다리를 올려놓고 앉아서 린다(폴 매카트니의 아내)에게 콧노래를 불러주며, 인세 수입으로 다음에 뭘 살까, 아무래도 에식스 지방을 통째로 사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폴 매카트니를 상상할 뻔했다.', '아서와 트릴리언은, 심야의 도로에서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헤드라이트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노려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토끼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디오 코미디 방송으로 1978년 처음 선보인 <안내서>는 라디오에서 시작된 폭발적이고 매니아적인 인기에 힘입어 1979년부터 1992년까지 5권의 소설으로 쓰여지게 된다. 사실 <안내서>는 라디오 코미디나 SF 소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이 여러 미디어에서 각색된 바 있다. - 수많은 연극, TV 시리즈, 컴퓨터 게임, (우리가 잘 아는) 헐리우드 영화, 그리고 두 종의 '타월 시리즈'. 이것은 <안내서>가 전세계 맥도널드 매장마다 제다이 그림이 그려진 컵을 뿌려댔던 <스타워즈>나, 현대의 가장 큰 컬트 현상 중 하나'라고 일컬어진 <스타트렉>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어 모은 SF 시리즈임을 뜻한다.

하지만 <스타워즈>, <스타 트렉> 등의 비교적 평범한 SF와 비교하기에는 <안내서>는 그 색깔이 너무나도 독특하고 그 무게감이 다르다. 그렇다고 필립 K. 딕이나 아서 클라크, 어슐러 르 귄 등 거장들의 꼼꼼하고 단단한 SF와 비교하기에 <안내서>는 너무나도 성기고 자유롭다. 뭐랄까, 백남준의 '헐렁함'과 니체의 염세적 형이상학, 샤갈의 초현실주의, 그리고 제이 리노 쇼의 수다스러움을 블렌딩해서 '아무 이유없이' 허무하게 빚어 낸 슈뢰기랄까?

이 책은 구매만 해 놓고 읽기 전에, 나의 다른 글에서 '최강의 뽀대'라고 추천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그 추천에는 변함이 없는데, 나의 서재에서 이 책은 전화번호부 따위(그것도 요즘의 얄상하게 다이어트된 동네 업종별 전화번호부 말고, 한 때 서울의 집집마다 비치하고 있던, 상하권으로 나뉘어진 서울 인명부 전화번호부)는 가볍게 제압하는 늠름한 두께(1235 페이지)와 재기발랄한 소설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별자리 폰트로 장식된 깜찍한 책표지로 '가장 사랑스러운 도서 콜렉션'으로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다. 단, 이제 그 추천이 계속 공표되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면, 그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모든 사람을 만족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오덕후'스러운 내용과 서술방식 때문이다. 그래서 이 리뷰를 빌어 이 책을 사려고 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고하려 한다.

"당신이 다음 중 하나에 해당한다면 이 책을 구입하는 것을 자제하기 바랍니다."

1.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영화판을 보고 아무런 감흥이 없다.
  - <안내서>의 영화판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인 무정부적 요소가 상당부분 탈색된 버젼이기는 하지만, 그 황당함은 꽤 잘 살아 있다.

2. 행성 하나 용량의 두뇌를 갖고 있지만 우울증을 앓는 로봇에는 관심이 없다.
  - 결단코 '마빈'은 이 책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이토록 애착이 가는 투덜거림은 들어본 적이 없다!

3. '불가능 확률 추진기'나 '나쁜 소문을 추동력으로 사용하는 우주선' 같은 개념은 개소리다.
  - 이 책은 개소리의 연속이다. ^^

4. 지구가 파괴되는 결말은 죽어도 싫다.
  - 내 기억으론 지구가 최소한 두 번은 파괴된다!

5. 소설은 개연성이 생명이다.
  - '개연성 제로'가 이 소설의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차례를 옮겨 본다. 차례 한 페이지만 읽어도 이 책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안내서에 대한 안내 | 작가가 말하는 별 도움 안 되는 이야기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
  대체로 무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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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2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의 소설은 읽기가 쉽지 않아요.
플롯도 지켜지지 않고, 대화체도 제 맘대로 써버리고,
소재도 놀랍구요.
그래서 베스트 셀러중에서 고르고 골라 읽다가 실망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지요.
독자들이 그런걸 원해서 그렇게 쓰는건지,
작가들의 지향이 그런건지 모르겠어요.
웬지 비주류로 밀리는 느낌....이 요즘 나오는 책을 볼 때마다 들어요.

그런데,이 책 재밌나요?

전자인간 2008-07-29 11:27   좋아요 0 | URL
사실, <안내서>는 그리 '최근'이란 말이 어울리는 소설은 아닙니다만, 저는 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최근의 소설'에 더 몰입이 되더라구요.

암튼, 이 책, 저는 재밌었습니다.
님은 왠지 별로 재미없어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5월 넷째주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 적립금으로 음반과 영화 DVD를 몇 장 샀다. 음반은 클래지콰이 3집, 에디뜨 피아프 샹송 100, 프리드리히 굴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및 협주곡 전집 등이다.

클래지콰이는 회사의 후배사원에게서 생일선물로 1집을 선물받은 후, 그들의 도회적인 발랄함에 반해서 3집까지 꾸준히 사 모으고 있는(중간의 리믹스 앨범은 건너 뛰었지만), 몇 안 되는 나의 컬렉션 대상 국내 뮤지션이다. 오늘 도착하자 마자 제일 처음 플레이어에 걸고 들었는데, 첫 느낌은 '도회적이기는 하나 발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런 느낌은 2집에도 얼마간 있었는데, 몇 번 더 들어 봐야 그들이 뒷걸음치고 있는지, 앞으로 나가고 있는지가 분간될 것이다.

에디뜨 피아프는 영화 <파니 핑크>에서 쓰였던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가 너무 좋아 충동구매한 경우다. '장미빛 인생', '사랑의 찬가'를 포함하여 잘 아는 노래가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100곡짜리 음반을 산다는 것은 분명 비합리적이고 무모한 짓일테지만, 5 for 1의 유혹은 뿌리치기 쉽지 않았다. 첫번째 음반 20곡을 들어봤는데, 그녀의 카랑카랑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스피커 주위의 온도를 이삼도 올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굴다의 베토벤 피아노 전집. 총 12 CD이지만, 허접스런 연주자도 아니고 굴다이지만, 두 장 값이다. 이건 고전음악을 좋아한다면 안 살 수가 없다. (요즘, 이런 전집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 분명히 사는 것이 합리적인데, 다 들을 시간이 없어서 못 사고 있다. 미치겠다!)

 

 

 

 

 

 

 

그리고 영화들... 이건 알라딘의 상술에 걸려든 구매다. 장바구니 아래에 시선을 끄는 '초특가 할인'에 걸려든 것. 그러나 영화들은 평소에 보고 싶었던 것, 다시 봐도 괜찮을 만한 것들만 골랐으므로 그리 후회는 없다. 4장 모두 해 봤자, 신작 DVD 가격의 절반밖에 안 되니... (물론, 스페셜 피쳐는 기대하지 말아야겠지만, 난 어차피 스페셜 피쳐를 그리 잘 보지도 않는다.)

오늘 산 음반 장수를 헤야려 보니 클래지콰이 1장, 에디뜨 피아프 5장, 굴다 12장 총 18장이다. 한 장당 한 시간만 잡아도 18시간 동안 들어야 한다. 독서와 음악듣기를 동시에 하지 않는게 내 원칙이지만, 이 황당한 충동구매의 본전을 뽑기 위해서는 당분간 독서와 음악듣기를 병행해야 할 것같다. 음악은 독서와 병행한다지만, 영화는 도대체 언제 다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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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5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인간 2007-07-06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님!
특히, 해골로 분장한 오르페오가 케익을 들고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에 맞춰 립싱크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찔끔하죠~~ ^^

다락방 2007-07-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가격도 싼데 꼭 보고싶은 영화다 싶어 구입한 dvd 가 몇장 있는데요
웬걸, 구입하고 나니 오히려 안보게 되더군요. 그토록 보고싶어 했으면서 말예요. --;;

전자인간 2007-07-26 13: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네 개 중에서 아직 한 개밖에 못 봤네요. 두 번 이상 볼 확률은 그만큼 없어지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