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이 글의 카테고리를 '투덜투덜'에 넣을까, '소곤소곤'에 넣을까 고민했다. 이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를 '야만적인 동양에 대한 서구의 영웅적 승리'로 볼 것이냐, '제국주의에 반대한 좌파적 게릴라의 후일담'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극단적으로 평가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전자로 보는 견해가 많은 것 같지만(이를테면 '씨네21' 편집장의 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3005&article_id=45536), 로쟈님이 소개한 지젝의 전복적 영화읽기 (http://blog.aladin.co.kr/mramor/1475998)도 꽤 재미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듀나는 <300>에 대해서, 역시 정치적으로 차갑기 그지없는 평소 모습에 어긋나지 않는 리뷰를 남겼는데(http://djuna.cine21.com/movies/300.html), 개인적으로 듀나의 맹맹한 당파성에 비판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듀나의 냉소적인 견해가 솔깃하다. 듀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그저 '방향없는 선전물'이라는 것. 듀나의 이러한 견해와 비슷하게도, 나는 이 영화를 전쟁 판타지로 파악했는데, 그런 관점을 따르면, 스파르타나 페르시아는 나이트 엘프나 오크처럼 '워크래프트 3'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한 종족일 뿐이며, 단지 영화가 스파르타의 입장에서 게임을 풀어나가고 있을 뿐이라고, 아주 손쉽게 결론지을 수도 있겠다. 우리편은 강하고 멋있으며 정의롭게, 적은 오합지졸에 괴물같고 비열하게 그렸던 것은 단지 게임 진행상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오락적 효과일 뿐이라고...
여기까지 논리를 진행시켰더니, 중요한 것을 빼먹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아무런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오락영화의 그것이라 하더라도, 영화의 매 순간순간마다 느꼈던 비릿한 역겨움은 도대체 무엇인가? 물론 사정없이 사방팔방으로 튀기는 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마초이즘', '군국주의', '인종주의', '전체주의'... 이 영화는 거시적으로는 굉장히 모호하고 논쟁적인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지만, 미시적으로 봤을 때는 끔찍스러운 반지성, 반동의 지뢰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전투에서 승리한 스파르타 전사 몇 명이 반쯤 죽어 있는 페르시아군을 눈 하나 꿈뻑하지도 않고 창으로 푹푹 쑤시며 확인사살하는 와중에, 레오니다스 왕은 페르시아인의 마지막 비명을 들으며 태연히 사과를 먹는 장면... 레오니다스 왕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 어떤 스파르타 전사의 듣기 심히 안쓰러운 대사, '당신과 함께 죽게 되어 영광입니다.'... 흠, 이건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대사다. 바로 '배달의 기수'풍 대사가 아닌가!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글은 '소곤소곤'을 눈앞에 두고 유턴하여 '투덜투덜'로 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