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 주문한 책들을 방금 경비실에서 찾아 왔다.
어제의 일기에서도 언급한 피에르-프랑수아 모로의 <스피노자>. 수유+너머의 다음 세미나 때 읽게 될 책이다. 스피노자에 대한 여러 주해서나 입문서 중에서 가장 쉽다고 전해지는 책. 스피노자의 생애와 시대 상황을 가장 먼저 다루면서 "이 책은 스피노자 쌩초보용 입문서다"라고 선언한다. 본문 내용이 200 페이지가 약간 넘고, 그나마 스피노자의 글 중 발췌한 것이 1/4을 차지하므로 실제 읽어야 할 양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깔보게' 만드는 책.
드디어 벤야민에 손을 댄다. 세미나 학인이 들고 다니던 두툼한 나무토막 같은 2 권짜리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침흘리며 부러워하기만 하다가, <미학 오디세이> 3 권의 황홀한 벤야민 뽐뿌질에 두 손 들고 사버린 책. 왜 하필 '문예이론'인가하면, <미학 오디세이>에서 참고문헌으로 소개되기도 했고, 제일 처음에 도전할 만하기도 하겠다는,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 편견이 작용한 까닭이다. 그러나 아뿔싸, 책을 펼치는 순간 페이지를 가득 메운 점들. 보통 시력을 가진 사람도 돋보기를 들고 보아야 할 정도로, 점에 수렴하는 글자들이 독서의 의욕을 처절히 꺾는다. 민음사 이데아총서는 기피대상에 넣어야 하나? 일단, 중요한 것은 알찬 내용과 훌륭한 번역이라는 자기 최면을 걸자. 사실 '훌륭한 번역'이란 것도 가정에 불과하지만...
이 책도 <미학 오디세이>의 뽐뿌질에 넘어간 경우다. 나는 대체로 <미학 오디세이> 3 권에 뿅~갔는데, 이 책도 3 권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 전생에서나 들었을 법하도록 희미하게 기억하던 '보르헤스'라는 작가의 세계를 <미학 오디세이>의 주선으로 처음 맛본다. 개인적이고 인간적으로, 이번에 산 책들 중에서 가장 재밌을 것으로 기대되는 책.
그리고......... 무시무시한 책, <지각의 현상학>. 포장을 뜯은 후, 다른 네 권을 합친 것에 육박하는 부피에 한 번 놀라고, 차례에서 무수히 발견되는 학술적이고 난해한 제목들 - 이를테면, '유기적 억압과 선천적 복합체로서의 신체', '가능적인 것을 향한 정위, 추상적 운동', '대자 존재와 세계-에로-존재' ... - 에 또 한 번 놀라서, 이 책에 지불된 삼만 원 가량의 돈을 그리워하도록 만든 책. 그러나, 비르노의 <다중>을 읽으면서 접했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알쏭달쏭하게 매료된 이 책의 인용구만으로도, 달콤한 고난의 독서 여정은 예고된 것. 도전의식에 불타기도 하지만, 문제는 시간.
명랑파 경제학자 우석훈의 '임시 연습장' 블로그에서 소개된 책. 그의 소개를 읽어 보면 일본 프로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책인가보다. 일단 뭔가 있어 보여서 충동구매를 했는데, 프로 문학이라지만 부르주아틱한 고급 표지 재질에 무협지스러운 글자 밀도가, 꽤 자본주의스러운 독서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기이한 죄책감에 살짝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