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캅>, <토탈리콜>, <원초적 본능>의 폴 버호벤이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오랜만에 내놓은 최신작. 재앙과도 같은 <쇼걸>과 평범한 <할로우 맨> 등으로 한없이 추락하던 버호벤이 6년여만에 고향의 정기를 받아 만들어 낸 말끔한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는데, 너무나 꼬아 논 스토리탓에 오히려 현실감은 떨어진다. 그러나 의인과 악인을 서로 잘 섞고 비벼서 '나치' 그릇과 '레지스탕스' 그릇, 그리고 '보통사람들' 그릇에 적당히 나누어 담은, 그래서 '개인의 악함과 집단의 악함은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고 역설스럽게 역설하는 주제는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진다. 그 선악의 대비 또한 버호벤스럽게 영화적으로 과장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폭력과 성의 극단적 사용을 통해 철학적 주제를 강렬하게 던지곤 하는 버호벤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그 극단적 화법이 그다지 크게 드러나지 않아서 버호벤답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영상을 통한 블랙유머의 달인이기도 한 버호벤의 면모는 녹슬지 않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