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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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대한 공공장소에서의 연주를 꿈도 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체 게바라의 꿈도 공유할 수 없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맹랑하게 외치며 쿠바, 콩고, 볼리비아 등지를 누비던 이 전설적인 게릴라 영웅의 꿈은 우리에게 보여지기도, 들려지기도 거부당하며 안개속 저 높은 봉우리에 나부끼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쇼스타코비치도 체 게바라도 더 이상 금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도 십수년이 흘렀다. 사회주의의 이상을 버리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이제는 광고에서, 영화에서 너무도 흔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전용되고 있으며, 몇 년전 이 책의 출판으로 이해하기 힘든 지적 유행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놓여진 체 게바라는 그의 꿈과는 상반되게 자본주의적 이익창출을 위한 질료가 되고 있다.

모든 순수하고 진실된 꿈이 돈과 권력의 거대한 자본-제국주의적 폭탄으로 날아가 버리고 있는 삭막한 현대에서는 당연하다 할 수 있는 현상이겠지만 말이다. 허나, 탐욕스런 자본주의를 향한 이 모든 냉소적 탄식을 걷어내고 이 책을 바라 본다면, 고급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쇼스타코비치에서 혁명적 색깔이 탈색되는 것이 아니듯, 대중적 베스트셀러인 <체 게바라 평전>에서도 그의 꿈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꿈은 너무나 원대해서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사실은 매우 수수하고 단순명료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 이하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자'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한 번쯤은 품어 보았을 원초적 꿈이다.

게다가 체 게바라는 너무나도 강렬한 리얼리스트였으며, 예수와 돈키호테를 혼합한 듯한 프로토타입에다 나폴레옹과도 비견되는 강한 정신력을 덧입힌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라도 품고 있을 단순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손수 이루려고 시도했고 그것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었다. '우리는 결코 전쟁광들이 아니다. 다만 그래야 하기 때문에 행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쿠바에서 그는 불가능한 꿈을 이루어 낸 리얼리스트가 된다.

'쏘아, 겁내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죽음을 앞둔 두 성인의 매우 다른 유언이지만 두 사람의 죽음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그 죽음은 억압되고 약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다가 극한의 이기주의가 쏜 총알에 의한 장렬한 전사이며, 또한 보는 이들에게 장엄한 영혼의 위대한 부활을 맛보게 하는 극도로 엄숙한 의식이었다.

그들을 죽인 군인의 말이다. '그의 눈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매혹당했습니다. 나는 크고 위대한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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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반대한다 - 우리시대에 고하는 하워드 진의 반전 메시지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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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바그다드를 점령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미국은 애초에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혐의로 이라크를 공격한다고 했으나 정규군끼리의 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지금,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는 커녕 '소량살상무기'(대량, 소량이라는 구분 자체를 하워드 진은 거부하겠지만)마저도 10년여에 걸친 경제봉쇄조치로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신 그들은 서서히 말을 바꿔 가다가, 이제는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이라크인들을 해방시켰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다. 그리고는 미군의 점령을 환호하는 이라크인들의 이미지를 연일 그들의 비공식적 공보부(CNN과 Fox TV 등)를 통해서 튀는 CD처럼 반복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이라크인들의 억압과 인권에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미스테리를 남긴 채...

<전쟁을 반대한다>, 하워드 진의 이 책이 이라크전 이후에 출간되었다면 분명 그의 책은 하나의 작은 챕터를 더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이라크전 역시 '현대적 민주주의의 발명자' 미국이 실상 가지고 있는, 여느 독재자들 못지 않은 - 오히려 능가하는 - 타자에 대한 잔인함과 자국 제일주의를 매우 비극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좋은 나라'들은 후세인이나 히틀러로 상징되는 '악의 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선한 창과 방패를 사용했다고 선전하지만, 역사적인 진실에 따르면 무고한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을 그저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무 거리낌없이 학살해 왔을 뿐이며, 이것은 '악의 세력'이 자행한 범죄보다 결코 더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요 몇 주동안 이라크에 떨어져서 수많은 어린이를 해친 '눈 먼 스마트 폭탄(저자는 결코 '스마트 폭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은 과거 드레스덴, 도쿄, 르와양, 히로시마, 베트남, 리비아, 코소보 등지에서 오직 정치, 군사적 이익을 위해 수도 없이 몸서리쳐지는 지상지옥을 만들어 냈던 그 '대량살상무기'의 또 다른 종류일 뿐이다.

하워드 진은 이 모든 무덤덤할 정도의 20세기적 잔인함이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에서 연유한다고 진단한다. '결과적으로 무기를 든 예언자는 정복에 성공한 반면, 말뿐인 예언자는 실패했다.' 면서 도덕적인 판단보다 군주나 국가의 이익을 우위에 놓은 마키아벨리가 그 이후 모든 세대에서 위정자와 그 참모들로 하여금 대량 살상에 무감각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자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야만적인 정치세계를 이루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마키아벨리의 반대쪽 극단으로서, 히틀러와 같은 인물에 맞서는 '정당한 전쟁'마저도 진정한 윤리적 정당성은 없다는 주장을 밀고 나간다. 대신 그는 파시즘과 같은 비민주적 세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전쟁보다는 조금 더 오래 걸리겠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 즉, 게릴라전, 비타협, 사보타지, 지하운동 등, 원칙적으로 비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이라크전에서도 보듯이 아직도 세상은 마키아벨리의 제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듯하다. '시간 낭비하고 있군요.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할 겁니다. 그건 인간본성이니까요.' 라는 가상적인 마키아벨리의 대사와 '과연 그렇게 될지 한번 탐구해볼 만한 주장이다.' 라는 약간의 자신없음을 내포한 그의 대꾸는 이러한 비관적인 현실에 대한 극렬반전평화주의자의 절망 반, 희망 반이 섞인 복잡한 심경(물론, 희망에 무게가 실려있다)을 씁쓸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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