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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강한 신념도 유쾌한 유머가 될 수 있다.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8.

 

인기 없음이란?

 

오래 전 박지원의 『열하 일기』를 읽으며 통곡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이 재해석한『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웃음과 우정으로 노마드하는 연암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검색해 보니 십 년 만에 새 옷을 입은 책을 보니 더없이 반갑다.) 시대적 조건이 확연하게 다른 이백 여 년을 건너 뛰어 연암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에 감동하며 절로 눈물이 흘렀다. 유머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고수하며 진정한 호모 쿵푸스로 살아간 그가 온몸으로 절절하게 느껴졌다. 연암과 나, 둘 사이를 중매한 고미숙 선생님 모두 한반도라는 토양과 한글 속에서 성장한 교집합이 있었다는 어설픈 이유를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242

 

새삼 연암 때문에 울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 것은 버트란트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다. 러셀은 60 여 년의 간격을 두고, 나와 전혀 다른 지리적 공간에 살았고, 경험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사상에서 거리 두기가 충분한 철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유쾌함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핫한 신념 & 쿨한 반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러셀의 책이 계속해서 출판되는 것은 문제 의식에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신간 『인기 없는 에세이』 진정한 ‘인기 없음’이 왜 역설인지를 보여준다.

 

연암에 대한 사적 에피소드만큼, 러셀을 만난 오래된 기억 또한 또렷하게 남아 있다. 따뜻했으나 축축했던 벤쿠버 겨울 챕터 서점. 유치원 영어 실력으로 근근이 어학원을 드나들던 짧은 시기에도 책이 고팠다. 지금처럼 전자책이 있었다면, 한국어 책에 대한 헛헛함은 덜했을텐데, 나의 짐 가방은 온통 기초 영어 책으로만 가득했다. 서점에서 얇은 책 한권을 사들고 (당시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타벅스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었다. 이후 한국어로 읽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같은 책에서 러셀은 행복과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양 철학사』 한권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명성이란 변덕스러운 것(5쪽)”을 일찍이 깨달았던 러셀은 철학사의 주요 사상가들을 사회·정치적 배경과 연결 짓는다.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라니?

 

책을 구성하는 12개의 에피소드는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서 순서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강점을 갖는 반면, 전체적인 구조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러셀이 지적 쓰레기라고 이름 붙인 철학은 지배 담론이 되어 국가의 공식 견해가 된 철학이다. 진정한 실재와 현상적 실재를 구분하여 진정한 실재를 오로지 논리로만 규정한 헤겔, 그가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에 끼친 영향과 소련 독재 체제의 이론적 정당화가 그가 말하는 지적 쓰레기의 계보다. 러셀은 형이상학 철학에 관한 독한 비판을 피력한다. 성직자들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던 시절(162쪽)의 스콜라 철학이 대표적이다. 그는 “교조주의는 지적 사상이 아니라 권위를 견해의 근원으로 삼는다.”고 보고, 경험론은 행복을 바라는 사람을 위한 윤리적이기까지 한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경험론의 한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에서 러셀의 편향적인 모습이 불편하기는 하다.

 

반전 운동가인 경험론 철학자 러셀은 군사적 자만이 낳은 국가적 자만심의 해악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교육은 교화를 전제하고 다수의 교사는 공무원으로서 명령을 수행한다. 불행은 늘 잘못된 믿음을 지나치게 확신하면서 시작된다. 우상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쓰레기의 계보에 비켜서 있는 철학이 해야 할 일이다. 러셀을 읽다 보니 - 예의 없는 것들과 싸움에서 예의를 지키며 이길 수 있는 해법이 없다면 - 조금은 경망스러워도 될 것 같다. “경망스러워 보이는 글이 있을지언정 원래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했다. 경망스럽게 쓴 까닭은 엄숙하고 오만한 자들을 상대로 더욱 엄숙하고 오만하게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23쪽)”

 

예민한 사람은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 사려 깊게 사고하는 습관 없이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한 품성이 쓰레기의 계보 속에서 보석 같은 철학을 발견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기 없는 에세이』는 진보한다는 것이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은 이타적(利他的) 이라는 도덕주의의 오류에서 조금 비켜서서 러셀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꽤 괜찮은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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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얇은 책의 울림, 쉽고 명확한 사회학 개론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동녘, 2013. 8.

 

뉴스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보지 않은 상태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경제 지상주의’가 가속화되고, 모든 가치는 자본으로 환원한다. 과정에 대한 고민 없이 결과에 대한 평가만 이루어진다. 필연적인 결과라고 회피하기에 한국의 상황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우경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의무만 남고 시민의 권리는 점차 사라진다. 한동안의 무관심이 만들어낼 결과가 두렵다. 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저 관객의 즐거움이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다. 아바타의 활동을 지켜보는 수동적인 자리에 놓여 있는 객체의 심정이 그러하다.

 

정량화된 데이터와 단단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을 새롭게 읽는다. “가진 것 마저 빼앗기는 나”라는 부재가 그것을 함의하고 있듯이, 바우만은 우리가 불평등을 감수하는 원인과 사태에 대해서 치밀하게 분석한다. 세계에 대한 성찰과 방향을 제시하는 그의 저서는 동어반복일 수 있는 주제를 매번 쉽고 새롭게 변주한다. 근대 사회의 해체를 보여주는 바우만의 ‘유동성’ 개념은 자본이 기획한 마케팅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다. 무의식을 개인 삶으로 환원하지 않고, 사회적 담론의 결과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사회학자로서 바우만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

 

학업성취도가 미달인 학생, 학부모와 심층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성취도 미달 학생의 경제적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고, 부모님이 비정규직, 잠정적인 실업상태에 있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하층 자녀일수록 학업 성적 미달을 본인의 능력으로 귀인(歸因)한다는 것이다. 원래 부모님이 공부에 관심이 없고 못했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다고 답변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잘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같은 성취도 미달 학생 사이에서 중층과 하층의 의식 차이는 확연했다. 하층으로 갈수록 “어차피” 현재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태생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우리 안의 인종주의는 여전히 신화로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신념 가운데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드러내는 일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신화

 

불평등 심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확신에 찬 계몽주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다수의 저소득층이 반복되는 불평등을 견뎌내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신화들” 때문이다. 경제 성장이 최고의 관건이고, 인간의 행복은 소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어느 사회에나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쟁은 자연스럽다는 확신이 존재한다. 일직선의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는 사회 진화론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행복은 각자 다른 목적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자기 윤리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주체적인 삶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고 삶의 목표를 하나로 획일화한 사회가 발전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모든 사람을 호명하는 방식이 ‘소비자’로 획일화된다면 주체는 객체로 전락하여 노예적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가난이 가난을 부른다.

 

역설적으로 세계화는 세계를 둘로 분리한다. 밤의 세계지도는 세계가 어떻게 지리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22쪽)” 지리적으로 지역적으로 불평등은 노골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loanbank1116?Redirect=Log&logNo=120175447906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의 도덕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상황이 우리를 도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에서 거시적인 관점과 반복된 사고 패턴을 뒤집는 것이다. 문제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의 철도에서 각을 틀어야만 불평등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는 파이 키우기에 몰두해 있는 우리에게 지금부터는 키운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경제 성장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낙수 효과 신화를 벗어나서, 누가 파이를 독차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여 제 몫을 찾아야 할 때다. 번역이 즐거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한다. 새벽을 기다리는 자에게 가장 어둠이 짙을 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회피하지 않고 문제에 직면하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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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신간도서를 살펴보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낡은 은유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표현임을 실감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양질의 책이 제 몫에 맞는 이름표를 붙이고 반듯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지독하게 낮고 쓸쓸한 가을이 제 몫을 하겠다 싶습니다.

신간과 함께 가을을 닮아가고 싶은 10월입니다.

 


 

 

  『여행을 팝니다- 여행과 관광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엘리자베스 베커 지음, 유영훈 옮김, 명랑한지성, 2013. 8.

 

한때 생(生)을 살아가는 에너지의 원천을 여행에서 얻던 시절이 있었다. 다녀온 국가의 숫자와 기간을 존재의 기표로 차용하기도 했다. 그 시절이 단락 짓고 보니 ‘왜’ 여행을 떠나야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마음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베커는 여행을 세계 최대의 사업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관광(또는 여행)의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고 “실체 없는 거인의 힘”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여행’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 지승호 지음, 김영사, 2013. 10.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는 “파도를 치게 하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파도만 보았다.”는 독백과 같은 주제를 내뱉는다. 영화 관람 이후 한동안 그 대사를 마음 한편에 두고 지내며, 과연 내가 보는 이 표상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현실을 움직이는 바람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에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여 그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현실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범죄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파도’일 것이다. 파도와 같은 범죄의 높낮이 속에서 바람을 읽어내는 사람, 프로파일러. “보수주의자이며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과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지식인 지승호의 대화”를 통해서 대중이 어떻게 범죄와 공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양철북, 2013. 9.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생선 수출입과 관련된 문제가 연일 뉴스거리다. 일본 고등어가 한국산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일본쌀이 한국에서 전량 소비되었다는 기사 등 먹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한 세팅된 기사에서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현재 한반도는 일본과 한국의 노후화된 원전에 뿐 아니라, 중국에서 계속 짓고 있는 원전들이 서해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 경제부 기자 오시카 야스아키는 후쿠시마 사고 관련자들 125명을 탐사 취재하여 그 내막을 밝힌다. 환경 피해의 결과가 아닌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엄기호 지음, 따비, 2013. 9.

 

무능한 철 밥통 교사를 퇴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담론이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 간다. 교육은 건물로 은유되어 붕괴 직전에 이르렀고, 책임은 교사의 몫으로 남겨졌으며, 학생과 학부모는 피해자 위치에 놓였다. 이후 교사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전 방위로 실천하는 운동가이자 문화학자인 엄기호는 교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동체 속에서 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들은 분절, 파편화된 딜레마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책은 교사들이 동료들과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마을의 귀환 - 대안적 삶을 꿈꾸는 도시공동체 현장에 가다』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오마이북, 2013. 9.

 

존경하는 선생님 한분이 맘과 뜻이 맞는 벗들과 함께 마을을 만드신다고 한다. 공동체에 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 자본이 바탕을 이루었으니, 양보하고 나누는 아름다운 마을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사적 삶을 지켜줄 수 있는 교양을 소유한 이웃들은 은둔과 참여를 적절하게 활용할 것이다. 공동의 공간을 따로 두고 마을의 대소사는 함께 협의체를 구성하여 결정할 것이며, 각각의 주택은 개인의 취향 뿐 아니라 이웃과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된다. 혹시 이사를 나가면, 새로 들어올 이웃을 집주인 혼자 결정하지 않고 마을주민이 인터뷰를 통해서 선별할 수 있는 절차까지 마련되어 있다.

이쯤에서 내 맘은 딴지를 건다. 동질 집단으로만 구성된 공간을 과연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름을 배제한 상태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유사한 사람들로 모여 있는 공간을 마을이라고 한다면 신분간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일이 될 것이고, 이는 인종간의 구별 짓기가 될 것이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마을공동체를 이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을의 귀환』에 담아냈다. 1년여의 기록을 통해서 마을살이의 가능성과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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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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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 언론, 민중의 벗인가, 공공의 적인가?”에 관한 성찰

『폭력의 자유』 김종철 지음, 시사in북, 2013. 7.

 

쟁점 당사자의 이야기를 좌우 경계 없이 들을 수 있었던 ‘손석희 시선집중’이 지난 5월 방송에서 사라졌다. “십 삼년 간 새벽을 쉼 없이 달려왔다.”는 진행자 손석희. 정론의 장으로 제 기능을 하면서 이른 새벽 서민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로 삶을 위무해주는 시선집중은 온전히 신뢰 프로세스 손석희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졌다. 그가 떠난 빈자리가 의외로 컸다. 새벽마다 바른 방식으로 옳은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벗을 잃은 기분으로 한동안 지냈다.

 

그가 선택한 곳이 JTBC 보도 담당 사장이었기 때문에 큰 충격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손석희’ 존재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신뢰 이미지가 그대로 종편으로 넘어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선택의 깊은 속내와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종편의 태생 자체가 상업성과 선정성 짙은 ‘자본’ 논리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YTN, KBS, MBC 방송 3사의 공동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종편 4사는 신문사를 등에 업고 엄청난 특혜 속에서 방송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거대 자본과 결탁되어 있는 신문사의 자본 논리 속에서 정론을 펼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공영방송을 지켜보겠다던 언론인들의 최선의 선택이 종편인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하워드 진의 말처럼 편향되지 않는 객관적인 주장이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결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나는 꼼수다’와 같은 팟 캐스트를 들으며 연대 의식을 느끼는 사람들과 조선일보(TV 조선)가 가장 공정한 방송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듣고 볼 수 있는 언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태생적으로 좌편향과 우편향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 수 없다. 그들의 관점은 산소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만들 것이다. (좌우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나마 걸 수 있는 미디어는 그나마 공중파 3사라는 MBC PD 수첩의 최승호 PD의 주장에 공감한다.)

 

제대로 된 눈과 귀를 가질 수 없는 2013년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김종철의 『폭력의 역사』는 지난 언론의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앞으로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낸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자 출신다운 건조한 문체로 담백하게 기술한다. 한국 언론사라기보다는 한국 근현대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근현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함께 녹아 있다. 때로는 자본과 결탁한 ‘극악한 압제의 도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독재 정권에 맞서 투쟁했던 언론의 양면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언론인으로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독자 역시 자신의 미시사 몇 조각을 함께 포개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삼사십 대 독자는 일제강점기,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지나는 어느 시점에서 각자의 사적 경험과 중첩되는 사건의 맥락을 발견하게 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서부터 김종철 논설위원의 글을 꼼꼼히 읽어오던 독자였기에 나에게는 더욱 반가운 책이다. 1975년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언론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해왔던 언론인으로서 저자의 46년 삶이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87년 6월 항쟁 동안 전 국민의 아름다운 투쟁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열기를 투영해서 창간된 국민주주 신문이 한겨레였다. “권력이나 대자본과 하나가 되거나 스스로 권력이 되어 민중을 억압하는 언론은 그 자체가 반사회적이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언론이야말로 민중의 진정한 벗이다.” 는 평생에 걸친 그의 신념을 반추해볼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움직이는 데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려고 하던 시절의 이야기”라는 저자 서문에 기대어 읽는다면 오독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군정까지를 제외하고는 정권과 언론의 정책으로 기술하고 있다.

 

언론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언론인의 발자취를 되짚는 것 또한 의미 있다. 해직된 언론인들이 ‘민주·민족·민중언론의 디딤돌’이 되었던 <말>지의 송건호 선생님의 이름을 곳곳에서 발견하며 반갑기 그지없다. 독재 정권기의 정경유착, 사법살인, 언론의 합법화 과정이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그 안에서 진보 언론의 자기반성과 개혁을 위한 실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언론의 사표였던 송건호 선생님께서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신지 십여년이 흘렀으나, 민주주의는 과거로 우회하는 느낌마져 든다. 반면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 분신하는 젊은이들을 향해서 신체선호증이라고 호명했던 - 김지하 시인의 생명 논쟁, 노무현에 대한 언론의 사상공세, 노무현 대통령 죽음 전후의 언론의 태도 등은 현재시점에서 다시 살펴보게 되는 지점이다.

 

위키리크스가 일으킨 언론혁명이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언론 풍토와 어느 정도 근접 거리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 의혹, 통진당 이석기 내란 혐의,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등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은 언제까지 안전할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사태는 내 삶과 그물망처럼 얽혀 있으리라. 새삼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가 떠오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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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신간도서 추천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베스트5를 선정했는데요,

결국 '역사'로 수렴하는 느낌입니다.

 

진화, 기억, 언론,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를 차용했거나 역사 서술의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체와 객체 중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역사를 현재로 가져와서 재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베버 편』

막스 베버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 2013. 7.  

 

최장집 교수가 2010년부터 진행한 정치철학 열두 강좌 중 첫 결과물입니다. 엮은이의 첨언과 역주가 한국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대 자본주의 발전 동력으로써의 직업 윤리를 강조하고, 조직 이론의 대표인 관료제의 기초를 다진 학자로만 베버를 알고 있다면, 심도 있게 베버 사상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살림, 2013. 7.

 

우리의 기만과 자기기만이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면 윤리적 판단과 기만은 어떤 관계에 놓이게 될까요?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는 자기기만의 진화 과정과 인류 문명에 끼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자기기만이 자연선택의 결과물이라는 것인데요,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여태껏 그가 내놓은 개념 중 가장 도발적이면서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책이 흥미를 끈 이유는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제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만과 자기기만의 상황을 경험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기만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진화론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김동춘 지음, 사계절출판사, 2013. 7.

 

사회학자 김동춘 선생님의 신간 책을 앞에 두고,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에서 플래카드에 걸렸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역사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수용하는 방식과 사관(史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갖게 된다는 점은 엄청난 책무성을 요구합니다. 정권과 무관한 역사 교육, 지배 집단의 가치에서 자유로운 역사 교육이 쉽지 않을 터, 일본과 한국의 보수 정권이 부추기는 공격적 국수주의가 염려스러운 즈음입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 진상규명을 위해 발품을 팔았던 저자의 양심과 책임의 기록입니다. “민간에서 시작된 학살 진상규명 요구가 정치권을 거치며 어떻게 굴절되었는지, 정부 기관인 진실화해위의 조직과 운영의 한계가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어떻게 가로막았는지, 과거청산의 목적이 피해자 구제인지 또는 정의 수립인지 등 활동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쟁점들을 정리하며 과거청산의 성과와 한계를 되짚고 있다.”고 합니다.

 

 

 

 

『폭력의 자유-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은이) | 시사IN북 | 2013-07-22

 

하정우 주연 <더 테러 라이브>는 테러범에게 장악당한 생방송 현장을 숨 가쁘게 보여줍니다. 사실 테러범의 공격은 표피에 불과합니다. 테러범이 원하는 ‘유일한 조건’은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입니다. 대통령과 테러범의 매개 공간으로 방송국이 놓입니다. 테러범의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유일하게 믿고 들었던 방송의 앵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가치 판단이 개입하여 - 진실 이전에 - 사실 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매체 환경을 고려할 때, 독재와 권위주의가 만연했던 한국의 근현대사의 언론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이 됩니다.

언론인 김종철은 한국 현대 언론사의 자화상을 그립니다. 대자본과 결탁한 폭력이 마음껏 자유를 누렸던 역사 속에서 ‘반압제의 도구’가 된 언론은 끝없이 변주하며 권력의 일부로 존재 기반을 다집니다.

진실을 추동하는 바른 언론을 통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하여 한국 현대 언론사를 성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한국건축의 새로운 타이폴로지 찾기』

이상헌 지음, 효형출판, 2013. 7.

 

대기업에서 야금야금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인사동의 오래된 상점들, 맨하탄 보다 더 빠르게 트랜드를 바꾸고 있다는 삼청동, 북촌의 카페 거리, 지방자치 단체가 너나할 것 없이 개발하고 있는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들, 그 주변에 들어서는 건축은 어떤 문화적 기능과 삶의 수단이 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유럽 도시에 매혹당하는 이유는 오래된 건물에 베여 있는 시간의 층위 때문입니다. 과거는 고루한 것,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빨리 흔적을 지우는 것에서 ‘문명’을 발견해온 우리에게 과연 ‘건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건축학자 이상헌은 역사를 통해서 한국건축의 문제점을 진단합니다. 그는 한국에는 “건설만 존재할 뿐 건축은 부재(不在)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건축가가 ‘업자’로 변신한” 한국건축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자기성찰의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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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8-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하시네요...^^
축하드려요...
이달의 당선작에도 자주 뽑히시고,,,,
저는 잘 쓰지는 못해도 잘 된 글을 알아보는 눈은 있죠..ㅋ
저는 칭찬을 남발하는 하는 사람이 아닌지라,.숲님에게 했던 칭찬들은 진심입니다..
글이 참 좋아요.. 가끔 들러서 읽고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