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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강한 신념도 유쾌한 유머가 될 수 있다.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8.

 

인기 없음이란?

 

오래 전 박지원의 『열하 일기』를 읽으며 통곡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이 재해석한『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웃음과 우정으로 노마드하는 연암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검색해 보니 십 년 만에 새 옷을 입은 책을 보니 더없이 반갑다.) 시대적 조건이 확연하게 다른 이백 여 년을 건너 뛰어 연암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에 감동하며 절로 눈물이 흘렀다. 유머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고수하며 진정한 호모 쿵푸스로 살아간 그가 온몸으로 절절하게 느껴졌다. 연암과 나, 둘 사이를 중매한 고미숙 선생님 모두 한반도라는 토양과 한글 속에서 성장한 교집합이 있었다는 어설픈 이유를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242

 

새삼 연암 때문에 울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 것은 버트란트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다. 러셀은 60 여 년의 간격을 두고, 나와 전혀 다른 지리적 공간에 살았고, 경험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사상에서 거리 두기가 충분한 철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유쾌함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핫한 신념 & 쿨한 반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러셀의 책이 계속해서 출판되는 것은 문제 의식에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신간 『인기 없는 에세이』 진정한 ‘인기 없음’이 왜 역설인지를 보여준다.

 

연암에 대한 사적 에피소드만큼, 러셀을 만난 오래된 기억 또한 또렷하게 남아 있다. 따뜻했으나 축축했던 벤쿠버 겨울 챕터 서점. 유치원 영어 실력으로 근근이 어학원을 드나들던 짧은 시기에도 책이 고팠다. 지금처럼 전자책이 있었다면, 한국어 책에 대한 헛헛함은 덜했을텐데, 나의 짐 가방은 온통 기초 영어 책으로만 가득했다. 서점에서 얇은 책 한권을 사들고 (당시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타벅스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었다. 이후 한국어로 읽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같은 책에서 러셀은 행복과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양 철학사』 한권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명성이란 변덕스러운 것(5쪽)”을 일찍이 깨달았던 러셀은 철학사의 주요 사상가들을 사회·정치적 배경과 연결 짓는다.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라니?

 

책을 구성하는 12개의 에피소드는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서 순서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강점을 갖는 반면, 전체적인 구조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러셀이 지적 쓰레기라고 이름 붙인 철학은 지배 담론이 되어 국가의 공식 견해가 된 철학이다. 진정한 실재와 현상적 실재를 구분하여 진정한 실재를 오로지 논리로만 규정한 헤겔, 그가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에 끼친 영향과 소련 독재 체제의 이론적 정당화가 그가 말하는 지적 쓰레기의 계보다. 러셀은 형이상학 철학에 관한 독한 비판을 피력한다. 성직자들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던 시절(162쪽)의 스콜라 철학이 대표적이다. 그는 “교조주의는 지적 사상이 아니라 권위를 견해의 근원으로 삼는다.”고 보고, 경험론은 행복을 바라는 사람을 위한 윤리적이기까지 한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경험론의 한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에서 러셀의 편향적인 모습이 불편하기는 하다.

 

반전 운동가인 경험론 철학자 러셀은 군사적 자만이 낳은 국가적 자만심의 해악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교육은 교화를 전제하고 다수의 교사는 공무원으로서 명령을 수행한다. 불행은 늘 잘못된 믿음을 지나치게 확신하면서 시작된다. 우상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쓰레기의 계보에 비켜서 있는 철학이 해야 할 일이다. 러셀을 읽다 보니 - 예의 없는 것들과 싸움에서 예의를 지키며 이길 수 있는 해법이 없다면 - 조금은 경망스러워도 될 것 같다. “경망스러워 보이는 글이 있을지언정 원래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했다. 경망스럽게 쓴 까닭은 엄숙하고 오만한 자들을 상대로 더욱 엄숙하고 오만하게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23쪽)”

 

예민한 사람은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 사려 깊게 사고하는 습관 없이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한 품성이 쓰레기의 계보 속에서 보석 같은 철학을 발견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기 없는 에세이』는 진보한다는 것이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은 이타적(利他的) 이라는 도덕주의의 오류에서 조금 비켜서서 러셀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꽤 괜찮은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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