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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원화된 세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 『투게더』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현암사, 2013. 3.

 

사탕 속에 감추어진 몸에 좋은 쓴 약

 

운명처럼 내게 도달한 『투게더』는 가벼움과 녹녹함으로 대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물론 책 제목이 주는 편안함이 있고,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읽기 좋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사탕처럼 달달해 보이지만, 몸에 좋은 쓴 약이 코팅되어 있다. 읽고 나면 되새김해야 할 주제가 명확한 이 책은 런던정경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리처드 세넷의 3부작 기획의 두 번째 책에 해당한다. “손으로 생각한다.”는 장인 정신에 이어 협력은 천성이 아니라 실기(實技)임을 논증한다. 변증법적 대화가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면, 리처드 세넷이 강조하는 ‘대화적 대화’는 다름 속에서 오해를 이해의 방식으로 수용하는 단계의 협력이다. 그는 “뒤르켐의 연대, 베버의 윤리와 소명의식,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능력, 부르디외의 실천이성(9쪽)”을 ‘협력’(together)으로 새롭게(쉽게) 변주한다.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유기체적 분업체계

 

뒤르켐은 사회분업체계를 민주주의의 바탕으로 보았으나, 실제에서 보면 민주주의에 위배된다. 유기체적 노동분업구조가 효율적이라는 관점에서 기능론은 사회 구성원은 각자의 능력에 합당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머리를 담당한 사람이 지력(知力)을 사용하여 구상을 하면, 팔과 다리를 담당한 사람은 실행을 한다. 사회를 이분화하는 분업 체계는 자연스럽게 위계를 형성하여 계급, 지위, 권력을 계층화한다. 팔과 다리 역할을 하는 노동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기계적인 일, 플라톤이 언급한 노예적인 일을 하게 된다. 노예적인 활동이 사회를 위해 유용할지라도 노예는 매우 한정된 기술을 사용할 뿐, 자율적인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가 하는 일의 충분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다.

 

집단의 지적 성장과 사회적 유용성

 

근대의 노동자 역시 성장의 경험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플라톤의 관점에서 구상하는 철학자, 실행하는 노예를 누가 담당할 것인지는 ‘천성’에 달려 있다. 문제는 이 천성이 사회구조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이 왜곡되고, 노동자가 소외를 경험한다면, 인간으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성은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다. 반복되는 좋은 습관은 취향이 되고, 취향은 제2의 천성이 된다. 타고난 조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 영혼과 육체, 흥미와 도야, 경험과 사고, 놀이와 학습, 노동과 여가의 이원화를 극복하고 - 개인의 세계의 통합 과정에서 성장해야 한다. 누가, 어떤 일을 담당하더라도 지성의 존엄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력을 쓰는 것과 유용한 일이 통합될 때 성장과 사회적 유용성을 담보할 수 있다. 단지 기계적인 효율성을 높인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월등이 많을 수밖에 없다.

 

『투게더』는 집단의 ‘생각하는 손’이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에서, 협력이 형성되는 과정, 오늘날 협력이 약해진 까닭,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선천적으로 인간 삶의 기예였던 협력이 생존을 위해 요구되었음을 에릭슨과 프로이드 이론으로 설명하고, 어떻게 협력이 삶의 기술로써 활용되었는지 역사적 사례를 분석한다. 어린 아이는 협력을 통해서 자유를 얻는다. “따로 서기 전에 함께 서는 법을 배운다(38쪽). 사회적 존재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협력은 사회화의 선결 조건이다.

 

생존의 방식이었던 협력은 산업사회의 불평등이 확산되면서 약화되기 시작한다. 유년기 사회화 기관인 학교에서부터 협력이 사라지고, 삶의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함께 생활하는 이들과의 협력과 소통 부재의 자리를 SNS를 통한 피상적인 (보여주는) 관계가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일과 놀이, 동료와 친구,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가 분리되면서 구상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이 이원화된다. 노예적 삶에는 “손으로 생각”하는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명령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이 나뉘면서 작업장은 무례해지고 협력과 신뢰는 약해진다.

비슷한 사람과의 연대인 부족주의는 “협력의 검은 천사”이고, 또 다른 의미의 인종주의다. 불평등이 증가할수록, 계층이 분화할수록 사람들은 남보다 높이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서 더 이상 협력하지 않는다. 학교든 직장이든 어디에서나 사일로 효과(silo effect)가 나타난다. 조직 내에서 유용한 정보와 자료가 서랍과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어도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왜소해진 인간관계로 인해 조직의 풍토는 척박해진다. 다변화하는 복잡한 사회일수록 협력이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협력하는 기술은 사라진다.

 

자족적인 실행으로서의 협력의 방식

 

『투게더』는 고프만의 “자족적인 실행”으로써 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보여주듯 언어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변주되는지를 떠오르게 한다. 반복을 통해서 상호작용으로 자리한 의례는 행위의 이면을 보게 한다. 악수는 단순한 신체 접촉을 넘어선 의미를 함유하고, 음식은 영양분이 아니라, 사랑이기도 하다. 출근길 부부가 주고받는 “사랑해”는 “잘 다녀오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연극처럼 시간, 공간,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배역을 요구된다.

 

리처드는 사회학이 실천적 학문임을 이 책에서 명백하게 드러낸다. 협력을 하나의 기술로서 일관되게 탐구하는 그의 자세는 독자를 배려한 글쓰기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이야기를 잘할 수 없다.”(39쪽) 협력을 위해서는 타인의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 이것은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단계를 넘어서고, 공동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변증법적 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대화를 통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비록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대화적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대화적 대화는 오해도 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하다.

 

아비투스와 망딸리떼는 리처드 세넷에게 ‘체화’로 구현된다. 음악가의 악기, 노동자의 연장은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일부다. 협력을 체화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한 가지 스포츠에 능숙해지거나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갖추거나 혹은 장롱을 만드는 데 숙달되려면 1만 시간을 수련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대략 네 시간씩 5, 6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시간만 채운다고 해서 반드시 유능한 축구선수나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재능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면, 장기간 노력하여 연습하면 안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322쪽)

 

자기다운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며

 

“19세기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는가 근대를 ”잔혹한 단순화의 시대“(442쪽)이라고 했듯, 푸코는 근대에 기획된 인간의 얼굴이 조만간 모래밭에서 파도에 쓸려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 이후 인간의 삶이 얼마나 ‘인간다움’을 겸비했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이원화된 사회에서 지력(地力)을 사용하는 노동자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기 삶의 주체로서 나다움, 나답게 사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이에게 선물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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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5-25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공감!공감!..^^

꽃도둑 2013-06-0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좋은 리뷰로 뽑히셨군요..
파트장님이 글을 제대로 보는 안목이 있어요...
숲님, 축하드려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근대 의료의 풍경

황상익 (지은이) | 푸른역사 | 2013-04-26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DNA에서 양자 컴퓨터까지 미래 정보학의 최전선l 카이스트 명강 1

정하웅 | 김동섭 | 이해웅 (지은이) | 사이언스북스 | 2013-04-21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 ㅣ 우리시대 학술연구

신광영 (지은이) | 후마니타스 | 2013년 4월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왜 우리는 여전히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이원재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13-04-18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예술가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린다

이연식 (지은이) | 이봄 | 201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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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이것은 건축에 관한 책이 아니다. 철학에 관한 입문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건축을 위한 철학』 브랑콩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이 책을 읽기 전 나의 접근법은 다음과 같았다.

 

철학이 건축과 만났다. 이 책은 사적 공간으로써 거주 수단을 넘어 서서 공공재로 일상을 담아내는 사회적 공간이 되고 있는 건축을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건축은 인문학의 기초 위해 세워져서 문화적, 역사적, 환경적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공공 건축에 한 평생을 바친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마지막 전시회와 다큐를 보고 난 이후, 건축에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가는 ‘자기 언어를 지닌’ 철학자여야 한다. 철학이 언어로 집을 짓는다면, 건축은 벽돌로 철학을 쌓는다. 『건축을 위한 철학- 세상에 단 하나뿐인』은 건축물이 제작된 사회적 맥락을 철학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읽고 나면, 이 책이 건축에 관한 책이 아니라, 철학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 간극이 즐거운 독서를 방해하지만, 얇고 넓게 건축으로 달콤하게 코팅된 철학사의 기록을 읽는 재미는 쏠쏠하다. 건축가인 저자는 참과 거짓을 논증하는 기능에서 출발하여 선험과 경험이라는 철학의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관점에서 비켜나서 철학의 한계를 지적한다. 저자는 철학은 시각적 상상에 대하여 탐색해야 한다고 본다. “시각적 이미지와 문장은 둘 다 사물의 존재하는 방식을 표현하지만, 각기 다른 방법으로 표현한다.”(25쪽)

 

고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근대의 칸트, 낭만주의, 역사주의, 현상학, 해석학에서 분석철학까지 각각의 시대를 지배했던 철학 담론을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물론 철학과 건축을 연결하기 위한 고민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게 이어진다. “건축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플라톤의 존재론을 병치하고, 플라톤의 이데아의 영원성과 건축을 연결한다. 참과 거짓의 논증은 - 절대적인 참이나 거짓이 없고, 오로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강조한 - 소피스트의 극단적 상대주의에서, 우리가 지각하거나 생각하는 사물의 작은 모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상과 연결한다. 역사와 정신의 제도공인지, 시대정신과 무관하게 설계의 주인인지 유명론과 실재론에서 건축가의 위치를 묻기도 한다.

 

특히 칸트의 세 가지 순수이성 비판, 실천 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중에서 미학을 다루고 있는 『판단력 비판』을 중심으로 건축과의 깊은 연관성을 다룬다. 칸트는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생각하는 주체에서 출발한다. 그는 “인간의 추론 능력이 개인이 속한 집단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인간의 추론 능력은 보편적이며, 가능한 경험의 필요조건은 개인의 문화적·민족적·인종적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개인에게 동일하다고 가정한다.”(113쪽) 반면 계몽주의에 반기를 든 낭만주의는 합리적인 측면 보다는 감정을 강조하였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노골적으로 낭만주의자들이 과학을 신뢰하지 못했고,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언급한다.(129쪽) 역사주의자 헤겔은 -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역사가 발전하듯이 - 건축 또한 역사발전의 단계로 설명한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상징적 건축, 그리스는 고전적 건축, 낭만주의 건축과 고딕은 낭만적 건축에 해당한다. 이는 신(神)의 생각과 사고의 순서와 동일하다.

 

짧고 빠르게 읽으면 이해불가의 책

 

『세상에 단 하나뿐인 건축을 위한 철학』이 건축 이야기가 가미된 철학 개론서라고는 하지만, 한번으로 짧게 읽고 이해될 내용의 책은 아니다. 훗설, 하이데거, 니체, 소쉬르, 바르트, 데리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로 이어지면서 현대 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독자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현상학과 해석학, 후기 구조주의로 들어서면 현대철학의 현란한 언어에 갇히게 된다. “언어 속에 거주”하는 하이데거는 “구체적인 상황과 사회로 내던져진” 현존재로서 인간이 어떻게 하면 객관적 세계와 독립적인 세계관을 기술하고자 한다. 그는 건축과 무관하지 않은 함의를 담고 있는 <짓기, 거주하기, 사고하기>(1951)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한다.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은 건축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저자의 죽음’은 “기능을 하지 않는” 건축으로 기능적 고려를 거부하는 피터 아이젠만과 같은 건축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앨런 소칼의 통쾌한 실험에서 얻어낸 통찰

 

난해함 속에서 위로와 웃음을 제공하는 것은 뉴욕 대학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정치적 행위다. 좌파인 소칼은 1996년 후기 구조주의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에 큰 타격을 준 ‘가짜 논문 사건’을 일으킨다. 저명한 후기구조의 학술지에 그가 발표한 “‘양자 중력’이라는 물리 이론의 자유주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논문”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논문이었다. 그가 대항하고자 했던 것은 합리적 사고와 논리적 분석이 불평등을 유지하는 신비화전략으로 보았다. 이 가짜 논문 사건은 현란한 언어가 얼마나 정치적이고 권력적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이 책이 ‘건축 이전에 철학’을 강조하고 있음에 대한 역설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교양서 보다는 건축학을 비롯한 이공계 학생을 위한 ‘철학입문서’로 기획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때문에 저자는 언어 속에 갇혀 있는 철학의 표피를 걷어내고 디지털 기술에 따른 시각성이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는 아직 후기구조주의가 하향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441X

 

  

덧붙여 : 저자가 ‘건축’을 전공한 이공계 학자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전과 다르게 출판사의 의도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책의 핵심 부분을 다른 색으로 도드라지게 표시해주는 ‘과잉 친절’이 몹시 거슬렸다. 내 심장 스스로 밑줄 긋게 하는 부분을 만났을 때 독자가 누려야 할 자유와 새로운 창작의 기쁨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수험생이 아니라면, 우리가 만나야 할 고딕 글자는 각자 다른 법이거늘, 꼭 동일한 부분에서 포인트를 찾아야하는지 모르겠다. 책은 text가 아니라 context다. 독자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주체적 참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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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4-2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님, 빠르게 두 편을 다 올리셨네요..저는 아직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책은 매력 있는데...암튼 진도를 빼야겠어요...^^
철학가와 건축의 만남,,
짓기, 거주하기, 사고하기!!!!

4월,행복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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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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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정체(正體)에서 이루어지는 이데아를 모방하는 삶, 플라톤의 『『Politeia 국가』

천병희 역, 숲, 2013. 2.

 

플라톤의 4주덕을 공부하던 고등학교 윤리 수업의 시작으로 해서, 정치 사상사를 배우던 스무 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비교하는 에세이를 쓰던 시절까지 거치다보니 『국가』를 읽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천병희 역의 『Politeia』를 읽고 보니, 오랜 시간 다이제스트만을 읽었을 뿐 원전을 접하지 않았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기시감과 같은 친숙함이 느껴지지만, 읽은 이가 드문 책이 바로 플라톤의 『국가』이다. 고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절대 읽지 않은 책”이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는 지점이다.

 

철학과 등 돌리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플라톤의 동굴과 그림자, 이데아, 철인정치, 지혜·용기·절제·정의의 4주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개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28세의 플라톤은 민주주의자들에 의한 스승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중우정치와 다수결의 한계를 뼈저리게 통감했다.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거나, 통치자가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사회의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로마에서도 군주정이 민주정보다 더 발전된 정체(正體)였다. 각 시대의 상황에서 요청되는 정치 형태가 다르다는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정체는 일관된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고,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와 철학자를 떼어내어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플라톤을 논할 수 없다. 플라톤 철학은 BC 400년경의 아테네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상 국가를 꿈꾸었던 플라톤의 『국가』는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등장 시켜서 스승의 견해를 제시하고 자신의 부연을 덧붙이기도 하며, 이데아와 같은 자신만의 철학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에 관한 대부분의 리뷰들이 언급하듯이 원전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읽기 좋은 우리말로 해석한 역자 천병희 선생님의 공이 큰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는 4주덕(主德)을 세세하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지혜로운 것은 최소한의 치자 집단의 지식 덕분이다. 본성상 가장 적을 수밖에 없는 그들만이 유일하게 이 지혜를 가지고 있다. “용기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지 법이 승인한 소신을 어떤 경우에도 보전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스승 소크라테스를 그대로 보여준다.) “절제는 일종의 질서이며, 특정 쾌락과 욕구의 억제다. 자신의 주인이 절제를 암시한다. 국가 탐구의 목적인 정의는 “앞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자체 때문에도 그 결과 때문에도 좋아해야 하는 가장 아름다운 부류”에 속한다.(87쪽)

 

 

왜 철인정치여야 하는가?

 

“수호자들에게 못난 자식이 태어나면 다른 계급으로 강등해야 하고, 다른 계급들에서 탁월한 자식이 태어나면 수호자 계급으로 승진시켜야 한다. 그런 말을 한 의도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기 적성에 맞는 한 가지 일에 전념해야만 개인은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되고, 나라는 여러 나라가 아닌 한 나라가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216쪽)

 

“만약 수호자들이 잘 교육받아 분별 있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한 이 모든 것은 물론이요, 그에 더하여 아내의 소유, 결혼, 출산 등 우리가 방금 빠뜨린 것들도 쉽게 꿰뚫어볼 수 있을 것이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친구들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ss 속담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216쪽)

 

모방적인 시(詩)는 왜 이상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하는가?

 

플라톤은 급진적인 개혁을 거부하고 가능한 한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시(詩)가 갖는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경계했다. 음악 양식의 변화가 정치적인 변혁을 수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가 거짓된 진리를 전하고, 인간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매혹하며, 저급한 시민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여전히 수용하기 어려운 플라톤의 이분법적 세계관 

 

21세기의 한국을 살아가는 나에게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그 한계를 간과하여 읽는 일이 쉽지 않다. 플라톤의 철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대적 담론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고 각기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할 때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는 플라톤의 견해를 그대로 우리 삶으로 가져 온다면 누군가는 심장과 머리의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손과 발이 되어 일을 해야 한다. 그 근거가 타고난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백번 양보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크기를 넓게 만든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어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한 자신의 지력을 사용하고 삶을 기획하는 주체로서 살아야 할 ‘자격’을 갖춘 이가 따로 있고, 그들이 극소수의 철학자라는 부분에도 동의할 수 없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이분법적인 세상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토대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일단 좋은 정체가 산뜻하게 출발하면 일종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좋은 양육과 교육 체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은 성격이 태어나고, 좋은 성격들이 좋은 교육을 받으면 더 낳은 자식을 낳는다.”(216쪽) 그러한 선순환이 노예와 여성에게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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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잠시 겨울로 돌아간 듯합니다.

몸도 마음도 잠시 겨울 어느 한 시점에 머무는 주말 오후입니다.

맛 집 기행을 하는 사람처럼 신간 목록을 기웃거립니다.

원시인의 채집이나 사냥처럼 오늘도 꽤 괜찮은 먹잇감을 얻었습니다.^^*

의기소침해지거나 자만해질 때,

마음을 토닥이며 가라앉히는 것은 저자와의 독대입니다.

나의 침묵 속에서 그는 깊고 무겁게 둔중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으나,

그 속에서 메모하고 밑줄 그으며 능동적인 참여를 곁들입니다.

갑자기 꽤 괜찮은 주말 오후가 되었네요.ㅎ

 

신간 추천을 하려고 책을 고르고 보니 이번엔 모두 우리나라 저자들입니다.

시기가 그런 것 같습니다.

집단 경험에 바탕을 둔 인문학적 사유를 섭렵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의 공통분모를 발견해야 하는 그런 시기.


 

 

『후쿠시마 이후의 삶- 역사, 철학, 예술로 3.11 이후를 성찰하다』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한홍구 지음, 이령경 옮김, 반비, 2013. 3.

 

 

 

 

 

 

 

 

 

 

 

 

 

 

 

드디어 나와야 할 책이 나왔네요.

히로시마 원폭이 그랬듯이, 일본 역사는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의 나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왜 세계는 후쿠시마를 각자의 삶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일까요?

둔감해지다 못해서 망각해가고 있는 2011년 3월 11일 핵발전소 폭발은

알게 모르게 현재 우리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함께 후쿠시마 이후의 삶을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저자들은 후쿠시마 사태를 진단하고, 전방위로 핵발전소 문제와 민주주의에 접근합니다.

실천적 지식인인 저자들은 탈핵, 평화를 이끌어 낼 실천 방향까지 함께 고민하여 대안을 제시합니다.

 

 

『통섭적 인생의 권유 - 최재천 교수가 제안하는 희망 어젠다』최재천 지음, 명진출판사, 2013. 3.

 

 

 

 

 

 

 

 

 

 

 

 

 

사회생물학의 대가이자 통섭학자 최재천 선생님의 최근작입니다.

어떤 생물학자도, 사회학자도 접근할 수 없는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구축한 최재천 선생님.

최고의 학자는 난해한 학문적 용어를 대중의 언어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경계선을 낮춥니다. 그야말로 통섭입니다.

“지식인 책을 말하다”의 ‘지식인의 서재’를 보면 자연, 생명을 넘어서는 통섭적 사고는 최재천 선생님의 삶 그 자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판사의 추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오랜 관찰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그의 발언을 12개의 어젠다로 분류해 제시한다. 생물 다양성, 그린 비즈니스, 의생학(자연을 표절하는 학문), 미래형 인재, 기획 독서, 여성 시대, 경계를 허무는 삶 등 최재천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통섭적 인생’이란 과연 어떻게 사는 삶인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세계 문화』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3. 3.

 

 

 

 

 

 

 

 

 

 

 

 

 

 

강준만 교수님은 여전히 집단 망딸리떼, 계급적 아비투스,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기초한 미시사에 천착하여 시대와 대중을 분석합니다.

읽고 쓰고 분석하는 것으로 하나의 삶을 일구어 가시는 존경하는 교수님.

그분 밑에서 한 학기 공부한 덕분으로

어떤 토대에서 하시는 말씀인지 왜곡을 최소화하며 읽습니다.

커뮤니케이션 - 늘 그랬듯이 교수님은 여전히 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에서 소통의 생산물을 만들어내시는군요^^

중심보다는 주변에서, 개인의 체험에 토대를 둔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이십대의 “세계 문화 산책”은 예민한 감수성,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펼쳐집니다.

이 책은 유머와 소통, 성과 남녀 관계, 패션의 사회학,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네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힐링에서 스탠딩으로』유시민 지음, 아포리아, 2013. 3.

 

 

 

 

 

 

 

 

 

 

 

 

 

 

그는 이제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닙니다.

아니 (저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길 바랍니다.

처음 만난 유시민은 저에게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였습니다.

새로운 역사 해석, 참신한 글쟁이, 80~90년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그는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지식인으로의 귀환. 그러나 그는 이전의 지식인 유시민은 아니겠지요?

“지식 소매상 유시민”이란 낮은 자세로 세계에 관여하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여전히 진보를 포기하지 못하는 저자의 의지가 읽힙니다.

그는 여전히 정치인이고, 리버럴한 진보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직업 정치인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삶은 언제나 정치적인 결단을 필요로 하니까요.

신간 추천을 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청춘의 커리큘럼-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 이계삼 지음, 한티재, 2013. 3.

 

 

 

 

 

 

 

 

 

 

 

 

 

 

이계삼 선생님의 실천하는 삶이 저에게 투쟁하며 살아가야 할 힘을 줍니다.

이 책에는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을 청춘하게 호소하는 그의 절절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십여 년의 교직 생활을 떠나 세상과 만나면서, 선생님은 편한 삶, 정규직은 우리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절절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다른 삶”을 살아간 스승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목적이 왜곡된 공부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반듯한 자세로 정좌하고 마주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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