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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 언론, 민중의 벗인가, 공공의 적인가?”에 관한 성찰

『폭력의 자유』 김종철 지음, 시사in북, 2013. 7.

 

쟁점 당사자의 이야기를 좌우 경계 없이 들을 수 있었던 ‘손석희 시선집중’이 지난 5월 방송에서 사라졌다. “십 삼년 간 새벽을 쉼 없이 달려왔다.”는 진행자 손석희. 정론의 장으로 제 기능을 하면서 이른 새벽 서민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로 삶을 위무해주는 시선집중은 온전히 신뢰 프로세스 손석희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졌다. 그가 떠난 빈자리가 의외로 컸다. 새벽마다 바른 방식으로 옳은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벗을 잃은 기분으로 한동안 지냈다.

 

그가 선택한 곳이 JTBC 보도 담당 사장이었기 때문에 큰 충격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손석희’ 존재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신뢰 이미지가 그대로 종편으로 넘어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선택의 깊은 속내와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종편의 태생 자체가 상업성과 선정성 짙은 ‘자본’ 논리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YTN, KBS, MBC 방송 3사의 공동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종편 4사는 신문사를 등에 업고 엄청난 특혜 속에서 방송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거대 자본과 결탁되어 있는 신문사의 자본 논리 속에서 정론을 펼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공영방송을 지켜보겠다던 언론인들의 최선의 선택이 종편인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하워드 진의 말처럼 편향되지 않는 객관적인 주장이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결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나는 꼼수다’와 같은 팟 캐스트를 들으며 연대 의식을 느끼는 사람들과 조선일보(TV 조선)가 가장 공정한 방송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듣고 볼 수 있는 언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태생적으로 좌편향과 우편향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 수 없다. 그들의 관점은 산소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만들 것이다. (좌우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나마 걸 수 있는 미디어는 그나마 공중파 3사라는 MBC PD 수첩의 최승호 PD의 주장에 공감한다.)

 

제대로 된 눈과 귀를 가질 수 없는 2013년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김종철의 『폭력의 역사』는 지난 언론의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앞으로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낸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자 출신다운 건조한 문체로 담백하게 기술한다. 한국 언론사라기보다는 한국 근현대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근현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함께 녹아 있다. 때로는 자본과 결탁한 ‘극악한 압제의 도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독재 정권에 맞서 투쟁했던 언론의 양면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언론인으로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독자 역시 자신의 미시사 몇 조각을 함께 포개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삼사십 대 독자는 일제강점기,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지나는 어느 시점에서 각자의 사적 경험과 중첩되는 사건의 맥락을 발견하게 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서부터 김종철 논설위원의 글을 꼼꼼히 읽어오던 독자였기에 나에게는 더욱 반가운 책이다. 1975년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언론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해왔던 언론인으로서 저자의 46년 삶이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87년 6월 항쟁 동안 전 국민의 아름다운 투쟁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열기를 투영해서 창간된 국민주주 신문이 한겨레였다. “권력이나 대자본과 하나가 되거나 스스로 권력이 되어 민중을 억압하는 언론은 그 자체가 반사회적이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언론이야말로 민중의 진정한 벗이다.” 는 평생에 걸친 그의 신념을 반추해볼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움직이는 데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려고 하던 시절의 이야기”라는 저자 서문에 기대어 읽는다면 오독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군정까지를 제외하고는 정권과 언론의 정책으로 기술하고 있다.

 

언론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언론인의 발자취를 되짚는 것 또한 의미 있다. 해직된 언론인들이 ‘민주·민족·민중언론의 디딤돌’이 되었던 <말>지의 송건호 선생님의 이름을 곳곳에서 발견하며 반갑기 그지없다. 독재 정권기의 정경유착, 사법살인, 언론의 합법화 과정이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그 안에서 진보 언론의 자기반성과 개혁을 위한 실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언론의 사표였던 송건호 선생님께서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신지 십여년이 흘렀으나, 민주주의는 과거로 우회하는 느낌마져 든다. 반면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 분신하는 젊은이들을 향해서 신체선호증이라고 호명했던 - 김지하 시인의 생명 논쟁, 노무현에 대한 언론의 사상공세, 노무현 대통령 죽음 전후의 언론의 태도 등은 현재시점에서 다시 살펴보게 되는 지점이다.

 

위키리크스가 일으킨 언론혁명이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언론 풍토와 어느 정도 근접 거리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 의혹, 통진당 이석기 내란 혐의,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등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은 언제까지 안전할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사태는 내 삶과 그물망처럼 얽혀 있으리라. 새삼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가 떠오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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