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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신간도서를 살펴보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낡은 은유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표현임을 실감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양질의 책이 제 몫에 맞는 이름표를 붙이고 반듯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지독하게 낮고 쓸쓸한 가을이 제 몫을 하겠다 싶습니다.

신간과 함께 가을을 닮아가고 싶은 10월입니다.

 


 

 

  『여행을 팝니다- 여행과 관광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엘리자베스 베커 지음, 유영훈 옮김, 명랑한지성, 2013. 8.

 

한때 생(生)을 살아가는 에너지의 원천을 여행에서 얻던 시절이 있었다. 다녀온 국가의 숫자와 기간을 존재의 기표로 차용하기도 했다. 그 시절이 단락 짓고 보니 ‘왜’ 여행을 떠나야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마음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베커는 여행을 세계 최대의 사업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관광(또는 여행)의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고 “실체 없는 거인의 힘”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여행’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 지승호 지음, 김영사, 2013. 10.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는 “파도를 치게 하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파도만 보았다.”는 독백과 같은 주제를 내뱉는다. 영화 관람 이후 한동안 그 대사를 마음 한편에 두고 지내며, 과연 내가 보는 이 표상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현실을 움직이는 바람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에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여 그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현실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범죄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파도’일 것이다. 파도와 같은 범죄의 높낮이 속에서 바람을 읽어내는 사람, 프로파일러. “보수주의자이며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과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지식인 지승호의 대화”를 통해서 대중이 어떻게 범죄와 공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양철북, 2013. 9.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생선 수출입과 관련된 문제가 연일 뉴스거리다. 일본 고등어가 한국산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일본쌀이 한국에서 전량 소비되었다는 기사 등 먹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한 세팅된 기사에서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현재 한반도는 일본과 한국의 노후화된 원전에 뿐 아니라, 중국에서 계속 짓고 있는 원전들이 서해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 경제부 기자 오시카 야스아키는 후쿠시마 사고 관련자들 125명을 탐사 취재하여 그 내막을 밝힌다. 환경 피해의 결과가 아닌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엄기호 지음, 따비, 2013. 9.

 

무능한 철 밥통 교사를 퇴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담론이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 간다. 교육은 건물로 은유되어 붕괴 직전에 이르렀고, 책임은 교사의 몫으로 남겨졌으며, 학생과 학부모는 피해자 위치에 놓였다. 이후 교사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전 방위로 실천하는 운동가이자 문화학자인 엄기호는 교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동체 속에서 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들은 분절, 파편화된 딜레마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책은 교사들이 동료들과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마을의 귀환 - 대안적 삶을 꿈꾸는 도시공동체 현장에 가다』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오마이북, 2013. 9.

 

존경하는 선생님 한분이 맘과 뜻이 맞는 벗들과 함께 마을을 만드신다고 한다. 공동체에 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 자본이 바탕을 이루었으니, 양보하고 나누는 아름다운 마을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사적 삶을 지켜줄 수 있는 교양을 소유한 이웃들은 은둔과 참여를 적절하게 활용할 것이다. 공동의 공간을 따로 두고 마을의 대소사는 함께 협의체를 구성하여 결정할 것이며, 각각의 주택은 개인의 취향 뿐 아니라 이웃과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된다. 혹시 이사를 나가면, 새로 들어올 이웃을 집주인 혼자 결정하지 않고 마을주민이 인터뷰를 통해서 선별할 수 있는 절차까지 마련되어 있다.

이쯤에서 내 맘은 딴지를 건다. 동질 집단으로만 구성된 공간을 과연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름을 배제한 상태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유사한 사람들로 모여 있는 공간을 마을이라고 한다면 신분간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일이 될 것이고, 이는 인종간의 구별 짓기가 될 것이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마을공동체를 이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을의 귀환』에 담아냈다. 1년여의 기록을 통해서 마을살이의 가능성과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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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 언론, 민중의 벗인가, 공공의 적인가?”에 관한 성찰

『폭력의 자유』 김종철 지음, 시사in북, 2013. 7.

 

쟁점 당사자의 이야기를 좌우 경계 없이 들을 수 있었던 ‘손석희 시선집중’이 지난 5월 방송에서 사라졌다. “십 삼년 간 새벽을 쉼 없이 달려왔다.”는 진행자 손석희. 정론의 장으로 제 기능을 하면서 이른 새벽 서민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로 삶을 위무해주는 시선집중은 온전히 신뢰 프로세스 손석희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졌다. 그가 떠난 빈자리가 의외로 컸다. 새벽마다 바른 방식으로 옳은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벗을 잃은 기분으로 한동안 지냈다.

 

그가 선택한 곳이 JTBC 보도 담당 사장이었기 때문에 큰 충격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손석희’ 존재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신뢰 이미지가 그대로 종편으로 넘어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선택의 깊은 속내와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종편의 태생 자체가 상업성과 선정성 짙은 ‘자본’ 논리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YTN, KBS, MBC 방송 3사의 공동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종편 4사는 신문사를 등에 업고 엄청난 특혜 속에서 방송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거대 자본과 결탁되어 있는 신문사의 자본 논리 속에서 정론을 펼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공영방송을 지켜보겠다던 언론인들의 최선의 선택이 종편인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하워드 진의 말처럼 편향되지 않는 객관적인 주장이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결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나는 꼼수다’와 같은 팟 캐스트를 들으며 연대 의식을 느끼는 사람들과 조선일보(TV 조선)가 가장 공정한 방송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듣고 볼 수 있는 언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태생적으로 좌편향과 우편향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 수 없다. 그들의 관점은 산소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만들 것이다. (좌우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나마 걸 수 있는 미디어는 그나마 공중파 3사라는 MBC PD 수첩의 최승호 PD의 주장에 공감한다.)

 

제대로 된 눈과 귀를 가질 수 없는 2013년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김종철의 『폭력의 역사』는 지난 언론의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앞으로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낸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자 출신다운 건조한 문체로 담백하게 기술한다. 한국 언론사라기보다는 한국 근현대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근현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함께 녹아 있다. 때로는 자본과 결탁한 ‘극악한 압제의 도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독재 정권에 맞서 투쟁했던 언론의 양면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언론인으로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독자 역시 자신의 미시사 몇 조각을 함께 포개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삼사십 대 독자는 일제강점기,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지나는 어느 시점에서 각자의 사적 경험과 중첩되는 사건의 맥락을 발견하게 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서부터 김종철 논설위원의 글을 꼼꼼히 읽어오던 독자였기에 나에게는 더욱 반가운 책이다. 1975년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언론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해왔던 언론인으로서 저자의 46년 삶이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87년 6월 항쟁 동안 전 국민의 아름다운 투쟁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열기를 투영해서 창간된 국민주주 신문이 한겨레였다. “권력이나 대자본과 하나가 되거나 스스로 권력이 되어 민중을 억압하는 언론은 그 자체가 반사회적이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언론이야말로 민중의 진정한 벗이다.” 는 평생에 걸친 그의 신념을 반추해볼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움직이는 데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려고 하던 시절의 이야기”라는 저자 서문에 기대어 읽는다면 오독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군정까지를 제외하고는 정권과 언론의 정책으로 기술하고 있다.

 

언론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언론인의 발자취를 되짚는 것 또한 의미 있다. 해직된 언론인들이 ‘민주·민족·민중언론의 디딤돌’이 되었던 <말>지의 송건호 선생님의 이름을 곳곳에서 발견하며 반갑기 그지없다. 독재 정권기의 정경유착, 사법살인, 언론의 합법화 과정이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그 안에서 진보 언론의 자기반성과 개혁을 위한 실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언론의 사표였던 송건호 선생님께서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신지 십여년이 흘렀으나, 민주주의는 과거로 우회하는 느낌마져 든다. 반면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 분신하는 젊은이들을 향해서 신체선호증이라고 호명했던 - 김지하 시인의 생명 논쟁, 노무현에 대한 언론의 사상공세, 노무현 대통령 죽음 전후의 언론의 태도 등은 현재시점에서 다시 살펴보게 되는 지점이다.

 

위키리크스가 일으킨 언론혁명이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언론 풍토와 어느 정도 근접 거리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 의혹, 통진당 이석기 내란 혐의,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등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은 언제까지 안전할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사태는 내 삶과 그물망처럼 얽혀 있으리라. 새삼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가 떠오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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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신간도서 추천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베스트5를 선정했는데요,

결국 '역사'로 수렴하는 느낌입니다.

 

진화, 기억, 언론,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를 차용했거나 역사 서술의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체와 객체 중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역사를 현재로 가져와서 재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베버 편』

막스 베버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 2013. 7.  

 

최장집 교수가 2010년부터 진행한 정치철학 열두 강좌 중 첫 결과물입니다. 엮은이의 첨언과 역주가 한국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대 자본주의 발전 동력으로써의 직업 윤리를 강조하고, 조직 이론의 대표인 관료제의 기초를 다진 학자로만 베버를 알고 있다면, 심도 있게 베버 사상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살림, 2013. 7.

 

우리의 기만과 자기기만이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면 윤리적 판단과 기만은 어떤 관계에 놓이게 될까요?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는 자기기만의 진화 과정과 인류 문명에 끼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자기기만이 자연선택의 결과물이라는 것인데요,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여태껏 그가 내놓은 개념 중 가장 도발적이면서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책이 흥미를 끈 이유는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제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만과 자기기만의 상황을 경험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기만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진화론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김동춘 지음, 사계절출판사, 2013. 7.

 

사회학자 김동춘 선생님의 신간 책을 앞에 두고,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에서 플래카드에 걸렸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역사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수용하는 방식과 사관(史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갖게 된다는 점은 엄청난 책무성을 요구합니다. 정권과 무관한 역사 교육, 지배 집단의 가치에서 자유로운 역사 교육이 쉽지 않을 터, 일본과 한국의 보수 정권이 부추기는 공격적 국수주의가 염려스러운 즈음입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 진상규명을 위해 발품을 팔았던 저자의 양심과 책임의 기록입니다. “민간에서 시작된 학살 진상규명 요구가 정치권을 거치며 어떻게 굴절되었는지, 정부 기관인 진실화해위의 조직과 운영의 한계가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어떻게 가로막았는지, 과거청산의 목적이 피해자 구제인지 또는 정의 수립인지 등 활동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쟁점들을 정리하며 과거청산의 성과와 한계를 되짚고 있다.”고 합니다.

 

 

 

 

『폭력의 자유-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은이) | 시사IN북 | 2013-07-22

 

하정우 주연 <더 테러 라이브>는 테러범에게 장악당한 생방송 현장을 숨 가쁘게 보여줍니다. 사실 테러범의 공격은 표피에 불과합니다. 테러범이 원하는 ‘유일한 조건’은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입니다. 대통령과 테러범의 매개 공간으로 방송국이 놓입니다. 테러범의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유일하게 믿고 들었던 방송의 앵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가치 판단이 개입하여 - 진실 이전에 - 사실 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매체 환경을 고려할 때, 독재와 권위주의가 만연했던 한국의 근현대사의 언론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이 됩니다.

언론인 김종철은 한국 현대 언론사의 자화상을 그립니다. 대자본과 결탁한 폭력이 마음껏 자유를 누렸던 역사 속에서 ‘반압제의 도구’가 된 언론은 끝없이 변주하며 권력의 일부로 존재 기반을 다집니다.

진실을 추동하는 바른 언론을 통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하여 한국 현대 언론사를 성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한국건축의 새로운 타이폴로지 찾기』

이상헌 지음, 효형출판, 2013. 7.

 

대기업에서 야금야금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인사동의 오래된 상점들, 맨하탄 보다 더 빠르게 트랜드를 바꾸고 있다는 삼청동, 북촌의 카페 거리, 지방자치 단체가 너나할 것 없이 개발하고 있는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들, 그 주변에 들어서는 건축은 어떤 문화적 기능과 삶의 수단이 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유럽 도시에 매혹당하는 이유는 오래된 건물에 베여 있는 시간의 층위 때문입니다. 과거는 고루한 것,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빨리 흔적을 지우는 것에서 ‘문명’을 발견해온 우리에게 과연 ‘건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건축학자 이상헌은 역사를 통해서 한국건축의 문제점을 진단합니다. 그는 한국에는 “건설만 존재할 뿐 건축은 부재(不在)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건축가가 ‘업자’로 변신한” 한국건축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자기성찰의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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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8-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하시네요...^^
축하드려요...
이달의 당선작에도 자주 뽑히시고,,,,
저는 잘 쓰지는 못해도 잘 된 글을 알아보는 눈은 있죠..ㅋ
저는 칭찬을 남발하는 하는 사람이 아닌지라,.숲님에게 했던 칭찬들은 진심입니다..
글이 참 좋아요.. 가끔 들러서 읽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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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 (반양장)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트랜스 포머 진중권이 제공한 튼실한 사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현대 미술사

미적 가상의 영역을 아예 벗어나 사물의 영역으로 진입한 현대 미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2013. 4.

 

미학이 세상에 내려와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한 단초에는 ‘진. 중 .권’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십 수 년 동안 많은 독자들이 『미학 오딧세이』시리즈를 통해서 미학에 입문했다. 번역서 일색이던 미학 서적들 사이에서 진중권의 글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명료한 어법으로 난삽한 미술사의 세계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헨델과 그레텔의 돌멩이처럼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그의 글은 변증법적으로도 명료한 논리를 갖추었다. 글을 쓸 때마다 매번 소리 내어 읽는다는 인터뷰 기사를 접한 이후에 왜 진중권의 글이 - 난해한 미학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 쉽게 읽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림을 보듯 거리를 두고 진중권의 글을 보다 보면 하나의 문단 문단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족 : 학생들의 논술 글쓰기 지도에 더없이 좋은 전례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4월에 출판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은 2008년 출판된 『고전 예술 편』, 2011년 『모더니즘 편』에 이은 세 번째 책으로 서양미술사의 완결판에 해당한다. 짐작하겠지만, 책 세권에 서양미술사 전체를 담는다는 것은 아무리 해박한 미학자라 할지라도 ‘과욕’이었을 것이다. (이는 진중권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단 난해한 서양미술사의 골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나처럼 낯선 미학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독자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책이 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경계로 ‘선언문’을 통해서 미적 가치를 담보했던 예술은 평론을 통해서 인정 투쟁을 벌인다. 무수한 작품 속에서 의미 있는 작품을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한 것은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평론가들의 몫이었다. 작품은 본연의 미적 가치로 평가되는 ‘작품’이 아니라, 어디에 존재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사물’이 되었다. 고전과 근대에 비하면 더욱 복잡해지고 다채로워진 현대 미술의 족보를 세우고 지형도를 그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복잡해진 현대 철학의 언어는 그대로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연장이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 데리다를 비롯한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면 같은 지점에서 반복하는 악몽만 꾸다가 책을 덮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는 문화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미국 주도 속에서 예술은 ‘탈정치화’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된다.’는 포스트 모던이 자리 잡으면서 예술가의 실존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것(18쪽)이 된다. “현대적임을 과시하면 등장한 추상 표현주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대립각을 세운다. “교훈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 예술을 위한 예술, 무기로서의 예술에 대한 대극으로 발생한 비정치적 예술이 주요한 정치적 무기가 된 것이야말로 추상표현주의의 가장 비극적인 역설일 것이다.(21쪽)”

 

과거와의 연속선상에서 추상표현주의를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 위치시켰던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달리, 회화는 이제 단순히 회화이기를 거부한다. 미국의 회화는 “순수성과 평면성을 향하는 미적 가상의 영역을 아예 벗어나 사물의 영역으로 진입하다. 환영주의를 떨쳐버리려면, 회화가 미적 가상이기를 포기하고 그 자체가 사물이 되는 수밖에 없기 때문(24쪽)”에 형식주의 비평을 넘어 서게 된다. 사물성의 회화는 연극처럼 현전하고, 관객의 참여가 요구되면서 회화의 공간성은 시간성을 획득한다. 단선적인 진보를 전제한 모더니즘의 종언에 따라서 회화에서 역사성이 사라진다. 정치적 연대를 표명한 예술이 사라지면서, ‘미학적 위반’이 ‘예술의 규칙’이 되었다. 대중문화는 고급예술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고, 팝 아트가 오히려 체제 순응적이라는 역설이 발생했다. 반면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지친 대중은 복고적인 재현의 방식을 환영하기도 한다.

 

잭슨 폴록의 드립 페인팅과 더불어 시작된 후기 모더니즘에서 형체와 배경은 제각각으로 해체된다. 형체에서 물질로 환원하는 것은 (저자는 과잉 해석이라고 언급했으나) 폴록의 죽음 충동이라는 무의식의 표상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했다 사라지는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이제 후기 모던의 준거가 되었다. 유럽 또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짝패로 ‘앵포르멜’이 등장한다. 이는 “조형의 원점으로 돌아가 물질에 잠재한 형상의 가능성을 발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전후 모더니즘을 이어간 것은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이다. 폴록 보다 훨씬 평면적이었으나, “숭고의 체험”을 주제로 내포했다. 1960년대에는 추상표현주의의 대안으로 팝아트가 등장한다. 그림으로 벽에 걸리는 것을 거부한 회화는 이제 퍼포먼스의 형태로 관객 참여를 유도한다. 미셸 푸코가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듯, 이제 예술 작품에서 작가가 사라진다. 또 모더니즘과 대립되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념 미술이 등장한다. 이제 회화는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잡지에 기고“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자신의 작업실이 공장(factory)이기를 바랬던 앤디 워홀(영화 <팩토리 걸>을 보면 예술가 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앤디 워홀을 엿볼 수 있다.)은 예술의 독창성에 문제 제기한다. 반면 전후의 유일한 혁명적인 아방가르드로 상황주의가 등장한다. 해프닝과 다다이즘, 복고적인 형태의 신표현주의까지 후기 모더니즘은 방대하고 난삽한 길을 가고 있다.

 

모던과 포스트 모던의 경계에서

 

후기 모더니즘이 근대와의 연속인가, 단절인가의 논쟁 속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네가 본 것은 네가 본 것이다.”는 명제가 새삼 화두로 떠오른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이 다채로운 현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참조해야 하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단 저자의 주관적인 평가는 적고, 지극히 사실과 예술가 각자의 주장으로 가득 차 있으니, 저자의 특허가 되어 있는 ‘독설’은 기대하지 마시길.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트랜스 포머 ‘진중권’이지만, 그는 역시 미학자일 때 가장 숭고한 재능을 발산한다. 사회적 쟁점의 태풍의 눈에 위치해서 구경꾼조차 피로할 정도의 논쟁을 해나가거나, 케이블 채널의 오락 프로에 깜짝 등장해서 시뮬라시옹 진중권인지 시뮬라르크 진중권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을 만큼 방대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에너자이저지만, 역시 그는 최첨단의 사이버 미학까지 섭렵한 현재와 미래를 수렴해나가는 진정한 미학자다. 저자 서문에 “지붕에 올라갔거든 (진중권의) 이 사다리를 치워버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용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붕위에서도 진중권이라는 사다리를 치울 생각이 없다. 아직은 그를 통해서 미학을 관망하는 태연한, 맹목적인 독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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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1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몸젠의 로마사 1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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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문학, 실증주의와 구성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

『몸젠의 로마사 1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구성주의는 역사는 해석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면서 새롭게 쓰인다고 보는 반면, 실증주의는 역사는 영구불변의 객관적 사실로 존재는 것으로 본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는 text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해석을 통해서 새롭게 구성되는 context임을 강조한 말이다. 동일한 시공간을 갖는 역사가 무수한 역사학자에 의해 다시 쓰이는 것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주장이다. 반면 “근대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1795~1886)는 실증적인 역사 서술을 강조했다. 사료(史料)에 충실한 객관적 서술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선입견과 편견에 치우치면 안된다고 보았다. 상반된 두 입장이 모두 충분한 타당성을 갖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의 입장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둘 중 어느 하나의 관점을 취사선택해야 한다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역사는 text로 존재하지만, 각각의 시대적 담론에 따라서 얼마든지 재해석되고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단 text가 가지고 있는 실증적인 측면을 간과한다면 역사는 fiction과 다르지 않다.

 

현미경과 망원경의 적절한 활용

 

구성주의와 실증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일관된 기술을 해나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역사서가 숱하게 쏟아져 나오지만, 스테디셀러로 사랑받는 책이 흔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때 장편 역사서가 날개 돋듯이 팔려나간 적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크리스티앙 자칼의 『람세스』의 흥행으로 역사도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동시에 역사는 기술하는 사람이 어떤 관점과 취향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역사적 사실의 어떤 부분을 현미경에 올리고, 어떤 지점을 망원경으로 바라볼 것인지는 온전히 저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어떤 장비를 가지고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실루엣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앞서 역사관을 장황하게 서술한 까닭은 『몸젠의 로마사 1』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역사학자 테오로드 몸젠(Theodor Mommsen, 1817~1903)의 『로마사 1』이 번역되어 새 봄부터 독자와 만나고 있다. 몸젠의 첫 책을 읽다보면, 역사 기술의 객관성을 담보한 문체의 감수성이 탁월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적절한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음을 담박에 알 수 있다. 방대한 사료 속에서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지를 심사숙고하게 선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단언컨대 로마사를 다룬 책 중에서 몸젠의 책만큼 균형감을 가진 책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역동성 있게 구성하지 않았지만, 각각의 문헌에서 주제에 합당한 사료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로마사를 구성하였다. 고전문학자인 만큼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의미 있는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역자들의 번역 또한 훌륭하다. 역자들(김남우, 김동훈, 성중모 옮김)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몸젠의 로마사를 번역하게 된 계기와 번역을 위한 별도의 인터넷 공간을 만들고 번역의 과정을 기록하고 개방하는 것을 보면, 몸젠처럼 협업이 역사학자에게 필수적임을 이미 관통하고 계신 분들임을 알 수 있다. 몸젠의 로마사를 읽다 보면 아무리 뛰어난 역사학자라 할지라도 혼자서 해낼 수 없는 방대한 작업이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민족의 언어 체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킨 시스템을 한명의 위대한 역사학자 혼자서 분석하여 기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몸젠 역시 협업을 통해서 이 위대한 책을 인류의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몸젠의 로마사 1』는 로마사로 국한되지 않는다. 객관적이고, 비교론적이며, 상대론적 관점에서 로마와 주변 민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몸젠의 역사에서 신화를 철저하게 배격한다. 로마의 역사라기보다는 이탈리아의 역사이고, 희랍과의 비교 속에서 이해되는 로마인의 이야기다. 희랍과 이탈리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객관적이어서 두 나라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희랍과의 비교 속에서 로마가 제대로 보일 수 있도록 기술하였다. “희랍인은 구체성·구상적인 반면 로마인은 순수하고 투명한 추상성, 희랍 신화는 인물 중심, 로마 신화는 개념 중심, 희랍에 자유가 있다면 로마에는 필연성”이 주도하였다. 로마인은 홀로 존재하지 않았고, 곱트, 이집트, 아르메니아, 희랍과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했다. 언어를 분석해보면 이탈리아의 초기 민족은 이아퓌키아, 에트루리아,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희랍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애국심을 갖고 있었다. 로마인들만이 고대의 모든 문명 민족을 통틀어 유일하게 자기 통제에 기초한 국가 체제를 통해 민족 통일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민족 통일 덕분에 로마인들은 마침내 분열된 희랍 민족을 넘어 전 세계를 지배했다.”(41~43쪽)

 

사적 기억, 공유의 힘, 인류의 자산

 

책과 다소 거리가 있으나, 기록이 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몇 가지 사적 에피소드가 있다. 기억은 망각되기도 하고, 미화되기도 한다. 증거가 없다면 조작은 온전히 기억하는 자의 몫이 된다. 초등학교 6학년이 시작되면서 도시 학교로 전학을 가야했던 나는, 동시에 서울로 전학 가는 친구와 십년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춘기의 일상의 소소한 일들과 선택의 순간마다 일기장 대신 친구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지역적으로 멀기도 했고, 그 친구는 가족 전체가 서울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방학 동안에도 시골집에서 만날 수 없었다. 오직 편지 속에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고 서로의 상담자였다. 십년에 십년을 더한 어느 날, 소포 하나를 받았다. 긴 세월 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복사본이 담겨 있었다. 내가 쓴 편지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사 다니면서 편지를 챙기지 못한 나와 달리 친구는 내가 보낸 편지를 힘들 때마다 꺼내보며 소중하게 간직했고, 다시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놀라운 것은 각각의 편지를 쓸 당시 나의 심경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기억이 또렷해졌다는 것이다. 다소 미화되었던 유년기 나의 문학성에 대한 환상은 사라졌지만, 환상의 자리에 만만치 않은 십대를 보냈던 나의 상처와 영광이 오롯하게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영화 <엔딩 노트>(Ending Note, 2011)는 말기 암 판정을 받은 60대 한 남자가 어떻게 생을 정리하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에 치우쳐 슬픔에 빠져있기 보다는 침착하게 자기의 지나온 삶의 과정을 정리한다. 지금처럼 1인 1카메라를 소장하고 다니는 스마트 월드가 아닌 20세기 후반부를 살았던 남자였지만, 사진, 동영상 등 풍성한 자료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단지 한 개인의 생의 기록이 이렇게 잘 남아 있다면, 일본이라는 국가는 얼마나 많은 역사적 자료를 가지고 있을까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진에서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지형적 특성이 소멸에 대한 준비를 하게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기록하는 자는 기록으로 한생을 더 얻게 될 것이다.

 

수년 전 KBS의 젊은 기자가 한 돌이 지난 쌍둥이 중 한 아이, 아내와 여행을 떠났다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쌍둥이 중 한 아이는 기자의 부모님 댁에 남겨졌다. 그 사연을 보고 나니, 생면부지 기자의 사고와 남겨진 아이가 혼자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기자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었다. 성실한 블로그였던 그는 자신의 기사를 스크랩해서 올리고, 사회적 쟁점에 대한 생각을 적어 놓았다. 한 집안의 책임 있고 반듯한 남편,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사적 글과 사진들이 유언처럼 남겨져 있었다. 천천히 그가 남긴 아름다운 기록을 보면서, 남겨진 아이가 자라서 이 블로그를 보게 된다면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간직하며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기록은 놀라운 힘을 갖는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역사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서 새롭게 재구성될 때 생생한 힘을 갖고 새로운 역사로 거듭날 것이다. 몸젠처럼 방대한 문헌 속에서 흩어진 사료들을 잘 엮어내고, 사소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료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역사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겨우 『몸젠의 로마사』1권이 출간되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아홉 권의 책에 대한 기대감이 실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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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5-25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님의 리뷰는 시간에 쫓기어도 급하게 쓴 흔적이 없어요.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간 걸 느끼겠어요...^^
뭐 그꺼이꺼 대충~ 이라고 자기합리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조금 부끄러워지게 하는 글이에요,,,ㅡ.ㅡ

잘 읽고 갑니다~
5월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네요..
평가단도 얼마남지 않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