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들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승호가 묻고, 표창원이 답하다.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지승호 지음, 김영사, 2013. 10.

 

민주적 기본 질서가 무너진 정치 상황은 개인의 삶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고, 저출산 고령화는 아직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각자가 일상에서 누리는 평온함은 한동안 계속될 것처럼 느껴진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은 증거 인멸, 기밀 유출, 수사팀 징계로 이어지면서 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 NLL 포기 발언과 관련한 대화록은 국제 사회에서 전무후무하게 전문이 공개되었고, 종국에는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덕 본 것이 없다.”, “의혹 살 일 없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으로 이 사건들은 매듭지어질듯하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종북 발언 사태는 헌정 이래 초유의 정당해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값을 떠받치고 있는 정부 정책이 전세 값 폭등과 월세 붐으로 이어져도 사람들은 다시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삶은 지속되는 모양이다. 외부적 조건에서 비켜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평온함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개인의 삶과 구조적 조건이 무관하지 않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를 가로 막는 이분법적 논리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에 우파와 좌파가 따로 없듯이 진실을 보려는 것과 이념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이분법적 논리가 민주주의를 가로 막고 있다. 진실에 접근하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보수화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6.25 전쟁 이후 출생한 baby boomer가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조와 지역감정이 팽배한 상황은 진보가 추구하는 소중한 이념들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온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선산이 전북에 있다는 이유로, 국정원 사태의 진실을 말하는 권은희 수사과장은 전남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건의 본질은 희석된다. 출신 지역이 그 사람의 실체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의 검열 속에서 진실에 닿으려는 노력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언론을 통해서 취사선택되고 프레임이 짜진다. 언론이 호불호에 따라서 실체적 이미지를 획득한다. 공중파 3사가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에 그나마 볼만한 뉴스는 종합편성 JTBC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간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가 프레임 시간대를 장악하고, 볼만한 드라마는 케이블 TV에서 간간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다. 스마트해지고, 채널 선택 폭은 상상 이상으로 많아졌으나, 사람의 의식과 언론 민주화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지식인이 분노할 수 있고, 정치인이 국회에서 소리 내어 세상에 쓴 소리를 할 수 있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2013 대선 스타로 등장한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에 비켜나 진실 앞에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으로 온전히 우리 앞에 존재를 드러냈다. 인터뷰어 지승호가 “지난번 선거를 통해 얻은 선물”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표창원은 “보수의 품격, 사회의 품격, 경찰의 품격”을 갖춘 표창원은 좌우를 가로질러 ‘진실’에 접근하려는 지식인이며 실천가다. 극우꼴통은 있어서 품격을 갖춘 보수를 만나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진정한 보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작(前作)들이 그러했듯 표창원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한숨을 곁들인 공감과 지지를 불러 일으킨다. 시민의 눈과 귀가 막혔고, 발언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용을 쓰고 일어서야 할 때임을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이야기는 듯하다. 『공범들의 도시』는 지난 대선 이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다양한 사건을 복기하고 차가운 분노와 뜨거운 희망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 지향점을 설정한다. 이 책은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가 연합하고 협력”해야 할 때임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범죄를 유통하는 방식

 

표창원 교수는 범죄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낱낱이 분석한다. 범죄는 우리와 무관한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가 도처에 널려 있음에도 우리는 범죄에서 무관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갇혀 있다. 연쇄살인은 우리 사회 어두운 고리이고, 사법 시스템은 과학수사를 파괴한다. 범죄를 막아야 하는 경찰들은 거대 국가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범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 유통에 공모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명확한 근거를 저자는 철저히 분석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문법을 위배하면서까지 형사 역으로 분한 송강호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게 한다. 감독은 범인이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범인이 관객석에 앉아서 화면의 형사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우리가 이 사건을 잊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분명 범인은 아주 평범한 시민의 얼굴로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언급했듯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국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졌다.

 

안철수 열풍에 대하여

 

이 책에서 표창원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유효한 언급을 한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심정적 불쾌감’과 안철수에 대한 불신의 기저에 어떤 사건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던 내게는 참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지승호 인터뷰어의 질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안철수 후보에게 세 가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셨잖아요. ”문재인 후보 측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중도 사퇴를 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왜 선거 당일 축국했으며 그 계획은 언제 세워진 것이었는지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노원 병이라는 선거구 특성에 비추어, 자신이 노희찬 전 의원이 표방하는 ‘진보’ 정치인인지, 그래서 그를 대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 전 의원을 지지하지 않은 노원병 주민들의 보수적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355쪽)

 

이에 대한 안철수는 “문제인 후보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했고, 선거 당일 출국은 “잘못이었다, 인정한다, 사과한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리라고 생각”했다고 했으며, (노회찬의 뜻을 이어받아서) “노원 주민의 염원을 모두 받아서 새로운 정치를 펴는 시금석”을 삼겠다고 답했다. 안철수의 답에 100% 수긍을 하는 것은 아니나, 사태를 분석하고 신뢰 구축을 위해서 현문(賢問)을 던질 수 있는 표창원이 놀랍기만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다. 인구학적으로, 지리적으로 한국사회는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우리의 침묵과 무관심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돌부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 유리한 사람이 아닌 품격을 갖춘 사람, 이미지가 아니라 조금 더 실체에 근접한 판단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일에서부터 미래의 많은 것들이 결정될 것이다. 마르틴 니묄러의 시(詩)가 그것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천주교도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기독교도였으니까.

 

그들이 처음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하여 발언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는 “파도를 치게 하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파도만 보았다.”는 독백과 같은 주제를 내뱉는다. 영화 관람 이후 한동안 그 대사를 마음 한편에 두고 지내며, 과연 내가 보는 이 표상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현실을 움직이는 바람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에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여 그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현실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범죄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파도’일 것이다. 파도와 같은 범죄의 높낮이 속에서 바람을 읽어내는 사람, 프로파일러. “보수주의자이며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과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지식인 지승호의 대화”를 통해서 대중이 어떻게 범죄와 공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쏟아지는 책들을 보며, 귀히 여기는 마음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지금의 나를 키워온 팔 할이 책이고, 여전히 독서가 세상을 ‘제대로’ 읽는 무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많이 읽지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마음으로 연애하듯 책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하는 아침입니다. 11월 신간 추천입니다.^^*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박가분 지음, 오월의봄, 2013. 10.

 

 

 

종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그들의 성장을 분석해야 합니다. 일베 신드롬을 제대로 분석해야만 한국 사회 젊은 우파들의 선택의 원인을 알고 대응책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그들의 실체를 제대로 해부해보고 극복하기 위해서 일독하고 싶은 책입니다.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 -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편향 과정 분석』, 정경희 지음, 비봉출판사, 2013. 10.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없습니다. 단 ‘누가’ ‘어떤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역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담론 형성 과정으로 실시되었던 여론 조사는 국수주의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사 교과서 왜곡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이 어떻게 편향되었는지를 알아보는데 유익한 책이라고 봅니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13. 10.

  

 

 

 

2012 대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실체 없는 공방의 정중앙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자리했습니다.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 진실에 한걸음 더 접근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과 맥락에 한걸음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 영화 같이 볼래요? - 영화가 끝나고 시작되는 진짜 영화 이야기 시네마톡』한창호, 김영진, 남인영, 신지혜, 이동진, 심영섭, 조인철 지음, 씨네21북스, 2013. 10.

 

 

 

지극히 사적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시대의 공적 공론장이 될 수도 있는 서른 편의 영화 안팍의 이야기를 평론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평론집이 나왔습니다. 평론의 전문 영역에서 살짝 비켜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네마 톡’이겠지요? 현장의 기록이 여기 있습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영화와 책을 함께 섭렵해보면 좋겠습니다.

 

 

 

 

 

 

 

『영화 같은 시간』, 최동훈, 조성희, 오승욱 (감독), 김소영, 정지우, 정우열, 정용준, 김희진, 박진희, 오승욱, 변병준, 봉준호 지음, 이음, 2013. 9.

 

 

 

 

 

이어서 다시 한번 영화 관련 신간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30주년으로 기획된 책이라고 하니 더욱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영화와 함께 한 시간을 체험하면서 조금 더 겸손하게 영화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기없는 에세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강한 신념도 유쾌한 유머가 될 수 있다.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8.

 

인기 없음이란?

 

오래 전 박지원의 『열하 일기』를 읽으며 통곡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이 재해석한『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웃음과 우정으로 노마드하는 연암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검색해 보니 십 년 만에 새 옷을 입은 책을 보니 더없이 반갑다.) 시대적 조건이 확연하게 다른 이백 여 년을 건너 뛰어 연암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에 감동하며 절로 눈물이 흘렀다. 유머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고수하며 진정한 호모 쿵푸스로 살아간 그가 온몸으로 절절하게 느껴졌다. 연암과 나, 둘 사이를 중매한 고미숙 선생님 모두 한반도라는 토양과 한글 속에서 성장한 교집합이 있었다는 어설픈 이유를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242

 

새삼 연암 때문에 울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 것은 버트란트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다. 러셀은 60 여 년의 간격을 두고, 나와 전혀 다른 지리적 공간에 살았고, 경험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사상에서 거리 두기가 충분한 철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유쾌함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핫한 신념 & 쿨한 반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러셀의 책이 계속해서 출판되는 것은 문제 의식에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신간 『인기 없는 에세이』 진정한 ‘인기 없음’이 왜 역설인지를 보여준다.

 

연암에 대한 사적 에피소드만큼, 러셀을 만난 오래된 기억 또한 또렷하게 남아 있다. 따뜻했으나 축축했던 벤쿠버 겨울 챕터 서점. 유치원 영어 실력으로 근근이 어학원을 드나들던 짧은 시기에도 책이 고팠다. 지금처럼 전자책이 있었다면, 한국어 책에 대한 헛헛함은 덜했을텐데, 나의 짐 가방은 온통 기초 영어 책으로만 가득했다. 서점에서 얇은 책 한권을 사들고 (당시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타벅스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었다. 이후 한국어로 읽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같은 책에서 러셀은 행복과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양 철학사』 한권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명성이란 변덕스러운 것(5쪽)”을 일찍이 깨달았던 러셀은 철학사의 주요 사상가들을 사회·정치적 배경과 연결 짓는다.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라니?

 

책을 구성하는 12개의 에피소드는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서 순서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강점을 갖는 반면, 전체적인 구조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러셀이 지적 쓰레기라고 이름 붙인 철학은 지배 담론이 되어 국가의 공식 견해가 된 철학이다. 진정한 실재와 현상적 실재를 구분하여 진정한 실재를 오로지 논리로만 규정한 헤겔, 그가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에 끼친 영향과 소련 독재 체제의 이론적 정당화가 그가 말하는 지적 쓰레기의 계보다. 러셀은 형이상학 철학에 관한 독한 비판을 피력한다. 성직자들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던 시절(162쪽)의 스콜라 철학이 대표적이다. 그는 “교조주의는 지적 사상이 아니라 권위를 견해의 근원으로 삼는다.”고 보고, 경험론은 행복을 바라는 사람을 위한 윤리적이기까지 한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경험론의 한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에서 러셀의 편향적인 모습이 불편하기는 하다.

 

반전 운동가인 경험론 철학자 러셀은 군사적 자만이 낳은 국가적 자만심의 해악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교육은 교화를 전제하고 다수의 교사는 공무원으로서 명령을 수행한다. 불행은 늘 잘못된 믿음을 지나치게 확신하면서 시작된다. 우상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쓰레기의 계보에 비켜서 있는 철학이 해야 할 일이다. 러셀을 읽다 보니 - 예의 없는 것들과 싸움에서 예의를 지키며 이길 수 있는 해법이 없다면 - 조금은 경망스러워도 될 것 같다. “경망스러워 보이는 글이 있을지언정 원래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했다. 경망스럽게 쓴 까닭은 엄숙하고 오만한 자들을 상대로 더욱 엄숙하고 오만하게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23쪽)”

 

예민한 사람은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 사려 깊게 사고하는 습관 없이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한 품성이 쓰레기의 계보 속에서 보석 같은 철학을 발견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기 없는 에세이』는 진보한다는 것이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은 이타적(利他的) 이라는 도덕주의의 오류에서 조금 비켜서서 러셀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꽤 괜찮은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왜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얇은 책의 울림, 쉽고 명확한 사회학 개론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동녘, 2013. 8.

 

뉴스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보지 않은 상태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경제 지상주의’가 가속화되고, 모든 가치는 자본으로 환원한다. 과정에 대한 고민 없이 결과에 대한 평가만 이루어진다. 필연적인 결과라고 회피하기에 한국의 상황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우경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의무만 남고 시민의 권리는 점차 사라진다. 한동안의 무관심이 만들어낼 결과가 두렵다. 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저 관객의 즐거움이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다. 아바타의 활동을 지켜보는 수동적인 자리에 놓여 있는 객체의 심정이 그러하다.

 

정량화된 데이터와 단단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을 새롭게 읽는다. “가진 것 마저 빼앗기는 나”라는 부재가 그것을 함의하고 있듯이, 바우만은 우리가 불평등을 감수하는 원인과 사태에 대해서 치밀하게 분석한다. 세계에 대한 성찰과 방향을 제시하는 그의 저서는 동어반복일 수 있는 주제를 매번 쉽고 새롭게 변주한다. 근대 사회의 해체를 보여주는 바우만의 ‘유동성’ 개념은 자본이 기획한 마케팅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다. 무의식을 개인 삶으로 환원하지 않고, 사회적 담론의 결과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사회학자로서 바우만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

 

학업성취도가 미달인 학생, 학부모와 심층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성취도 미달 학생의 경제적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고, 부모님이 비정규직, 잠정적인 실업상태에 있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하층 자녀일수록 학업 성적 미달을 본인의 능력으로 귀인(歸因)한다는 것이다. 원래 부모님이 공부에 관심이 없고 못했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다고 답변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잘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같은 성취도 미달 학생 사이에서 중층과 하층의 의식 차이는 확연했다. 하층으로 갈수록 “어차피” 현재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태생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우리 안의 인종주의는 여전히 신화로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신념 가운데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드러내는 일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신화

 

불평등 심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확신에 찬 계몽주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다수의 저소득층이 반복되는 불평등을 견뎌내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신화들” 때문이다. 경제 성장이 최고의 관건이고, 인간의 행복은 소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어느 사회에나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쟁은 자연스럽다는 확신이 존재한다. 일직선의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는 사회 진화론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행복은 각자 다른 목적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자기 윤리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주체적인 삶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고 삶의 목표를 하나로 획일화한 사회가 발전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모든 사람을 호명하는 방식이 ‘소비자’로 획일화된다면 주체는 객체로 전락하여 노예적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가난이 가난을 부른다.

 

역설적으로 세계화는 세계를 둘로 분리한다. 밤의 세계지도는 세계가 어떻게 지리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22쪽)” 지리적으로 지역적으로 불평등은 노골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loanbank1116?Redirect=Log&logNo=120175447906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의 도덕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상황이 우리를 도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에서 거시적인 관점과 반복된 사고 패턴을 뒤집는 것이다. 문제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의 철도에서 각을 틀어야만 불평등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는 파이 키우기에 몰두해 있는 우리에게 지금부터는 키운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경제 성장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낙수 효과 신화를 벗어나서, 누가 파이를 독차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여 제 몫을 찾아야 할 때다. 번역이 즐거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한다. 새벽을 기다리는 자에게 가장 어둠이 짙을 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회피하지 않고 문제에 직면하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9월 신간도서를 살펴보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낡은 은유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표현임을 실감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양질의 책이 제 몫에 맞는 이름표를 붙이고 반듯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지독하게 낮고 쓸쓸한 가을이 제 몫을 하겠다 싶습니다.

신간과 함께 가을을 닮아가고 싶은 10월입니다.

 


 

 

  『여행을 팝니다- 여행과 관광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엘리자베스 베커 지음, 유영훈 옮김, 명랑한지성, 2013. 8.

 

한때 생(生)을 살아가는 에너지의 원천을 여행에서 얻던 시절이 있었다. 다녀온 국가의 숫자와 기간을 존재의 기표로 차용하기도 했다. 그 시절이 단락 짓고 보니 ‘왜’ 여행을 떠나야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마음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베커는 여행을 세계 최대의 사업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관광(또는 여행)의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고 “실체 없는 거인의 힘”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여행’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 지승호 지음, 김영사, 2013. 10.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는 “파도를 치게 하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파도만 보았다.”는 독백과 같은 주제를 내뱉는다. 영화 관람 이후 한동안 그 대사를 마음 한편에 두고 지내며, 과연 내가 보는 이 표상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현실을 움직이는 바람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에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여 그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현실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범죄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파도’일 것이다. 파도와 같은 범죄의 높낮이 속에서 바람을 읽어내는 사람, 프로파일러. “보수주의자이며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과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지식인 지승호의 대화”를 통해서 대중이 어떻게 범죄와 공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양철북, 2013. 9.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생선 수출입과 관련된 문제가 연일 뉴스거리다. 일본 고등어가 한국산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일본쌀이 한국에서 전량 소비되었다는 기사 등 먹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한 세팅된 기사에서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현재 한반도는 일본과 한국의 노후화된 원전에 뿐 아니라, 중국에서 계속 짓고 있는 원전들이 서해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 경제부 기자 오시카 야스아키는 후쿠시마 사고 관련자들 125명을 탐사 취재하여 그 내막을 밝힌다. 환경 피해의 결과가 아닌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엄기호 지음, 따비, 2013. 9.

 

무능한 철 밥통 교사를 퇴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담론이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 간다. 교육은 건물로 은유되어 붕괴 직전에 이르렀고, 책임은 교사의 몫으로 남겨졌으며, 학생과 학부모는 피해자 위치에 놓였다. 이후 교사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전 방위로 실천하는 운동가이자 문화학자인 엄기호는 교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동체 속에서 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들은 분절, 파편화된 딜레마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책은 교사들이 동료들과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마을의 귀환 - 대안적 삶을 꿈꾸는 도시공동체 현장에 가다』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오마이북, 2013. 9.

 

존경하는 선생님 한분이 맘과 뜻이 맞는 벗들과 함께 마을을 만드신다고 한다. 공동체에 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 자본이 바탕을 이루었으니, 양보하고 나누는 아름다운 마을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사적 삶을 지켜줄 수 있는 교양을 소유한 이웃들은 은둔과 참여를 적절하게 활용할 것이다. 공동의 공간을 따로 두고 마을의 대소사는 함께 협의체를 구성하여 결정할 것이며, 각각의 주택은 개인의 취향 뿐 아니라 이웃과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된다. 혹시 이사를 나가면, 새로 들어올 이웃을 집주인 혼자 결정하지 않고 마을주민이 인터뷰를 통해서 선별할 수 있는 절차까지 마련되어 있다.

이쯤에서 내 맘은 딴지를 건다. 동질 집단으로만 구성된 공간을 과연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름을 배제한 상태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유사한 사람들로 모여 있는 공간을 마을이라고 한다면 신분간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일이 될 것이고, 이는 인종간의 구별 짓기가 될 것이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마을공동체를 이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을의 귀환』에 담아냈다. 1년여의 기록을 통해서 마을살이의 가능성과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