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책으로도 굿~

이 책이 장소(런던)와 매체(물감)로 범위를 한정한 게 득이 된 것인지 실이 된 것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호크니 전시회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이 다루는 시기(제2차 세계 대전부터 1970년 대 초)가 확실히 물감을 사용한 회화의 가장 극단까지 간 게 아니었나 싶다. 뒤샹 같은 개념 미술의 현실 모형, 워홀 같은 팝 아티스트들과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기계 활용, 디지털 문화로의 돌입은 표현의 세계를 확 바꿨다. 회화를 신화의 차원으로 밀어내게 된 거라고 할까. 이젠 회화에서 예전 같은 천재를 바라는 건 무리다.











이 책은 ‘그림은 사회적, 지적 변화뿐 아니라 개인의 감수성과 성격의 영향도 받는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베이컨의 출현에는 역사적인 필연성이 없었다. 사실 어떤 지점에서 그의 심리적, 미학적 기질은 매우 특이했고 낮설었다. 그래서 그의 출현은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베이컨이 없었다면, 또는 프로이트, 라일리, 호크니의 기여가 없었다면 이후의 런던 화단의 상황은 분명 상당히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모든 역사는 그 경계가 어느 정도 임의적이기 마련이다. 시간은 연속적이어서 특정 일자에 칼로 자르듯이 깔끔하게 시작되거나 끝나는 일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제멋대로 한없이 뻗어 나가는 것을 피하고자 책은 종종 말끔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제2차 세계 대전부터 1970년대초에 이르는 시기의 연대적 범위 설정은 정치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잘 알려진 영국사의 전환점과 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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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0-14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붓만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아닌데도 대부분 사람은 여전히 붓으로 그려진 그림을 선호하고, 붓이 필요 없는 요즘 미술을 어려워해요. 제 생각인데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회화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

AgalmA 2019-10-14 22:41   좋아요 0 | URL
그런 태도도 일종의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생각해요. 회화 하면 화가, 캔버스, 물감 그런 걸로 익숙했으니까요.
저도 타블렛 툴로 그리는 그림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창작이 잘 안 익혀져요^^;;
디지털이 워낙 표현 영역이 넓으니 창작자들이야 당연히 도전해보고 싶죠. 다만 전자책과 종이책의 병행처럼 종이 그림도 계속 이어가리라 봅니다. 사람의 습성이 워낙 질기잖아요ㅎ 아무리 디지털화가 되어도 손맛이라는 게 있어서 붓질 그림을 쉽게 버리진 못할 겁니다. 모두 디지털로 간다면 나는 아날로그다! 할 반동적 창작자가 나오는 게 또 예술이고ㅎ
 

카를로 로벨리가 친절한 대중 과학서에 힘을 쏟고 있듯 제임스 M. 러셀는 쉽고 친절한 대중 인문서에 힘을 쏟고 있다. 깊은 내용은 아니지만 알쓸신잡 같은 쏠쏠한 재미와 정보가 있다. 2~3페이지로 짧고 쉽게 전달하는 인문학 기초상식 책이라고나 할까. 내가 좋아하는 사물들 얘기 가득~ 공부 열심히 하려고 알람 시계를 발명한 플라톤 얘기도 재밌다. 기원전 4세기 일이니 알람 시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영국 사람인 것도 그렇고 케임브리지 철학 전공인 것도 그렇고 버트런드 러셀 가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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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진화의 배신 - 착한 유전자는 어째서 살인 기계로 변했는가
리 골드먼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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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의학 전문의라 그런지 기존의 진화론 서술과 조금 다르다. 저자는 인류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을 주목했는데, 구체적 신진대사 과정과 함께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설명한다. 이론보다 몸의 기능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 흥미로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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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 생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형질에 초점을 맞춘다. 이 네 가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식욕과 열량 축적의 본능
초기 인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배불리 먹는 것으로 굶주림에 대비했다. 오늘날 미국인의 35퍼센트가 비만이며 그와 동시에 당뇨병, 심장 질환, 심지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몸에 필요한 것보다 더 먹는 이 타고난 성향 때문이다.

물과 소금에 대한 욕구
우리 조상들은 치명적인 탈수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특히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 탈수 위험이 커지므로 몸은 물과 소금을 보존하고, 이 두 가지를 항상 더 원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이제 대다수 미국인이 필요한 양보다 많은 소금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처럼 과도하게 섭취한 소금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물과 소금 보존 호르몬과 상승 작용을 일으켜서 심장 질환, 뇌졸중, 신장 질환의 위험을 눈에 띄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싸울 때, 도망칠 때, 복종할 때를 판단하는 본능
선사 시대 사회에서는 많게는 사망자의 25퍼센트가 폭력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따라서 늘 살해당할 가능성을 염려하며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안전해지면서 폭력 사태는 줄어들었다. 현대 미국에서는 살인이나 동물의 공격보다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왜일까? 지나치게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우리의 오래된 성향이 불안증,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자살까지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출혈로 죽지 않도록 피를 응고시키는 능력
외상과 출산으로 인한 출혈의 위험도가 높았던 초기 인류는 피를 재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응고시킬 필요가 있었다. 현대에는 반창고부터 수혈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을 확률보다 오히려 혈액 응고로 사망할 확률이 더 커졌다. 대부분의 심장 마비와 뇌졸중—현대 사회의 주요 사망 원인—은 심장과 뇌의 동맥을 따라 흐르는 피를 혈전(응고된 혈액 덩어리)이 막아서 생기는 증상이다. 거기에 더해 옛 조상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긴 자동차 여행과 비행기 여행 또한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혈전을 만들어 낸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이 네 가지 유전 형질의 도움으로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사망 요인인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의 위험을 피하고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놀랍게도 바로 이 네 형질이 미국 내 사망자 40퍼센트의 목숨을 앗아가는 요인으로 자리 잡았으며, 주요 사망 원인 여덟 가지 중 네 가지에 이름을 올렸다. 그 결과 이 유전 형질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보다 죽는 사람의 숫자가 무려 여섯 배나 많아졌다. 인류의 생존을 도왔을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장악하는 근원이 된 바로 그 특징들이 왜 이제는 이토록 비생산적이 되었을까?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왜 피부색이 옅어졌을까
그런데 두 가지 조건이 변화했다. 첫째, 아프리카에서 나와 더 추운 지역으로 이주한 우리 조상들은 옷을 더 입어야 했고, 따라서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 면적이 극적으로 줄어 간에서 만들어진 비타민 D 전구체를 활성화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 둘째, 1만 년 전쯤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상들의 식사에서 탄수화물 비율이 높아지고 비타민 D 섭취가 줄어들어, 이미 노출 수준이 훨씬 줄어든 햇빛에 비타민 D 제조를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13 그들은 이 사태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무작위로 일어난 돌연변이 중, 피부에서 만들어지는 멜라닌의 양을 줄여 피부색이 더 옅어지게 하는 유전자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 덕분에 같은 양의 햇빛에 노출되어도 더 많은 자외선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로써 간에서 만들어진 비타민 D 전구체를 더 잘 활성화할 수 있게 되었다.
비타민 D와 뼈의 발달이 그토록 넓은 지역에서 피부색을 바꿀 정도로 생존에 중요했을까?

산업 혁명이 시작되어 세상을 극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19세기 초 이후의 급격한 변화와 그 이전 수천 년에 걸친 느린 변화를 한번 비교해 보자. 새로운 기계, 전기, 가솔린 엔진 운송 수단, 현대식 가전 제품 그리고 컴퓨터는 10세대도 안 되는 기간에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비록 가뭄과 기아가 지구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벨리 같은 사막을 정원처럼 아름다운 지역으로 변화시켰다. 식량 공급이 점점 늘어나 1800년에 10억 명이던 전 세계 인구가 1950년 25억 명, 2000년 60억 명, 2011년에는 70억 명이 되었다. 영양과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역사상 내내 50퍼센트(말리의 일부 외딴 곳에서는 2000년까지 이 비율이 지속되었다) 근처를 맴돌던 높은 아동 사망률이 1990년에는 세계 평균 9퍼센트로 떨어졌고, 2013년에는 5퍼센트 미만이 되었다.

우리 유전자는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 속도와 발맞춰 돌연변이를 할 수 없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되어 버린 병들이 우리가 자손을 퍼뜨린 다음에 우리 몸을 공격하고 그 아이들도 다시 똑같은 일을 겪게 되는 한, 자연 선택 과정은 그런 환경 변화에 유리한 유전자를 선택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 결과 인류라는 생물 종을 그토록 효과적으로 잘 보호했던 생존 형질들은 이제 많은 경우 과잉 보호적이고 때로는 명백히 해롭기까지 한 요인이 되고 말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음식과 소금과 물이 너무 흔하고, 폭력 사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줄고, 피를 너무 흘려 죽는 일 또한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경구를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는 인류 생존이라는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적응이라는 전투에서는 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일련의 만성 질환을 앓게 된다. 어떤 병은 단순히 너무 오래 살아서 생기고, 어떤 병은 한때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중요했던 형질들의 부작용으로 생긴다.

우리는 아포크린과 에크린이라는 두 가지 땀샘을 가지고 있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있는 아포크린 땀샘은 진하고 반투명인 톡 쏘는 냄새가 나는 땀을 모낭에서 분비한다. 땀을 좋아하는 박테리아가 이 부위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아포크린 땀샘에서는 체온을 상당히 낮출 정도로 충분한 양의 땀을 분비하지 못한다.
반면에 우리는 몸 전체에 약 200만 개의 에크린 땀샘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 발바닥, 머리에 특히 많이 모여 있는 이 땀샘은 육체 노동자의 경우 평소 1시간에 0.5쿼트(약 0.47리터)의 묽은 땀을 분비한다. 그러나 섭씨 35도에서 마라톤이나 축구 경기 같은 격렬한 운동을 계속할 경우 1.5~2쿼트(약 1.4~1.9리터) 정도의 땀을 1시간 만에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열대 지방에서 완전히 그 환경에 적응해 사는 사람은 1시간에 자그마치 3.5쿼트(약 3.3리터) 정도의 땀을 분비한다.
다른 포유류는 어떨까? 대부분의 비영장류 포유류는 주둥이와 발바닥 부위에 소수의 에크린 땀샘을 가지고 있다. 이 동물들이 열을 식히는 데 가장 많이 의존하는 방법은 헐떡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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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블랑쇼 컬렉션도 나의 즐거움~
블랑쇼 신간이 자주 나와서 좀 당황스럽다💦 몇 달 전에 『지극히 높은 자』 비싸게 샀잖아요. 선집 10이 나오고 7이 나오는 상황이긴 하지만ㅎ; 이렇게 출간이 속속 되는 저자가 아닌데... 그린비,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블랑쇼답게 여전히 ‘죽음‘ 얘기 가득. 그 불가능한 앎의 도전이 나를 감동케 하고 그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블랑쇼만큼 죽음-부재(˝모든 것은 지워져야 한다˝)에 천착하는 저자 못 봤다. 흥미로운 것은 그 접근은 관계, 글쓰기 등을 통한다는 것. 블랑쇼 마니아가 아니라면 섣불리 샀다간 책장 망부석이 될 수 있으니 구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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