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책으로도 굿~
이 책이 장소(런던)와 매체(물감)로 범위를 한정한 게 득이 된 것인지 실이 된 것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호크니 전시회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이 다루는 시기(제2차 세계 대전부터 1970년 대 초)가 확실히 물감을 사용한 회화의 가장 극단까지 간 게 아니었나 싶다. 뒤샹 같은 개념 미술의 현실 모형, 워홀 같은 팝 아티스트들과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기계 활용, 디지털 문화로의 돌입은 표현의 세계를 확 바꿨다. 회화를 신화의 차원으로 밀어내게 된 거라고 할까. 이젠 회화에서 예전 같은 천재를 바라는 건 무리다.
이 책은 ‘그림은 사회적, 지적 변화뿐 아니라 개인의 감수성과 성격의 영향도 받는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베이컨의 출현에는 역사적인 필연성이 없었다. 사실 어떤 지점에서 그의 심리적, 미학적 기질은 매우 특이했고 낮설었다. 그래서 그의 출현은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베이컨이 없었다면, 또는 프로이트, 라일리, 호크니의 기여가 없었다면 이후의 런던 화단의 상황은 분명 상당히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모든 역사는 그 경계가 어느 정도 임의적이기 마련이다. 시간은 연속적이어서 특정 일자에 칼로 자르듯이 깔끔하게 시작되거나 끝나는 일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제멋대로 한없이 뻗어 나가는 것을 피하고자 책은 종종 말끔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제2차 세계 대전부터 1970년대초에 이르는 시기의 연대적 범위 설정은 정치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잘 알려진 영국사의 전환점과 상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