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책 다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두 분 번역에서 우열을 가리긴 어렵습니다. 주석이 큰 차이겠는데요. 윤영애 교수 주석은 학술 문헌을 많이 참고하는 스타일이고, 황현산 선생 주해는 하나하나가 짧고 아름다운 평론처럼 읽힙니다.
윤영애 교수 주석이 조금 더 꼼꼼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만큼 지나친 개입처럼 느껴져 독자가 그 의견에 쏠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거 같습니다. 황현산 선생의 글은 객관적이려 하면서 자신의 평을 겸손하게 얹는 스타일인데 이 역시 안 보는 것이 아쉬울 거 같습니다.
민음사 판은 주석을 시 바로 다음에 붙여 읽기 편하게 만들었다면, 문학동네 판은 주석을 맨 뒤에 붙여 시 전체를 음미한 뒤 참고하게끔 안배해 놨군요. 그러나 주석의 존재를 안 이상 앞뒤를 오가게 될 수밖에 없으니 읽는 입장에서는 귀찮을 수도. 두번 째 읽을 때는 가볍게 패스? 과연? ㅎㅎ
문학동네 판의 장점이라면 포켓 판형에 가깝고 민음사 판의 절반도 안 되는 부피라 들고 다니기 좋다는 점! 행간 간격에 신경 쓴 게 보이지만 글자가 작다는 게 흠인데 휴대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눈 침침한 분들에겐 죄송한 일. 들고 다니며 몽상의 시인 보들레르가 찬양한 구름 아래 야외에서 보기 좋다면 이쯤이야!
결국 두 책을 다 보는 게 좋을 거라는ㅎ 그럴 만한 책이니까요.


*
˝결국에는, 이 환상적이고 빛나는 형태를 한 구름, 이 혼돈스러운 어둠, 이 녹색과 분홍색의 끝도 없는 것들이, 서로 걸쳐 포개어진 모습, 입을 떡 벌린 큰 가마들, 구겨지거나, 말리거나, 찢어진 검정 혹은 보라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이 창공, 상복을 입은 혹은 용해된 금속을 늘어뜨리는 이 지평선, 이 모든 깊이, 이 모든 장려함은, 취하게 하는 음료처럼 아니면 아편의 웅변처럼 나의 뇌수를 취하게 만들었다. 몹시 기묘한 일이지만, 이 액체적인 혹은 대기적인 마술 앞에서는, 인간의 부재를 원망할 기분이 단 한 번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ㅡ 보들레르가 <1859년 살롱전>에서 부댕의 그림에 나타나는 구름에 대해 쓴 글, <파리의 우울> 황현산 선생의 주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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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25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읽는다면 일단 ‘짧고 아름다운 평론‘에 방점을 둘 것 같습니다.
아직 황현산의 글을 안 읽어봐서...
판형도 마음에 들고.
민음사는 원래부터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아니면
별로 손이 안 가더군요.

그나저나 아갈마님 단편소설 쓰기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AgalmA 2017-09-25 15:49   좋아요 1 | URL
황현산 선생 문장은 자는 모르겠고 타는 인정한다고 보는데요.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인가 싶지만 문장을 읽으면 참 정갈하면서 깊이가 있어요.
민음사 세계문학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디자인 물갈이가 되어야 할 겁니다. 책도 구식으로 보이는데다가 문체들도 대체로 구식^^;; 거참;

게을러서 문제이긴 한데 시도 소설도 쓰고 있습니다^^ 일기 많이 쓰고 문학 많이 읽으면 자연스러운 수순인 거 같아요. 써보고 싶어지죠.

munsun09 2017-09-25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학동네 걸 가지고 있는데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사실 주석이 뒤에 있으면 왔다갔다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어떨때는 그냥 읽지않고 지나치게 되더라구요. 그 점도 책 고를 때 고려해 봐야 할 점이 됐네요^^

AgalmA 2017-09-25 16:39   좋아요 1 | URL
어떤 책이든 주석이 걸리적거리긴 하죠^^; 저도 안 읽고 넘길 때 종종 있어요.
이 시집의 주해를 뒤로 옮긴 게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 전체를 흐름따라 읽어가는 맛이 있으니까요. 한 번 읽고 끝날 책도 아니니까요 :)

북프리쿠키 2017-09-25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햐 ~ 아갈마님 대단하세요.
이렇게 직접 읽으시고 비교해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AgalmA 2017-09-26 03:40   좋아요 1 | URL
두 책을 다 가지고 있음 저 정도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정도죠^^; 북프리쿠키님 덕에 두 시집을 일찍 비교하게 된 거니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 할 지도요^^
다 읽기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 더 꼼꼼한 비교는 어려웠던 점 이해바랍니다.

cyrus 2017-09-26 0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현산 교수의 주석은 시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모두 설명해줍니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

AgalmA 2017-09-26 03:40   좋아요 0 | URL
황현산 선생님이 좀 더 열린 해석이라 더 좋긴 하더라는^^

페크pek0501 2017-09-27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의 <파리의 우울>을 구입했었는데 글씨가 작아 애독하게 될 것 같지 않아요.
눈이 피로할 것 같아서...
다른 출판사로 다시 사야 하나, 생각했어요.ㅋ

AgalmA 2017-09-27 20:06   좋아요 0 | URL
글씨 크기에 대한 문제가 제 예상보다 상당히 크군요ㅎ; 민음사판은 딱딱한 주석 보고 하느라 좀 쉬이 피로해지는 감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