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책 다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두 분 번역에서 우열을 가리긴 어렵습니다. 주석이 큰 차이겠는데요. 윤영애 교수 주석은 학술 문헌을 많이 참고하는 스타일이고, 황현산 선생 주해는 하나하나가 짧고 아름다운 평론처럼 읽힙니다.
윤영애 교수 주석이 조금 더 꼼꼼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만큼 지나친 개입처럼 느껴져 독자가 그 의견에 쏠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거 같습니다. 황현산 선생의 글은 객관적이려 하면서 자신의 평을 겸손하게 얹는 스타일인데 이 역시 안 보는 것이 아쉬울 거 같습니다.
민음사 판은 주석을 시 바로 다음에 붙여 읽기 편하게 만들었다면, 문학동네 판은 주석을 맨 뒤에 붙여 시 전체를 음미한 뒤 참고하게끔 안배해 놨군요. 그러나 주석의 존재를 안 이상 앞뒤를 오가게 될 수밖에 없으니 읽는 입장에서는 귀찮을 수도. 두번 째 읽을 때는 가볍게 패스? 과연? ㅎㅎ
문학동네 판의 장점이라면 포켓 판형에 가깝고 민음사 판의 절반도 안 되는 부피라 들고 다니기 좋다는 점! 행간 간격에 신경 쓴 게 보이지만 글자가 작다는 게 흠인데 휴대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눈 침침한 분들에겐 죄송한 일. 들고 다니며 몽상의 시인 보들레르가 찬양한 구름 아래 야외에서 보기 좋다면 이쯤이야!
결국 두 책을 다 보는 게 좋을 거라는ㅎ 그럴 만한 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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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이 환상적이고 빛나는 형태를 한 구름, 이 혼돈스러운 어둠, 이 녹색과 분홍색의 끝도 없는 것들이, 서로 걸쳐 포개어진 모습, 입을 떡 벌린 큰 가마들, 구겨지거나, 말리거나, 찢어진 검정 혹은 보라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이 창공, 상복을 입은 혹은 용해된 금속을 늘어뜨리는 이 지평선, 이 모든 깊이, 이 모든 장려함은, 취하게 하는 음료처럼 아니면 아편의 웅변처럼 나의 뇌수를 취하게 만들었다. 몹시 기묘한 일이지만, 이 액체적인 혹은 대기적인 마술 앞에서는, 인간의 부재를 원망할 기분이 단 한 번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ㅡ 보들레르가 <1859년 살롱전>에서 부댕의 그림에 나타나는 구름에 대해 쓴 글, <파리의 우울> 황현산 선생의 주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