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상과 담론
지나가는 단상들을 잡지 않고 자유 주행하라고 내버려 뒀더니 머릿속이 지방 덩어리가 낀 듯 답답했다. 방향 설정은 해두자 싶어서 메모를 남긴다. 이걸 행동 심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플라토나이징’(platonizing, 사물을 분류하는 인간의 강박적 행동)에 해당할 것이다.
내게도 많은 버릇이 있다. 그중 책에 대해서라면… 가볍게 시작했다가 중요한 혹은 연결되는 주제를 발견하고 독서 진행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그중 하나다.
김동성 《미주(米洲)의 인상(印象)》을 읽다가도 그랬다. 동양인이자 한국인으로 최초로 미국에 대한 인상을 현지에서 영문으로 출판한 이 기록을 읽다가 서양인이 동양을 바라보는 헤게모니를 파헤쳐 들어가는 에드워드 W.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비교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동성도 1928년에 한국인 최초의 한영사전을 펴낼 정도로 지식인이었지만 에드워드 W. 사이드의 탁견과 명문장에 비한다면… 이를테면 역사뿐 아니라 학문, 앎 전반에 유념해야 될 이런 지침 같은 것.
“나는 왜곡과 부정확함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우려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부정확함이란 너무나도 교조적인 일반성과 너무나 실증주의적으로 편중된 개별적 초점으로부터 생기는 부정확함이다.”
_ 에드워드 W.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에세이와 담론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다니 잔인했다. 에드워드 W. 사이드의 신중하고 날카로운 문장 때문에 E. H. 카가 자주 떠올랐다.
《미주(米洲)의 인상(印象)》 잉문예술덕후 리뷰 기한 어긴지 4일째...아아))
수제 자몽청과 탄산수로 스스로 응원하고 있으나 잘 안 되고 있다...
2. 농담이라도 넣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세계사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을 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위에서 언급한 에드워드 W. 사이드의 정공법 돌파와 좀 다르다. 스스로도 강조했다시피 무수한 지성들이 역사에 대한 열변 만찬에서 한 마디씩 다 한 마당에 전문가를 능가할 무엇을 보여 주겠다는 말인가. 쇤부르크는 ‘아마추어의 힘’을 강조하며 언론인다운 언어 잽과 노련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도움도 받았다고 말하며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까지도 언급하지 못했던 아니 제국주의와 과학 기술의 확산으로 뭉텅그려서 놓쳤다고도 볼 수 있는 ‘공간 혁명’(카를 슈미트)을 가져오는 대목은 흥미로웠다. 전자책 미리 읽기로 이 대목까지 밖에 못 봐서 궁금하다! 지난달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놔서 다행이다!
3. 《세상의 끝》, 《단지 세상의 끝》, 더 끝은 어디야
폴 서루의 첫 단편소설집 《세상의 끝》이 국내에 도착했다. 폴 서루를 기억할 작가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알라딘에서 무료로 배포한 ebook 《영원과 하루》에 수록된 폴 서루 『아프리카 방랑』을 읽고 나서였다. 읽어볼 만한 ebook이니 안 읽으신 분은 챙겨 보시길.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403163
단편 「세상의 끝」을 읽다가 장뤼크 라가르스 《단지 세상의 끝》 원작과 자비에 돌란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생각이 났다.
죽음을 앞두고 그동안 멀리했던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과거를 정리하러 파리에서 미국으로 온 루이는 가족 개개가 자신에게 갖고 있는 기대와 분노를 표출하고 있어 자신을 전혀 내보이지 못한다. 오해와 불신이 쌓이는 딜레마 속에 그에게 이 문제를 풀 다음 기회란 없다. 통념처럼 가족이 이 세상의 시작이자 끝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아닐 수도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로 인한 관계의 일그러짐과 파국을 특히 강조해왔다. 수많은 여행을 통해 체득한 듯한 깊은 사색과 서늘한 시선이 느껴지는 폴 서루의 단편 「세상의 끝」도 가족과 관계에 대한 것에선 그리 다르진 않은 거 같다. 런던에 있는 ‘세상의 끝’이라는 낯선 지명의 지역으로 이주해 가족의 끝장을 마주하는 로바지. 오래간만에 관심가는 단편소설집이다.
4. 언제나 좋아하는 메뉴
나는 미식에 흥미가 없는 사람인데 한번 좋아하면 질리지 않고 먹는 습관이 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홈플러스 몽블랑제 콜드브루티라미수는 가격 대비 웬만한 카페보다 낫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같이 먹으면 천국일세~ 추천!
5. 8월에도 알라딘 굿즈 침공은 계속된다
오늘도 몇 번을 고민하다 결국 oTL .... 살 게 아직도 많으니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을 터...
이와이 슌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한 장면
이런저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주워와 논두렁에서 감상하는 자가 되고 싶다.
6. 연필에 대한 한 가지 TIP
몽당연필과 새 연필을 강력접착제로 붙여서 쓰면 낭비가 없다. 하단 사진을 봐서 알겠지만 거의 심 끝까지 쓸 수 있다. 강력접착제 연결부로 인해 연필깎이에 손상이 갈 거라고 우려하는 연필깎이 애호가들에겐 무식한 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중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