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스 무하(1860~1939) 작업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슬라브 서사시> 연작 같다. 세계사로 보자면 한국보다 풍파를 더 많이 겪었다고 할 수 있는 체코에서 태어나 가난하지만 목가적인 풍경 속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무하 그림의 토대였다. 무하 그림의 신비주의적인 요소는 종교를 통해 형성된 것 같은데, 교회 성가대원이기도 했던 무하가 그림으로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도 교회 천장화를 보면서였다. 나중에 상징주의, 심령술, 최면 기법, 프리메이슨 활동 등으로 인해 신비주의가 더 강화된다. 무하가 작품을 위해 모델들에게 요구하거나 찍은 사진들은 그런 바탕에 있었다. 조국을 떠나 파리, 미국 등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아르누보 장식 화가라는 꼬리표를 얻은 것보다 조국에서도 이방인 취급당해야 했던 상황이 더 속상했을 거 같다. 중년에 접어든 무하는 슬라브 유대와 평화를 위해 <슬라브 서사시> 작업에 들어간다. 재산을 모아두지 않아 여유롭지 않은 탓에 기획에서부터 후원자를 만나 완성하기까지 20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중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어렵게 어렵게 그림을 그렸던 상황도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그린 그림 모두를 체코에 기증했는데, 체코가 2차 세계 대전 후 공산화되면서 <슬라브 서사시>가 시대착오적이고 맹신적인 애국주의 결과물이란 비난을 받으며 문서 보관소 지하창고에서 처박혀 있었던 걸 생각하면....

 

 

 

 <슬라브 서사시 연작 중 - 슬라브 민족 원래의 고향>, 1917, 캔버스에 템페라, 610X810cm

 

 

<슬라브 연작시>는 알폰스 무하 개인의 성취로 끝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던 1918년 무하는 11편의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하고, 이듬해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무하의 다른 작품들과 5점의 <슬라브 서사시>가 전시되었을 때 이 전시는 6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전시회에 다녀간 사람들은 체코가 겪고 있는 고통을, 슬라브인의 역사에 대해 처음으로, 혹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18년엔 무하가 조국을 위해 무상으로 국장과 우표, 지폐 등을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너무 부럽! 한국은 그럴 생각조차 못하는 나라-_-

 

 

 

 

 

체코 가면 무하가 디자인한 시장실과 무하 박물관을 꼭 봐야겠다. 그의 대형 템페라들을 실제로 보면 어떤 기분일까.

 

 

 

 

 

 

시대상황과 당시 사조 속에 무하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고 도움을 받았는지 이번에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 그토록 손이 많이 가는 장식성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작업을 소화했는데도 뭐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다니!

 

 

 

 

 너무도 감명적인! <황야의 여인>, 1923, 유채, 201.5X299.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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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13 0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체코의 교회 천장화는 서유럽의 천장화와는 또다른 느낌이 드네요^^: 장엄함보다는 친근함이 더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사진으로 봐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런 문화배경의 차이도 무하의 그림에 영향을 주었는지 더 친밀감을 느끼게 합니다. 마치 고등학교 등교 버스 안에서 이미연(<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 당시)같은 여학생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ㅋ (써 놓고 나니 역시 저의 미술에 대한 안목은 대책이 없네요.ㅜㅜ) Agalma님 즐거운 월요일 보내세요^^:

AgalmA 2017-03-13 18:09   좋아요 3 | URL
사진상으로 보면 좀 소박해보이기도 하죠? 슬라브 민족 전통 의상을 봐도 그렇고 화려하지만 어딘가 소박한 데가 있어서 그 문화적 특징인가 싶기도 하고요. 특히나 동유럽은 공산권 체제도 겪어서 소위 말하는 부르주아 문화를 배제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서 그런 느낌이 더 날 수도 있단 생각을 합니다.
응답하라1988도 아니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ㅋㅋ 안목은 있으신데 타임머신 타고 너무 멀리 가시는 거 아님까ㅎ
겨울호랑이님도 남은 월요일 저녁 행복 가득하길/

겨울호랑이 2017-03-13 20:46   좋아요 1 | URL
ㅋ 개인적으로는 80년대말 90년대 중반까지가 아름다운 추억의 시대였던 것 같아요.. 지금 보니 거의 back to the future 수준이군요 ㅜㅜ

AgalmA 2017-03-13 20:54   좋아요 1 | URL
서구에서 히피 시절이었던 60~80년대의 개인적 자유를 우린 그때 맞이한 거죠. 그런 세대가 좀 더 나은 시대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많은 걸 바꾸기도 했지만)... 지금이 그 노력의 최선이란 결과라고는....심리적으로 거부하고 싶네요ㅎ; 저도 그 당시엔 제 한계 속에서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hnine 2017-03-13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르뷔지에 전시 보러 예술의 전당 갔을때 알폰스 무하 전시도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안되서 못보고 왔어요. 아직도 하고 있나 모르겠네요.

AgalmA 2017-03-13 18:20   좋아요 2 | URL
12월부터 했던 터라 3월 초에 끝났죠. 늘 관심을 받는 예술가라 또 올 겁니다. 그림부터 인테리어, 보석세공까지 작품도 워낙 많아 전시할 거리가 많아 더 그렇죠^^

북프리쿠키 2017-03-13 11: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르셰미술관전 보러 가는김에 코르뷔지에, 알폰스 무하를 봤었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황야의 여인~눈에 확 감기네요^^

AgalmA 2017-03-13 18:18   좋아요 4 | URL
이 바쁜 일상에서 하나라도 챙겨 본 게 어딥니까^^ 멀리서 일부러 보러 서울까지 오셨잖음.

알폰스 무하는 대형 템페라를 봐야 그 진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구글로 무하 박물관 내부 이미지 찾아보니 그 위용이 대단하더군요. 디자인 실력 뛰어나 포스터나 광고 삽화를 그린 재주많은 예술가 정도가 아녔어요. 그는 진정 예술가였어요. 무하 때문에 체코에 가야될 이유가 또 생겼죠^^

[그장소] 2017-03-13 1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로필이 산뜻한 새벽 빛!!^^ 물빛인가? ㅎㅎㅎ예쁘네요~

AgalmA 2017-03-13 19:44   좋아요 3 | URL
저는 꿈빛이라고 그렸습니다^^/

[그장소] 2017-03-13 19:46   좋아요 3 | URL
오오, 꿈 빛이여~^^? 좋다 . 좋아요!^^ 예쁘게 발음되는것이~ 만족스럽네요!

보슬비 2017-03-14 0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저 시청안에 있는 카페에서 디저트와 칵테일을 마셨었지요.ㅎㅎ
하지만 무하박물관은 계속 미루다 못봤어요.^^;;

AgalmA 2017-03-14 01:19   좋아요 1 | URL
ㅎㅎ 근처까지는 가셨네요. 만남도 때가 있다고 하죠. 다음에 가실 때는 무하박물관 잊지 않고 가실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