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가 스타일이다

플로베르의 말을 김화영 번역가가 해설에서 정리했듯 작품은 스타일의 힘으로 지탱되어야 하지만 그 힘은 생각과 혼연 일체가 됨으로써 생겨나는 <내면적 힘>"이다. 로베르 마담 보바리에서 내가 눈여겨 본 스타일자유로운 시점 이동 생략의 묘사플롯이다.

 

소설을 써본 사람은 알 텐데 내 생각엔 의식의 흐름기법보다 효과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여러 시점을 병행하는 게 더 어렵다. 여러 시점을 쓰더라도 장이 바뀔 때 화자를 바꾸지 보통 같은 장에서 시점을 잘 바꾸지 않는다. 전개가 난삽해 보이지 않으려면 치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851(1856년 탈고)에 이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니 신선하다. 플로베르는 첫 문장에서 1인칭 복수형(우리) 시점으로 시작해 샤를르 보바리를 소개한다. 그의 특성을 관찰하게 하는 멋진 장치다. 3부 마지막 장에서 남은 이들의 삶을 차갑게 보여주는 3인칭 관찰자 시점에 이르기까지 흥미롭게 변주되고 있다.

 

묘사와 플롯은 찬탄이 절로 나온다. 마담 보바리가 재판에 회부된 요인 중 하나인 풍기 문란죄에 해당하는 마차 장면은 구체적인 내부는 보여주지 않으면서 시내를 내달리는 마차와 창밖으로 내민 손으로 정황을 극대화한다. 엠마(보바리 부인)와 로돌프가 숲 속에서 처음 갖는 정사 신도 정황만 암시된다. 독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을 안 보여 주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속물이라고 평가하며 소설을 읽고 있을 독자의 속물적 욕망을 플로베르는 채워주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의 백미를 플로베르가 가장 공들인 농사 공진회 장면으로 꼽고 싶다. 군중들의 각양각색의 모습 속에서 상류층 인사의 허례적인 연설과 보바리에게 루돌프가 수작을 거는 말을 교차편집특별함과 우스꽝스러움의 대비를 고조시키고 있다.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부르주아들의 면전에 반세기에 걸친 노예 생활의 보답으로 상을 받는 시골 노파의 모습과 부르주아 로돌프가 즐기다 버릴 생각으로 엠마를 유혹하는데 성공하는 모습은 정확히 상응하고 있다. 두 번째 백미는 알다시피 레옹과 엠마의 노트르담 밀회에서부터 이이지는 마차 장면이다. 마차의 질주와 정사가 역시 상응하고 있다.

 

 

 

숙명의 문제인가 선택의 문제인가

쥘 드 고티에의 명명으로 보바리즘(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이 탄생했다. 어머니를 잃고 수도원에서 소녀 시절을 보낸 엠마는 낭만적 소설을 읽으며 허영과 환상의 세계에 빠져 현실의 욕구 불만을 그릇되게 풀어가다가 수많은 실패 속에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과연 그녀만 그럴까. 엠마의 내면은 전혀 볼 줄 모르면서 자신의 일과 가정 속에서 행복하다고 믿은 샤를르? 자신의 재력으로 여성 편력을 재미 삼아 살아가는 로돌프?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엠마를 천사로 만들고 사랑하다 장래를 생각해 그녀를 버린 레옹? 오로지 돈의 축적만 노리며 악랄한 고리대금업으로 사업 확장만 생각한 뢰르? 종교에 맹목하면서 고지식한 훈계를 늘어놓는 부르지니엥 신부? 과학과 진보를 부르짖지만 권력과 이익을 계산하기 바쁜 약제사 오메? 그들은 보바리즘적 인간이 아닌가? (자꾸 바보리즘이 나오려고 하네;)

욕망은 인간에게 근원적인 딜레마이다관건은 어떤 선택이 아니라 선택 뒤 어떤 반성적 삶을 사는가이다. 엠마의 잘못은 선택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선택의 엔트로피로 치닫기만 했다는 것.

 

 자코 반 도마엘 영화 미스터 노바디 Mr. Nobody(2009)는 플로베르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줬다. 9살 니모는 부모의 이혼을 겪게 되는데, 부모를 선택하는 것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아버지를 선택했을 때는 우울 장애 앨리스를 사랑하게 되고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되는 인생, 앨리스에게 차여 사랑하지 않는 진과 결혼해 오로지 성공을 목적으로 사는 공허한 인생, 어머니를 선택했을 때는 새아버지의 딸 안나를 만났다가 헤어져 오랜 이별 끝에 사랑에 성공하게 되는 인생.
세포 재생 기술이 개발되었음에도 2092년 니모는 118세로 자연사를 선택하는 최후의 인간으로 이슈가 된다. 그에겐 수수께끼가 있는데 자신의 진짜 인생을 알지 못한다. 그는 지금 살아 있는데 그가 말하는 어떤 인생에서든 그는 34살에 이미 었다.

 

앨리스를 만난 인생에서는 그녀의 유골을 뿌려주기 위해 탄 화성행 우주선과 운석의 충돌로, 진과의 인생에서는 권태를 모험으로 풀려 했기에 암살로, 안나와의 인생에서는 수영장 관리사까지 했으면서도 익사로, 그가 선택한 인생이 부른 죽음의 모습이다. 매우 도식적일 수 있지만 감독은 니모와 관객의 선택 범위를 확대시켜 놓았다. 현실적으로 보면 니모의 이 많은 기억은 치매에 따른 혼란 증상일 수 있고, 평행우주 개념으로 보면 동시에 다른 세계를 산 그의 여러 삶이고, 미래를 볼 줄 아는 9살 소년의 니모 시점으로 보면 아직 선택하지 않은 미래상일 수도 있고, 15살 니모가 쓰고 있는 소설 속 세계일 수도 있다는 다양한 층위를 보여준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고 가능성은 다양하다. 마담 보바리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엠마의 삶이 다르게 풀릴 수도 있었다. 운이 나빴다거나 여성이어서라거나 시대가 그랬다고 말하기보다 나는 인간의 근본적 슬픔을 생각해본다. 19세기 엠마의 고민은 인과율이었다. 그녀는 과거를 되돌릴 수 있길 얼마나 바랐던가. 아직 많은 가능성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던 소녀 시절, 샤를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가능성하나의 선택 뒤 파국으로 치달아가기만 한 선택들. 21세기 니모도 불우한 어린 시절과 안타까운 사랑,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겪지만 엠마와 달리 모든 인과를 경험해본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과거를 되돌리기도 하면서 가능한 삶을 다 살아봤고 결국 모든 선택이 다 의미 있었다고 긍정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자는 말은 단순한 결론이다. 카오스(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나비 효과)나 비둘기 심리이론[*]처럼 선택에서 확률적 변수는 늘 존재한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지만 샤를르가 맞는 비극이 바로 그런 예이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인간이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에 몰두하는 배우이며 등장하는 시간과 퇴장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엠마는 자신의 출생을 정할 수 없었고 니모는 자신의 부모를 골라서 태어났다. 엠마는 자살을 택했고 니모는 자살 같은 자연사를 택했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죽지 않을 수 있는데 죽음을 택하는 게 우리의 유일한 진짜 선택인지도 모른다. 우유부단하고 생각 많았던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로 그토록 고민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되어 빅 크런치 끝난다는 종말론이 아니더라도 삶을 알아갈수록 존재는 종국엔 소멸로 가는 거 같다. 다만 엠마와 니모, 플로베르와 자코 반 도마엘의 비교처럼 우리의 사유, 스타일, 태도가 다양해진다고 봐야 하겠다. 22세기 인간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 궁금하지 않은가. 지금 당신은?

 

 

 


 

 

[*] 비둘기 심리이론: 행동심리학자 스키너의 심리 상자 실험을 통해 잘 알려진 예로, 날개를 퍼덕이거나 버튼을 누를 때 먹이가 지급되면 비둘기는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나 비둘기의 선택으로 원하는 것이 정확히 나타날 근거는 없다. 불확정성원리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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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1-23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느냐 사느냐ㅡ이대로냐 아니냐 ( 창비 판 ) 이 넘 잘 어울리는 구절이네요 . 죽느냐도 어울리지만 이대로냐 ..아니냐~ 내쳐 말아먹은 인생 내내 망할까, 아니면 돌아서 이제까지를 바꿀까 ...ㅎㅎㅎ
넘 재미있게 잘 읽고 가요!^^

AgalmA 2017-01-23 22:44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이 재밌다고 하시면 재밌는 거 맞는 듯ㅋㅋ 저도 쓰면서 재밌었걸랑요~
미스터 노바디에서도 이대로냐 아니냐 비슷한 대사가 있는데,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라는...

[그장소] 2017-01-23 22:56   좋아요 1 | URL
그 영화 볼까 말까 ㅡ 하고 있었는데 , 봐야겠군요! 당장~~! ^^

후애(厚愛) 2017-01-23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조심하세요.^^
그리고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시구요~

AgalmA 2017-01-23 22:3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후애님도 감기 안 걸리게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날이 추워서 웅크려 다니니 몸이 여기저기 결리네요^^;; 스트레칭을 잘 해줘야 될 거 같아요~

시이소오 2017-01-23 2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는 보봐리다‘라고 외치고 싶게 만드는 페이퍼네요.

재독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글입니다. ^^

AgalmA 2017-01-23 22:40   좋아요 1 | URL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는 바바리맨이다~ 장난치고 싶네요ㅎㅎ

너무 재밌어서 몰아쳐 읽었어요. 놓친 게 많을 겁니다. 재독하면 또 무엇이 보일까 기대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1-23 2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평집 내셔야 합니다. 글 넘 좋습니다. ^^

AgalmA 2017-01-23 22:43   좋아요 2 | URL
예?(채사장 버전) 마담 보바리와 미스터 노바디를 연결하며 분석해보는 작업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런 글은 읽는 사람보다 제가 더 재밌죠ㅎㅎ 자유로운 생각회전 이런 맛에 글을 쓰는 거 같아요^^

북다이제스터 2017-01-23 22:57   좋아요 1 | URL
미스터 노바디는 저도 작년 챙겨 본 영화인데, 좋았습니다. ㅎ 평행 우주론은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

물고기자리 2017-01-24 0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글을 굳이 읽고 답글을 남겨 주신 덕분에 저도 아갈마 님의 멋지고 훌륭한 리뷰를 감상했습니다!!^^

카프카나 플로베르처럼 치밀한 머리형 작가들에겐 비슷하게 숨 막히고, 비슷하게 경탄하게 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카프카가 플로베르를 그렇게 격찬했다죠 ㅎ)

직관적인 예술가 유형의 글은 심상으로 바로 흡수된다면, 플로베르나 카프카의 글은 구체적인 문장으로 기억나요. 지금도 계속 생각나고, 맴도는 문장들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 속에서 스스로 숙성되게 만드는 능력이야말로 위대한 작가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언젠가 <감정 교육>을 시도해볼 생각인데 거기에서 또 만나게 될 것 같네요^^

AgalmA 2017-01-24 01:04   좋아요 2 | URL
맞아요 맞아요^^ 이미지 글쓰기 유형은 말씀처럼 바로 스며들어서 아, 좋다 하고 굳이 글로 캐고 싶지 않은 맘도 들어요^^ 반면 끝없이 조탁한 글 보면 그 열정에 화답하고 싶어 글을 쓰고 싶기도 하죠. 하루키의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묘사와 문장 생각하면 그도 위대한 작가 반열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고양이라디오님 서재 갔다가 하루키가 문단 사람들 속에 있느니 투구벌레와 씨름하는 쪽이 더 낫다라고 표현한 거 보고 바로 연상되어 싱글싱글 웃었죠ㅎㅎ 꿈에도 나올 거 같음ㅎ!
저도 <감정교육> 준비한 터라 곧 만나겠네요^^/
프루스트가 플로베르의 어떤 걸 좋아하고 영향받았는지도 어렴풋이 보이고 플로베르 더 읽어보면 더 잘 알겠죠. 재밌어요~

서니데이 2017-01-26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