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낙태 금지가 과연 생명 존중을 위해서였을까.
한국에서는 1953년 낙태죄가 형법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아이 아버지는 문제에서 빠지고 의사와 부녀만 처벌을 받는데, 의사에 대한 처벌이 더 무거운 건 뭘 뜻할까. 아이를 낳고 안 낳고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가지겠다는 권력 의지가 엿보인다. 또한 변덕도 심하다. 1966년 가족계획 사업을 추진하며 낙태를 조장했고, 2007년에는 몇몇 낙태 사유를 삭제하기도 했다. 2009년엔 낙태 근절 운동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지금은 급격한 저출산 현상으로 국가 위기에 봉착하니 보건복지부가 낙태금지법을 본격 들고 나왔다. 비도덕적 의료 행위 근절이란 간판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부의 속셈이 너무 환하게 보인다.
관련 기사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2794
위 기사에서 안치용 교수는 ‘낙태죄 폐지가 어렵다면 사정(射精)금지 입법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난센스 같은 말이기도 하지만 남녀평등과 인권에 대한 일침이다.
이 사안은 향후 대권 주자들의 공약 쟁점이 될 것이다. 여성 표를 얻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위키백과를 보면 낙태에 대한 국가별 입장을 볼 수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2%99%ED%83%9C%EB%B2%95
임산부 요청 시 낙태가 합법인 나라에 북한이 있다는 데 놀랐다. 식량 지급의 문제도 있을 테지만 국가 경쟁력으로 따지자면 인구는 많을수록 좋을 텐데? 낙태가 합법인 나라를 보면 생식권을 개인에게 준 것에서 그 나라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 북한 인권 결의안 문제로 또 시끄럽던데 그 저의(底意) 모르는 바 아니고, 낙태 문제를 놓고 보면 제 얼굴이나 잘 바라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의 항목을 봤다. ‘성폭행, 근친상간, 임신부의 생명, 신체적·정신적 건강, 태아의 결함 이유 외엔 불법’. 사회적 여건 불문하고 경제력이 없어도 무조건 낳으란 소리다. 이 입장은 폴란드도 같았지만, 종교의 힘이 강한데도 최근 폴란드는 낙태금지법을 전면 폐기했다.
관련 기사 : http://www.huffingtonpost.kr/2016/10/14/story_n_12484722.html
세계적인 경제 침체에 유효 수요층으로 여성이 타깃이 되었고, 국가는 경제 체제에 여성을 대거 진출시켰다. 낙태금지법으로 여성에게 아이도 많이 낳아야 한다는 요구까지 하고 있는 이 세계는 가증스럽다. 한국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 다시 경제 시스템에 들어갈 때 열악한 비정규직과 임금차별 밖에 돌려줄 게 없다. 군 가산제처럼 출산 가산제가 있지도 않을뿐더러 눈칫밥을 감수해야 한다. 딴 주제이지만 요즘 모병제가 다시 이슈화되고 있는데 현실성을 따지기보다 현실화되도록 따져야 한다. 남성과 여성, 기혼과 비혼 경계 없이 차별받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려면 이러한 모색이 많이 나와야 한다.
돌아와, 낙태 문제에서 “생명은 소중하다”를 대전제로 놓기보다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생명의 처지와 의무도 동등한 무게로 살펴봤으면 좋겠다.
억압적인 삶의 양식 속에 괴로워하는 인간 군상은 Pina Bausch(피나 바우쉬) 무용극이 주로 보여주는 특징인데, 《Cafe Müller》(1978)에서도 극적으로 보여준다.
2. 존속 살해와 보통 살해에 부과되는 형은 차별인가 아닌가
얼마 전 [그것은 알기 싫다]는 “일본의 형법을 바꾼 존속살해 사건”(https://soundcloud.com/xsfm/196b)을 다루었다. 忠과 孝를 도덕적 잣대로 두고 보통 살해보다 존속 살해에 지나치게 높은 형을 부과하는 부조리함을 비판했다. 친아버지에게 수년간 성폭력을 당해 딸을 다섯이나 낳은 여성이 결국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서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존속살해라는 이유만으로 형이 높은 것에 위헌성이 제기되어 1973년 일본은 존속 살해 형법을 위헌으로 폐지했다. 참고로 1975년엔 프랑스가 낙태를 합법화했다.(목수정《파리의 생활좌파들》 참고)
그렇다면 한국은? 존속 살해는 죄의 본질보다 신분 관계를 중요하게 따진다. 이혼하면 남인데도 배우자의 직계 존속을 살해할 경우도 존속 살해에 해당된다. 원래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었지만 1995년 개정으로 사형, 무기, 7년 이상 징역으로 기준을 바꿨다. 1973년 이전의 일본의 존속 살해 형법 수준이다. 돈이 얽힌 패륜이라 불릴 만한 사건도 있지만, 많은 존속 살해가 가족의 성폭력과 학대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일 때보다 자식이 부모를 죽일 때 형량과 비난이 더 과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한국의 존속 살해 형법은 공통의 법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하는 도덕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에서 “존속살해"를 검토해 보시길.
https://namu.wiki/w/%EC%A1%B4%EC%86%8D%EC%82%B4%ED%95%B4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봉건적 인식을 짚어 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