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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가능한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5 Vol.1 ㅣ 스켑틱 SKEPTIC 1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KOREA 《SKEPTIC》 창간호에서 내가 중요하게 본 핵심은 ‘확증 편향’에 대한 경계와 ‘유비(analogy)적 사고’의 중요성이었다. 합리적 회의주의를 표방하는 《SKEPTIC》을 읽는 기본자세이자, 뢰벤스타인이 "현재 미국 국민 총생산의 30%가 양자물리학이 적용되는 분야의 일에서 나온다"(p274)고 말할 정도로 막강해진 과학 패러다임 속에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1. 각각의 보고들에서 ‘확증 편향’ 사례를 대략 살펴봐도 이 정도다.
※ 확증 편향: 자신의 가치관, 기대, 신념, 판단에 부합하는 확증적인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편향된 현실 인식 방식
●캐럴 태브리스 <긍정심리학의 그늘>
사람들은 낙관주의에 지나치게 가치 부여를 하고 있다. 비관주의자보다 낙관주의자 수명이 더 길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연구결과와 낙관주의 폐해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그래도 낙관주의가 더……’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칼럼을 읽어보시길.
●캐런 스톨츠나우 <돌고래와 대화할 수 있을까?>
돌고래의 언어와 지능에 대한 과대평가와 맹신이 제시되는데, 돌고래의 초음파로 (진단받은 적도 없는) 고환암이 나았다는 사람의 사례가 소개되기도 한다.
●레베카 앤더스 버크너 & 존 버크너 5세 <당신의 혈액형에 당신은 없다>
혈액형 성격론의 비과학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 시작된 비과학적인 연구라는 인식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아무래도 그 인간은 B형스러워.’ 농담으로라도 그러지 마시길. 확증 편향의 대표 주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스콧 히펜스틸 <무엇이 토리노 수의의 검증을 막고 있는가?>
‘토리노의 수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이 보인다는 직물이다. 종교적 진품인지 우연의 산물인지 가톨릭 교회와 과학계 사이에서 논쟁 중이다. 이 사례도 각자의 입장과 접근에 따른 충돌되겠다.
●로버트 E. 바톨로뮤 <억압이 있는 곳에 히스테리가…>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악령에 의한 것으로 믿고 있는 여러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심령과 질환을 분별할 해결책은 아직도 묘연해 보인다. 바톨로뮤의 다음 맺음말이 단정인가 합리적 회의인가 판단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환자이며,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수록 취약해지는 것이다.”(p69)
●JUNIOR SKEPTIC <심령 사진의 비밀>
바로 위 바톨로뮤가 지나친 자기 확신을 경고했다시피 바로 그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 사건이 이 심령사진 사례이기도 하다.
‘이중노출’ 기법으로 유령 이미지를 사진에 덧씌운 사기라는 게 여러 번 증명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심령사진의 진실성을 믿었다. 찰스 다윈과 비슷한 시기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주장한 엘프리드 러셀 윌리스 같은 천재 과학자도, 탐정 소설의 대가 코난 도일도 심령사진을 의심하지 못 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구나 웃음이 나기보다 인간의 허점에 대해 씁쓸해지는 일화였다.
●해리엇 홀 <기적이 있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
‘기적’ 은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는 이견 중 하나다. 유신론자들의 기준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일들은 ‘기적이자 신의 증명’('틈새의 신 논증')이지만, 과학자들의 기준에서 기적은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재증명을 위한 재현이 어렵다는 게 양측에게 난제다.
성모 발현지인 프랑스 루르드로 몰려드는 순례자들,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적 등의 사례는 위 바톨로뮤가 말한 집단 심리 현상과 유사하다. 즉 다수의 목격담과 경험과 증언만으로 ‘기적’이 확정 사실일 수 없다. 치유=기적의 논리는 단순한 설명을 더 타당하게 생각하는 ‘오컴의 면도날’ 오류로도 볼 수 있다. 해리엇 홀의 다음 말이 나는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기적적인 우연의 일치와 기적적이지 않은 우연의 일치를 구분하는 방법은 없다.”(p233)
●미클로스 자코 <신을 위한 변론>
‘세상일에 개입하지 않는 신을 믿는다’는 온건한 유신론자인 자코의 주장은 진화론을 가뿐히 무시하는 확증 편향 일색이었다.
많은 주장 중 “생명은 생명에서, 지성은 지성에서 생겨났다는 편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를 가져와 보자.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낳는다는 것은 진화생물학에서 오래된 기본 논지다. 그러나 본지에도 소개되고 있는 ‘물고기에서 인간까지’의 진화를 말하는 닐 슈빈의 유명한 과학 입증들을 무색하게 하는 단순 논리가 걸린다. 자코의 논리에 따르면, 태아 때의 아가미와 퇴화된 꼬리 흔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성은 물고기의 지성에서 왔다고 말해야 하는가.
●그 외
다중 우주론도 어김없이 신학자들의 창조론과 대치 중이다. “창조자가 생명 탄생을 위해 우주를 미세조정하였다”는 미세조정 논증의 오류는 빅터 스텐저가 <우주는 신의 작품이 아니다>에서 전투적으로 따지고 있는데 참고해 볼만하다.
논리나 과학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바를 더 우선시하는 인간의 감정과 인식 방식, 즉 확증 편향성은 이토록 무궁무진하다. 지금 내 분석도 확증 편향에 치우친 자세가 아닌지 두려울 정도다.
※ KOREA《SKEPTIC》vol. 3에서 소개되고 있는 '지구 공동설'과 19세기 말 '셈을 하는 말' 한스를 둘러싼 헤프닝도 확증편향과 자기 기만의 대표적 사례다.
2. 유비적 사고의 중요성
●크리스 에드워즈 <그것은 무엇과 비슷한가? 과학적 유비의 과학>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이매뉴얼 샌더 《현상과 본질:사고의 원동력이자 결과물, 유비》에 대한 서평이다. 수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사고방식의 유용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이 유비와 은유를 통해 사고하는 인식 방식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유비를 통해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만큼 호프스태터와 샌더는 수학과 언어의 통섭을 권장한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통찰이 추상적인 유비를 정교하게 구체화한 것이란 주장이 흥미로워서 그들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아닌 게 아니라 본지의 주요 쟁점인 시간 여행 칼럼에서 재미난 유비적 사고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앤드류 버나딘의 칼럼을 보면, 서핑 타기와 시간 팽창(시계가 느려지는 현상)의 유비, 소나무를 통해 본 시간에 대한 관계적 관점의 예시(‘키가 더 큰’ 이란 속성은 우리가 만든 관계성이다), 시계를 찬 양쪽 팔 돌리기와 시간여행의 유비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뒤이어 제임스 리치먼드의 반박 세례가 이어진다;
시간 여행 논쟁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시간 개념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자세한 논점 차이는 책에서 확인하시길~ 일반인인 우리들의 시간 개념이 매우 허술하다는 걸 깨닫게 될 지도.
시간 여행하기 전에 시간 개념 가방 챙기기도 버거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