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계속 당신 생각을 했어.
여러 사람 우울하게 할까봐 참고 참았는데, 결국 쓴다. 글의 성질은 영원히 이런 것이지.
작년부터 내 카톡, 텔레그램 프로필 사진은 노 대통령과 당신이 양손을 번쩍 들고 있는 사진이지.
무대를 그렇게나 많이 올라가 놓고도 당신은 어색하고 부끄러워하는 표정이라서 그 절박한 진심이 잘 느껴져.
정치를 경멸했으면서도 이젠 행동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 제일 잘 알았으니까 감수해야 했던거야. 아니, 이젠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것인 거 였지.
노 대통령 서거 때 나는 내 친구를 걱정했고, 당신이 사망했을 때 그 친구는 나를 걱정했지. 당신 발인 날이 하필 내 생일이라서 얼마나 서러웠던가. 내가 죽고 싶은 날로 생각하는 그 날, 당신을 보내는 게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그 날, 분명 내 일부도 죽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 날, 저녁 메뉴가 생생히 기억난다. 장례식장까지 같이 동행해주었던 친구가 어떻게든 기분을 북돋워주려 노력했지만, 우리가 즐겨 찾던 식당은 프랜차이즈 카페로 바뀌어서 우린 그 주위를 한참 맴돌아야 했지. 여기가 아닌가. 마침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우린 거리에서 망연했지. 모든 인간이 그랬듯 살아있는 내내 사라지는 걸 보고 또 볼 테지. 뭘 먹어도 거기서 거기인 상황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린 찾고 있었지. 하하. 신천을 빙빙 돌다가 그냥 지쳐서 들어간 식당에서 먹은 질기고 맛 없던 냉면. 그런 것들이 다 내 인생이지. 뭘 맛있게 먹었으면 이 기억은 달라 졌을까. 죄책감에 또 울상이겠지. 지금은 맛 없는 냉면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지. 아, 나 라는 인간.
당신에 대한 내 애도가 여전히 걸음마 지경일 때, 여기서 슈만과 당신에 대해 쓴 글이 처음으로 <이 달의 페이퍼>가 됐을 때 나는 얼마나 기쁘고 부끄럽고 슬펐던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와중에, 그만두길 다짐한 사무실에서 다급하게 일 좀 해달라고 전화가 왔고 나는 NO라고 말했다. OK 캐시백에선 암보험을 들라고 전화가 왔어. OK 캐시백이 이런 것도 하나? 내가 정중히 끊는 순간까지 상대는 간절히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지. 얼마나 비참한지,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이러지 않을 수 없는 걸까.
모두들 내게 무언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없어.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진짜로, 진짜로~그 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그 나이를 퍼먹도록 진짜 모를 수도 있는데, 진짜 라고 생각했던 게 ˝아주 오랜 후에야˝(2집 <Myself>) 아닐 수도 있는데...당신도 그걸 알았을 테지만 그 가사는 영영 고칠 수 없지. 순간의 박제, 이걸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걸 상대에게 원해. 그건 또 끝없이 변하고 폭주해.
이때, 당신 음악 ˝질주˝가 흐른다. 참 절묘하지 않아? 아아...
당신은 없고 당신 목소리는 남아있다는 게 신기해. 아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목소리는 당신처럼 강렬하고 단단해.
˝나는 이 책을 오랫동안 썼다. 거의 20년이 걸렸다. 발전소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과학자, 의료인, 군인, 이주민, 주민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눴다. 체르노빌은 그들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그들의 땅과 물 뿐만 아니라 그 속과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오염시켰다. 그들은 이야기하며 답을 모색했다. 우리는 같이 고민했다. 그들은 자주 서둘렀고,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들이 하는 증언의 대가가 삶이라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들이 반복해서 말했다. ˝적어 두세요.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이해 못 했지만 그렇게라도 남겨두세요. 누군가 읽고 이해하겠죠. 나중에, 우리가 죽은 후에......˝ 그들은 이유 없이 서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 중 많은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다행히도 살아 있는 동안 신호를 보냈다.˝
˝주변이 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어디에든 새로운 적이 있었다. 죽음은 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물, 불, 꽃, 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익숙했던 색깔, 모양, 냄새가 나를 죽일 수도 있게 되었다. 낯익은, 그러나 낯선 세계였다. 몇 킬로미터나 되는 오염된 땅에서 오염된 지층을 벗겨내고, 시멘트 컨테이너에 넣고 묻었다. 흙을 흙에 묻었다. 집과 자동차도 묻었다. 도로와 나무를 씻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중
하지만 우리가 글자로, 행동으로 옮겨도 삶은 무엇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절망스러워. 재레미 다이아몬드는 이 문제를 적확하게 짚고 있지. 이스터 사람들이 마지막 야자수 나무를 베어버리고 멸망했듯. 아무리 많은 정보로, 문자로 기록해도 소비와 망각에 빠져 석유파동, 가뭄, 홍수, 전쟁, 핵발전소 사고를 다시 겪듯.
재레미 다이아몬드 <왜 어떤 사회는 재앙적 결정을 내리는가>에서 진단한 ˝집단 의사 결정의 실패 요인 4단계˝는 어디에 대입해봐도 절묘하지. 핵 발전소, 인종차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정 교과서, 지구 온난화, 인터넷 악플, 북플, 내가 꾸리는 작은 사회 `인생`, 어디든...
첫째,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그 문제를 예측하는 데 실패한 사회가 있을 수 있다.
둘째, 문제가 닥쳤는데도 사회가 그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사회가 문제를 인지했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컬처 쇼크> 중
내가 제일 걱정스러워하는 건 셋째 요인 중 ˝문제를 인지하고도 불합리한 행동을 해서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 이유 `심리적 거부(psychological denial)`˝ 이 부분이야.
재앙 같은 결과가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부하거나 회피하려는 인간 심리. 홀로코스트는 이런 인간 성질에 기반되어 있었고, 여전히 이 세계의 전쟁과 악을 키우는 자양분이지. 그래서 나는 ˝개인주의˝, ˝자아˝의 강조를 매우 의심스럽게 보게 돼(˝자유˝는 너무 큰 범주라 넣지 않았어). ˝자신˝을 중요시하는 그 심층엔 회피 심리가 있는 게 아닌지. ˝나˝라는 곳에 숨어 눈을 전망대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지금 생존본능과 싸우자는 걸까.
이 모든 걸 아무리 많이, 무한히 연결해 생각하더라도 나는 이 세계도, 내 세계도 구할 수 없을 거야. `중요함`이란 아주 인간적인 기준이지. 세계 자체는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지만 모든 것에 무심하지. 실상 우리의 무심함도 세계에서 온 것일 테지.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를 들으며, 오늘은 이만 쓸께.
잠에서 깨면 언제나 꿈은 산산조각 나있지. 그런데 삶에서 그걸 매순간 이어 붙이고 있으니 울고 웃을 수밖에.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