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귀다"(p121)

"난 미쳤어"

-나는 미치광이이다. 내가 특이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관례적인 것의 조잡한 속임수), 모든 사회성(sociabilité)으로부터 차단되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타인들이 항상 그 무엇의 행동대원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것도 아닌 것의 병사인 나는 내 광기에서조차도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사회화하지 않는다"(je ne socialisepas)(마치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상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p177)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

바르트, 당신은 "네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미치는 거라고 했지.

맞아, 음악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난 계속 미치는 거야. 이 사랑은 언제나 날 거두어 주는데, 어떻게 변할 수 있겠어. 그녀는 온갖 모습으로 내게 나타나지. 락, 포스트 락, 일렉트로닉, 트랜스, 고딕 메탈, 샹송, 칸초네, 레게, 누에바 칸시온, 탱고, 삼바, 쿨 재즈, 비밥, 빅밴드, 클래식, 샤미센, 가요, 판소리 …… 그녀는 언제나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해.

 

오늘은 재즈야! 와하하하하하하.

 

 

 

 

빗속에 그녀를 만나러 가는 건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내 두근거림처럼 천둥도 치고 말이야! 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고 있었어. 그는 155년 전부터 내 맘을 알고 있었더군. 바르트, 당신은 날 미쳤다고 말하고 있지만, 밀은 내게 자유주의자라고 말하고 있었어. 관습과 도덕률에 얽매이지 말고, 남과 하나가 되려는 몰개성에 빠지지 말라고. 상대를 비판하고 존중하는 만큼, 나 자신을 반성하고 추구하면 되는 거라고, 책을 통해 나를 따스하게 바라봐주더군.

 

아아,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셨지. 커피 머신이 3개나 돼서 나는 시골뜨기 같은 기분으로 뭘 작동시켜야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걸까, 잠시 고민했었어. 아무 버튼이나 눌렀어. 다들 쭈삣쭈삣 서서 커피를 마셨지. 뭐든 어때. 곧 음악이 시작될 텐데! 그녀를 만날 텐데!

 

불이 곧 꺼졌어. 그리고 나처럼 그녀에게 빠지고 싶어서 조바심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 거야.

아, 당신도 이 곡을, 불을 끄고 천둥과 빗소리와 함께 같이 들었어야 했는데!

 

Miles Davis(with Palle Mikkelborg) / White [Aura](1985)

https://www.youtube.com/watch?v=xgYp9Pc1ptc 

(소스 코드를 막아놔서 이 곡을 들으려면 우린 광고를 좀 봐야 돼. 어쩌겠어. 여긴 자본주의 천국이라서 말야.)

 

하여간 들었어? 들었어? 들었어? 중간에 오보에 소리가 나와. 난 깜짝 놀랐어. 재즈에서 오보에가 나오는 게 흔한 일이 아니니까 말야. 바깥의 천둥소리는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지.

아아, 그녀는 정말 사람 안달 나게 해!

난 미친 듯이(이미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적어내려 갔어. 그녀는 언제든지 달아나려 한다는 걸 수십 년간 경험해 왔으니까.

 

 

 

 

Miles Davis Quintet / My Funny Valentine

어둠 속에서 자장가가 아니라 천둥소리와 함께 옥신각신하는 그녀들. 정말 그건 다 환상 같았어.

 

 

 

Miles Davis - Call It Anything (Miles Electric)

드랙퀸 같았지. 새까만 피부와 새빨간 가죽 재킷을 입은 마일즈 데이비스는 곧 날아갈 새 같더군. 그의 은사였던 버드(Charlie "Bird" Parker) 만큼이나 탁한 눈을 한 채.

아하하하, 지금은 카메라 플래시조차 병적으로 싫어하는 우리의 예민한 키스 자렛이, 그 옛날 저기서는 얼뜨기처럼 머리를 흔들어대며 건반을 두드려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그도 그때는 물불 안 가리고 사랑을 하던 청년이었던 거야!

누가 뭐라고 부르든 상관않는("Call It Anything!"), 오, 우리의 돌아오지 않을 히피 시대여!

 

 

 

 

 

 

 

내 애타는 사랑이 불쌍하게 보였는지, 응원하고 싶었는지 CD를 선물로 주더군. 내가 어제 저녁에 듣고 있던 그 [Kind of Blue]말야!!! 미국에서 매 주 5000장씩 팔려나간다는 음반이지. 난 공짜 사랑은 원하지 않았어! 수중의 돈을 탈탈 털어 마일즈 데이비스 평전을 샀어. 그녀에 대한 정보도 어차피 늘 충분치 않았으니까. 모자란 돈 5000원은 무통장입금으로 넣어드린다고 했어. 난 사랑에 미쳐 있는 거지, 남의 돈 떼먹는 사람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했지! 케루악이나 버로스였으면 얼렁뚱땅 시치미뗐을 수도 있겠지만ㅎ 풋내기라고 비웃으라지, 아무렴! 아무렴!

아, 어서 돈 부치고 마일즈 데이비스 책 봐야지!

 

 

마일즈 데이비스 음악감상회 Time Table : 처음엔 깨끗했는데, 끝나고 나니 온통 저렇게 돼 버렸어. 뒷면까진 보여주지 않을께. 

 

(옮긴이(김현준 재즈 평론가) 말 中)

"마일즈 데이비스는 무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 날카로운 단검을 들어 자신의 육부를 아낌없이 도려낸다. 테너 색소포니스트 조지 콜먼이 이를 받아 들고 능청스러운 살풀이를 추어댄다. 마일즈의 손에 들렸던 단검이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에게 전해지고, 베이시스트 론 카터가 주머니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허비 행콕에게 건넨다. 허비 행콕은 마일즈의 단검을 성스러운 손짓으로 곱게 닦아 다시 칼집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캠코더에 담고 있었다. 연주가 끝난 뒤, 토니 윌리엄스는 메모지를 하나 꺼내 캠코더에서 뽑아든 녹화 테이프에 다음과 같은 제목을 써 붙였다 - 어떤 외로움에 대한 보고서." (p9)

 

   -- 김현준씨는 자신이 번역해서가 아니라, 존 스웨드가 쓴 이 책이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해 쓴 최고의 평전이고, 마일즈 데이비스가 함께 살아온  재즈의 역사라고도 했어.

 

(서주 中) 

"인생을 이야기할 때 문제 되는 것은 결코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유동성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소설가 마틴 에이미스)" (p15)

"행동을 통해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 어찌 만만한 일이겠는가. 평전을 집필하는 데 있어, 빈 공간을 충실히 메워야 하고 이야기 구성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며 충분한 동기와 명확한 가치까지 부여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이 집필자를 소설가로 만들어버리기 일쑤다." (p16)

 

ps)

막 파리에서 왔다는 친구는, 그! 미셸 슈나이더(굴드! 슈만!에 미쳐있던 친구 말야)를 인터뷰하고 왔다는 거야!!! 물어볼 게 너무 많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 그는 또 어떻게 미쳐 있는지 정말 궁금했어! 자신의 러브레터를 곧 공개할 거라고 찡긋 윙크를 해 주더군.  

우리는 각자의 사랑을 싣고 그렇게 헤어졌어. 비가 사랑처럼 계속 내려. 내일이 두려워. 이 사랑이 또 다른 걸로 변할까봐.

또 편지 쓸께. 거기서는 무슨 음악 들어?

암튼, 당신 답장은 없는 거 알아.

 

ps2)

생각해보니, 나 저녁도 안 먹고 편지 썼어!

 

 

 

From 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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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4-03 0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달한 연서 보기 좋군요. 그리고 마을즈 데이비스 연주가 좋군요. 갑자기 프렌치커넥션이란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AgalmA 2015-04-04 02:20   좋아요 0 | URL
미치광이로만 안 보여서 다행입니다; 저는 마일즈 데이비스 후기 음악들만 접하고 그 불협들이 안 맞아서(너무 철없던 시절이기도 하고ㅋ, 음반을 사야 감상이 되던 시절이였던 지라) 집어던졌다가 미련 때문에 계속 찔끔찔끔 듣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랑데뷰 한 듯^^ 프렌치커넥션 좋죠. 저도 가끔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입니다. 트럼펫 관악기들 소리 한참 들으니 저는 Last Tango In Paris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cocomi 2015-04-03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찾아 들었어요. 아갈마님 덕분에 좋은 음악 잘 들었어요. 내친 김에 키스자렛솔로연주까지.. 감사해요.^^

AgalmA 2015-04-03 11:05   좋아요 0 | URL
키스 자렛 저도 트리오 보다 솔로일 때가 더 좋더군요. 도움이 돼서 기뻐요 :)

돌궐 2015-04-03 0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음악도 째즈, Agalma님 글도 째즈 같아요.^^

AgalmA 2015-04-03 11:06   좋아요 0 | URL
돌궐님께 재즈적 흥겨움을 드렸다니 성공! 저도 그걸 바랐어요ㅎ

수이 2015-04-03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뭡니까_ 가슴이 촉촉해지고 말았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_

AgalmA 2015-04-03 12:21   좋아요 0 | URL
어제 혼자 갔잖습니까. 혼자라서 더 절절하고, 혼자라서 아쉬워하면서(이 좋은 걸 나눌 수도 있었는데!)...누가 같이 갔으면, 사실 이 정도로 미치게 빠져들 지도 않았을 테지만요ㅎ
누군가와 같이 갔다면, 앞으론 절 안보고 싶어졌을지도 모르죠. 혼자 무언가를 잔뜩 행하고 있는, 이 인간은 뭔가....하면서;

네오 2015-04-0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가 누구닙까?

AgalmA 2015-04-03 13:42   좋아요 0 | URL
내 사랑, 음악이죠 :)
영화와 음악 중 누굴 택할래? 하면 저는 음악을 택할 겁니다.
음악과 책 중 누굴 택할래? 하면 저는 음악을 택할 겁니다.
무인도에 단 하나만 가져가라면 음악을 택할 겁니다.
시와 음악 중 누굴 택할래? 하면 저는 그 질문은 좀 잘못된 거라고 말할 겁니다. 그건 그녀의 다른 모습들일 뿐이라고.

그런데, 왜 나는 러브레터를 롤랑 바르트에게 쓰고 있는 것일까요...

만병통치약 2015-04-03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 님이 선곡해 주시는 음악은 항상 감미롭죠. 1964년 미국에서 흑인 재즈밴드가 음악을 연주시작하고 끝낼때 정장입은 백인들이 기립해서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깊네요. 그리고 히피축제도 대부분 백인 젊은이네요?

AgalmA 2015-04-03 14:53   좋아요 0 | URL
60~70년대까지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아직 백인 주류권이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그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얼마나 절실히 싸웠던가 생각해보면 알만하죠.
당시까지도 재즈클럽의 유명 재즈 흑인 뮤지션들(루이 암스트롱 조차도;) 욕을 많이 먹었죠. 백인들 무대의 꼭두각시짓이라고...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런 걸 비웃어주며 잘난 체 하는 센스~ㅎ

제 선곡에 대해선...음, 사람들이 저를 좀 어려워하는 것과 달리 제가 좀 엄청난 로맨티스트인가봐요ㅎㅎ!!! 헌데 이렇게 연애편지나 쓰는 찌질한;;;

곰곰생각하는발 2015-04-0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는 질문입니다만. 책 아래 깔린 편지지 같은 종이`는 뭔가요 ? 보니까 라캉 그려져 있고, 공식도 그거 라캉 공식 같은데 그렇게 인쇄된 공책이 있는 겁니까 ?

AgalmA 2015-04-03 17:09   좋아요 0 | URL
예리하신데요. 영상자료원에서 [정신분석학으로 풀어읽는 영화] 프로그램 포스터 받아온 거요.ㅎㅎ 영화 보고 관련 연구자들이 GV식으로 강의하던 뭐 그런 거였어요. 몇 편 못 봐서 좀 아쉬웠죠.
보고 싶은 영화는 항상 있는데, 상암동 가는 것이 어찌나 귀찮은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