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니 마음이 조급하다. 어떤 책을 더 읽어야 하나. 그러므로...
● 목소리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살아남을 사람이?"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대체 나는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러는 걸까? 어떻게 그런 일이 모스크바나 스탈린그라드 바로 옆에서 일어날 수 있었는지 따져 묻고 싶어서? 아니면 군사작전에 대한 묘사라든지 높고 낮은 언덕들의 이름에서 따온, 지금은 잊힌 전투의 명칭들이 듣고 싶어서? 나는 정말 전선이니 전선의 활약이니 진격과 퇴각이니 그런 이야기, 전복된 열차가 몇 대고, 빨치산의 기습공격은 어땠는지 따위의 이야기가 필요한 걸까? 이미 수천 권도 넘는 책들에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영혼에 대한 이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은다. 영혼의 삶이 남기고 간 흔적을 따라가며 영혼을 기록한다. 나에겐 영혼이 걸어간 길이 사건 자체보다 중요하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우선순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나를 흥분시키고 놀라게 하는 건 다른 것, 즉 ‘대체 거기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서 사람은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깨달은 걸까? 도대체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결국 나 자신은 누구인가? 나는 감정의 역사를 쓴다…… 영혼의 역사를 쓴다…… 전쟁이나 한 나라의 역사, 영웅들의 인생역정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거대한 사건의 깊은 서사 속으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작은 사람의 역사를 쓴다."
"그곳에서 내가 빗장을 열고 보게 될 위대하고도 놀라운 한 사람의 삶이. 만약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똑같이 무한하다면, 어떻게 작은 것을 작다고 하고 큰 것을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둘을 구별짓지 않는다. 한 사람만으로도 벅차다."
자기 생각과 목소리를 내기 바쁜 작가들 속에 역사에서 잊히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업은 기념비적이다. 단지 남성 전쟁 역사 속에 희생양이 된 여성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그 시대 속에 섞여 들어간 인간 개개의 선택, 삶과 고통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판단과 해석을 앞에 내세우지 않고 최대한 자신을 뒤에 두는 기록! 우리는 거기서 분명 무언가를 듣게 된다. 저널리즘 문학의 모범이다. 픽션을 압도하는 깊은 감명과 성찰을 준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도 맘이 너무 무거워져서 읽다 말았는데 올해 안에 완독해야지!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선물 책으로 꼭 예술 분야로 보내주시는 고마운 이웃이 있다. 이 분이 보내주시는 책으로 인해 내가 야매 미술 평론가라도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캄사합니다♥
이 책은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 전시 <디지털 프롬나드>전을 위해 기획된 단행본이다. 회화-이미지의 미디어아트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전시를 봤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어쩔 수 없지. 137페이지 소책자에 13500원은 좀 비싼 거 같은데 이런 책은 동네 도서관에서 잘 들여놓지도 않으니... 전시 도록들이 원래 비싸서 이건 늘 불만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실재적 사물, 상징화에 저항하는 사물의 심연이 외양하는 가면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최악의 접근은 과학과 예술의 '종합'을 목표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들의 유일한 결과는 심미화된 지식이라는 뉴에이지 괴물의 일종이다."
ㅡ슬라보예 지젝 『신체 없는 기관』
이 책과 온 굿즈들이 더 흥미롭다.
오, 에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할머니 알라딘 선물상자도 있었넹-0- 예쁘다♡
[책과 함께 유럽 박물관 인포그래픽] - 유럽 미술관, 박물관 연표 포스터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 『문명의 그물』 수록 내용이 있는데 『문명의 그물』 내용이 재밌어 보여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야겠음. 일단 보관함에~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 군사 경쟁 얘기가 아주 흥미롭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허물었던 오스만 군대의 대포는 원자재를 가지고 가서 현장에서 철을 녹여 만든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중벽을 쌓고, 성 둘레에 해자를 파서 물로 채우며, 성벽에 대포를 설치하여 반격하는 새로운 성을 개발해냈다. 이 기술은 1530년대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대포라는 공격 수단과 이에 저항하는 성벽이라는 방어 수단이 유럽에 확산됨으로써 기존의 정치 다원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ㅡ7장 <전쟁의 그물> 중 '대포와 성벽'에서'
● 2018년 11월 내가 산 책
오랜만에 중고도서
● 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문학과지성사)
ㅡ프랑스 문화사 책으로 유명한 책인데 10년 전 도서관에서 읽다가 중단된 책. 이 책을 완독 안한 게 늘 맘에 걸렸다.
● 조르조 바시니 『성벽 안에서』(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내는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시리즈 중 제발트와 함께 꼭 읽고 싶었던 작가. 드디어 입수~
● 사데크 헤다야트 『눈먼 올빼미』
배수아 작가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설로, 작품 개요만 봐도 우울이 몰려올 거 같은. 글루미선데이 음악처럼 이 책을 읽고 자살한 사람이 많아 이란에서 출판 금지서이기도 했던. 다자이 오사무처럼 헤다야트도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삶을 마감.
배수아 작가 번역으로 문학과 지성사에서도 같은 해 같은 책이 나왔더군; 내가 산 책은 요즘 유행인 누드 제본이라 조금 더 독특한 외관.
[가을엔 시집이지!]
● 아르튀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철 』(민음사)
황현산 선생은 랭보 번역이 국내에 제대로 된 게 없었다며 자신도 번역하기 어려워 묵혀 둔 게 여럿 있다고 한 랭보 시들.
김현 평론가 번역, 황현산 선생 해설의 완벽한 조합으로 제대로 다시 읽어 보기로.
● 유희경 『오늘 아침 단어』
최근 나온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을 읽고 거슬러 올라가 읽어보고 싶은 시인.
● 박연준 『베누스 푸티카』(창비)
평이 좋은데 구매를 미루다 잊었던. 마침 눈에 띄길래 업어옴.
문학과 지성사부터 민음사, 창비까지 골고루 샀군. 문동 시집은 살 게 없더라공ㅎ
가을책, 가을 분위기 잔뜩이네
but 굿즈 구매는 실패
클래식 레이블 에코백이 내 기대와 무척 달라 반품 예정...흑흑, 좋으면 선물도 할라 했는데. 요즘 알라딘굿즈 에코백 계속 실패네ㅜㅜ
● 1일 1사진 - 신비 & 당혹
자신이 만든 것의 신비를 정작 본인이 모른다는 데 사물의 신비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물이나 현상 자체의 신비라기보다 인간의 신비인지도.
"어쩌면 내가 쓴 모든 것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당혹감이라는 핵심 주제에 관한 은유이거나 변용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라요. 이 경우에는 철학과 시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같은 종류의 당혹감을 나타내니까요. 철학의 경우에는 답이 논리적인 방식으로 주어지고 시의 경우에는 비유를 사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
ㅡ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