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자유와 평등은 자주 나란히 거론되지만 이 개념은 사실 조화보다는 상충한다. 누구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한다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할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편견이 자유를 행사할 때의 문제는 심각하다. 편견이 표현의 자유 탈을 쓸 때 혐오표현이 탄생하고 그것은 차별 행위와 증오 범죄, 집단 학살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2010년부터 부각된 일베,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정치와 연루된 많은 충돌 등등에서 볼 수 있듯 혐오표현이 심각한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심리학자 올포트는 차별과 혐오를 낳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의 조건을 이렇게 제시했다.
“사회 구조에 이질적 요소가 많고, 사회 이동성이 있고, 급격한 사회 변화가 있고, 의사소통과 지식의 전달이 막혀 있고, 소수자 집단의 규모가 늘어나고 있고, 경쟁과 갈등이 있고, 착취로 이익을 얻고 있고, 공격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억제되지 않고, 민족중심주의 전통이 있고, 동화주의나 문화다양성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그것이다.”
바로 한국이 떠오른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설레는 분위기지만 나는 걱정이 앞선다. 편견과 차별이 확산되어 있는 이런 사회 내부를 어쩌지 못하면서 덜컥 통일이라도 되면 얼마나 심각해질까 싶어서다. 당장 조선족과 중국 동포만 해도 많은 한국 영화에서 범죄자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이 사회의 만연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냉전 시대에 민주주의 외의 집단을 악한으로 설정하는 것과 비슷한 헐리웃 스타일 진부함이라고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이걸 소재로 우후죽순 쓰는 건 매우 문제적이다. 대중매체와 이미지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은 증오범죄법도 없고, 형사정책 당국도 혐오범죄에 대한 특별한 판정 기준도 갖고 있지 않다. 통일 대비가 아니더라도 현재 이 사회에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공선이 더 잘 갖춰져야 한다.
켈시 우드 《한 권으로 읽는 지젝》(Zizek : A Reader' Guide)
이 달 읽은 책 중에 가장 수확이 큰 책이다. 그동안 지젝 책 읽기 진도가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은 가이드 책을 계속 찾았다. 이 책은 정말 딱 내가 찾던 것이었다.
지젝의 24편의 저작을 정리한 원저가 2012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이후 지젝의 책은 따로 살펴봐야겠지만 지젝의 핵심 줄기는 변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라캉적 정신분석, 헤겔적 변증법, 마르크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3대 축이 그것이다. 챕터마다 요약이 따로 있고, 지젝의 철학 줄기를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 반복 학습-_-)!
요즘 내가 인식과 세계 메커니즘에서 느끼는 문제들의 어떤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로웠다. 일독을 권할 만한 책!
리뷰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66993
스티븐 호킹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라는 평을 듣고 있는 스티븐 호킹이 지난 3월 별세했다. 이들을 잇는 차세대는 누구일까.
‘블랙홀’이란 천체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속도(탈출속도) 크기가 광속보다 큰 걸 말한다. 그래서 빛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블랙홀이 왜 중요한가. 블랙홀로 떨어진 정보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200년 넘게 지배적이었던 과학 결정론, 즉 과학의 법칙이 우주의 진화를 결정한다는 것, 우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린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입자의 위치와 속력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의 정확도로 계산할 수 있는 '양자 상태'를 안다면 우리는 임의의 다른 시간에 우주를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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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에서 정보가 보존되는 이유는 시간에 따른 양자역학적인 모든 과정이 일원성 연산자로 기술되기 때문이다. 임의의 물리적 과정에서 일원성 연산자를 거꾸로 적용하면 현재 상태에서 이전 상태로 회복이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양자역학은 정보를 보존한다. 정보가 사라진다면, 양자역학이 틀렸거나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블랙홀은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인 상대성이론(거시 물리학)과 양자역학(미시 물리학)의 상충을 해결하는 양자중력이론의 발판이자 새로운 물리학 시대를 열 열쇠이다.
4월에 호킹 책을 집중해 읽자고 해 놓고 외도를 많이 해서 반성 중이다. 그러나 읽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계속된다.
김언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이 출간돼 《한 문장》을 4월에 한 번 더 읽었는데 비슷한 괘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 생각엔 《한 문장》이 완성도가 더 높다. 《한 문장》이 인식의 실험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더 명확히 만든 거 같고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은 그 탐구의 연장선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도 더 집중해 읽어야 리뷰를 쓸 수 있을 거 같아 아직 리뷰를 쓰지 못했다. 언제 리뷰를 쓰게 될지....
리뷰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01013
박영숙, 제롬 글렌 《세계미래보고서 2018》
『세계미래보고서』는 유엔미래포럼이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인데, 이 책은 한국에서 더 중점적으로 봐야 할 사안을 제시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화폐 경제, 자율주행차, 최첨단 배양육과 인공지능 레시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의료 및 생명공학, 환경 분야 전망을 두루 살펴보았다. 저자들은 산업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향후 중요 키워드가 ‘스마트화’, ‘무료화’, ‘민주화’라고 말한다. 그게 중요한 건 알겠는데 이것을 움직이는 게 또 결함 많은 인간이라 미래가 밝게만 그려지진 않는다. 좋은 기술이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이런 정보가 열려 있고 논의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리에 다카후미 《다동력》
멀티태스킹을 일본식으로 ‘다동력(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힘)’으로 표현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쓸모없는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쓸모는 독자가 만들어야 한다. 책에 대한 왈가왈부 많이 보게 되는데 책이 일정 이상의 함량을 가져야 하는 건 기본이겠지만 저자가 좋은 걸 입에 떠 넣어 주길 바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책을 선택하고 읽는 전 과정에서 독자의 능동적인 관여가 필요하다. 자기 계발서는 답안지가 아니다.
리뷰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36460
강헌 《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좀 더 전문적인 음악 비평을 바란 사람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신해철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뮤지션과 80년 대에서 지금까지의 한국 대중음악신의 흐름을 살펴보는 작은 표지가 되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마땅히 의미가 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다른 차원의 시간과 우리가 사랑한 음악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리뷰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41896
이연식 《불안의 미술관》
‘섹스, 이별, 노쇠, 종말, 기다림, 공간, 작가’라는 테마로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뭉크, 호퍼, 드가, 브뤼헐 등 친숙한 명화들이 등장한다. 남성 중심의 초점 같아 아쉬웠지만 가볍게 읽을 만한 미술책이었다. 불안은 우리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어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예술가들은 창작을 통해 불안을 극복하려 한 자들이라고 봐야겠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치 있는 일일까 숱한 날들을 고심하면서. 위대한 예술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고 성취한다. 인정받지 못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에디슨은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격언이라 하기 애매한 이 말이 자주 회자되는 게 나는 점점 불편하다. 99퍼센트 노력했는데 뛰어난 영감이 없어서 이류가 되는 게 좀 부당해 보이고, 영감도 좋고 노력도 했는데 운이 없어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딱해서.
손보미 《디어 랄프 로렌》과 얀 마텔 《파이 이야기》를 나란히 보게 된 것은 내게 재밌는 경험이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이야기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그러하다는 걸 두 작품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보미 《디어 랄프 로렌》 리뷰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26379
얀 마텔 《파이 이야기》 리뷰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26396
레이 브래드버리 《온 여름을 이 하루에》
재즈에도 쿨 재즈와 핫 재즈의 구분이 있다. 전통 재즈를 Hot-Jazz라고 한다면 Cool-Jazz는
기존 재즈에 클래식적인 걸 가미하는 등의 실험과 예술성을 더 겸비한 스타일이다.
SF 장르에서도 고전적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차갑고 실험적인 작품들도 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그 중간쯤이 아닐까 싶다. 스타일은 서정 소설 같은데 소재나 아이디어가 쿨하다고나 할까^^ 내 경우 SF 소설을 읽고 나면 인간에 대해 깊은 착잡함을 느끼게 되는데, 레이의 소설을 읽고 나면 이상한 위안을 얻는다. 그게 좋아서 그의 소설을 계속 읽고 싶어진다.
리뷰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17604
매슈 설리번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살인사건에서 살아남아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는 게 더 슬플까(리디아),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로 사는 게 더 슬플까(조이). 이 소설의 중요 인물들 얘기다. 우리는 보통 고독 속에서 살지만 이런 중대한 고통 속에서 홀로 사는 건 더 어려운 일이겠고 거기에 더해 현명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조이는 삶을 포기했고, 리디아는 계속 살아간다. 삶은 어중간할 수 없는 거 같다. 죽지 않는 이상 우리는 산다. 그 자체가 아주 명징한 사실 같다.
커트 보니것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뉴스에도 등장할 만큼 보니것 한국 팬이 한껏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절판이 가득하던 그의 책이 속속 재출판 돼 나도 환호했다. 그런데 이 책은... 커트 보니것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많이 아쉽다. 30년 가까이 보니것이 한 졸업 연설문 모음이라고 하니 어떤 집약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일종의 매뉴얼이 느껴져서 읽다 보면 반복적이고 식상하다. 이 책의 제목이 된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를 말한 알렉스 삼촌 얘기도 자주 나와서 외울 지경ㅎ; 애정하는 작가지만 커트 보니것 책 중 가장 실망했다. 사는 거보다 정 보고 싶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볼 것. 다행히 나도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
이원석 《서평 쓰는 법》
나는 청개구리 심리가 있어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흥미가 생기던데 저자가 제시하는 좋은 서평의 요건들을 비껴가면서 좋은 서평을 쓰고 싶다. 바보 같고 불가능한 일일까.
알라딘 무료 e book《젊은 작가의 책》
그장소님 추천으로 읽게 됐는데(감사^^) 적은 분량임에도 괜찮은 정보가 쏠쏠하다. 혹 안 본 분 있을까봐 알린다.
후반에 패멀라 폴 《작가의 책》 미리 보기도 있어서 재밌게 봤다. 파리 리뷰《작가란 무엇인가》보다 못 하다는 평이 많던데 일단 봐야 나도 무슨 평이든;;;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상한 책리스(의도와 다르게 뭔가 캐피탈적인 느낌이...) 나라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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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다시 만나게 된 또 다른 작품은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이었는데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읽었던 작품이지요. 이 작품은 하나의 중편소설로, 그러니까 『더블린 사람들』의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분리된, 하나의 완벽한 중편소설로 간주할 필요가 있어요. 연례행사로 열린 겨울 파티에서 시작해서, 나중에 호텔에서 부부간에 있었던 그간의 오해와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이 이어지고, 마침내 주인공이 죽음의 필연성에 대해서 명상하는 동안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주인공이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는데, 저라면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열두 페이지를 『율리시스』의 어떤 열두 페이지와도 바꿀 겁니다. 하나의 형식으로서, 소설은 여기저기로 마구 뻗어나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결코 완벽할 수가 없는 장르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그걸 추구하지도 않죠. 시는 완벽을 성취해낼 수가 있지만—단 한 단어도 바꿔선 안 되죠—중편소설이 그런 경우는 정말로 드물지요.
(중략)
시로부터 “다시 돌아온다”는 느낌은 정확히 어떤 걸까요? 뭔가가 더 가볍고, 부드럽고, 넓어졌다가 결국 다시 원래대로 바뀌고 말지만, 결코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 그런 경험이 아닐까요?"
ㅡ이언 매큐언 인터뷰
4월 읽고 있는 중인 책들은 대략 이렇다.
e book 읽기에 재미를 붙이자 독서량이 상당히 늘었다. 이제 탄력이 붙으려고 하는데 10년 대여가 사라져서 너무 아쉽다ㅜㅜ
돌아와요~
숨차게 달려온 4월 독서 목록을 정리하고 오늘 저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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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에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ㅡ 알베르 카뮈 「티파사에서의 결혼」
보통 이런 굿즈에는 적당히 멋진 문구로 채우기 마련인데 이건 정말 멋있다.
잘했어요, 알라딘~
이 맛에 제가 굿즈 사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아직도 뭔가를 기다린다.
카뮈는 그걸 참 잘 말해준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