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 긴 여행의 시작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노래 / 파스텔뮤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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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을 꼭 챙겨 듣는다. 그중에서도 일요일 새벽 1시부터 하는 '지금 사러 갑니다' 코너는, 혹시 못 듣게 되면 나중에 프로그램 선곡표라도 따로 찾아볼 정도로 좋아한다. '지를 만한' 최신 음반들/명작의 반열에 오른 음반들 넉 장을 고르고 음반당 3개의 트랙을 연이어 들려주는 코너다. 중간에 광고도 없다. 정말 라디오 듣는 보람이 있는 시간이다. 

이번 주말에는 '굴소년단' '나오미 & 고로' '펄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피톤 프로젝트'였다. 내가 일기장처럼 쓰는 이글루스닷컴의 '렛츠리뷰'에서 이 앨범 커버를 몇번 본 것 같고,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초록색 커버에서 페퍼톤스 1집이 연상된 탓인지) 분위기상 살짝 관심이 땡기는 음반이었는데... 음음, 이렇게 바로 지르고 말았다. (새벽에 그가 추천하는 음악을 듣는 건 아무래도 위험한 것인가...) 

사실, 유희열과 윤상 등의 레퍼런스가 바로 떠오르는 음악이라서 어쩌면 반갑고 좋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시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걱정을 아니 한 것은 아니어서,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에 전곡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듣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샀!다! 왜냐하면, 이제는 노회한(^^;;) 에피톤의 레퍼런스들과는 달리, 이 노래들에선 초록색 물이 오르는 나뭇잎 향기와 옅은 꽃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퇴근길,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길을 이 노래 들으면서 지나오는데, 벚꽃의 달콤한 향기와 이 노래들이 너무 잘 어울려서 혼자 막 감동받고 그랬다 ;;  

낼모레 마흔인 내가 이런 음악을 즐긴다고 하면 왠지 부끄럽기도 하지만, 아아,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런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살짝 뛰는구나... ㅠㅠ   

가사가 너무 '산문'적이라서 좀더 노래 가사다운 절제미를 발휘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고, 기계 프로그래밍 부분도 좀 덜 기계적으로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는 하지만, 스물여섯살 된 젊은 작곡가의 첫 작품집이라고 생각하면 박수를 쳐주고 싶어진다. (게다가 유희열이나 윤상보다는 노래도 훨 잘하는걸!! ) 1집을 듣자마자 다음 앨범이 기대가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작년에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그랬고, 2009년에는 4월 현재 에피톤 프로젝트가 그렇다.

2번 트랙 <눈을 뜨면>, 3번 트랙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그리고 한희정과 함께한 4번 트랙 <그대는 어디에>로 이어지는 앞부분이 참 좋았다. 봄날에 듣기 좋은, 예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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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4-0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라디오 천국> 어느 방송국에서 해요?
2. 낼모레 마흔이세요?
^-^

또치 2010-03-05 18:42   좋아요 0 | URL
<라디오 천국>은 KBS FM에서 매일밤 12시에 한답니다.
흐, 그리고 낼모레 마흔... 레토릭이 아니라 정말,이에요.
♬ 어느새, 내 나이도 희미해져 버리고... 아흑.

무해한모리군 2009-04-0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이 마흔에 이런 감성을 즐기신다는게 더 대단해 보여요 ^^
 
서울전자음악단 2집 - Life Is Strange
서울전자음악단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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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보통 CD를 사면 바로 리핑해서 이어폰으로 들으며 다니는데, 왠지 이 음반만큼은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사놓고도 바로 못 듣다가, 며칠 지난 주말 오후 플레이어에 걸고 ...  

털썩 ;;  

첫 곡 <고양이의 고향 노래> 가사를 일단 적어 보겠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 / 죄인의 후손이라고 / 내 친구들 다 떠나고 / 세상에 필요 없다고 / 온 세상이 나를 밀어내도 난 괜찮아 / 웃으면서 노래해봐” 

"난 괜찮아"라고 이렇게 노래하기까지, 신중현의 아들(들)은 얼마나 힘겨운 나날을 보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을 징징징 긁어대며 기타를 연주하는데 ... 나는 한 곡이 끝나면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잠시 쉬었다가, 다음 곡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 편히 듣기는 힘든 음반이다. 일하면서 듣거나, 출퇴근 길에 이어폰을 꽂고 들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주 듣지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음악만 듣고 싶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고 심지어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순간이 올 때면 이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 것 같다. 그리고 <서로 다른> 혹은 <따라가면 좋겠네>를 몇번이고 들을 것 같다. 감히 따라 부르거나 흥얼거리지 못할, 연주하는 것을 공연장에서 보고 듣는다면 그저 입만 벌릴 뿐, 어쩌면 조용히 눈물만 흘릴지도 모를 곡들...   

그저 '신윤철씨, 존경합니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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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네 1집 - 압생트
루네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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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만나러 네덜란드 여행을 처음 갔을 때, 시내의 큰 슈퍼마켓에서 나는 "압생트 한병 주세요"라고 당당히(!) 주문했다. 고흐가 마시곤 했다는 독주, 압생트. 나도 한번 맛보고 싶었다. (나도 보드카는 좀 마신다규~)

그런데 주문을 받은 아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어따 쓰려고 그러는데?" 하는 투의 질문을 던지는 거다.  

"어... 고흐가 마셨다는 술이라 기념품으로 사 가려고요." 했더니 으하하 막 웃으면서 아저씨는 나를 타일렀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너무 독한 술이라 거의 위험물질 취급이라고 하는 요지의 말이었던 것 같다. 자기네 가게에는 그래서 없다고. 아, 그... 그렇습니까 ;;

루네(LUNE)라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첫번째 앨범 이름이 바로 그 <압생트>다. 불현듯 그때의 생각이 났다. 얼마나 독한 음악이기에 이런 타이틀을 붙였을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거울 이미지의 재킷 사진도 마음을 끌어서 들어보니...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좋았다.  

사실, 요 며칠 마음이 좀 그렇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존재, 그 외로움과 삶의 무게를 덜어낼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딘가에 좀 기대고 싶고 내 인생의 일부분을 덜어내 누군가에게 의탁하고 싶은 마음은 잘 사라지지가 않는다. 최후의 순간에 마음을 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부터, "내가 도와줄게"라는 빈말을 듣는 게 좋은 건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결국 당신이지" 하는 솔직하고 냉정한 판단을 듣는 게 나은 건지 잘 모르겠다. 수많은 입발린 달콤한 말들에 실망하고 지쳤으면서도, 막상 진실을 똑바로 대면하자니 두렵고 힘들다. (이 노래를 듣기 전에 계속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을 신물이 날 정도로 무한반복 청취중이었다.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루네의 노래에서 PJ Harvey 나 Bjork 같은 마녀(실례...) 류의 여성가수를 떠올릴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대뜸 한영애가 떠올랐다. 아무리 높은 음을 불러도 저음으로 들리는 독특한 음색도 그렇고,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가사도 그렇고,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면서도 결국은 바닥을 치고 둥~ 떠오르는 힘있는 노래 스타일도 그렇고... 반갑고도 기뻤다. 한영애 언니가 새 앨범을 내지 않은 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이제 7년 넘게 해오던 EBS 라디오 <문화 한 페이지>도 책장이 접혀 버렸으니 새 노래 만들고 계시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되는데 말이지...  

요즘 나오는 가수들 혹은 밴드들의 노래에서 과거세대의 잔상을 쉽게 떠올릴 수 있어서 새삼 기쁘다. 뭐, 내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누군가 힘들여 이루어놓은 성과들이라는 것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걸로 흘려 버려지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도가 된달까...  

마셔 보진 못했지만 압생트처럼 독할 듯한, 오스트리아에서 마셔본 '시납스'라는 술처럼 달고 찐득하고 독한, 자기 내면을 온통 다 털어내고 헤집고 난 뒤에 비로소 남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상처를 위로해주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 루네에게 공감과 감사를 보내고 싶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주는 음악 목록에 루네의 음반을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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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네 - 유리날개
    from 필유홈2.0 2009-07-04 15:44 
    얼마 전 일다 뉴스레터를 통해 루네(Lune)와, [압생트(Absinthe)](2009)라는 데뷔 앨범을 알게 됐다. 일다 원문은 병적 슬픔을 환상적으로 노래하다. 일단 유투브에서 찾은 음원을 하나 올린다. #4 유리날개. 가사는 네이버 아이템 팩토리. 미안하지만, 가사만 놓고 보면 크게 와닿는 게 없었다. 앨범의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앨범을 통으로 걸고 듣다 보면 돌연 마음을 파고드는 순간이 있는데, 다소 사로잡는 맛은 부족하나마 보석 같..
 
 
치니 2009-03-3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저도 네덜란드에서 고흐박물관 갔었어요! 괜히 막 반가움.
2. 얼마전 서울전자음악단과 신중현 선생님이 함께 공연할 때, 한영애씨도 게스트로 나와서 노래하셨던 걸 봤어요. 여전하시던데요. ^-^

또치 2009-03-30 14:59   좋아요 0 | URL
우와~~ 서울전자음악단이랑 신중현 선생님이 같이 공연하는 걸 보셨다니!! ㅠㅠ 부러움에 몸을 부르르 떨 지경입니다. 게다가 게스트는 한영애 언니!! 크아왕~~~

무해한모리군 2009-03-30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바로 땡투 날립니다.
비오는 날은 한영애나 양희은씨 목소리를 들으며 술을 먹어야 한다는 ㅎㅎ

또치 2009-03-30 20:32   좋아요 0 | URL
우앙~~ 감사합니다!!
제가 상태로 좀 메롱...인 채로 듣고 써서, 맑은 정신으로 들으면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 내일은 저도 좀 상쾌한 마음으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lecteur 2009-04-1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주는 음악이라니... 정말 근사하네요. 저도 한번 사서 들어볼까봐요 ^^
 
Craig David - Greatest Hits
크레이그 데이빗 (Craig David) 노래 / 워너뮤직(WEA)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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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니, 벌써 무슨 베스트 음반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자그마치 데뷔 10년째라고 한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된 건가??  

생각해보니 나는 유명짜한 가수들의 음반이 없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엘튼 존... 뭐 이런 양반들의 앨범은 갖고 있질 않은 것이다. Crag David 은, 나에게는 조지 마이클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가수인데, 음... 역시나 이 친구 음반도 갖고 있지를 않았다. 뭔가 약간 귀한(?) 느낌이 있어야 음반을 사게 되는 것 같은데, 마이클 잭슨, 마돈나... 이런 사람들처럼 Craig David 도 왠지 천년만년 라디오에서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지 음반 소장의 욕구는 불러일으키질 않은 것 같다. 아, 그래도 트랙 리스트가 다 괜찮고나, 어쩔까... (잠깐 생각한 뒤에) 샀다 ^^;;   

오, 휘성이 부른 한국판 Insomnia 싱글도 따라오네. 잘 샀다! (휘성이 노래도 참 잘하지만, 사실 옆에서 춤추는 늘씬늘씬한 언니들이 끝내준다. '이하나의 페퍼민트'랑 '콘서트 7080'에서 보고 반했다 @@ ) 

암튼,  

이제 겨우 스물아홉살 된(그는 1981년생이다 ㅎㄷㄷ ... 속지 해설에 씌어진 나이를 보고 깜놀했음;; ) 남자가 이렇듯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거느리고 있다니, 새삼 놀랐다. 여태껏 음반을 하나도 안 산 게 약간 미안해지려고 할 만큼 다 잘 아는 노래들인데...   

새삼 다시 듣게 되었던 건, Sting 이 피처링한 Rise and Fall 같은 음악이 너무 부러운 거다. 우리나라에서도 조PD + 인순이, 크라잉넛 + 심수봉... 같은 시도가 나온 적이 있지만, 아, 이 노래는 정말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 가 샘플링된 Hot Stuff 같은 곡도 얼마나 멋있는지. 엘튼 존이 피처링해준 Blue 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도 생각나고... 이렇게 신구세대가 아무런 이물감 없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세대의 세련된 감각이 물씬 풍겨나오는 그런 음악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 제발, 귀에 익숙한 노래라는 이유만으로 가요의 명작을 지들 멋대로 가볍게만 리메이크하는 풍토는 사라져주면 좋겠다는...

약간 지겨운 하루가 예상되는 날, 출근길에 들으면서 몸을 약간 흔들어주고픈 노래들이 가득한 흥겨운 음반이다! (자주 듣겠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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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 Singalongs (캐비넷 싱얼롱즈) 1집 - Little Fanfare
Cabinet Singalongs (캐비넷 싱얼롱즈) 노래 / 드림비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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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누구도 끝까지 같이 갈 순 없죠 / 그걸 알면서도 지금 이렇게 길 위에 ... "

14번 트랙 <여기까지 가져온 노래뿐>의 쓸쓸함에 꽂혀서 이 앨범을 샀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길거리에서 버스킹(busking)하면서 부르는 단순, 소박한 노래들이다. (아코디언은 아무리 흥겹게 연주해도 이상하게 쓸쓸한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기꺼이 함께 가난하겠노라고 노래하는 착한 이웃의 목소리... ('가난'이란 말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에 나오는 그 가난이다. 물론 물적인 가난도 포함되고.)

노래나 연주가 '출중'하지는 않다. 솔직히 여성 보컬의 목소리는 듣다가 약간 조마조마해질 정도로 시종 불안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보컬의 순하고 착한 목소리와 거기 담긴 진심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다.   

2번, 6번, 14번 트랙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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