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를 거치며 '하나음악'이라는 이름은 나의 눈과 귀와 입에, 뇌리에 남았다. 조동익 장필순에서부터 조규찬 고찬용 이규호 유희열...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 시절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회사들도 사라지고, 나도 '하나음악'이라는 이름을 점점 잊고 말았다.
느닷없이 이 이름을 호출하게 된 것은 윤영배 덕분이다. 이렇게 홀연히 나타다다니.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장필순 6집의 독특한 노래들을 만든 사람이다.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가 그만두고 돌아와 제주에서 채집생활을 한다나 어쩐다나, 그러다가 지금은 양평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는다나 어쩐다나... 겨우 5곡이 담긴 EP를 내놓았는데(그나마 알라딘에서는 팔지도 않는다...) 아, 요즘 이 노래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달관한 듯한 무념 무욕의 목소리...
지난주에는 공연도 있어서 다녀왔다. 베이스 김정렬(새바람이 오는 그늘,에 있었다), 기타 고찬용(그렇다, 낯선 사람들의 그 고찬용이다), 키보드 이규호(.... 살아 있었구랴;;), 게스트는 이한철이었다. 아아, 갑자기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들도 늙고 나도 늙었지. 하나옴니버스 시절의 노래들을 들려줄 때는 시간이 거꾸로 갔나 싶었지만, 공연하면서도 내내 강정마을 바닷가에 시멘트가 부어지는 걸 걱정하던 윤영배를 보고 있자니, 아 우리는 이런 잔인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새삼 환기가 되었다... 슬펐지만, 그가 왠지 21세기의 정태춘 같기도 해서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2011년 우리에게는 이런 아티스트가 있구나, 참 고마웠던 공연.
그런가 하면 '야광토끼'라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귀여운 음악도 잘 듣고 있다. 한없이 기분이 붕붕, 맑은 하늘 속으로 나를 띄워주는 듯한 느낌...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노래는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나는 당신만의 작은 아기 토끼씨이고만 싶었는데 나는 아마 북극에 사는 북극곰쯤 되나봐요'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 거지' 내가 20대라면 이런 가사 슬퍼하며 들었을 법한데, 지금은 그냥 귀엽고 이쁘게만 들린다. 그래, 나는 모든 걸 다 겪어낸 어른이 되었구나,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