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에 나오는 나귀, 옛 물건들, 여러 가지 음식들은 거의 다 사소하고 심지어는 처량하기까지 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백석은 이 모든 사물들한테 사랑을 담아 노래했다.

 

소래섭이 지은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우리학교, 2014)에서 글 몇 줄 옮겨 본다.

아무래도 안도현 <백석평전>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작품에서 백석이 왜 하필 ‘흰 당나귀’를 타고 싶어하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백석은 나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함흥에 간 지 얼마 안 돼 발표한 「가재미·나귀」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옛날이 헐리지 않은 중리(中里)로 왔다. 예서는 물보다 구름이 더 많이 흐르는 성천강이 가깝고 또 백모관봉(白帽冠峰)의 새하얀 눈도 바라보인다. 이곳의 좌우로 긴 회담들이 맞물고 늘어선 좁은 골목이 나는 좋다. 이 골목의 공기는 하이야니 밤꽃의 내음새가 난다. 이 골목을 나는 나귀를 타고 일없이 왔다 갔다 하고 싶다. 또 예서 한 오 리 되는 학교까지 나귀를 타고 다니고 싶다. 나귀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그래 소장 마장을 가 보나 나귀는 나지 않는다. 촌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서 수소문해도 나귀를 팔겠다는 데는 없다. 얼마 전엔 어느 아이가 재래종의 조선말 한 필을 사면 어떠냐고 한다. 값을 물었더니 한 오 원 주면 된다고 한다. 이 좀말로 할까 하고 머리를 기울여도 보았으나 그래도 나는 그 처량한 당나귀가 좋아서 좀 더 이놈을 구해 보고 있다.

 

당시에도 나귀는 구하기 어려운 동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백석은 굳이 나귀가 갖고 싶어 시장을 찾기도 하고 주변에 수소문도 해 봤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백석은 나귀를 타고 한가롭게 왔다 갔다 하고 학교에도 다니고 싶어 하지만 나귀를 그런 용도로 부리는 사람은 당시에도 없었습니다. 탈 것이라면 나귀보다 더 나은 것들이 얼마든지 있었으니까요.
예로부터 나귀는 짐을 싣기 위한 동물이었고, 교통수단으로 쓰일 경우에도 주로 신분이 초라한 사람들이 이용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백석은 더 나귀를 타고 싶어 했는지도 모릅니다. 자동차가 오가는 대로부다 좁은 골목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백석은 늘 버려지고 소외되고 감추어진 것들에 주목했습니다. 처량한 동물이라서 오히려 백석에게는 나귀가 더욱 소중했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떠나려는 자의 처량한 심정을 알아줄 길잡이로도 나귀는 제격이지요. (121-122)

 

 함윤덕, <기려도>, 조선 16세기

 

 

『사슴』 속의 시간은 근대화되기 이전이라는 의미에서 과거일 뿐 특정한 어떤 시기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는 「목구」라는 시에서 제사에 쓰이는 그릇을 두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수원백씨 정주백촌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이처럼 그가 『사슴』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자자손손 살아왔던 어떤 장소와, 그 장소에서 변암없이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백석이 사투리에 특히 관심을 보인 것도 그가 시간보다는 장소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요. 사투리는 시간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를 부각시킵니다. 또한 전설과 같은 옛 이야기, 연중 행사 때마다 되풀이되는 독특한 풍속 역시 시간보다는 장소의 특수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사슴』 이후의 시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소개한 연작들뿐만 아니라 「산중음」, 「물닭의 소리」, 「서행시초」 등의 연작을 통해서도 그는 그 지역만의 색깔을 시에 담기 위해 애썼습니다. 특히 그의 기행시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지역 특유의 음식들입니다. 그의 기행시에는 빠짐없이 음식이 등장하고, 음식은 그 지역 특유의 ‘맛’을 드러내지요. 1940년 이후 해방 전까지 일제의 강압을 피해 만주에서 생활할 때도 음식과 장소에 대한 그의 집착은 여전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만주에서 민족의 터전이었던 장소를 탐색하기도 하고, 음식을 통해 고향이라는 장소에 대한 그리움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그의 모든 시들은 대부분 어떤 시간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며, 음식은 그 장소의 성격을 이야기하기 위한 핵심적인 매개이지요. 그는 자신이 음식과 장소에 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와 지렁이」라는 작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141-142)

 

참고로 「목구木具」 전문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목구木具

 

五代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그러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녯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 해에 멫 번 매연 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지르터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우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 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에 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 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 줌 흙과 한 점 살과 먼 녯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수원백씨水原白氏 정주백촌定州白村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정본백석시집』, 문학동네, 131쪽) 

 

국수를 생각하는 마음
백석은 여러 음식들 중에서도 특히 국수에 애착을 느꼈던 듯합니다. 「국수」 외에도 백석 시에는 국수가 자주 등장하고, 심지어 그의 시 중에는 ‘메밀국수 연작’이라고 불릴 만한 것도 있습니다. 원제는 「산중음」 연작으로 함경도를 여행한 후에 발표한 기행시인데, 연작 네 편 중 세 편에 메밀국수가 등장하지요. 이 연작 중에서도 특히 울림이 큰 것이 「산숙」이라는 작품입니다.

 

산숙

 

여인숙이라도 국숫집이다
메밀가루 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윗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워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어 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그는 여행 중에 국숫집을 겸하는 여인숙에 묵었던 모양입니다. 백석은 국수를 만드는 분들과 함께 누어 때 묻은 목침들을 바라보며 그 방에서 묵었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지요. 끝없이 이어지는 국수 가닥처럼 그의 생각은 그 방에 묵었을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과 마음들로 이어집니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국수 가닥처럼, 얼굴과 생업과 마음도 긴 역사를 관통해 지속됩니다. 어쩌면 역사를 지탱하는 것은 그렇게 가느다랗고 사소한 것들일 것입니다. 산골 벽지를 오가며 좁은 여인숙 방의 목침에 때를 남긴 사람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야말로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도 언젠가는 죽고 휘황찬란한 건축물도 끝내는 퇴색하지만, 얼굴과 생업과 마음만은 유구한 세월이 지나도록 이어져 내려가지요. 사소하지만 질긴 것들의 생명력, 백석이 국수에 그토록 애착을 보였던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51-152)

 

백석은 과거의 풍물을 골동품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풍물을 골동품으로 여기는 것은 그것에 담긴 과거의 역사와 문화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희귀한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골동품의 가치를 숫자로 표시되는 가격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반면 「북방에서」를 보면 백석은 민족의 기원과 역사에 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에 거주했던 옛 종족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을 보면 그가 우리 역사에 관해 깊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지식과 애정이 그를 과거의 풍물들로 이끌었습니다. 그에게 사투리와 과거의 풍물들은 골동품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찾기 위한 흔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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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24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단아하고 안정을 주는거 같아요 이웃님들께 자주 언급되는 백석이란분이 참 궁금해지네요ㅎ

돌궐 2015-01-25 10:30   좋아요 0 | URL
안도현 <백석평전>이 새로 나와서 더 많이들 언급하시는 거 같아요. 해피북 님도 한 번 읽어보세요.^^

AgalmA 2015-01-2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귀와 국수는 매니아가 있기로 유명하지요. 특히나 글쓰는 사람들은 유독 나귀를 좋아하더라고요. 말 좋아하는 작가들이 좀 호기롭다면 나귀 좋아하는 작가들은 은둔자 스타일들...참 재밌는 인간사예요.

돌궐 2015-01-25 10:31   좋아요 0 | URL
말과 당나귀... 정말 말씀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ㅎ

돌궐 2015-01-25 13:51   좋아요 0 | URL
닭칼국수, 수제비, 짜장면, 짬뽕, 사천탕면, 잔치국수, 쌀국수, 냉면, 쫄면, 나가사키 우동, 그리고 라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도 국수를 참 좋아하네요.ㅎㅎ

AgalmA 2015-01-26 03:04   좋아요 0 | URL
저는 빵 매니아인데 국수매니아까지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ㅎ 한번씩 된통 걸리기도 하지만요. 간짬뽕 처음 나왔을 때 얼마나 사먹었던지;;

만병통치약 2015-01-24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눈에 급속히 많이 띄는 시인이네요 재평가인가요?

돌궐 2015-01-25 10:37   좋아요 0 | URL
저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밖에 몰랐는데, 시를 읽어보니 시집도 사게 되고... 울림이 크고 중독성 있는 시들입니다.ㅋ 어디서 봤는데 시인들이 뽑은 역대 시집 중에 김소월, 서정주에 이어 3위가 백석 <사슴>이라네요.

AgalmA 2015-01-26 07:36   좋아요 1 | URL
백석은 월북시인으로 간주돼 대중적으로 알려진 지 얼마되지 않았죠. 평안/함경 북쪽 사투리가 많은 그의 시를 반공시대에서 좋아할 리도 만무했죠. 월북작가로 취급되는 문인들 더 잊혀지기 전에 연구 좀 진행됐음 싶은데 이눔의 남북상황이 늘 발목을 잡는군요. 하여간 백석은 암암리에 문인들에게 칭송되어온 시인인지라 후계자라 자처하는 안도현시인이 작년 백석평전 내고, 이동진/김중혁 빨간책방에서 백석 방송하는 등 최근 급속히 재평가를 받고 있죠.

cyrus 2015-01-25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시집을 읽고 허기를 느낀 적이 있는데 그 시집을 쓴 사람이 바로 백석입니다. ㅎㅎㅎ

돌궐 2015-01-25 17:21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오늘 저녁으로 국수를 먹을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반기독교 사상서인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회법과 종교 개혁의 발단과 전개에 대해 호의를 담아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코란』을 읽어 이슬람의 혁명을 이끈 무함마드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결론은 읽고, 쓰고, 혁명하라는 얘기다. 혁명은 읽는 것에서 시작하여 고쳐 읽고, 고쳐 쓰는 과정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대단히 열정적인 문체다.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수단으로써 독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면,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기록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 민족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전체 300건 가운데 11건이 우리 기록유산이다. 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거니까 무조건 대단하단 건 아니지만, 아무튼 등재된 기록유산의 면면을 살펴 봐도 우리 기록물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는 너무 분량이 방대해서 아직 번역도 다 못한 걸로 알고 있다. <훈민정음>이나 <팔만대장경판>, <실록>과 <의궤>의 가치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록물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쌓여가는 나라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거기엔 수많은 블로그와 카페, 그리고 이곳 서재도 포함되겠지.

 

(아래부터는 본문 인용)

 

여기서 루터가 ‘읽은 것’을 ‘기도이고 명상이며 시련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떠올립시다. 의미는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성급함이나 폭력을 부정하고 말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99)

 

원리주의자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수 없음’과 ‘읽기 어려움’에 맞설 용기도 힘도 없습니다. 나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말해왔습니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광기의 행위라고, 책을 읽으면, 읽고 말면, 아무래도 –내가 잘못된 건지 세상이 잘못된 건지, 몸과 마음을 애태우는 이 물음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게 된다고. 사람들은 모릅니다.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는 책을 그래도 읽는다는 것, 그 안에 있는 텍스트의 이물감, 외재성, 생생한 타자성을 모릅니다. 가혹하기까지 한 그 무자비함을 모릅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모릅니다. 그 놀랄 만한 ‘읽어라’라는 명령의 열정을 모릅니다.
반대로 무척 단정하지 못한 형태로 “내가 말하는 것이 성서이고, 내가 말하는 것이 『코란』이고, 내가 말하는 것이 불전이다”라는 정말 꼴사나운 모습에 자족한 채 지칠 줄을 모릅니다. 따라서 텍스트를 향하는 잔혹한 체험에 자신의 죽음과 광기를 무릅쓰고 몸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기적이 세계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텍스트와 자신이 구별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근거나 전거는 모두 자신입니다. 준거는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한 것이 모두 성서나 불전에 쓰여있다는 하찮은 망상에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는 겁니다. 거기에는 외부성과 타자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루터 또는 무함마드에게 ‘읽다’라는 것은 무엇을 전제로 한 것이었을까요? 세계와 자신과 책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생생한 이물로서 타자성으로 분리되고 구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자신이 미쳤는가, 아니면 세상이 미쳤는가하는 물음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당연한 일이 원리주의자들에게는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원리주의적 사고의 함정은 얼마든지 널려 있습니다. 지금도. (153-154)

 

(트리보니아누스 편, 『로마법 대전』) 여기서 유럽은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한없이 정치한 법 개념과 법률 용어를 대량으로 입수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과거의 거대한 유산인 로마법을 교회법에 주입하여 전대미문의 규모로 고쳐 쓰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그들은 읽었습니다. 읽어버린 이상 고쳐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쳐 읽은 이상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읽은 것은 굽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쓰기 시작해야만 합니다. 반복합니다. 그것이, 그것만이 ‘혁명의 본체’입니다. (179-180)

 

피에르 르장드르의 독창적인 사고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즉 그는 국가의 본질을 폭력이나 경제적 이익으로 줄여버리지 않습니다. 국가의 본질이란 ‘재생산=번식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아이를 낳아 기르는 물질적·제도적·상징적 준비를 갖추고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입니다. 일단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당연하지 않나요. 왜냐하면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으면 단적으로 말해 절멸할 테니까요. 이런 것을 ‘저출산 문제’라 부르는 것은 문제를 하찮게 만들어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국가의 형식이야말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하고, 우리가 오랫동안 말해온 의미에서 ‘문학’의 혁명에 의해 전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로마법과 교회법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실증적이고 착실한 연구를 계속해온 역사가라서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교회법은 재상산 법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지극히 성실하고 혁명적인 사상을 전개하는 사람이 어쩐 일인지 프랑스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반동이니 보수니 하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게 왜 안 되는 걸까요? 어떤 부분이 안 되는 걸까요? 그 근거를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185-186)

 

수많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한 가지의 상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들립니다.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만 말해왔으니까요. 우리는 ‘문학’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시를 잃었습니다. 춤을, 연극을, 노래를, 음악을, 회화를, 복식을-한 마디로 말하면 예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법이나 규범, 정치와는 관계없는 장소에 몰려 질식하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오락’, ‘장식물’, ‘사치품’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법이나 규범, 정치도 질식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실, 상실이라며 우리가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결정적으로 손에서 놓아버린 적이 있을까요. 그것 없이 살 수 있었던 예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건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210)

 

명예욕을 위해서도 아니고 금전욕을 위해서도 아니라고 한다면, 왜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그것은 –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좀 더 말해볼까요? 베케트나 첼란이나 헨리 밀러나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나... 발레리가 없었다면 저는 여기에 없을 겁니다. 니체나 푸코나 르장드르나 들뢰즈나 라캉이 있어주어 다행입니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습니다.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라고요. 발소리를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도움을 받아버린 것이지요. 그렇다면 누구의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발소리를 내는 것조차 거부당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발소리를 내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터입니다. 들려주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될 터입니다. 한발짝이라도 좋으니까요. (271)

 

 


 

텍스트를, 책을, 읽고, 다시 읽고, 쓰고, 다시 쓰고, 그리고 어쩌면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 이것이 혁명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이렇게 됩니다.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근원이다, 라고. 루터는 문학자였습니다. 말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상 최대의 혁명가였습니다. (105)

중세 해석자 혁명은 ‘혁명의 본체’를 드러낸 혁명입니다. 다시 말해 법학자의 텍스트 고쳐 쓰기의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척 담담하고 전혀 극적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신학자, 법학자가 밤낮으로 홀로 책장을 넘기고 사전을 찾고 판례를 조사하여 법문을 고쳐 씁니다. 정말 수수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담담하고 수수한 작업에서 엄청난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줄기차게 이어지는 작업 자체가 바로 혁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12세기 혁명의 위대함이니까요. (193-194)

도스토옙스키 등은 10퍼센트 이하에 승부를 걸어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소설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혀 자명한 게 아닙니다.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리스인들이 99.9퍼센트 소멸한 가운데 0.1퍼센트에 승부를 걸어 승리한 것처럼 러시아인들도 이겼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0.1퍼센트가 살아남는다면 이기는 싸움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0.1퍼센트라도 놓치면 지는 겁니다. 즉 우리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5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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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텍스트를, 책을, 읽고, 다시 읽고, 쓰고, 다시 쓰기.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돌궐 2015-01-22 21:04   좋아요 0 | URL
저도 읽고 쓰고 다시 쓰는 게 바로 혁명이란 얘기가 정말 참신했어요.
게다가 cyrus님은 저 말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계시잖아요.^^

cyrus 2015-01-22 21:09   좋아요 0 | URL
말은 이렇게 하지 머리는 안 따라줘요. 자고 일어나면 새책이 몇 권씩 늘어나는데 여기에 관심이 쏟다보니 다시 읽고 쓰는 기회가 없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1-24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필사 분량이 많습니다. 필사의 필사` 같습니다..ㅎㅎ

돌궐 2015-01-24 15:04   좋아요 0 | URL
제가 읽는 책마다 초록을 꽤 많이 남겨둡니다.^^
 

게오르크 짐멜에 관한 이런 글을 읽고 있자니 어서 빨리 다음 타자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他者가 될는지 (나를 두들기는) 打者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짐멜은 ‘문화’를 폭넓고 절충적인 의미로 이해한다. 문화에 관한 그의 수많은 글은 실로 다양한 논제를 다루는데, 그 범위는 스타일과 패션 디자인, 사진과 자기 연출과 얼굴, 만화와 캐리커쳐, 식사와 구애와 애교, 선물과 편지 쓰기, 비밀 유지와 신중함, 건물과 다리와 문, 젊음의 관념과 모험가의 신화에까지 이른다. 패션에 대한 글에서 짐멜은 옷차림과 몸치장의 형태를 세련되고 고상한 외모를 지향하는 사회의 경쟁적인 실천과 연결시킨다. 패션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우월감을 주며 그와 동시에 그들을 사회집단으로 묶는다. 패션은 출중하다고 지각되는 형태와 표준이라고 지각되는 형태의 차이를 부단히 교체하는 과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짐멜은 보석류가 착용자에게 사회적 주목을 받는 중심에 있다는 각별한 느낌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확고히 하는지 보여준다. 보석이라는 물건은 진귀하지만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며, 소유자한테 속한 것이지만 소유자를 인격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상품이다. 소유자가 그것을 도저히 제작해낼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소유자를 위해 사회적으로 눈부시게 빛난다. (231-232)

짐멜은 건축의 역사적 패스티시pastiche, 모방, 향수에 대한 유행 속에서, 폐허에 대한 19세기와 18세기 열정 속에서, 여행객을 끄는 로마와 피렌체와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 도시와 알프스 풍경의 매력에서, 유사한 사회집단의 역학이 어떻게 효력을 발휘하는지 주지시킨다. 이들 이미지는 문화에 자연의 모습을 불어넣고 자연에 문화의 모습을 불어넣는다. 이들은 역사를 신화와 미적 인공물로 변모시킨다. (232)

그는 ‘사회학의 인상주의자’다. 그의 글쓰기 형태가 아니라 설명하려는 야망이 그러하다. 실례를 들어 생생히 그려 보여주는 것과 토막글을 선호한 짐멜에게서 우리는 설명 가능한 객관성에 대한 열망과 보편적 진·선·미의 공준에 대한 염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19세기 말 미적 타당성을 흐리고 파편화하는 문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짐멜은 아름다움을 본유적인 보편 가치로 보는 생각을 굳게 지켰다. 짐멜은 미적 취미의 사회적 상대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미적 가치의 보편성과 자율성 관념을 여전히 견지할 수 있다고 논한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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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장이 사회에서 가장 진가를 인정받은 문화 상품의 투명한 매개자라고 보는 생각에 회의적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틀리지 않다고 결론을 내려도 좋겠다. 매스컴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것으로 보도된 문화 생산품이 공급자들의 다음과 같은 자기 완결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을 통해 과대 광고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다. 공급자들한테 어떤 대안적인 공동의 수단을 통해 그들의 평가를 표현할 기회가 없는 이상, 그 수요는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경험할 만하다고 생각할 것을 실지로 반영하지 못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팔린 생산품이 반드시 사람들이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생산품인 것은 아니다. (271)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고 있자니 수많은 독서가들이 올려주는 알라딘 서재글들도 꽤 유용한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 아침에 알라딘에서 발견한 '북플'을 (독서지원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깔고, 신세계에 발을 들였다.

'읽고 싶어요' '읽었어요' '좋아요'에 아직 적응중이다. 나로선 이게 SNS 첫경험이다.

간단한 독서기록과 책 보관 기능(읽고싶어요)은 괜찮은데, 정작 글 작성은 서재에서만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저런 글자색, 글꼴 태그가 북플에 적용이 안되는 것 같다. 뭐 언젠간 보완되겠지.

 

그나저나 저 책 뒤로 갈수록 너무 어려워져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

책에 나오는 사회학자와 미학자들의 저술을 좀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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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북플은 이웃님들 글을볼때만 사용하구 글을 쓸때는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더라구요ㅎ 다양한 기능이 나왔음 좋겠어요 ㅋ

돌궐 2015-01-20 00: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북플이 관심책 리뷰도 알려주고 이웃님 글도 수시로 올려주니까 좋은 글 볼 기회가 많아져서 좋습니다.
 
꼬마 예술가 라피 비룡소의 그림동화 233
토미 웅거러 글.그림, 이현정 옮김 / 비룡소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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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거러 그림책 속 인물들은 어려움에 굴복하거나 자기 앞에 닥친 일들을 부정하고 회피하지 않는다. 주어진 여건과 한계 속에서 새롭고 빛나는 가치들을 만들어 낸다. 저주받은 음악가 트레몰로, 폭주족? 즐로티, 거인의 여자 제랄다, 꼬마구름 파랑이와 강도들까지 교화시킨 티파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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