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미모라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 것인가.

자현 스님의 <붓다순례>에서 연화색 비구니 이야기를 옮겨 본다.

 

 

연화색은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미모만큼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니 순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더할 수 없는 기구함이 그녀의 삶에 존재한다.


처음 연화색은 울선(鬱禪)으로 시집을 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해산하러 와 딸을 낳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연화색의 어머니와 남편이 불륜 관계를 맺게 된다. 연화색은 이 사실을 여종에게 듣고는 안고 있던 딸을 집어 던졌다. 이때 아이의 머리에 상처가 생긴다. 얼마 후 연화색은 모녀가 한 남자와 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자탄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


이후 바라나시로 갔다가 그곳에서 연화색의 미모에 반한 상인을 만나 재혼한다. 그런데 상인은 후일 울선으로 무역을 하러 갔다가 그곳에 현지처를 두게 된다. 이후 연화색은 이를 눈치 채지만, 자신도 재혼이었으므로 울선의 현지처를 데려와서 함께 살자고 한다. 이렇게 두 부인이 형님, 동생하면서 살게 되는데, 하루는 머리를 빗겨 주다가 머리의 상처를 보고는 그녀가 자신의 친딸임을 알게 된다.


결국 연화색은 운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집을 뛰쳐나가, 정처 없이 떠돌다 반쯤 실성해서 도착한 곳이 우연찮게도 왕사성의 죽림정사였다. 연화색을 본 붓다는 이 여인의 문제를 한눈에 파악하고, 수행자를 만들어 교화한다. 연화색은 현실에 대한 애착이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깨달아 비구니 중 신통제일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출가한 이후 연화색의 미모는 또 다른 장애가 된다. 홀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모에 반한 일반인과 실랑이가 발생하고, 과격한 다툼 속에서 결국 눈이 빠지는 상처를 입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모두가 원하는 미모의 가치가 때론 슬픔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은, 인생의 또 다른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붓가가 상카시아로 내려오실 때, 연화색은 지상의 제자로는 자신이 가장 먼저 붓다를 맞이하고자 했다. 이때 이곳에는 목건련이 없었기 때문에 연화색을 능가하는 신통의 비구는 없었다. 그래서 비구 교단이 발칵 뒤집어지게 된다. 붓다께서 3개월 만에 오시는데, 비구가 아닌 비구니가 가장 먼저 맞이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이때 왕사성 영취산의 수보리는 가사를 깁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잠시 붓다는 형상의 존재가 아님을 관상한다. 그러고는 다시금 가사를 마저 기웠다. 이때 연화색이 붓다를 맞이하면서 자신이 가장 먼저 마중을 나왔다고 하자, 붓다께서는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수보리’라고 답하신다. 『증일아함경』 권28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연화색의 일생을 생각하면 왠지 서글프다. 이렇게라도 해서 인정받고 싶어 했던 연화색을 붓다가 용인해 줬다면,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더 따뜻하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위한 애틋함을 보이기 위해 도리천으로 가신 붓다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수보리에 대한 이야기는 후대에 부가된 것은 아닐까? 특히 수보리가 상카시아가 아닌 왕사성에 있었다는 점에서, 왠지 남성 우월주의에 의한 왜곡의 그림자가 느껴지곤 한다. (284-286)

 

 

#

붓다는 멀리 있던 수보리가 가장 먼저 붓다를 맞이했다는 말을 굳이 연화색한테 했을 리가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 부분은 스님의 말씀대로 후대에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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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서 파는 토종순대를 삼천 원어치만 포장해달라고 했다.

오천 원어치를 사면 꼭 먹다가 남겼기 때문에 삼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집에 반 병 남아있던 소주와 함께 혼자서 순대를 먹었다. 허파와 간도 먹었다.

오늘 내가 굳이 순대를 사서 먹은 이유는 아무래도 아까 식전에 이런 시를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식물성 곱창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석쇠 위 둥글게 몸 말고 있는,

한때 초원 하나쯤은 거뜬히 소화시킨 기관들

성급한 젓가락을 찌르고 누르고 뒤집는다

달구어진 쇠에 찰싹 달라붙어 불을 버티는

초식기관들 그러나 생전의 소가 그러하였듯

길길이 날뛰는 막무가내의 고집,

토막난 채 흘러나오는 누런 콧물 눈물

깍지를 풀고 노릇노릇 익는 동안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제 참나무는 죽어 숯불이 되고

죽은 소의 일부가 안주로 남았다

입속에서 잘게 톱질당한 곱창들

찬 소주와 함께 빈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화하게 피어나는 풀냄새,

왕성한 위액이 또 입맛을 다신다

 

- 이재무, <저녁 6시>, 85쪽

 

 

#

시인들은 음식을 소재로 시 쓰는 일이 많은 듯하다.

나는 그저 게걸스럽게 먹기 바쁜데 그들은 곱창을 앞에 두고 이런 낱말들을 떠올린 것이다.

 

혼자서 곱창집에 가긴 뭣 하고 그렇다고 불러낼 이도 없었다.

순대를 사서 소주와 함께 먹은 걸로 만족한다. 

뇌수조차 얼어 터질 것 같은 추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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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 6시
    from 突厥閣 2015-03-20 01:26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시집 두 권을 빌려왔다. 그 중 하나가 <저녁 6시>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시집인데, 이제서야 겨우 읽었다. 몇 년 전에 신문(아마 한겨레였을 듯)에서 '갈퀴'를 읽고 나서부터 한 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저녁 밥을 먹고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읽기 시작하여 내처 해설까지 다 읽었으니, 이건 시집 한 권 읽으려면 한참이 걸리는 나로선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cyrus 2015-03-1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 날에는 술과 따끈한 안주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집에 시원한 막걸리를 마셨는데 영 만족스럽지 않군요. 친구들 불러서 포장마차에 가고 싶은 날입니다. ^^

돌궐 2015-03-10 21:38   좋아요 0 | URL
뜨끈한 술국과 소주 한 병 정도면 딱 좋지요. 포장마차 대합탕도 괜찮겠어요.^^

transient-guest 2015-03-13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끈한 국물과 데운 술도 빼놓을 수 없지요..

돌궐 2015-03-13 01:26   좋아요 0 | URL
정종에 오뎅국물도 정말 좋지요^^

돌궐 2015-03-1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본 시는 <저녁 6시> 85쪽에 나온 시였다. 지금 읽고 있다가 `식물성 곱창`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서점에서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와 함께 들춰봤는데, 페이퍼 작성하다가 출처를 헷갈린 것이다. 나원참.
 

 

 

 

 

 

 

 

 

 

 

 

 

 

 

 

벽화를 그리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고증하여 쓴 글이 있어 옮겨 본다.

 

 

발원을 마치고 담징이 일어섰다. 맨 먼저 미륵불부터 벽에 옮기기로 했다. 다른 그림이야 어려울 턱이 없었다.

담징은 뒤에서 지켜보고 서 있고, 도리가 화공들을 지휘하며 벽에 고령토와 백포를 섞어 발랐다. 며칠 기다렸다가 한 화공이 벽 위에 다시 황토와 백아를 섞어 칠을 했다. 도리는 북벽에 담징이 그린 미륵정토와 밑그림을 붙였다. 중안이 밑그림 윤곽선을 촘촘하게 바늘로 찔러놓고, 숯가루를 넣은 주머니로 바늘구멍을 따라 종이를 두드렸다. 중안이 밑그림을 떼어내자 벽 위에 그림 윤곽이 나타났다.

도리가 밑그림 위에 먼저 석채(石彩)로 주홍색을 칠했다. 도리가 호분에 갠 장단, 양록, 삼청, 진녹, 석연지, 하엽, 석자황, 석간주 등을 그림에 맞추어 발랐다. 도리가 그림의 먹 선을 그었다. 차례로 분선, 황선, 금선을 그려 넣었다. 도리는 특히 금선을 긋는 데 혼을 쏟았다.

 

늦겨울에 작업을 시작했으나 계절이 바뀌어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벽화 작업은 쉼 없이 이어졌다. 어언 두어 달이 더 지나 네 벽화 가운데 미륵정토화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미륵의 얼굴이었다. 윤곽은 그려져 있었으나 채색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초가을 어느날이었다. 도리가 돌아보았다. 담징이 퀭한 눈으로 벽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눈길이 섬뜩했다. 이윽고 담징이 빙긋이 웃었다. 벽화가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스님께서 안채(顔彩)를..."

 

담징은 고개를 저었다.

 

"불자께서 하세요."

 

도리는 뜻밖이라는 듯이 담징을 쳐다보았다. 담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가 사다리에 올라가 붓을 들었다. 낯과 이목구비를 석간주로 채색했다. 안채를 마치고 사다리에서 내려온 도리가 담징에게 붓을 내밀었다.

 

"점안(點眼)만은 직접 하셔야 합니다."

 

담징은 앞으로 나아가 붓을 받아들었다. 힘들여 사다리로 올라가서 미륵불 눈 근처로 붓을 가져갔다. 손이 떨렸다. 담징은 손을 내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물에 젖어 있던 여인의 눈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눈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담징은 붓을 들어 미륵불 그림에 눈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자위를 칠하고 나서 눈동자를 그려 넣고 마지막으로 한가운데에 점을 찍었다. 그렇게 하여 미륵의 얼굴이 완성되었다. 눈은 웃는 듯이 울고, 우는 듯이 웃었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관능적이지 않고 기품이 밴 그런 미소, 그런 얼굴이었다.

점안을 마치고 담징이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도리와 중안이 담징을 부축했다. 담징은 고개를 들어 미륵상을 바라보았다. 미륵이, 아니 여인이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 담징은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제자들도 그를 따랐다. (325-327)

 

 

#

이 부분만 보아도 저자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꽤 많은 자료들을 조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책 뒤에 소설에 참고한 문헌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

덧붙임. 호류지 금당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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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0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징,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 봅니다. 국사 시간에 금당 벽화가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정말 안타까웠어요.

돌궐 2015-03-07 23:25   좋아요 0 | URL
사실 소실된 벽화가 담징이 그린 것이 맞다 아니다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 불화가 대단한 명작이란 평가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일본 기록에 ˝담징이 스이코여왕 18년에 고구려에서 건너 왔고, 오경에 능통하고 그림과 공예에 정통하여 종이와 먹, 채색 및 맷돌을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저자는 이처럼 짧게나마 기록된 사실을 소설의 줄거리 속에서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한 거 같습니다.
담징, 쇼토쿠태자, 혜자, 도리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나와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AgalmA 2015-03-0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불화그리는 걸 엄청 배워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삶에 쫓겨...
만다라 전승처럼 담징의 예술이 명맥이 이어져왔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그런 게 어디 한둘이겠는가 싶지만...

돌궐 2015-03-08 07:41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우리가 살면서 배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참 많아요. 저도 그렇습니다.ㅜㅜ
그리고 먹고 살면서 배우기까지 하려면 정말 하루하루는 짧은 시간이더라구요.

만병통치약 2015-03-0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스코와 비슷하군요(맞나요?) 실제 벽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궁금하네요.

돌궐 2015-03-08 14:28   좋아요 0 | URL
아마 그럴 거에요. 일본 사이트에 벽화에 대한 개설과 그림들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조금 있어요.
구글에서 horyuji temple wall paintings 치셔도 좀 나오구요.
제가 찾아보니 이런 곳이 있네요(일본 개인사이트 같습니다).
http://reijiyamashina.sakura.ne.jp/horyujif/horyujig.html
 
레토릭 - 세상을 움직인 설득의 비밀
샘 리스 지음, 정미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연설이나 논증의 요소를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로 분류한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고 한다. 이 책 2부에서 레토릭(수사)의 비밀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세 가지 도구였다. 에토스로 청중과 유대감을 쌓고, 로고스로 이해시키며, 파토스로 마음을 움직이라는 것이다.


레토릭에서 중요한 5가지는 결국 ‘발견’-‘배치’-‘표현’-‘기억’-‘연기’라는 것인데, 저자는 이들 각각에 대해 다양한 연설문의 예를 들면서 핵심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가능한 한 최고의 설득법을 찾아내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에토스를 확보하여 신뢰를 쌓고, 로고스를 통해 이해시키며, 파토스로 공감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결합하면 훌륭한 연설이나 논증이 된다는 얘기다. 확실히 서양 수사학에서는 에토스를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말할 수 있는 ‘권위’나 ‘자격’이 없으면 “니 주제에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한가?”란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이다.
그밖에 ‘배치’, ‘표현’은 문장의 배열과 표현 문제를 다룬 것이고, ‘기억’과 ‘연기’ 부분은 특히 현장 연설에 사용되는 수사의 방법인데, 개인적으로 기억의 방법에서 장소(topos)를 통한 기억법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암기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연기’ 부분에서 제시된 목소리와 제스처, 행동에 대한 조언들은 발표나 강의할 때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겠더라.

 

제3부에서 정리한 레토릭의 종류 3가지는 정치적 수사, 사법적 수사, 과시적 수사이다.
정치적 수사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앞으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사이다. 반면 사법적 수사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시비를 가리기 위한 수사이다. 특히 법정 같은 곳에서 많이 사용된다.
과시적 수사는 사법적 수사나 정치적 수사와도 중복되는 약간 모호한 수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정치적 수사, 사법적 수사 속에 과시적 수사가 자주 활용된다는 말이다. 과시적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한다. “결혼식장에서 축하연을 하든, 장례식 장에서 추도사를 하든, 공격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든 간에 적절한 시점에서 조화로운 말을 해야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난의 화살이 당신에게 쏟아질지도 모른다”(279)는 얘기다.

 

대체로 한 번쯤을 읽어볼 만한 내용들이었다. 구체적인 수사의 방법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레토릭을 구사해서 청중이나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려는 시도를 간파하는 데에도 꽤 쓸모가 있겠다.
하지만 책 속에서 제시된 여러 예들이 다 그리스·로마나 영어권 정치가들의 (나에겐) 생소한 연설문들이어서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다만 아래 두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연설가들은 모두 처음부터 타고난 연설가였던 것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연습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연설문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검토와 반복 연습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것. 

 

언젠가는 우리말로 발표된 연설이나 글에 대해서도 이처럼 재밌게 수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

아래는 책에서 옮긴다.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문체를 구사하기가 쉽지는 않다.  

 

쿠인틸리아누스는 “한 가지 문체가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을 수 없다”는 키케로의 말을 칭송하며, 이를 바탕으로 적절성에 대해 폭넓게 해석했다.

 

이전의 책에서도 얘기했다시피 글을 쓰는 능력과 생각하는 능력은 물론이요, 즉흥 연설까지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적절성을 고려한 연설을 터득해야 한다. 키케로는 이런 연설을 네 번째로 탁월한 웅변으로 꼽았는데 나는 적절성을 고려한 연설을 최고로 친다. 웅변을 옷에 비유하자면 그 종류는 다양하다. 주제에 따라 거기에 맞는 형태도 다르기 때문에, 특정 상황과 사람들을 분석하여 거기에 철저히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설이 빛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득력까지 떨어질 것이다. (…) 하찮은 근거에 장엄체를 쓰거나, 중요한 대목에 빈약하고 어설픈 문체를, 엄숙한 주제에 현란한 문체를, 강력한 주장이 필요한 순간에 가라앉은 문제를, 반대하는 대목에서 위협적 문체를, 맹렬한 논의에서 순종적 문체를, 기분을 좋게 띄워야 할 주제에서 거칠고 격렬한 말투를 쓴다면, 이런한 문체가 연설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143)

 

 

* 그리고 몇 군데에서 발견한 오탈자

 

(115쪽 11번째 줄)
유도신문 → 유도심문

수정: '유도신문(誘導訊問)'이 맞는 말이라고 한다.

 

 

(119쪽) 세 번째 단락 중 신문사에서 ‘수정하거나 보충할 수 있는 지면… 뒤에 작은따옴표가 나오지 않는다.


(130쪽 12번째 줄)
케케로의 독설 능력 → 키케로의 독설 능력

 

(161쪽 5번째 줄)
헌사를 받치는 일 → 헌사를 바치는 일

 

(238쪽 밑에서 4번째 줄)
물론 아리스토텔레에게 →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는(휴 블레어) 악의적이거나 거짓된 수사에 대해 경고했는데, 아래 말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문제를 위장하기 위해 작문을 이용했다. 또한 견식 있는 이들로부터 두고두고 칭송을 받기보다, 무지한 이들로부터 순간의 갈채를 얻으려 했다. 하지만 이는 ‘사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사기는 그 기반이 오래 지탱하지 못하는 법이다. 유익한 작문은 지식과 과학으로 줄기와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수사는 여기에 매끄럽게 광을 내주는 역할을 하며, 줄기가 탄탄하고 견고하지 못하면 광이 제대로 나지 못한다. (49)

『에드 헤렌니움』에서 경고했다시피 "판사나 청중의 신념에 반대되는 말은 틀린 것이다." 배우이자 저널리스트인 윌 로저스는 이 경고를 다음과 같이 상냥하게 표현했다. "낚시를 하러 가서 낚시 바늘에 미끼를 달 때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달아야 한다."
현명한 설득자는 자신과 청중이 공감할 수 있는 상투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가능하다면 결론도 상투어로 맺는다. (76-77)

소리는 청중의 생각과 감정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콜라(cola)의 길이가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콜라는 절을 뜻하는 단어 콜론(colon)의 복수형이다. 참고로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음의 문장은 콜론을 설명하는 좋은 예다. "The louder he talked of his honour, the faster we counted our spoons(자신의 명예를 소리 높여 뽐내는 인간을 만나면, 집안의 수저 개수를 세는 우리들의 손길은 빨라진다)."
이렇게 길이가 같은 절을 나란히 병치시키는 문장을 수사학에서는 이소콜론(isocolon)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위 문장은 자신의 명예를 떠벌리는 사람치고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집안 물건을 잘 단속하라는 뜻이다. (148)

토마스 아퀴나스는 뭐든 읽고 나면 단어까지 정확히 기억하기로 유명한데, 그는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기억해야 할 대상과 ‘쉽게 연상되는 것’을 찾는다.
2.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한다.
3. 그것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정성껏 살핀다.
4. 그것을 자주자주 떠올린다. (179)

언어가 공기라면 수사는 날씨다. 더없이 포근하고 기분 좋은 봄날부터 창틀의 유리가 덜거덕거릴 만큼 천둥 요란한 날까지 날씨의 종류가 다양하듯, 수사도 마찬가지다. 날씨처럼 수사는 저 밖에 넓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를 즐겨라.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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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0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송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유도신문`이 맞다고 한다. 여태 `심문`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AgalmA 2015-03-06 00:06   좋아요 0 | URL
이거 자주 혼동 문제로 거론되더군요.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리차도 토이<수사학> 소개도 위 글 내용과 비슷하던데, 수사학 책은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돌궐님은 키케로 <수사학>을 선택하셨으니 향후 리뷰 기다려봅니다ㅎ
 

 

 

 

 

 

 

 

 

 

 

 

 

 

 

제목이 구미를 당기길래 잠깐 앉아서 앞 부분만 조금 읽어 보았다.

아래 옮겨 적은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책임을 없애면 사람은 변한다
이런 무서운 실험도 있다. 그 유명한 밀그램의 실험이다. 이것은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이 권위와 복종에 대해 연구하던 중 실시한 실험으로 내용은 이렇다. 피실험자 40명이 각각 교사와 학생, 실험자의 역할을 맡는다. 학생들은 학생만의 방에 들어가고, 실험자와 교사는 함께 다른 방에 들어간다. 그들은 학생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며, 인터폰 너머로 학생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교사의 질문에 학생이 대답한다. 교사는 틀린 대답을 한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주며, 실험자는 교사에게 학생이 틀린 대답을 할 때마다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리도록 지시한다.


사실 이 실험의 대상은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었고, 학생과 실험자는 한통속이었다. 실험자가 교사에게 “지금 학생이 틀렸으니 전압을 올리십시오”라고 말하면 교사는 전압을 올려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주도록 했다. 그러나 사실 전류는 흐로지 않았고,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그리고 실험 도중에 권위 있는 박사 역할을 맡은 사내가 나타나 힘찬 어조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교사 여러분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대학이 집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실험을 계속하자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 모두가 30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고, 60퍼센트가 최대 전압인 450볼트까지 계속 전압을 올렸다고 한다. 자신의 조작에 학생이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권위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이유로 윤리적 가치관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린 것이다.


이 실험을 기획한 이유는 히틀러의 학살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히틀러는 우생 사상을 바탕으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는데, 학살에 관여한 사람들이 정말로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학살을 자행한 것인지, 즉 인간은 명령을 받으면 어느 정도까지 그에 따를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었다.


실험 결과, 명령에 끝까지 복종한 사람은 60퍼센트였다. 또 상당한 수준까지는 지시에 따랐지만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이탈한 사람이 40퍼센트였다. 놀랍게도 처음부터 명령을 거부한 사람이나 이른 단계에 이탈한 사람은 없었다.


이 실험의 경우는 “심리학 실험입니다”라고 처음부터 알려주었으므로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명하복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군대에 들어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호된 처벌을 받는 상황이고 주위 사람들도 명령을 따르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명령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원래 겁이 많은 존재다. (37-39)

 


뇌를 절제해 병을 고친다?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Antonio Egas Moniz, 1874~1955)라는 무서운 의사가 있었다. 포르투갈의 신경학자이며 정치가로도 활발히 활동한 그는 악명 높은 로보토미(Lobotomy) 수술을 고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그는 1949년에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수상 이유는 ‘정신병에 대한 전두엽 절제술의 치료적 효과에 관한 발견’이었다.


로보토미는 통합실조증(정신분열증·조현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두엽의 일부를 절제하는 치료법이었다. 현재는 인격을 완전히 파괴하는 수술로 부정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매우 효과가 좋은 수술로 여겨졌기 때문에 노벨상까지 받았던 것이다. 과학이나 의학의 정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노벨상조차도 실수할 때가 있는 것이다.


모니스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1903년부터 1917년까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외무 장관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1944년까지는 리스본 대학에서 신경학 교수로 있었다. 1927년에 엑스선을 이용한 ‘뇌혈관 조영법’을 개발한 엄연한 신경학자였던 것이다. 그는 1936년에 동료와 함께 로보토미 수술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어째서인지) 미국에 전해져 확산되었다.


미국에서 월터 J. 프리먼과 제임스 워츠라는 두 정신과 의사가 모니스의 방법을 ‘개량’해 누구나 간단히 로보토미 수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아이스픽(얼음을 잘게 깨뜨릴 때 쓰는 송곳)처럼 생긴 기구를 사용해 코 윗부분에 뾰족한 기구의 끝을 꽂아 넣고 뇌를 힘껏 휘저어 ‘치료’한다. 이 수술을 받은 환자는 폭력적인 성향이 사라지고 온순해지지만, 그 대신 인격이 상실되어 무기력해지고 감정의 기복도 사라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이것은 정말 비인도적인 수술이다. 로보토미 수술은 그 문제점을 고발한 유명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켄 키시 저)의 영향으로 1975년 이후로는 전혀 실시되지 않게 되었다.

 
모니스는 75세에 과거 자신이 시술한 환자에게 총격을 당해 척수가 손상된 후 휠체어 신세를 졌다. 그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으로 생각되지만, 그에게 수여된 노벨상은 아직도 취소되지 않았다. 노벨상 사이트에 가면 변명 같은 설명문이 올라와 있는데, 어쨌든 역대 수상자들 사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당시의 일류 의사와 과학자들이 그를 칭송해 수상을 하는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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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기요틴(단두대)으로 목이 잘린 사람은 의식이 있을까 라든지, 식인 박테리아 얘기, 블랙홀 등 우주 관련 이야기와, 화산.쓰나미 같은 지구 재난들, 정치와 군사에 이용된 과학자들 얘기들이 나온다.

나중에 다 읽어보고 리뷰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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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0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렸을 때 교양과학으로 포장하여 불가사의 혹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뒷이야기 같은 내용을 모아놓은 책을 좋아했어요. 그 책의 제목에도 ‘무시무시한’이라는 형용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뇌 절제로 병을 고치는 치료법은 서프라이즈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정신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에는 두통 환자를 치료할 때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고 합니다...

돌궐 2015-03-04 22:30   좋아요 0 | URL
저는 왜 그런 재미난 책을 찾아보지 못했던 건지... 학교에서 읽으라는 거 겨우 읽고 독후감만 써내는 수준이었죠. 아, 그러고 보니 <괴수공룡대백과>와 카드마술책은 즐겨 봤던 기억이 납니다.ㅋㅋ

AgalmA 2015-03-0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학쪽이 아닌 사회학적 접근 책이었군요. 전쟁이 나면 죽는 것보다 인간이 얼마나 악랄하게 바뀔지 그걸 보는 게 더 두렵고 고통스러울 듯합니다

돌궐 2015-03-04 22:33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뒤에는 또 무슨 얘기일지 모르겠어요. 우주도 나오고 지구도 나오더라구요.
우리 안에 악은 다 있겠지만, 그걸 서로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길 바랄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