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서 파는 토종순대를 삼천 원어치만 포장해달라고 했다.

오천 원어치를 사면 꼭 먹다가 남겼기 때문에 삼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집에 반 병 남아있던 소주와 함께 혼자서 순대를 먹었다. 허파와 간도 먹었다.

오늘 내가 굳이 순대를 사서 먹은 이유는 아무래도 아까 식전에 이런 시를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식물성 곱창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석쇠 위 둥글게 몸 말고 있는,

한때 초원 하나쯤은 거뜬히 소화시킨 기관들

성급한 젓가락을 찌르고 누르고 뒤집는다

달구어진 쇠에 찰싹 달라붙어 불을 버티는

초식기관들 그러나 생전의 소가 그러하였듯

길길이 날뛰는 막무가내의 고집,

토막난 채 흘러나오는 누런 콧물 눈물

깍지를 풀고 노릇노릇 익는 동안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제 참나무는 죽어 숯불이 되고

죽은 소의 일부가 안주로 남았다

입속에서 잘게 톱질당한 곱창들

찬 소주와 함께 빈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화하게 피어나는 풀냄새,

왕성한 위액이 또 입맛을 다신다

 

- 이재무, <저녁 6시>, 85쪽

 

 

#

시인들은 음식을 소재로 시 쓰는 일이 많은 듯하다.

나는 그저 게걸스럽게 먹기 바쁜데 그들은 곱창을 앞에 두고 이런 낱말들을 떠올린 것이다.

 

혼자서 곱창집에 가긴 뭣 하고 그렇다고 불러낼 이도 없었다.

순대를 사서 소주와 함께 먹은 걸로 만족한다. 

뇌수조차 얼어 터질 것 같은 추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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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 6시
    from 突厥閣 2015-03-20 01:26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시집 두 권을 빌려왔다. 그 중 하나가 <저녁 6시>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시집인데, 이제서야 겨우 읽었다. 몇 년 전에 신문(아마 한겨레였을 듯)에서 '갈퀴'를 읽고 나서부터 한 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저녁 밥을 먹고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읽기 시작하여 내처 해설까지 다 읽었으니, 이건 시집 한 권 읽으려면 한참이 걸리는 나로선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cyrus 2015-03-1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 날에는 술과 따끈한 안주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집에 시원한 막걸리를 마셨는데 영 만족스럽지 않군요. 친구들 불러서 포장마차에 가고 싶은 날입니다. ^^

돌궐 2015-03-10 21:38   좋아요 0 | URL
뜨끈한 술국과 소주 한 병 정도면 딱 좋지요. 포장마차 대합탕도 괜찮겠어요.^^

transient-guest 2015-03-13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끈한 국물과 데운 술도 빼놓을 수 없지요..

돌궐 2015-03-13 01:26   좋아요 0 | URL
정종에 오뎅국물도 정말 좋지요^^

돌궐 2015-03-1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본 시는 <저녁 6시> 85쪽에 나온 시였다. 지금 읽고 있다가 `식물성 곱창`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서점에서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와 함께 들춰봤는데, 페이퍼 작성하다가 출처를 헷갈린 것이다. 나원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