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를 그리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고증하여 쓴 글이 있어 옮겨 본다.
발원을 마치고 담징이 일어섰다. 맨 먼저 미륵불부터 벽에 옮기기로 했다. 다른 그림이야 어려울 턱이 없었다.
담징은 뒤에서 지켜보고 서 있고, 도리가 화공들을 지휘하며 벽에 고령토와 백포를 섞어 발랐다. 며칠 기다렸다가 한 화공이 벽 위에 다시 황토와 백아를 섞어 칠을 했다. 도리는 북벽에 담징이 그린 미륵정토와 밑그림을 붙였다. 중안이 밑그림 윤곽선을 촘촘하게 바늘로 찔러놓고, 숯가루를 넣은 주머니로 바늘구멍을 따라 종이를 두드렸다. 중안이 밑그림을 떼어내자 벽 위에 그림 윤곽이 나타났다.
도리가 밑그림 위에 먼저 석채(石彩)로 주홍색을 칠했다. 도리가 호분에 갠 장단, 양록, 삼청, 진녹, 석연지, 하엽, 석자황, 석간주 등을 그림에 맞추어 발랐다. 도리가 그림의 먹 선을 그었다. 차례로 분선, 황선, 금선을 그려 넣었다. 도리는 특히 금선을 긋는 데 혼을 쏟았다.
늦겨울에 작업을 시작했으나 계절이 바뀌어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벽화 작업은 쉼 없이 이어졌다. 어언 두어 달이 더 지나 네 벽화 가운데 미륵정토화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미륵의 얼굴이었다. 윤곽은 그려져 있었으나 채색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초가을 어느날이었다. 도리가 돌아보았다. 담징이 퀭한 눈으로 벽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눈길이 섬뜩했다. 이윽고 담징이 빙긋이 웃었다. 벽화가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스님께서 안채(顔彩)를..."
담징은 고개를 저었다.
"불자께서 하세요."
도리는 뜻밖이라는 듯이 담징을 쳐다보았다. 담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가 사다리에 올라가 붓을 들었다. 낯과 이목구비를 석간주로 채색했다. 안채를 마치고 사다리에서 내려온 도리가 담징에게 붓을 내밀었다.
"점안(點眼)만은 직접 하셔야 합니다."
담징은 앞으로 나아가 붓을 받아들었다. 힘들여 사다리로 올라가서 미륵불 눈 근처로 붓을 가져갔다. 손이 떨렸다. 담징은 손을 내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물에 젖어 있던 여인의 눈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눈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담징은 붓을 들어 미륵불 그림에 눈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자위를 칠하고 나서 눈동자를 그려 넣고 마지막으로 한가운데에 점을 찍었다. 그렇게 하여 미륵의 얼굴이 완성되었다. 눈은 웃는 듯이 울고, 우는 듯이 웃었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관능적이지 않고 기품이 밴 그런 미소, 그런 얼굴이었다.
점안을 마치고 담징이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도리와 중안이 담징을 부축했다. 담징은 고개를 들어 미륵상을 바라보았다. 미륵이, 아니 여인이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 담징은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제자들도 그를 따랐다. (32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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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만 보아도 저자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꽤 많은 자료들을 조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책 뒤에 소설에 참고한 문헌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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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호류지 금당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