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 - 세상을 움직인 설득의 비밀
샘 리스 지음, 정미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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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이나 논증의 요소를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로 분류한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고 한다. 이 책 2부에서 레토릭(수사)의 비밀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세 가지 도구였다. 에토스로 청중과 유대감을 쌓고, 로고스로 이해시키며, 파토스로 마음을 움직이라는 것이다.


레토릭에서 중요한 5가지는 결국 ‘발견’-‘배치’-‘표현’-‘기억’-‘연기’라는 것인데, 저자는 이들 각각에 대해 다양한 연설문의 예를 들면서 핵심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가능한 한 최고의 설득법을 찾아내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에토스를 확보하여 신뢰를 쌓고, 로고스를 통해 이해시키며, 파토스로 공감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결합하면 훌륭한 연설이나 논증이 된다는 얘기다. 확실히 서양 수사학에서는 에토스를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말할 수 있는 ‘권위’나 ‘자격’이 없으면 “니 주제에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한가?”란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이다.
그밖에 ‘배치’, ‘표현’은 문장의 배열과 표현 문제를 다룬 것이고, ‘기억’과 ‘연기’ 부분은 특히 현장 연설에 사용되는 수사의 방법인데, 개인적으로 기억의 방법에서 장소(topos)를 통한 기억법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암기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연기’ 부분에서 제시된 목소리와 제스처, 행동에 대한 조언들은 발표나 강의할 때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겠더라.

 

제3부에서 정리한 레토릭의 종류 3가지는 정치적 수사, 사법적 수사, 과시적 수사이다.
정치적 수사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앞으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사이다. 반면 사법적 수사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시비를 가리기 위한 수사이다. 특히 법정 같은 곳에서 많이 사용된다.
과시적 수사는 사법적 수사나 정치적 수사와도 중복되는 약간 모호한 수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정치적 수사, 사법적 수사 속에 과시적 수사가 자주 활용된다는 말이다. 과시적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한다. “결혼식장에서 축하연을 하든, 장례식 장에서 추도사를 하든, 공격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든 간에 적절한 시점에서 조화로운 말을 해야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난의 화살이 당신에게 쏟아질지도 모른다”(279)는 얘기다.

 

대체로 한 번쯤을 읽어볼 만한 내용들이었다. 구체적인 수사의 방법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레토릭을 구사해서 청중이나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려는 시도를 간파하는 데에도 꽤 쓸모가 있겠다.
하지만 책 속에서 제시된 여러 예들이 다 그리스·로마나 영어권 정치가들의 (나에겐) 생소한 연설문들이어서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다만 아래 두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연설가들은 모두 처음부터 타고난 연설가였던 것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연습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연설문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검토와 반복 연습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것. 

 

언젠가는 우리말로 발표된 연설이나 글에 대해서도 이처럼 재밌게 수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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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책에서 옮긴다.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문체를 구사하기가 쉽지는 않다.  

 

쿠인틸리아누스는 “한 가지 문체가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을 수 없다”는 키케로의 말을 칭송하며, 이를 바탕으로 적절성에 대해 폭넓게 해석했다.

 

이전의 책에서도 얘기했다시피 글을 쓰는 능력과 생각하는 능력은 물론이요, 즉흥 연설까지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적절성을 고려한 연설을 터득해야 한다. 키케로는 이런 연설을 네 번째로 탁월한 웅변으로 꼽았는데 나는 적절성을 고려한 연설을 최고로 친다. 웅변을 옷에 비유하자면 그 종류는 다양하다. 주제에 따라 거기에 맞는 형태도 다르기 때문에, 특정 상황과 사람들을 분석하여 거기에 철저히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설이 빛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득력까지 떨어질 것이다. (…) 하찮은 근거에 장엄체를 쓰거나, 중요한 대목에 빈약하고 어설픈 문체를, 엄숙한 주제에 현란한 문체를, 강력한 주장이 필요한 순간에 가라앉은 문제를, 반대하는 대목에서 위협적 문체를, 맹렬한 논의에서 순종적 문체를, 기분을 좋게 띄워야 할 주제에서 거칠고 격렬한 말투를 쓴다면, 이런한 문체가 연설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143)

 

 

* 그리고 몇 군데에서 발견한 오탈자

 

(115쪽 11번째 줄)
유도신문 → 유도심문

수정: '유도신문(誘導訊問)'이 맞는 말이라고 한다.

 

 

(119쪽) 세 번째 단락 중 신문사에서 ‘수정하거나 보충할 수 있는 지면… 뒤에 작은따옴표가 나오지 않는다.


(130쪽 12번째 줄)
케케로의 독설 능력 → 키케로의 독설 능력

 

(161쪽 5번째 줄)
헌사를 받치는 일 → 헌사를 바치는 일

 

(238쪽 밑에서 4번째 줄)
물론 아리스토텔레에게 →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는(휴 블레어) 악의적이거나 거짓된 수사에 대해 경고했는데, 아래 말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문제를 위장하기 위해 작문을 이용했다. 또한 견식 있는 이들로부터 두고두고 칭송을 받기보다, 무지한 이들로부터 순간의 갈채를 얻으려 했다. 하지만 이는 ‘사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사기는 그 기반이 오래 지탱하지 못하는 법이다. 유익한 작문은 지식과 과학으로 줄기와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수사는 여기에 매끄럽게 광을 내주는 역할을 하며, 줄기가 탄탄하고 견고하지 못하면 광이 제대로 나지 못한다. (49)

『에드 헤렌니움』에서 경고했다시피 “판사나 청중의 신념에 반대되는 말은 틀린 것이다.” 배우이자 저널리스트인 윌 로저스는 이 경고를 다음과 같이 상냥하게 표현했다. “낚시를 하러 가서 낚시 바늘에 미끼를 달 때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달아야 한다.”
현명한 설득자는 자신과 청중이 공감할 수 있는 상투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가능하다면 결론도 상투어로 맺는다. (76-77)

소리는 청중의 생각과 감정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콜라(cola)의 길이가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콜라는 절을 뜻하는 단어 콜론(colon)의 복수형이다. 참고로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음의 문장은 콜론을 설명하는 좋은 예다. “The louder he talked of his honour, the faster we counted our spoons(자신의 명예를 소리 높여 뽐내는 인간을 만나면, 집안의 수저 개수를 세는 우리들의 손길은 빨라진다).”
이렇게 길이가 같은 절을 나란히 병치시키는 문장을 수사학에서는 이소콜론(isocolon)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위 문장은 자신의 명예를 떠벌리는 사람치고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집안 물건을 잘 단속하라는 뜻이다. (148)

토마스 아퀴나스는 뭐든 읽고 나면 단어까지 정확히 기억하기로 유명한데, 그는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기억해야 할 대상과 ‘쉽게 연상되는 것’을 찾는다.
2.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한다.
3. 그것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정성껏 살핀다.
4. 그것을 자주자주 떠올린다. (179)

언어가 공기라면 수사는 날씨다. 더없이 포근하고 기분 좋은 봄날부터 창틀의 유리가 덜거덕거릴 만큼 천둥 요란한 날까지 날씨의 종류가 다양하듯, 수사도 마찬가지다. 날씨처럼 수사는 저 밖에 넓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를 즐겨라.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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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0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송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유도신문`이 맞다고 한다. 여태 `심문`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AgalmA 2015-03-06 00:06   좋아요 0 | URL
이거 자주 혼동 문제로 거론되더군요.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리차도 토이<수사학> 소개도 위 글 내용과 비슷하던데, 수사학 책은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돌궐님은 키케로 <수사학>을 선택하셨으니 향후 리뷰 기다려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