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py (Paperback)
Avi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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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Avi)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희곡을 쓰다가 뒤늦게 어린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뉴베리상을 한 번, 뉴베리 아너상을 두 번 받았다.

내가 조사한 영어책 중에도 애비가 쓴 책이 많이 나오길래 찾아서 읽어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 판타지를 좋아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읽었는데, 역시 재밌다.

 

문장은 낭독에 아주 좋을만큼 리듬이 있었고, 동물의 대사도 통통 튀고 재미있었다.

출퇴근길에 읽다가 소장하고 싶어서 하드커버를 주문할 정도로 읽는 맛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 스타일인가 모르겠는데, 좀 어렵고 고풍스러운 단어가 많이 나왔다.

단어장을 보니까 찾은 낱말이 모두 387개나 된다.

 

플롯은 아주 긴장감이 넘치고 줄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처음과 끝에 두 개의 죽음이 있지만, 결말은 행복하다.

어찌 보면 케이트 디카밀로의 <데스페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곳곳에 나오는 자연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위트 넘치는 대사들. 아주 즐겁게 읽었다.

비가 왜 뉴베리를 3번이나 받았는지 알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표지는 다르다.

포피가 왼쪽 귀에 보라색 구슬 귀걸이를 하고 고슴도치 가시검?을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Product Details 

 

번역서에는 포피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양귀비'로 나오던데, 처음에만 이름의 본뜻을 각주 같은 것으로 알려주고 그냥 '포피'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다른 동물 이름들도 다 뜻풀이로 나온다.

 

어두운 숲속에서
애비 워티스 (지은이), 펠릭스 샤인베르거, 브리안 플락커 (그림), 유동환 (옮긴이) | 푸른나무 | 2004년 8월

 

 

#

아래는 책에서 인용

 

- 포피가 딤우드 숲속에 들어설 때 묘사

It was as if the sun had been stolen. Only thin ribbons of light seeped down through the green and milky air, air syrupy with the scent of pine, huckleberry, and juniper. From the rolling, emerald-carpeted earth, fingers of lacy ferns curled up, above which the massive fir and pine trees stood, pillar-like, to support an invisible sky. Hovering over everything was a silence as deep as the trees were tall.

Poppy gazed at it in awe. She was not sure what she'd thought Dimwood Forest would be like. She knew only that she'd never imagined it so vast, so dense, so dark. The sight made her feel immensely isolated and small. Feeling small made her a part of all she saw. Being part of it made her feel immense. It was so terribly confusing. (83-85)

 

 

- 부엉이 Mr. Ocax를 피해 고슴도치 이레스의 집으로 피신한 포피와 이레스의 대화

"I think Ragweed would have liked you." Poppy said with admiration. But even as she spoke, a great wave of exhaustion swept over her. "Please, Ereth, would you mind very much if I took a nap?"

"Poppy, you can do what you want. But if I were you, I wouldn't sleep where you're standing. As I told you, it's my toilet, and it's too stinky even for me."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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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te Runner (Mass Market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Riverhead Books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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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이 책을 사서 읽어보려고 했다.

그 때 첫 장 몇 페이지를 읽다가 뭔 얘긴지 몰라서 일단 제쳐두었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읽기 시작해서 이제 다 마쳤다.

중간에 학회다 뭐다 일들이 많아서 출퇴근길에도 읽지 못하다가 요 며칠 뒷부분 거의 반을 한꺼번에 읽어버렸다.

그만큼 손을 떼기 어려웠다.

 

 

문장 구조가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낯선 아프가니스탄 말이 수시로 나오고 작가가 의사여서인가 의학용어도 심심찮게 나오는 만큼 단어들은 정말 많이 찾아봐야 했다(물론 찾아도 없을 것 같은 낱말은 찾지도 않았다).

찾다 찾다 나중에는 단어장 만드는 건 포기하고 내용 파악만 하고 지나갔다. 아마 다시 읽으면 또 찾아야할 단어들이다.

밑줄은 쳐 뒀으니 내 머리가 얼마나 나쁜지 나중에 재독할 때 또 확인이 되겠지.

 

 

너무나 유명한 책이니 줄거리 재탕은 그만 둔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의 줄거리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봤기 때문에 감동이 매우 컸다.

아미르와 하산에게 벌어진 일들이 아프간의 역사와 신분 갈등 등과 얽히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라힘 칸이 아미르에게 '너 자신까지도 용서하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살면서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할 때가 있다.

소랍을 탈레반이 된 아셉의 소굴에서 구해 내면서, 자신의 실수 때문에 상처 받은 소랍에게서 미소를 다시 보게되면서 아미르는 과거에 저지른 자신의 배반을 용서받았을 것이다.

 

 

마지막에 아미르가 연을 쫓아가는 장면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북받침을 느꼈다.

아프가니스탄은 무자비한 탈레반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선 사랑과 용기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임을, 그 비극적 아이러니를 이 소설만큼 잘 표현해낸 책은 아마 없을 것 같다.

 

 

 

 

 

#

아미르가 카불의 고아원에서 소랍을 찾을 때.

이 문장 속에 이야기의 배경과 발단, 그리고 결말에 대한 암시까지 압축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I thought of the street fights we'd get into when we were kids, all the times Hassan used to take them on for me, two against one, sometimes three against one. I'd wince and watch, tempted to step in, but always stopping short, always held back by something.

I looked at the hallways, saw a group of kids dancing in a circle. A little girl, her left leg amputated below the knee, sat on a ratty mattress and watched, smiling and clapping along with the other children. I saw Farid watching the children too, his own mangled hand hanging at his side. I remembered Wahid's boys and ... I realized something: I would not leave Afganistan without finding Sohrab. "Tell me where he is," I said.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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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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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가 원작이 있다길래 궁금해서 읽어 봤다.

드라마에 적합하게 각색된 부분이 있을 거 같아서 도서관 예약까지 하여 읽었건만,

결과적으로 시간 낭비였다. 나한테 미안할 지경이다.

어설픈 아포리즘과 같잖은 인용들. 이런 게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국회라는 배경과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즐겨 읽는 사이코 테러범이 나온다는 것만으로 이런 현학적인 문장이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드라마 작가의 뛰어난 각색 능력만 확인시켜 주었을 뿐.

리얼리티는 없고 사변과 수사만 가득한 이런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부류가 어떤 이들인지 분명해진다.

 

한 작가가 가진 여러 가능성도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응준 씨의 다른 소설도 읽어 보고 평가해야겠지만

내가 누굴 평가할 만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고,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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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영어 사교육 - 영어 사교육 불안에 지친 부모들을 위한 필독서
어도선 외 지음 / 시사IN북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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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읽어봐야지 했던 책인데, 혹시나 해서 도서관에서 검색해 보니 있길래 빌렸다.

다른 책들도 이것저것 시작만 한 게 많고 요즘 일들이 좀 있었기 때문에 읽은 책 기록할 게 없었는데

이건 가볍게 시작했다가 몇 시간만에 다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늘 생각해 오던 문제들이나 카페에서 논의하던 이야기들이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

애들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근데 가끔 이런 책 좋다, 저런 글 좀 읽어 봐라 하고 떠드는 것에 참 회의가 드는 게 이런 거 챙겨보는 부모쯤이면 굳이 걱정할 거 없고 알아서들 잘 할 거란 생각 때문이다.

결국 내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기 위한 글쓰기일 뿐 그 이상은 기대할 수가 없다.

이미 바뀔 사람은 바뀌었으며, 바뀌지 않을 사람은 내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안된다는 얘기다.

 

 

 

자신의 모국어를 포함해서 다른 언어를 배우는 행위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의 모국어 이외의 다른 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교육 방법, 시간, 나이, 동기, 사회 언어적 조건, 교육 환경 등이 다 얽혀 있죠. 그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우리 조건에서는 영어 공부는 결국 평생 하는 것입니다. 조기 영어 교육에 그렇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조기에 영어 공부를 시작해도 끝까지 하지 않으면 별반 차이를 만들지 못합니다. 아무리 조기에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에 들어가서도 영어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영어는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 영어라는 언어를 조기에 끝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영어라는 언어를 배우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는 마음자세로 출발해야 합니다. 제가 앞에서 지속적인 노력이라고 했었죠?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결국 이런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162-163)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회화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전국에 영어 도서관을 지어 많이 읽게 하라. 그리고 이후에 대학생이 되었을 때 영어 회화가 필요하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영어 회화를 배우면 된다. 엄청난 양의 읽기를 한 사람은 회화를 배우기가 아주 쉽다. 영어 발음은 통하기만 하면 되지 영미인처럼 발음할 필요도 없다." (198) - 스티븐 크라셴 박사

 

 

2011년 전국중고등학교 영어교과연구회 동계 워크숍에서 이병민 교수님이 발표하신 자료 중에 국내 학년별 영어 교과서에 대한 읽기 난이도 표가 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의 학년별 읽기 수준과 연동시켜보았습니다. 국내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지문의 렉사일 지수가 300에서 500이면 미국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으로 리딩 레벨은 1.1~2.10에 해당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의 경우는 수준이 많이 높아져 미국의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에 해당되죠. <해리포터> 시리즈나 <나니아 연대기>가 바로 이 수준에 해당되는 도서들입니다. 결국 현행 수능 영어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읽기 능력이 이 정도 되지 않는 아이들이 시험 볼 때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237)

 

 

 

 

책에도 나오지만 자칫 부모들이 빠질 수 있는 착각 중 하나가 "애들 영어 실력은 투자한 돈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학원에 보내고 연수를 보내고 돈지랄을 해야 애들 영어 실력이 좋아질 거라는 그런 착각.

'학원을 안 가고도 영어 실력 끝내주는 애들도 많으니 돈이 다가 아니다'와 같은 허술한 논리가 아니더라도 가만 생각해 보면 결국 실력은 투자한 시간에 비례할 뿐이다.

학원을 못 보내서 가만히 앉아 있고, 방치하고, 부모는 테레비 보며 놀면서 애한테는 영어 공부 하라고 하고, 공부할 때는 옆에서 희희낙낙 떠들고, 강요하고, 지시하고, 명령만 하고 있는데 애들이 무슨 마귀 유혹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는 석가모니도 아니고 제대로 공부가 되겠냐고.

 

 

영어 실력은 학원을 가든, 집에서 하든 어떤 방법이건간에 거기에 할애하고 집중한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다.

학원 가서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그게 쌓여서 실력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학원 안 가도 집에서 원서 소리 내서 읽고 많이 사 보고, 빌려 보면서 즐기다 보면 저절로 실력이 느는 것이다.

책에서도 단정하여 말하지만, 결론은 사교육이 아니라 다독이란 얘기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문장이 좋고 재미있는 책을 골라서 던져줘야 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해야겠다.

 

 

아이 연령에 맞는 수준과 아이의 리딩레벨에 맞는 수준이 있겠지.

리딩레벨에 맞으면 연령은 크게 신경쓰지 말자.

조금 낮은 연령 수준의 책도 그것이 '영어라서' 유치하다고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유치하다고 느낄 나이는 이르면 중학생, 늦으면 고등학생이라고 본다.

중학생? 생각보다 유치하다.

나 중학교 다닐 때 구슬 치기, 개구리 접기, 팔씨름 이런 거 하면서 놀았다.

진짜 초등생보다 더 유치하고 말초적으로 놀던 때가 중학교 때다.

유치한 영어책 그 때 읽히면 된다. 초등 때 읽어야 하네 어쩌네 다 웃기는 소리들이지.

캡틴 언더팬츠? 나도 재밌게 읽는다. 그리고 쉽지도 않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권장하던 도서들 고전이랍시고 억지로 읽긴 했는데,

도무지 뭔 소린지 머리에 들어오지도, 감정이입도 안됐다.

차라리 그 때 로알드 달이나 읽었으면 진짜 통쾌하고 재미있었을 거다.

비아냥과 풍자는 아이들과 청소년이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미적 범주이기 때문에 그 때는 오히려 그런 게 담긴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대학생 때도 청소년 책을 재미있게 봤다. 정신적으로 덜 성숙해서 그랬던 거 같다.

 

 

그러니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말 따윈 별로 공감이 안된다.

웬만한 영어책 어른이 되어서 읽어도 재미있고 공부까지 되기 때문에.

웨이사이드 스쿨만 봐도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속에 매우 수준 높은 유머와 해학이 담겨 있지 않던가.

유치하고 수준이 낮아서 읽을 만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수준이 낮은 거다.

중학생도 플라이 가이 시리즈 읽으면서 얼마든지 영어를 즐길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애들이 쉬운 책 즐기면서 읽게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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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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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서 반 정도 읽다가 기간이 다 되어서 재대출하려니까 예약이 돼 있다며 안된단다.

그래서 반납하고는 나중에 사서나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다른 책 빌리러 가서 혹시나 해서 서가에 가 보니 2,3,4권은 없고 1권만 꽂혀 있더라. 하여 냉큼 뽑아 대출했다.

책 내용과 아무 관련도 없는 대출과 반납 얘기를 왜 시시콜콜 하느냐면,

대선 이후 때가 때이니만큼 이 책 읽기 열풍이 불었다던데 과연 그렇다는 걸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근데 다 읽고 나니 이런 정도 책이라면 책장에 꽂아두고 아이들한테 물려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시대의 여러 단면들에 대해 아무 관점도 느낌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태극기를 처음 고안한 이는 중국인이란 사실, 단일민족 신념의 허상,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때 자행된 학살 문제, 명분도 자존도 없는 수구꼴통들의 편가르기 수법, 반미 문제와 병역 문제 등에 대한 명쾌하고 깊이 있는 서술이 돋보인다.

 

 

평소에 내막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도 사실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였다.

예를 들면 병역 기피는 과거 양반층에서 거의 관습적으로 반복되었던 구태였지만, 나는 막연히 그러진 않았으리라 짐작만 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양반은 물론이요, 평민들까지도 향교에 입교하거나 승려가 되어 병역을 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승려의 지위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천인에 속하는데, 양인인 농민이 사회적 신분을 낮춰 승려가 되는 데는 불심의 발동보다 군역의 무서움을 피하기 위한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었다. 농민들이 군역을 피하기 위해 승려가 되는 일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승려들은 국가에서 토목공사에 동원하는 요역 대상이 되었고, 임진왜란 당시 승병이 출현한 것도 호국불교의 전통보다 국가가 승려집단이 군역기피자의 소굴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사실과 더 관련이 깊다. 이도저도 안 되는 농민들은 도망을 쳐서 군역을 모면했다. 또 당시에는 대립(代立)이 공공연히 인정되어 돈 있는 사람은 자기가 번상해야 할 차례에 돈을 주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현역 근무를 하게 했다.

양인들 가운데서 그래도 여건이 좋은 사람들은 향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군역을 피했다. 해방 이후 대학생에게 징집을 연기해준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는 향교에 입학해 교생(校生)이 되면 군역을 면제해주었다. 여기서 특기해야 할 점은 서양과는 달리 유교문명권에서는 평민도 여건이 허락되면 교육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평민 가운데도 드물기는 하지만 문과나 생원, 진사과에 합격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향교의 교육 기능은 매우 취약했다. 이미 중종대에 이르면 당대의 권신 김안로(金安老)가 향교는 군역을 피하려는 자의 소굴이라고 개탄했을 정도로 향교는 교육적 기능을 상실했다. 더구나 군역면제의 특권이 있는 양반들은 평민들이 군역을 피하려고 득시글대는 향교에 자제들을 보내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17세기 이후 사교육기관인 서원이 발달하고, 공교육기관인 향교의 교육 기능이 붕괴한 것도 군역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292-293)

 

 

다행이 요즘 들어 군대 안 가거나 못 간 인간들이 정치판에서 어깨 제대로 못 펴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 같긴 하다.

신의 아들은 더 이상 신의 아들이 아닌 것이다.

 

 

아래는 서슬 퍼렇던 칠팔십 년대 운동 좀 하다가 공안기관에서 고문 받던 이들이 없는 사실까지 뱉어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마흔이 넘고 이런저런 세상일을 겪다 보니 무척 공감이 되는 말이다.

 

 

정말 그랬다. 공안기관원들이야 상부의 지시가 있어 움직이고, 또 그런 일을 하면 돈이 나오고 진급도 하고 상도 받는데,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 받는 것도 아니고 뻔히 감옥갈 일을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했다는 말을 그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없는 배후를 만들어내야 했고, 광주 시민의 항쟁은 고정간첩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야 자신과 상급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였다. 양심이라는 것을, 자발성이라는 것을, 자기 희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그것들을 소중히 간직한 사람들 간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251)

 

 

 

누가 한홍구 교수를 빨갱이라 했던가? 내가 보니 기껏해야 중도진보가 될까말까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에서는 이건창, 황현 등 구한말의 건강하고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존경에 가까운 찬사들이 이어진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설 땅이 일제 말기의 친일행위로 인해 사라졌다면, 진보적 지식인들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의 와중에 철저히 이 땅에서 사라졌다. 새가 하늘을 나는 데 필요한 좌우의 두 날개가 모두 꺾인 것이다. 그리고 이남에서 정권은 백범 김구 선생처럼 너무나 보수적인 분을 여순반란 사건의 배후조종자인 빨갱이로 몬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들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덕목인 도덕성, 일관성, 책임감, 지혜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당치 않은' 족속들이다. 그들은 한번도 정녕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적도 없고, 희생한 적도 없다. 한국전쟁 때 마오쩌둥도, 미8군 사령관 벤플리트도 아들을 바쳤지만 그들은 한강 다리를 끊고 가장 먼저 도망갔다가 돌아와 남은 사람들을 부역자로 몰았다. 러일전쟁 때 너무 큰 희생으로 일본 시민들이 노기 사령관에게 항의하러 부두에 나갔다가 아들 셋의 유골을 안고 배에서 내리는 노기 앞에서 같이 울었다는 일화가 있으나 자칭 우리의 보수파는 그런 신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대로"는 수구파의 구호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 일부 부유층은 오히려 훨씬 살기 좋아졌다면서 "이대로!"를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냉전과 민족대립을 넘어 화해로 가는 마당에 이들은 또 "이대로!"를 외치며 길을 막는다. "이대로!"는 수구파의 구호지, 보수주의자들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똑같은 콩으로 똥을 만들 수도 있고 된장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재질도 색깔도 비슷해 보이지만 수구와 보수의 차이는 똥과 된장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수구로 매도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보수적 지식인이라면 시민단체들을 홍위병이라고 욕할 것이 아니다. 장엄한 최후를 맞은 한말 보수주의자들의 엄정한 전통은 일제의 간지에 의해 온건하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이 더럽혀짐으로 인해, 그리고 친일잔재 청산의 좌절로 인해 계승되지 못했다. 군사독재에 의해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이 유린당할 때 보수주의자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은 오히려 진보주의자들이었다. 진보와 보수의 편가르기에 앞서 보수세력이 먼저 수구세력과 스스로 결별해야 하지 않을까? (152-153)

 

 

 

시간이 되는 대로 나머지 3권도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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