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h, Plain and Tall 사라, 플레인 앤 톨 (영어원서 + 워크북 + MP3 CD 1장) 뉴베리 컬렉션 3
패트리샤 매클라클랜 지음, 이수영 외 컨텐츠제작 및 감수 / 롱테일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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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레벨 3점대라고 해서 다 아는 단어만 나오는 게 아니다.

문장이 간결할 뿐 어렵고 뜬금 없는 단어도 자주 나온다.

 

카페에서 영어책 1권읽기 북클럽을 하고 있는데, 투표로 뽑힌 책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미묘한 심리는 형용사와 부사로 묘사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저 그들의 행동과 말이 담담하게 서술될 뿐이다.

심지어는 이 책의 화자인 애나조차도 자기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과 몇 마디 독백만을 이야기할 뿐.

노래와 그림이 새라와 아이들의 만남을 이어준다.

노래로 만남이 시작되었다면 새라의 그림은 그들의 인연이 이어지게 되는 매개체가 되었다.

새라는 손수 마차를 몰아 읍내로 가서 파란색과 회색, 푸른색 색연필을 사왔다.

 

그걸 본 케일럽은 웃으면서 말한다.

"Papa," he called. "Papa, come quickly! Sarah has brought the sea!"

 

새라는 마실 가서 바다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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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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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독특하고 감각적인 문체.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사회와 문명 비판이 가득하다.

가끔은 적응하기 힘든, 좀 지나친 시선도 없지 않았지만 그 꼬인 관점도 나름 존중해 줄만하다.

 

 

살아 움직이며 펄떡대는 문장들은 아마도 원서로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번역문보다 원문에서 더 명확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좀더 읽기가 수월해진 다음에 시도해 봐야겠다.

왜 레리 브래드버리 하는지 조금 알 거 같다.

 

 

 

아래는 화성에 매료된 탐험대원 스펜더가 탐험대장에게 한 말: SF 소설에서 누가 이런 문장을 기대했을까?

 

 

"순진한 것이 이롭게 작용할 때만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종교와 예술과 과학을 융합한 것도, 결국 과학이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연구하는 일이고, 예술이란 그 기적을 해석하는 일이니까요. 화성인들은 과학이 미와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일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정도의 문제일 뿐이지요. 지구인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이 그림에는 실제로 색깔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색깔이라는 것은 어떤 물질의 분자들이 빛을 반사하도록 배치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색깔은 내가 우연히 보게 된 물건들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훨씬 더 영리한 화성인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것은 멋진 그림이다. 이 그림의 아이디어와 색깔은 삶에서 왔다. 이것은 좋은 그림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157-158)

 

 

만연체 사색이라면 탐험대장도 만만치는 않다.

 

 

'영리한 것 같지도 않고 영리하고 싶지도 않을 때 영리한 것, 난 그게 정말 싫어. 슬금슬금 돌아다니다가 어떤 계획을 하나 세우고는 그게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것.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이런 것들이 정말 싫어. 도대체 우리가 뭐야? 다수파? 그게 정답인가? 다수는 언제나 신성한 거야? 언제나, 언제나 신성하고 아주 작은 순간, 아주 사소한 경우에도 결코 틀리지 않는 거야? 그런 것이야? 천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아? 도대체 이 다수의 정체는 뭐고,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거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해서 그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 생각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거야? 이 썩어빠진 다수에 내가 가담하다니,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나는 지금 마음이 편치 않아. 폐쇄 공포증인가? 군중을 무서워하는 공포증인가? 아니면 상식을 무서워하는 공포증? 온 세상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 인간이 옳을 수도 있을까? 그래, 이제 이런 생각은 집어치우자. 배를 깔고 기어 다니다가 제멋대로 흥분해서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거야. 그래, 그거야. 바로 그거야!" (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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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py and Rye (Paperback)
Avi / 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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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다 읽었는데 크리스핀에 비하면 약간 수월한 편이다.

 

책에서 나오는 악의 축, 비버들은 탐욕과 교활의 아이콘이다.

비버 우두머리 Canad는 연못을 호수로, 호수를 바다로 만들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

개울가 땅 속에 살던 들쥐 식구들같은 이웃은 어떻게 되건 말건!!

이처럼 비버 무리의 탐욕스러운 소굴 확장은 뭔가 자본논리나 제국주의, 아니면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행태(NIMBY 또는 PIMBY)를 풍자하는 걸 수도 있다.

 

Poppy는 Ragweed 가족에게 그의 죽음을 알려주기 위해 고슴도치 Ereth와 함께 길을 떠나고, Rye는 Ragweed를 찾아 떠난다.

그러다가 포피와 라이는 길 한가운데서 만나고, 거기서 함께 춤을 춘다. 둘은 서로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진다.

포피는 라이와 그 가족에게 레그위드가 죽었고 자기가 레그위드를 사랑했었다고 말한다.

이 말에 좌절한 라이는 포피에게 인정받기 위해 충동적으로 비버 소굴로 향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만들어 낸다.

 

30분에 12쪽 정도 읽는 속도로 한 1주일 걸린 듯하다.

 

이 책에서는 캐너드의 욕심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레스의 엉뚱한 순정도 안타까우면서 재미있었다.

이 고슴도치는 꽤 까다롭고 시니컬하지만 미워할 수 없다.

아래는 탐욕과 자본과 경쟁의 상징 캐너드의 말과 생각.

 

But now, how different the beavers had made it! Every day the pond was growing wider, deeper, grander. It had taken on the vibrant color of mud. It was a home for hearty, busy beavers who worked day and night.

"This," Mr. Canad said to himself with genuine pride, "is progress." The portly beaver felt so good about it, he spelled the word out letter by letter: "P-R-O-G-R-E-S-S!"

And yet, Mr. Canad had to confess, he was not fully satisfied. No, he was not. What he and his company had created was -he had to admit it- merely a pond.

Mind, he told himself, there was nothing wrong with a pond. A beaver who built a good pond had every reason to be pleased with himself. Yet even the word pond suggested smallness, a compactness of size which might be good enough for some, but not for the likes of Caster P. Canad and Co! Not only could they do better, they should do better. As Mr. Canad saw things, it was not a pond that was needed but a lake!

The beaver cast his keen engineer's eye over the little valley. To achieve a lake they needed to build another dam higher up.

 

좀 뒤에 캐너드는 이런 말도 한다.

Then he mused. "If I can make a lake, well, bless my teeth and smooth my tail, why not an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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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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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원서로 읽어보려고 했던 책인데 어려운 거 같아서 관두고 번역본으로 봤다.

내 글쓰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회의가 많았는데, 이 책을 보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저자가 말하는 것에 공감하면서 이런 다짐을 했다.

 

 

싫어하는 것과 악담하기 위해서 글 쓰지 말자.

쓰려면 애정을 갖고 쓰자.

글쓰기는 만만한 게 아니다.

생각이 완성되고 글이 나오는 게 아니라 글을 쓰고 고치면서 생각이 완성되는 것이다.

초고는 다듬지 말고 빨리 써서 뼈대를 갖춘 다음에 수정하자.

사람과 장소: 논픽션의 두 뿌리.

사람이 '그곳'을 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아래는 책에서 인용.

 

 

글을 쓴다는 건 힘든 일이다. 명료한 문장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심지어는 세번째까지도 적절한 문장이 나오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절망의 순간에 이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24)

 

 

이 이야기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언제나 써야 할 것보다 많은 자료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의 힘은 가장 도움이 되는 일부분을 추려내기 위한 여분의 자료가 얼마나 많으냐에 비례한다. 평생 자료만 수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조사를 마치고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59)

 

 

이런 종류의 여행기를 써보는 연습을 하자. 그렇다고 모로코나 몸바사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쇼핑몰이나 볼링장, 탁아소도 좋다. 다만 어느 장소건 그곳만의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은 자주 가보아야 한다. 그 특별함은 대개 그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조합된 것이다. 집 근처 볼링장이라면 내부 분위기와 주로 찾아오는 사람들, 외국의 어느 도시라면 고대의 문화와 현재의 주민들이 그 특별함을 이룰 것이다. 그것을 찾자. (105)

 

 

미국의 실업계는 쉬운 말을 편안하게 사용하는 곳이 아니다. 글 한 줄 한 줄에 허영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지위가 높건 낮건 관리자들은 문체가 단순하면 생각이 단순하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 단순한 문체는 고된 노력과 사고의 결과다. 문체가 엉망인 글을 쓴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뒤죽박죽이거나 오만하거나 게으른 사람이다. 글은 여러분에게 거래나 돈이나 선의를 제공할 누군가에게 여러분을 알릴 유일한 기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글이 현란하거나 거만하거나 모호하면 여러분도 그런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글을 읽은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57)

 

 

좋은 평과 좋은 비평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은 제시할 수 있다.

먼저, 비평가는 자신이 평가하는 매체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영화는 죄다 시시하다고 생각한다면 영화에 대해 써서는 안 된다. 독자는 지식과 열정과 편애를 키워줄 영화광의 글을 읽을 권리가 있다. 비평가가 모든 영화를 다 좋아할 필요는 없다. 비평이란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니까. 그러나 비평가는 모든 영화를 보러 갈 때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즐거울 때보다 실망할 때가 더 많다면, 그것은 그 영화가 최선의 가능성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이든 곱지 않게 보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비평가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카프카적인'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것보다도 더 빨리 싫증을 느낀다. (162-163)

 

 

 

이 비평은 최고다(위). 멋지고 비유적이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글은 우리의 신념 체계를 건드리고 그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비평은 대개 그래야 한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열쇠구멍이라는 적확하고도 신비한 은유다. 그러나 한 나라의 가장 강력한 매체가 자국이 수행하고 또 확대하고 있는 전쟁에 대해 자국민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했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그대로 남는다. 이 칼럼은 미국인 대부분이 아직 베트남전쟁을 지지하던 1966년에 연재되었던 것이다. 만일 텔레비전이 열쇠구멍을 넓혀 물결치는 옷자락뿐 아니라 잘려나간 목과 불에 타버린 아이를 보여주었더라면 사람들은 더 일찍 전쟁 반대로 돌아섰을까? 답을 알아보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적어도 비평가 한 사람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비평가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기는 진실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닐 때 그것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169)

 

 

모트 살(Mort Sahl)은 미국이 조용히 안정을 누리려던 1950년대 아이젠하워 시대에 깨어 있었던 유일한 희극 배우였다. 많은 사람들이 살을 냉전주의자로 보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비판한다면, 그것은 내가 나쁜 것을 바꿀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트제너레이션(1950년대 미국에서 대두한 보헤미안적 문학 예술가 세대)처럼 '난 개입하지 않을 테니 딴데 가보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 있으며 개입한다(If I criticize somebody, it's because I have higher hopes for the world, something good to replace the bad. I'm not saying what the Beat Generation says: 'Go away because I'm not involved.' I'm here and I'm involved)."

진지한 유머를 쓰고 싶다면 "나는 여기 있으며 개입한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자. 유머 작가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시사적인 문제에 깊이 뛰어든다. 그들은 대중과 대통령이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아트 버크월드와 개리 트루도는 매주 한 번 용감한 일을 감행한다. 그들은 일반 칼럼니스트들은 차마 할 수 없지만 할 필요가 있는 말을 한다. 다행인 것은 정치인들은 유머에 능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보다 더 어리둥절해한다는 것이다. (181-182)

 

 

이 글이 왜 끔찍한지 애써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한마디로 조잡하고, 진부하고, 장황하다. 언어를 깔보는 태도가 있다. 가식적이다(나는 '아시겠지만'이라고 쓰는 사람의 글은 더 읽지 않는다). 그러나 성긴 글에서 가장 딱한 점은 제대로 된 글보다 읽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글은 독자의 여행을 편하게 만들어주려 한 나머지 천박한 속어, 조악한 문장, 내용 없이 철학자인 체하기 같은 이런저런 방해물을 길에 늘어놓고 만다. 화이트의 글은 훨씬 읽기 쉽다. 그는 문법이라는 도구가 오랜 세월 동안 그저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문법은 독자들이 알게 모르게 크게 의지하는 버팀목이다. E. B. 화이트나 V. S. 프리쳇의 글이 너무 훌륭하다고 해서 읽기를 그만두는 독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글쓴이가 자신을 깔본다고 느끼면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선심 쓰는 체하는 필자를 참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상의 언어에 대한, 그리고 최상의 독자에 대한 경의를 품고 쓰자. 성긴 문체를 쓰고 싶은 충동이 너무 강하다면, 자신이 쓴 글을 큰 소리로 읽어보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직접 느껴보자. (205)

 

 

여기에서 논픽션 작가가 얻을 만한 교훈은, 자기 과제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듀본』에 쓰는 글이라고 해서 꼭 자연에 대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카 앤 드라이버』에 글을 쓴다고 해서 꼭 자동차에 대해서만 쓸 필요는 없다. 써야 할 주제의 범위를 넓혀서 그것이 여러분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자. 자신의 삶을 거기에 가미하자. 여러분이 쓰기 전까지는 여러분의 이야기가 아니다. (221)

 

 

논픽션 작가라면 비행기를 자주 타야 한다. 흥미로운 주제가 있으면 쫓아가야 한다. 다른 지역이든 다른 나라든 찾아가봐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찾아오지는 않는다.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하자. 그리고 하기로 결정하자. 그리고 하자. (257)

 

 

아버지에게서 선물을 하나 더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내 길을 떠난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것은 좋은 품질은 그 자체가 커다란 보상이라는 뼛속 깊은 신념이었다. 나 역시 글을 팔기 위해 돌아다닌 적이 없다. 집 안에서 글을 좋아한 분은 어머니였지만 -책 수집가, 영어 애호가, 현란한 편지 문장가로서- 내가 장인의 윤리를 배운 것은 사업의 세계에서였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고쳐 쓴 것을 끊임없이 고쳐 쓰고 같은 영역에서 경쟁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글을 쓰려고 애쓰는 자신을 볼 때면, 셸락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속에서 들여온다.

최선을 다해 잘 쓰는 것 외에도, 나는 최대한 재미있게 쓰고 싶었다. 야심만만한 작가들에게 어느 정도는 자신을 엔터테이너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카니발이나 곡예나 광대를 연상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즐거운 글을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서 돋보여야 한다. 여러분의 글쓰기를 엔터테인먼트로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대개 독자들에게 즐거운 놀라움을 주는 것이다. 유머, 일화, 역설, 뜻밖의 인용, 강력한 사실, 특이한 디테일, 우회적인 접근, 단어의 우아한 배열 등 어떤 것이든 좋다. 사실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것들이 바로 여러분의 문체가 된다. 우리가 어떤 작가의 문체가 좋다고 할 때, 우리는 그가 종이 위에 표현하는 그의 개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함께 여행할 친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대개 여행을 밝게 만들어줄 만한 사람을 택하게 마련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권하는 사람이다. (275)

 

 

성실한 필자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조 디마지오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디마지오는 내가 본 최고의 선수이며, 누구도 그만큼 편안하게 경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외야에서 광범위한 수비 영역을 책임졌으며, 우아한 걸음으로 움직였고, 언제나 공보다 앞서 와 있었으며, 가장 어려운 공도 아무렇지 않게 잡았고, 타석에서 엄청난 힘으로 공을 쳐내면서도 전혀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힘들이지 않는 듯한 모습에 감탄했다. 그것은 매일같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어떻게 하면 늘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늘 제가 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관중석에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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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spin: the End of Time (Library, Reprint)
Avi / Balzer & Bray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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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크리스핀 트릴로지는 읽기 계획에 없었던 책이다(그렇다고 요즘 읽은 책들이 다 목록에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1편을 보고 그 뒷 이야기가 참 궁금하여 후편들을 연달아 독파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고 전혀 후회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모험과 긴장으로 가득 찬 성장소설을 언제 또 읽어 보나.

 

중세 시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사건-배경이 잘 녹아 있는 팩션이다.

말랑말랑하고 여운이 많고 큰 갈등이 부족한 우리 어린이 팩션 소설에 비하면 매우 감정 소모가 심한 줄거리임은 분명하다.

아무리 중세 배경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 어린 아이들을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지 저자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책 뒤쪽에 보니 어느 독자는 저자가 2편에서 크리스핀의 멘토인 베어를 죽게 했다고 화까지 냈다고 한다.

그뿐인가. 3편에서는 트로스마저 크리스핀을 떠나고 만다.

들판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몸부림치는 크리스핀의 모습은 정말 암담함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아무튼 이런 기구한 운명이 그 시대에는 흔했을 것이다.

소설은 시대의 단면을 지식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느낌으로도 전하는 것이다.

책 속에는 중세의 다양한 장소와 시간들이 묘사되었고, 그곳에서 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드러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 읽었는데,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끝까지는 오늘 저녁에 한꺼번에 읽었다.

시간을 따져보니 40+15+45+45+25+85+20+30+180분=485분(8시간 남짓) 정도?

페이지 수를 223쪽으로 나누면 한 쪽 당 평균 2.175분 가량이 나온다.

가끔 단어 찾느라 지지부진한 적도 있었으니 대략 한 페이지를 2-3분 정도에 읽는 꼴이겠다.

내용 파악에 문제가 안되는 한 모르는 단어는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정독했다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원서 읽는 속도가 빨라진 건지 아니면 워낙 급박한 이야기라 어쩔 수 없이 막 넘긴 건지 모르겠다.

아마 몰입도가 없다면 좀더 느려질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 큰곰 별자리(Great Bear)를 바라보며 나누는 크리스핀과 Thorvard의 대화를 옮겨 본다.

 

He pointed up. "Consider that bear. The smaller one. Can you see it clearly?"

"I think so."

"That bright star there-at the end of smaller bear's tail," he said. "Do you see the one I mean? It's called the North Star. Ancient mariners called it Cynosure."

I looked along the reach of his arm and hand and thought I saw what he meant. "What of it?"

"That's the mariner's star. It shows true north. It's always there. Unmoving. Know that star and you shall know where you are and where to go. That star is the sailor's hope and guide. I named this ship after it. Always look for it. It can be your salvation. Crispin, follow your Bear."

My heart seemed to swell. "Will it... will it always be there?"

"Until the end of time."

I stared at the star, fixing it in my heart. "Then can I follow Bear forever?"

"Not follow, Crispin. Use. Learn to use him to help you know where you are and where you're going."

My tearful eyes made the star blurry. But I saw it still. And would see it, I knew, till the end of time. (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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