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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작성법 - 제4판
W.부스.조셉 윌리엄스.그레고리 콜럼 지음, 양기석.신순옥 옮김 / 휴먼싸이언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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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독자를 위해 쓴다. 심지어 개인적 비망록이나 일기조차도 언젠가의 '나'라는 독자를 전제로 한다.

하물며 논문에서랴. 읽어줄 독자가 없다면 논문은 어디에 그 존재 가치가 있을까.

하여, 논문 쓰고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행위라는 믿음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들에게 공감한다.

결국 연구는 자신의 발전 뿐만 아니라 연구자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것이므로.

그저 학위를 따고, 내 지식을 과시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논문 쓰기가 아니었으면 한다.

교수 임용이나 실적을 위해 어디선가 본 듯한 도플갱어 같은 논문들을 양산하고, 별 시덥지도 않은 내용으로 굳이 여러 개로 절개하여 논문 숫자를 늘이는 행태들을 보았다.

난 도저히 저런 내용과 그 정도 증거들로 논문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빈약한 자료와 논증에 비해 매우 충만한 권위를 남용하여 버젓이 등재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걸 보고 있자니 도대체 등재지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 내가 하고자 하는 주장은 무엇인가, 우선 '주장'이란 게 있기나 한가.

- 그 전에 적어도 기존의 학설이나 의견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나만의 해결책이 있는가.

 

이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질문을 논문 쓰기에 앞서 해야겠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주장도 있고 어느 정도 문제의식도 있지만, 또 그것만으로는 글이 되지 않는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합당한 증거가 많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당신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수집한 것이 아니다" (40)

단순한 데이터(자료)가 아닌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 데이터가 논문에 쓰이는 증거들이다.

그러므로 자료의 나열만으로는 논문을 쓸 수 없고, (전제-)증거-이유의 완벽한 구조가 있는 주장을 갖추어야 제대로 된 논문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독자는 논증체계의 내재적 건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당신의 주장이 명확한가, 주장에 대해 적절한 이유를 붙였는가, 근거 자료는 질적으로 우수한가 등" (198)

 

그러니 아아, 얼마나 많은 논문들이 주장은 없고 자료만 어설프게 나열하고 끝나 버렸는지.

함량 미달의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고 있자면, 책에서 말한 연구자에게 돌아오는 최악의 반응, "나는 신경 안 쓴다"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책에서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반응은 절대 나쁜 반응이 아니란다. 적어도 논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자라면 독자가 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 말고, 독자가 내 글에 관심이 없을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난 신경 안 써(I don't care)"와 "그래서 뭐?(So What?)" 라는 반응은 내 주장이 귀담아 들어줘야 할 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얘기니까. 

반면 내 문제의식과 주장이 무언가 냉소적이지 않은 반응(격렬한 반감을 포함해서)을 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할일을 한 것이다.

 

<학술논문작성법>의 저자들은 주장을 좀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연구자가 미리 준비하고 갖추어야 할 것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제4판에서는 기존의 내용을 거의 유지하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활용법이나 초안 기획법, 보장(=전제, warrant)에 관한 내용 등을 약간 보충하였다.

여러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어봤지만, 논증적 글쓰기에 관한 매뉴얼로서는 이 책을 따라갈 만한 것이 없는 듯하다.

그저 글쓰는 테크닉과 절차만 안내하지 않으며 연구자로서 지녀야 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에도 좋은 조언을 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를 찾기 위해 자료들을 읽으며, 자신의 주장을 위해 읽으라 한다. 

좋은 주장을 하려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 질문은 자료의 읽기(독서)를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석 달린 참고문헌" 목록을 만들라는 팁은 꽤 쓸모있다.

 

주석 달린 참고문헌을 편집하는 일은 체크포인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당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연구를 수행했는지, 그리고 당신이 수집한 자료를 얼마나 깊게 읽었는지를 측정하는 점검의 기회가 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자료를 요약할 수 없거나, 그들의 관련성을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은 보고서를 쓸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143)

나의 논증을 간접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충분한 윤리성(ethos)을 갖추어야 한다는 얘기는 설득의 세 가지 요소인 "로고스-파토스-에토스"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저자들 중에 조셉 윌리엄스와 그레고리 콜럼이 쓴 또 다른 글쓰기 책, <논증의 탄생>에도 에토스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만큼 비중이 크지 않다.

학술논문이란 건 사실 그걸 쓸만 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이미 투고 과정에서 걸러지기 때문에 굳이 에토스를 갖추라고 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마지막 안내의 장에서 "연구자가 연구를 윤리적으로 보고할 때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공동체에 속하게 될 것이며, 출처의 저자들을 존중하고, 예상과 어긋나는 자료들도 버리지 않고 인정하며, 증거가 허락되는 정도까지만 주장하며, 확실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표절하지 않기, 원전을 잘못 보고하지 않기,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기, 반박할 수 없는 반론을 숨기지 않기 등)보고서 작성의 모든 다른 윤리적 규정을 준수하면(392)," 학점을 얻거나 다른 물질적 보상을 받는 것 이상을 얻게 된다고는 했다.

 

의미 있는 연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논증이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논증을 위해서 연구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학술논문을 쓰려는 모든 이들과 기말 레포트 작성에 식은땀을 흘리는 대학원생들은 늘 곁에 두고 때마다 들춰보면 좋을 것이다.   

 

 

연구라는 활동은 금을 캐는 것과 같다: 땅을 많이 헤집어 놓지만 필요한 것 조금 빼고는 모두 버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당신이 좋은 글을 쓸 때 좋은 자료인데도 다 버려서 아깝구나 생각되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고 쓰는 자료가 더 좋은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이 쓰는 글은 정말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 P257

훌륭한 연구자는 흥미로운 연구문제를 찾아 성공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자신의 연구를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는 관중도 찾는 (만드는) 방법도 잘 안다. - P345

우리는 연구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갖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관련 없는 자료를 읽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라. 실제로, 당신이 이용할 수 있는것보다 더 많이 읽고 기록할 때, 당신은 좋은 사고(good thinking)를 연습하는데 필요한 지식의 기초를 쌓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고는 배울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좋은 사고를 연습하는 것은 당신이 깊고 넓은 지식의 바탕이 있을 때이다. 따라서 당신이 오늘 묻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만 자료를 읽지 말고, 당신이 계속 연구를 하면서 묻게 될 모든 질문에 대해 더 잘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자료를 읽으라.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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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 책을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임승수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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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조차도 먼 훗날의 내가 읽기 위해 쓰는 글이라고 하였다. 글이란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다는 얘기가 울림이 있었다. 뚜렷한 집필 계획과 목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유용하다. 이건 대중서 뿐만 아니라 논문에도 해당되는 원칙일 것이다.
그밖에도 출판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조언들은 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돈에 시간을 팔지 않게 됐을 때 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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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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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다 읽었다. 신뢰하는 이웃 님들의 추천을 보고 나서 찾아 읽었다.

결국 각 잡고 쓸 생각 말고, 쓰는 것을 일상으로 만들라는 거다. 작업실 근사하게 꾸며놓아야 글이 나오는 게 아니란 것이고 작가라면 언제 어디서든 곧바로 연필을 들고 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말에 영감을 얻은 것일까. 아까 점심 때쯤 문득 벚꽃잎 운운하는 글을 북플로 적었는데,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는 얘기와 아까 겪었던 경험과 옛날의 기억이 섞여서 화학작용을 일으킨 듯하다.

뼈는 우리 몸을 지탱해 줄뿐만 아니라 피를 만들어 공급한다. 내 몸의 피는 뼈가 만든 것이다.

이런 관념이 있는 내게 차창으로 날아들어온 벚꽃잎은 잊었던 젊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그 기억은 저런 민망한 글을 끄적이게 한 거다.

핑크빛 벚꽃잎이 내 피가 됐단다. 아하핫! 이거야 원 낯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각설하고,

나탈리 골드버그가 선 수행을 오랫 동안 했다고 하던데, 그녀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 훈련 과정은 결국 불교의 선 수행 과정과도 일치한다. 곳곳의 문장 속에는 불교적 인식론도 수시로 나왔다.

연기론이나 보살사상을 이 책에서 읽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무튼 대단한 에너지를 뿜는 글쓰기 책이다.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려는 분들은 꼭 한 번쯤은 읽어봄직 하다.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수밭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다시 지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위대한 비전을 갖춘 작품만이 남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또 다시 책 속으로(물론 좋은 책 속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지 밝혀 주는 작품을 읽고 또 읽어라.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우고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거듭 체험하게 된다. (140)

방 안에 있는 고양이가 움직이는 물건을 응시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당신이 거리에 나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고양이의 태도다.
고양이는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계산하거나, 플로렌스에 가면 누구에게 엽서를 보낼까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생쥐 한 마리, 마루 바닥에 구르고 있는 공 또는 크리스탈에 반사되는 빛줄기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고양이는 언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튀어 오르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당신이 당장 네 발로 기고 꼬리를 치켜 세우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고요하게 응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41-142)

어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동물처럼 행동해보자.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들을 하나씩 비축해 두자. 어떤 방법이든지 상관없다. 일상의 찌꺼기에서 발굴해내든지, 도서관을 찾아가든지, 정신의 정원으로 나가든지 마음대로 하라.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켜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 (142-143)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164)

자신이 쓴 글 중에서 좋은 부분은 표시를 해두라. 이것들을 글감 목록에 적어 놓으면 다음 번 다시 글을 쓸 때 그 중 하나를 잡아서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다. 또 표시를 해둔 글은 그 문장에 대한 기억을 강화해 훗날 필요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문장이 떠오르도록 만든다. 이렇게 서로 떨여 있던 별개의 부분들이 뭉쳐져서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놀라운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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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21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이제 짐승처럼 글을 써야겠어요. 먹이를 찾아 산기슭처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다면 바로 접니다. ㅎㅎㅎㅎ

돌궐 2015-04-21 18:52   좋아요 0 | URL
저도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한마리 들개가 되려고 합니다.ㅋㅋㅋ

만병통치약 2015-04-2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승처럼 글을 쓰는데는 악평이 최고더군요 ㅋㅋ

돌궐 2015-04-22 08:1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악평을 쓸 때는 뭔가 더 치열하고 본능적으로 쓰게 되더군요.
어트케 우리 알라딘 악평가 모임(서클명 `짐승들`)이라도 따로 만들어 볼까요? ㅋㅋㅋ

transient-guest 2015-04-2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을 하다보면 무아지경에 빠져서 글이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일이 주로 많이 읽고 쓰는 형태의 일이 대부분이라서 복잡한 케이스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에 이것들을 정리하면서 그런 경험을 하는데요, 연습이 많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가능한 것 같아요. 일할때에는 정말 짐승처럼 그거 하나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ㅎㅎ

돌궐 2015-04-22 08:5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뭔가 발표를 할 때도 막바지에 이르면 전에 계통 없이 모아두었던 글과 자료들이 정리되면서 그럴싸한 논리나 문장이 완성되더라구요. 또 그런 때는 평소같으면 생각도 못할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말씀처럼 하루 종일 짐승처럼 그거 하나만 생각하게 되더군요.^^
 
레토릭 - 세상을 움직인 설득의 비밀
샘 리스 지음, 정미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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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이나 논증의 요소를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로 분류한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고 한다. 이 책 2부에서 레토릭(수사)의 비밀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세 가지 도구였다. 에토스로 청중과 유대감을 쌓고, 로고스로 이해시키며, 파토스로 마음을 움직이라는 것이다.


레토릭에서 중요한 5가지는 결국 ‘발견’-‘배치’-‘표현’-‘기억’-‘연기’라는 것인데, 저자는 이들 각각에 대해 다양한 연설문의 예를 들면서 핵심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가능한 한 최고의 설득법을 찾아내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에토스를 확보하여 신뢰를 쌓고, 로고스를 통해 이해시키며, 파토스로 공감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결합하면 훌륭한 연설이나 논증이 된다는 얘기다. 확실히 서양 수사학에서는 에토스를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말할 수 있는 ‘권위’나 ‘자격’이 없으면 “니 주제에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한가?”란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이다.
그밖에 ‘배치’, ‘표현’은 문장의 배열과 표현 문제를 다룬 것이고, ‘기억’과 ‘연기’ 부분은 특히 현장 연설에 사용되는 수사의 방법인데, 개인적으로 기억의 방법에서 장소(topos)를 통한 기억법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암기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연기’ 부분에서 제시된 목소리와 제스처, 행동에 대한 조언들은 발표나 강의할 때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겠더라.

 

제3부에서 정리한 레토릭의 종류 3가지는 정치적 수사, 사법적 수사, 과시적 수사이다.
정치적 수사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앞으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사이다. 반면 사법적 수사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시비를 가리기 위한 수사이다. 특히 법정 같은 곳에서 많이 사용된다.
과시적 수사는 사법적 수사나 정치적 수사와도 중복되는 약간 모호한 수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정치적 수사, 사법적 수사 속에 과시적 수사가 자주 활용된다는 말이다. 과시적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한다. “결혼식장에서 축하연을 하든, 장례식 장에서 추도사를 하든, 공격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든 간에 적절한 시점에서 조화로운 말을 해야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난의 화살이 당신에게 쏟아질지도 모른다”(279)는 얘기다.

 

대체로 한 번쯤을 읽어볼 만한 내용들이었다. 구체적인 수사의 방법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레토릭을 구사해서 청중이나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려는 시도를 간파하는 데에도 꽤 쓸모가 있겠다.
하지만 책 속에서 제시된 여러 예들이 다 그리스·로마나 영어권 정치가들의 (나에겐) 생소한 연설문들이어서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다만 아래 두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연설가들은 모두 처음부터 타고난 연설가였던 것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연습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연설문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검토와 반복 연습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것. 

 

언젠가는 우리말로 발표된 연설이나 글에 대해서도 이처럼 재밌게 수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

아래는 책에서 옮긴다.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문체를 구사하기가 쉽지는 않다.  

 

쿠인틸리아누스는 “한 가지 문체가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을 수 없다”는 키케로의 말을 칭송하며, 이를 바탕으로 적절성에 대해 폭넓게 해석했다.

 

이전의 책에서도 얘기했다시피 글을 쓰는 능력과 생각하는 능력은 물론이요, 즉흥 연설까지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적절성을 고려한 연설을 터득해야 한다. 키케로는 이런 연설을 네 번째로 탁월한 웅변으로 꼽았는데 나는 적절성을 고려한 연설을 최고로 친다. 웅변을 옷에 비유하자면 그 종류는 다양하다. 주제에 따라 거기에 맞는 형태도 다르기 때문에, 특정 상황과 사람들을 분석하여 거기에 철저히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설이 빛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득력까지 떨어질 것이다. (…) 하찮은 근거에 장엄체를 쓰거나, 중요한 대목에 빈약하고 어설픈 문체를, 엄숙한 주제에 현란한 문체를, 강력한 주장이 필요한 순간에 가라앉은 문제를, 반대하는 대목에서 위협적 문체를, 맹렬한 논의에서 순종적 문체를, 기분을 좋게 띄워야 할 주제에서 거칠고 격렬한 말투를 쓴다면, 이런한 문체가 연설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143)

 

 

* 그리고 몇 군데에서 발견한 오탈자

 

(115쪽 11번째 줄)
유도신문 → 유도심문

수정: '유도신문(誘導訊問)'이 맞는 말이라고 한다.

 

 

(119쪽) 세 번째 단락 중 신문사에서 ‘수정하거나 보충할 수 있는 지면… 뒤에 작은따옴표가 나오지 않는다.


(130쪽 12번째 줄)
케케로의 독설 능력 → 키케로의 독설 능력

 

(161쪽 5번째 줄)
헌사를 받치는 일 → 헌사를 바치는 일

 

(238쪽 밑에서 4번째 줄)
물론 아리스토텔레에게 →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는(휴 블레어) 악의적이거나 거짓된 수사에 대해 경고했는데, 아래 말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문제를 위장하기 위해 작문을 이용했다. 또한 견식 있는 이들로부터 두고두고 칭송을 받기보다, 무지한 이들로부터 순간의 갈채를 얻으려 했다. 하지만 이는 ‘사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사기는 그 기반이 오래 지탱하지 못하는 법이다. 유익한 작문은 지식과 과학으로 줄기와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수사는 여기에 매끄럽게 광을 내주는 역할을 하며, 줄기가 탄탄하고 견고하지 못하면 광이 제대로 나지 못한다. (49)

『에드 헤렌니움』에서 경고했다시피 “판사나 청중의 신념에 반대되는 말은 틀린 것이다.” 배우이자 저널리스트인 윌 로저스는 이 경고를 다음과 같이 상냥하게 표현했다. “낚시를 하러 가서 낚시 바늘에 미끼를 달 때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달아야 한다.”
현명한 설득자는 자신과 청중이 공감할 수 있는 상투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가능하다면 결론도 상투어로 맺는다. (76-77)

소리는 청중의 생각과 감정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콜라(cola)의 길이가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콜라는 절을 뜻하는 단어 콜론(colon)의 복수형이다. 참고로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음의 문장은 콜론을 설명하는 좋은 예다. “The louder he talked of his honour, the faster we counted our spoons(자신의 명예를 소리 높여 뽐내는 인간을 만나면, 집안의 수저 개수를 세는 우리들의 손길은 빨라진다).”
이렇게 길이가 같은 절을 나란히 병치시키는 문장을 수사학에서는 이소콜론(isocolon)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위 문장은 자신의 명예를 떠벌리는 사람치고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집안 물건을 잘 단속하라는 뜻이다. (148)

토마스 아퀴나스는 뭐든 읽고 나면 단어까지 정확히 기억하기로 유명한데, 그는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기억해야 할 대상과 ‘쉽게 연상되는 것’을 찾는다.
2.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한다.
3. 그것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정성껏 살핀다.
4. 그것을 자주자주 떠올린다. (179)

언어가 공기라면 수사는 날씨다. 더없이 포근하고 기분 좋은 봄날부터 창틀의 유리가 덜거덕거릴 만큼 천둥 요란한 날까지 날씨의 종류가 다양하듯, 수사도 마찬가지다. 날씨처럼 수사는 저 밖에 넓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를 즐겨라.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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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0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송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유도신문`이 맞다고 한다. 여태 `심문`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AgalmA 2015-03-06 00:06   좋아요 0 | URL
이거 자주 혼동 문제로 거론되더군요.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리차도 토이<수사학> 소개도 위 글 내용과 비슷하던데, 수사학 책은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돌궐님은 키케로 <수사학>을 선택하셨으니 향후 리뷰 기다려봅니다ㅎ
 
어떻게 말할 것인가 - 세상을 바꾸는 18분의 기적 TED
카민 갤로 지음, 유영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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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가 지녀야 할 자세와 올바르고 효과적인 방법론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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