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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월호의 ‘진보좌파의 길’이라는 특집을 읽다가 잠시 상념에 젖다. 한 인터넷 논객은 해방이후 좌파의 궤적을 예의 그 ‘싸가지 없는 문체’로 이 잡지 한 면에 요약하더니, “자본주의 시민의 욕망과 자본주의를 벗어나려는 좌파의 욕망이 대화하고 섞이는 곳”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진보좌파의 길’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하나마나한 얘기다. 이게 이제는 퇴색하다못해 너덜너덜해진 주사파의 ‘대중노선’과 실천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욕망이라는 담론의 수사학이 덧붙여졌을 뿐, 그것은 “오래된 농담”이다. 앤더슨이 서구 좌파가 실천의 부재로 망했다더니, 한국 좌파의 실천은 여전히 앙상하다. 그 실천은 불가피하게 우원하고 더딘 대로 정책적 사고(이미지를 거부하는 좌파가 정책 말고 뭐가 있겠나)일 수밖에 없을 진대, 그럴 듯한 정책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한 좌파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이 점에서 이 친구가 민노당 학출들의 ‘경력부재’를 말하는 대목은 전적으로 옳다. 그 경력은 국가를, 사회를, 조직을 제대로 움직여보고 운영해본 자들이 갖는 경험적, 암묵적 지식과 지혜일 것이다. 선험적 담론이나 이론이 아니라 현실속에서 갈고 다듬어진 실천적 정책대안 말이다. 언젠가 진보정당의 후배에게 정말로 좌파가 집권하기를 바란다면, 10년 프로젝트로 100명 유학을 보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브라질에서 가서 룰라를 배워오든지, 공교육 정상화 떠들지 말고 핀란드에 가서 교육정책을 배워오든지, 독일에 가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배워오든지. 레디앙 같은 좌파 인터넷 매체의 기사에 달린 그악스럽고 모진 소위 “좌파들의 댓글 비판”을 보면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어떻게 저렇게 심하게 상대를 몰아부칠까, 저런 심성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집권하는 세상은 얼마나 끔찍할까. (이점, 결코 대칭적이라 말할 수 없으나 수구꼴통들의 댓글에 스민 멘탈리티도 마찬가지다. MB시대, 우리는 그걸 이미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또다른 글에서 전 민노총 위원장인 이갑용은 노무현, 김대중 시절의 노동운동가들이 어떻게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이들 ‘우파 정권’에 투항했는지를 냉소적으로, 암울하게 들려준다. 그랬을 것이다. 가령 노동운동가였다가 한미FTA 국내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이제는 현역 의원인 홍모씨의 경우 같은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의 비판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소박하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전직 노동운동가들이 김문수, 이재오, 권용목 보다는 낫지 않나 라는 반감도 있다. 이들에게는 적어도 “쪽팔려할 줄 아는 양심” 정도는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갑용에게 찾아와 노무현 시대의 노동정책이, 비정규정책이 잘못됐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철학과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최원은(이 사람이 대학시절 ‘프롤레타리아 시’를 쓰던 그였던가?) 영호남 지역주의와 서울 지역주의에 대한 돌파를 주문한다. 적어도 계급적 구분선 못지 않게 지역적 구분선을 ‘현실’로서 포용한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한발은 더 나아간 듯 하다. 하지만, 현재의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 아니 그 이전에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해서, 민노당이, 진보신당이 무슨 말을 했던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 내부에서는 그게 이슈화할 정치담론이라고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원이 주문하는 ‘정치적 리얼리즘’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더라도, 여전히, 앞으로도 당분간, 요원할 것이다. 참, 허망하고 안쓰럽다. 그 허망함은 오늘자 조선일보에 실린 민노당 ‘불법 후원금’(이라 경찰이 우기는)에 관한 기사가 전하는 권영길과 천영세에게 전달된 금액이 “10만원, 15만원”이라는 “팩트”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10만원, 15만원 때문에 ‘당’의 이미지와 대중적 공신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현실이라니.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좌파란, 스스로 지식인이고자 하는 자들의 ‘페이퍼 담론’이다. 여기서 지식인은 고전적 의미의 지식인이라기보다 ‘좌파담론의 소비자’를 말한다. 그건 애거서 크리스티 팬클럽이나 짐모리슨 동호회와 결코 다르지 않다. 이건 비아냥도 무엇도 아니다. 담론의 소비도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려니, 그 애호의 대상이 마르크스인들, 지젝인들, 밥 딜런인들, 진중권인들 무엇이 다를 것인가. 패배주의라는 비판도 기실은 어떤 초월적 권위를 상정한 뒤에야 가능한 비판이니, 초월도 권위도 사라진 마당에야 설득력이 없다. 누군가 내게 <르몽드디플로마티크>를 구독하라고 계속 권유를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와의 관계를 따진다면 그쯤 구독할 수 있겠으나, 실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나같은 좌파담론 소비자에게 ‘재미’란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니까. 물론 그 재미에는 좌파의 현실적 성취에 대한 것도 포함이 된다. 재미를 포기하면 담론의 소비도 지탱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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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방문한 헌책방은 어디였던가. 충청북도 청주시 북문로의 후미진 뒷골목,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헌책방에서 내가 무엇을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고삐리의 가난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삼중당 문고 한 두권 쯤을 샀으리라.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벌? 마농레스코? 다만, 세월의 더께가 자욱한 먼지로 뒤덮인 옛 책들의 포근한 아우라만이 기억에 생생하다.   

 

유종호 선생은 어린 시절  해방이후 청주의 한 고서점에서 일본 新朝社 판 세계문학전집을 사려다 돈이 없어 아쉽게 돌아섰다는 대목을 회고한다. 유선생은 한달여 뒤 큰 맘먹고 돈을 마련해 서점을 찾았는데, 그 전집은 이미 팔리고 없었다. 아쉬움 끝에 주인에게 누가 사갔느냐 했더니 청주사는 남재희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그 두 사람이 잘 알려진 다독가이자 해당 분야의 대가라는 점이 참 흥미로운 대목이다. 헌책방 드나들던 학창시절의 버릇은 유구하게도 한 사람의 생에 오롯이 남는 모양이다. 내가 고삐리 시절 다녔던 그 헌책방은 아마도 그 두분이 다녔음직한 곳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이 헌책방을 다시 찾았는데, 거기서 나는 당시로서는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김현과 곽광수의 <바슐라르 연구>(1978년 민음사 재판) 를 살 수 있었다. 어느 불문과 여학생이 팔았는지, '1985년 문화서림에서'라는 예쁜 글씨가 속표지에 쓰여 있었다. 책은 깨끗했고 표지의 바슐라르 캐리커처도 선명했다. 그러나, 게으른 불문학도였는지 밑줄 흔적도 책장을 넘긴 흔적도 없었다. 곽광수가 후일 <공간의 시학> 개역본의 길고도 긴 서문에서 김현의 논문을 마구 깔아뭉개기 전에 나온 책이니, 두 사람의 공동저자는 이 책에서 흐뭇해 보였다.

 

고삐리 시절 더 또렷한 것은 촌놈이 서울 광화문에 와서 놀랍고 신기해하다가 들어간 헌책방. 당시 그곳의 간판은 기억나지 않으나 추후 몇 개의 기록을 보니 아마도 신촌으로 이전하기 이전의 ‘공씨책방’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는 서소문 삼성플라자 건너편 쪽이었던 듯 싶다. 거기서 나는 시인 신경림이 편집한 <反詩>(실천문학사, 1983년판)라는 제목의 파란책 표지의 반시 동인들의 시집을 샀다.  

 

충청도 시골의 고삐리에게 시집 제목이 풍기는 불온한 이미지는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시를 몰랐어도, 시집에 수록된 시인들의 면면을 알지 못했어도 헌책방이라는 음습한 문화에서 건져 올린 불온함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서울 공기가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고삐리였더 그 시절 읽은 박노해 <노동의 새벽>의 충격만큼은 못했어도, 뭔가 말랑말랑한 시와는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위험한 시인들이 많구나.(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반시 동인 중 문학적으로 주목을 받은 사람은 정호승, 김명인 쯤일 것이다.)

헌책방은 내게 옛 책을 찾는 ‘골취미’가 풍기는 역사적 퇴행성,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문화적 마이너리티(헌책방에 팔리는 책들이란 최초 주인에게 쓸모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받은 것들이다), 뒷골목의 음습하고 불온함 등의 이미지로 뒤범벅되어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감성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어둑한 공간. 마치 청소년기의 수음을 위한 골방 같은 곳. 그러고 보니, 헌책방은 내게 운동문화의 극성기에 스스로 찾아 들어간, 자발적 퇴영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때 연애하던 여자들은 헌책방 순례를 같이 즐기면서도 나중에는 한결같이 툴툴거렸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뻔질나게 헌책방을 드나들었다. 우선 신촌의 공씨책방. 총리가 된 이해찬과 장관을 지낸 남재희가 유별난 교유를 했던 주인 공진석 선생은 없었고, 두 딸이 번갈아가며 카운터를 맡고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건진 최대의 수확은 <박상륭 소설집>(1971년 민음사)의 초판이었다. 박상륭이 캐나다로 가기 직전 넘긴 원고를 김현이 맡아 민음사에서 펴낸 책. 발문에서 김현은 박상륭과 박태순이 서로 자기가 최고의 소설가라며 상대방의 이빨을 깨며 싸우다 다음날 다방커피를 마시며 히히덕거리는 모습을 희화적으로, 그러나 애정이 듬뿍 담긴 문체로 그려냈다. 하지만, 공씨책방은 책값을 너무 비싸게 불렀고, 옛주인 공진석 선생이 <옛 책 그 언저리에서>에서 묘사한 70년대 말의 지적 풍경, 가령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을 논하던 지적교유의 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용산의 뿌리서점, 도대체가 책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허름한 뒷골목에 서점 가득 책을 쌓아놓고, 건너편에 해묵은 LP판을 되는대로 쌓아두었던 곳. 내 눈이 밝지 못했던지, 거기서 산 책중 ‘감동스러운 발견’은 없었다. 그중 스튜어트 휴즈의 <의식과 사회>가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2007년 개마고원에서 서구지성사 3부작중의 하나로 재출간됐다) 아마 이 곳에서 나는 책보다는 LP를 더 많이 샀을 것이다. 어느 헌책방 매니아의 찬사와 달리 내게 이 곳은 이원수, 이원호 류의 70-80년대 싸구려 대중소설과 철지난 몽롱한 에세이 책들이 가득한 곳으로 기억된다.

외대 앞의 최교수네 헌책방. 내가 연고도 없는 외대에 왜 갔는지 모르겠다. 이 서점은 나중에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된 <겐지 이야기>의 한국어 번역판을 산 곳으로 기억된다.  <原氏이야기>(유정 번역, 한국출판사 1982년)로 제목을 단, 전집 중에 끼워진 두 권짜리 번역본이었다. 완역이라기보다 발췌본이었지만, 적어도 나남에서 <겐지이야기>가 최초 번역이라고 광고해댄 것은 오버인 셈. 근처 헌책방에서 <겐지이야기>를 샀다고 했을 때, 부러워하던 삐돌이 형의 표정이 떠오른다. 강남 대치동의 학원강사 알바를 하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은마 아파트 옆의 ‘책창고’. 강사료를 받으면 이곳에서 십여권을 한꺼번에 사 제꼈다.

헌책방에 가면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 창비 같은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명가들에서 펴낸 책은 헌책방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 한길사, 나남, 문학동네, 그리고 과거의 명가였던 일조각이나 신구문화사 같은 데도 마찬가지. 대신 흔히 그렇듯이 당대의 베스트셀러나 에세이류, 전집류의 책들은 어딜가나 한가득이다. 중고삐리들의 ‘수험용’ 한국문학 작품집 들도 즐비하다. 박영사의 문고본 시리즈 중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읽을만한 책들은 빠져 있다. 요컨대, 책의 내구성에 관한 문제다.  

 

적어도 헌책방에 잘 나오지 않는 책은 그만큼 ‘내구성’이 있고, 시간의 풍화작용을 잘 견디고 있다는 얘기다. 가끔 인터넷 사이트에 헌책방을 과잉낭만화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웃기는 건 그렇게 낭만화할 만큼 좋은 책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헌책방 매니아인 서양사학자 이광주 선생이 독일의 헌책방에서 막스 베버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저작을 샀을 때의 감회 같은 것은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헌책방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과학 책들의 상당부분은 80년대 일본어 중역을 통해 양산됐던 일본의 속류마르크스주의 관련 책들이거나 소비에트의 변유, 사유 교과서들이다. 한 시대를 증거하기에는 그 책들에 스민 지적 사유의 두께가 너무 얇다.

이런 류의 책들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전복과 한국사회의 혁명을 꿈꾸었다니, 하는 헛웃음만 나온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당시 쏟아져 나온 일본계 사회과학 책들은 ‘운동권 포르노서적’인 셈이다. 포르노가 해적판으로 수입되어 세운상가 뒷골목에서 팔리듯이, 해적판으로 번역된 책들은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에서 포르노처럼 유포되었다. 또다른 헌책방 매니아 연극평론가 안치운 선생이, 신촌의 ‘숨어있는 책’을 내게 추천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쓸만한 책을 고르고, 팔 줄 아는 서점 주인, 그런 사람 찾기 쉽지 않다. 내가 만난 서점 주인 중 최악은 10여 년전 서울대 앞의 ‘책상은 책상이다’의 주인이었다. 분명, 저울로 무게 달아 책을 사왔을 그는 납득이 가지 않는 가격을 매겨놓고, 고객 앞에서 그 책의 진가에 대해 아는 척을 해댔다. 책에 대한 그의 장광설은 무척이나 듣기 거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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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1-2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헌책방만 가면 눈이 희번득해서 찾아보는 책이 또 있잖습니까?
일본에서 판권 없이 마구잡이로 번역된 도미** 다케*의
여인추억 시리즈...포르노긴 한데 1950년대 일본 사회상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세태소설 아직 못 보았소.
사람마다 성정이 다르듯 헌책방에 얽힌 기억도 이렇게 다르네요.
제가 좀 잡스런 편이죠?ㅋㅋ

모든사이 2010-01-2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아직 '빨간책' 보던 중고삐리 시절 감성을 못벗어 났구나. 도미시다 다께오에게서 '세태'를 읽는 그 희한한 독법이라니, so*a 카페에 가면 다께오 형님들 두루 널렸느니라.

이진성 2010-02-0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께오의 후예들이겠죠
 

 

센 강변을 어슬렁대고, 저녁이면 와인을 홀짝거리거나
몽마르트르 어름의 방 한켠으로 돌아와 누울 친구여.
기억하는가, 신촌 귀퉁이의 퀴퀴한 서적더미에서 보낸
우리의 이십대를, 함께 사무쳤던 그 시절들을.  

거기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허겁지겁 책을 사 모으고, 속살을 파먹었던 선배를,

마침내 밤이면 함께 누울 미운 아내를 만나지 않았던가. 
 

‘오늘의 책’은, 화려무쌍한 신촌 거리에서 우리가 망명할
오직 한 곳, 허기진 욕망의 가숙지가 아니었던가. 

늦가을 스산한 날씨 속에 들려온 우울한 소식 한자락.
한 시절 우리가 겸손히 마주하던 따뜻한 밥 한그릇을
마련해 주었던 그 조그만 서점의 몰락.
우리의 한 시절을 떼 메고, 우리 젊은 날의 기억을 지우며
저기 한 시대가 가네.

혹시라도 파리를 떠나 이 곳 신촌에 올적에도
갈 곳 몰라 서성이거나 우두망찰 서 있지는 말게나
우리가 찾을 곳은 이제 반가운 얼굴들 옹송거리는
‘오늘의 책’이 아니라네.

그곳은 켜켜히 쌓인 기억의 갈피 어딘가에
우리의 한 시절이 그러하듯이
흑백사진처럼 꼭 끼워져 있을 거네.
무릇, 기억은 가슴에 묻는 것이 아니겠는가.  

 

데자뷔? 만취에 비틀거리며 때 낀 유리창 너머로 ‘책’이 보이거든
돌아갈 수 없는 한 시절의 그리움이 불러낸 허깨비인줄 알게나.
어느 날, 머나먼 이국의 꿈자락속에 비치는 휘황한 신촌 불빛이

어쩐지 어둡고 초라해 보인다면,
지상에 빛나는 별 하나가 떨어진 줄 알게나.  


 2000년 11월 10일 
 

주 : <오늘의 책>은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신촌 연대앞에 존재했던 한 조그만 사회과학 서점이다. 2000년 가을 이 서점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았다. 폐점 당시 누군가가 추모사 비스무리한 것을 써달라는 부탁으로 쓴, 시같지도 않은 글. 이 서점과 인연이 있는 자들이 2006년 펴낸 '안녕? 오늘의 책'이라는 책에 실렸다. 이 서점의 작은 연대기는 연출가인 후배 김재엽에 의해 2006년 대학로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갔을까>로 만들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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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책 폐점 10주년에 대한 상상
    from 막내의 집 2010-03-29 08:24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신촌에서 약속을 잡는데 "어디서 볼까" 서로 묻기만 하다가 "오늘의책에서 보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올해 11월이면 오늘의책이 문을 닫은지 벌써 10년이다. 하지만 신촌 굴다리 옆 골목엔 여전히 오늘의책 간판이 걸려 있다. 그 간판만 봐서는 10년이란 시간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 나온 14권의 책 중 내가 읽은 것은 8권이다.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대위의 딸>, <광장>, <사기>,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 읽었으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은 <대위의 딸>. 아마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읽었던 듯한 데, 그게 중학시절인지 고교시절인지 모르겠다. <인구론>, <맹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은, 장정일의 어법을 빌면,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읽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내게 세상에 없는 책이다. 맬더스, 다윈, 베블렌, 조지의 책에 대해서는 ‘들은 바’ 있지만, 그리고 아마도 이들 책에 관한 2차 문헌들은 보기도 했을 것이나, 정작 책을 읽는 수고로움을 들이지는 못했다. 솔제니친은 <암병동>을 겨우겨우 읽어냈을 뿐이다. 유시민의 독서편력에는 못 미치나 대략 평균수준은 되는 셈이다. 

 유시민은 스스로 ‘지식소매상’임을 자처하고 있는데, 그건 지식세계와 대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나름의 ‘나와바리’ 선언이다. 과연, 그는 복잡한 책의 미로를 매끄럽게 헤엄치며, 합리적 핵심을 요령있게 정리해낸다. 내가 그에게 질투를 느끼는 바도, 한권의 책을 뚝딱 요리해내는 그의 재기와 그걸 잘 담아 옮기고 있는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다. 고전이 제기한 묵직한 주제들은 그의 손을 거쳐 현대 한국사회의 모더니티/포스트모더니티와 연관된 핵심 사안으로 부활한다. 지식소매상으로서의 솜씨도 바로 여기에서 특장을 발휘한다. 속도감 있는 문체, 책에서 한발짝 정도 더 나아간, 대중적 상식에 최대한 가까운 해석과 의미부여. 그래서 그는 근대적 교양인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유시민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책이다. 도스토옙스끼에게서 “선한 수단이라야 선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를, 리영희 선생에게서 지식인의 임무를, 맑스에게서 자본주의 비판의 도덕적 근거를, 맬서스에게서 인종적 편견을, 푸시킨에게서 반동과 억압에 저항하는 힘을, 맹자에게서 도덕적 보수주의를, 최인훈에게서 서글픈 개인의 욕망을, 사마천에게서 권력의 비극적 존재방식을, 솔제니친에게서 인간의 존엄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자연스럽고, 유시민스럽다. 적자생존의 논리 속에 숨겨진 타자에게 대한 배려(다윈)를 읽어내거나, 베블렌에게서 개혁가로서의 곤혹스러운 자기모습을 대면하는 것도 한발짝 더 나아간 상식적 해석으로서 지극히 타당하다. 카타리나에게서 죽은 노무현의 흔적을 발견하고, 악의적 언론의 해악을 말하는 대목은 정치인 유시민의 현실적 면모와 겹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재독하는 그가“인간 능력에 대한 믿음”을 말할 때, 그는 근대적 과제의 해결에 몰두하는 ‘근대적 지식인’이 된다.  

유시민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이 언제였던가. 어느날 선배가 전해줬던 <항소이유서>가 아니었을까.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싯구. 유시민은 이 싯구의 인용내력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건 다름아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한국어 번역본에 실린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서문에 나오는 인용구의 재인용이었던 것. 유시민이 네크라소프의 원본 시를 읽은 것은 아니라는 것, 네크라소프는 생소한 시인이었던 데다 그의 국내 번역본 시집에도 이 싯구는 없었다는 것. 노문학을 전공했던 영진에게 물었을때 그녀가 답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만하다. 유시민의 섬세한 기억력이 놀라울 뿐.  

책으로 만난 유시민은 아마 <꺼꾸로 읽는 세계사>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영선의 책꽂이에서 읽었던가. 그건 네루의 <세계사편력>이 보여준 역사해석과 유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루가 자기 딸에게 “교양으로서의 역사”를 들려주듯, 유시민은 교양 차원의 세계사를 해석하고, 중계했다. 그것의 연장선에서 선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논술강사 시절, 이 책을 '아해'들에게 읽히고 진보적 역사관을 심어주려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난다. 그게 옳아서라기보다, 순전히 논술용 답안 작성을 위해.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은, 잡지 기사 읽듯 읽어치운 책. 케인즈가 주식투자의 귀재였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까지는 지식소매상이자 교양전수자로서의 유시민이다.  

<대한민국 개조론>은 참여정부의 참모들이 쓴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이라 믿는다. 사회투자국가를 간명하게 정리하고 있는 이 책은, 참여정부의 지향과 현실적 성취, 안병진이 ‘토플러주의’ 라고 비아냥댄 노무현/유시민의 미래전략을 명쾌하게 보여줬다. 이 책의 주장은 시장경제와 복지국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데, ‘사회(적)자유주의’라는, 모순적 합성명사로 요약되는 전략 탓이다. 시장의 활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복지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현실주의적 책략’. 좌파로부터는 복지를 시장에 맡겼다는 비판을(가령, 이태수), 우파로부터는 ‘좌파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비판(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꼴통 우익들)을 받으며,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정책가 유시민의 면모를 읽어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위태로운 전략은 사실 한국사회의 ‘범진보/개혁진영’이 해낼 수 있는 현실적 정책의 최대치다. 부분적으로 현실화되었고, 대부분이 전략적 비전제시에 그쳤지만 실제로 가장 현실적이면서 많은 성취를 해낼 수 있는 전략이라고 믿는다. 유시민의 탁월한 점은 거대한 명분과 이념을 제거한 자리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내는데 있다. 시장의 역설, 명분과 대의에 입각한 논리가 가져오는 거대한 '반역'을 그는 아주 잘 파악해낸다. 우리나라 ‘진보’의 문제는 ‘시장의 역설’을 보지 못한 채, 아니 외면한 채, 목청높여 노동자/서민을 말하는 데 있다. ‘계급 역투표’를 탓할 게 아니라, 왜 ‘앤서니 기든스’가 안나오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말하자면,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은 내게 노무현 노선에 대한 주석이었던 것. 그는 왜 장관에서 퇴임한 이후에야 이런 책을 써냈나. 그랬다면, 내가 가졌던 한 3-4년의 오해도 달라졌을 것인데.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정책가 유시민은 다시 한번 정치철학적인 질문, 국가의 존재이유와 역할이라는 주제로 돌아가 한층 성찰적이 된다. 헌법에 대한 ‘상식적 해석’과 ‘실천적 함의’를 읽어내고, 엠비시대가 어떻게 헌법적 가치를 위반하는 지를 살피는 것. 유시민은 엠비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내가 가진 혼돈과 고민을, ‘일반 민주주의’ 수준의 지향과 가치로, 거두절미, 뚝딱뚝딱 싹 정리해낸다. 왜 어째서 악인지 아닌지, 유시민은, 진중권처럼 ‘메롱 전략’을 취하지 않고도, 충분히 진지하게 나를 설득한다. 그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제학 카페>는 몇 장만을 넘긴 채 아직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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