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 나온 14권의 책 중 내가 읽은 것은 8권이다.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대위의 딸>, <광장>, <사기>,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 읽었으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은 <대위의 딸>. 아마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읽었던 듯한 데, 그게 중학시절인지 고교시절인지 모르겠다. <인구론>, <맹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은, 장정일의 어법을 빌면,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읽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내게 세상에 없는 책이다. 맬더스, 다윈, 베블렌, 조지의 책에 대해서는 ‘들은 바’ 있지만, 그리고 아마도 이들 책에 관한 2차 문헌들은 보기도 했을 것이나, 정작 책을 읽는 수고로움을 들이지는 못했다. 솔제니친은 <암병동>을 겨우겨우 읽어냈을 뿐이다. 유시민의 독서편력에는 못 미치나 대략 평균수준은 되는 셈이다. 

 유시민은 스스로 ‘지식소매상’임을 자처하고 있는데, 그건 지식세계와 대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나름의 ‘나와바리’ 선언이다. 과연, 그는 복잡한 책의 미로를 매끄럽게 헤엄치며, 합리적 핵심을 요령있게 정리해낸다. 내가 그에게 질투를 느끼는 바도, 한권의 책을 뚝딱 요리해내는 그의 재기와 그걸 잘 담아 옮기고 있는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다. 고전이 제기한 묵직한 주제들은 그의 손을 거쳐 현대 한국사회의 모더니티/포스트모더니티와 연관된 핵심 사안으로 부활한다. 지식소매상으로서의 솜씨도 바로 여기에서 특장을 발휘한다. 속도감 있는 문체, 책에서 한발짝 정도 더 나아간, 대중적 상식에 최대한 가까운 해석과 의미부여. 그래서 그는 근대적 교양인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유시민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책이다. 도스토옙스끼에게서 “선한 수단이라야 선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를, 리영희 선생에게서 지식인의 임무를, 맑스에게서 자본주의 비판의 도덕적 근거를, 맬서스에게서 인종적 편견을, 푸시킨에게서 반동과 억압에 저항하는 힘을, 맹자에게서 도덕적 보수주의를, 최인훈에게서 서글픈 개인의 욕망을, 사마천에게서 권력의 비극적 존재방식을, 솔제니친에게서 인간의 존엄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자연스럽고, 유시민스럽다. 적자생존의 논리 속에 숨겨진 타자에게 대한 배려(다윈)를 읽어내거나, 베블렌에게서 개혁가로서의 곤혹스러운 자기모습을 대면하는 것도 한발짝 더 나아간 상식적 해석으로서 지극히 타당하다. 카타리나에게서 죽은 노무현의 흔적을 발견하고, 악의적 언론의 해악을 말하는 대목은 정치인 유시민의 현실적 면모와 겹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재독하는 그가“인간 능력에 대한 믿음”을 말할 때, 그는 근대적 과제의 해결에 몰두하는 ‘근대적 지식인’이 된다.  

유시민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이 언제였던가. 어느날 선배가 전해줬던 <항소이유서>가 아니었을까.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싯구. 유시민은 이 싯구의 인용내력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건 다름아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한국어 번역본에 실린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서문에 나오는 인용구의 재인용이었던 것. 유시민이 네크라소프의 원본 시를 읽은 것은 아니라는 것, 네크라소프는 생소한 시인이었던 데다 그의 국내 번역본 시집에도 이 싯구는 없었다는 것. 노문학을 전공했던 영진에게 물었을때 그녀가 답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만하다. 유시민의 섬세한 기억력이 놀라울 뿐.  

책으로 만난 유시민은 아마 <꺼꾸로 읽는 세계사>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영선의 책꽂이에서 읽었던가. 그건 네루의 <세계사편력>이 보여준 역사해석과 유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루가 자기 딸에게 “교양으로서의 역사”를 들려주듯, 유시민은 교양 차원의 세계사를 해석하고, 중계했다. 그것의 연장선에서 선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논술강사 시절, 이 책을 '아해'들에게 읽히고 진보적 역사관을 심어주려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난다. 그게 옳아서라기보다, 순전히 논술용 답안 작성을 위해.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은, 잡지 기사 읽듯 읽어치운 책. 케인즈가 주식투자의 귀재였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까지는 지식소매상이자 교양전수자로서의 유시민이다.  

<대한민국 개조론>은 참여정부의 참모들이 쓴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이라 믿는다. 사회투자국가를 간명하게 정리하고 있는 이 책은, 참여정부의 지향과 현실적 성취, 안병진이 ‘토플러주의’ 라고 비아냥댄 노무현/유시민의 미래전략을 명쾌하게 보여줬다. 이 책의 주장은 시장경제와 복지국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데, ‘사회(적)자유주의’라는, 모순적 합성명사로 요약되는 전략 탓이다. 시장의 활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복지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현실주의적 책략’. 좌파로부터는 복지를 시장에 맡겼다는 비판을(가령, 이태수), 우파로부터는 ‘좌파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비판(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꼴통 우익들)을 받으며,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정책가 유시민의 면모를 읽어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위태로운 전략은 사실 한국사회의 ‘범진보/개혁진영’이 해낼 수 있는 현실적 정책의 최대치다. 부분적으로 현실화되었고, 대부분이 전략적 비전제시에 그쳤지만 실제로 가장 현실적이면서 많은 성취를 해낼 수 있는 전략이라고 믿는다. 유시민의 탁월한 점은 거대한 명분과 이념을 제거한 자리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내는데 있다. 시장의 역설, 명분과 대의에 입각한 논리가 가져오는 거대한 '반역'을 그는 아주 잘 파악해낸다. 우리나라 ‘진보’의 문제는 ‘시장의 역설’을 보지 못한 채, 아니 외면한 채, 목청높여 노동자/서민을 말하는 데 있다. ‘계급 역투표’를 탓할 게 아니라, 왜 ‘앤서니 기든스’가 안나오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말하자면,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은 내게 노무현 노선에 대한 주석이었던 것. 그는 왜 장관에서 퇴임한 이후에야 이런 책을 써냈나. 그랬다면, 내가 가졌던 한 3-4년의 오해도 달라졌을 것인데.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정책가 유시민은 다시 한번 정치철학적인 질문, 국가의 존재이유와 역할이라는 주제로 돌아가 한층 성찰적이 된다. 헌법에 대한 ‘상식적 해석’과 ‘실천적 함의’를 읽어내고, 엠비시대가 어떻게 헌법적 가치를 위반하는 지를 살피는 것. 유시민은 엠비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내가 가진 혼돈과 고민을, ‘일반 민주주의’ 수준의 지향과 가치로, 거두절미, 뚝딱뚝딱 싹 정리해낸다. 왜 어째서 악인지 아닌지, 유시민은, 진중권처럼 ‘메롱 전략’을 취하지 않고도, 충분히 진지하게 나를 설득한다. 그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제학 카페>는 몇 장만을 넘긴 채 아직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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