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방문한 헌책방은 어디였던가. 충청북도 청주시 북문로의 후미진 뒷골목,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헌책방에서 내가 무엇을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고삐리의 가난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삼중당 문고 한 두권 쯤을 샀으리라.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벌? 마농레스코? 다만, 세월의 더께가 자욱한 먼지로 뒤덮인 옛 책들의 포근한 아우라만이 기억에 생생하다.   

 

유종호 선생은 어린 시절  해방이후 청주의 한 고서점에서 일본 新朝社 판 세계문학전집을 사려다 돈이 없어 아쉽게 돌아섰다는 대목을 회고한다. 유선생은 한달여 뒤 큰 맘먹고 돈을 마련해 서점을 찾았는데, 그 전집은 이미 팔리고 없었다. 아쉬움 끝에 주인에게 누가 사갔느냐 했더니 청주사는 남재희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그 두 사람이 잘 알려진 다독가이자 해당 분야의 대가라는 점이 참 흥미로운 대목이다. 헌책방 드나들던 학창시절의 버릇은 유구하게도 한 사람의 생에 오롯이 남는 모양이다. 내가 고삐리 시절 다녔던 그 헌책방은 아마도 그 두분이 다녔음직한 곳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이 헌책방을 다시 찾았는데, 거기서 나는 당시로서는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김현과 곽광수의 <바슐라르 연구>(1978년 민음사 재판) 를 살 수 있었다. 어느 불문과 여학생이 팔았는지, '1985년 문화서림에서'라는 예쁜 글씨가 속표지에 쓰여 있었다. 책은 깨끗했고 표지의 바슐라르 캐리커처도 선명했다. 그러나, 게으른 불문학도였는지 밑줄 흔적도 책장을 넘긴 흔적도 없었다. 곽광수가 후일 <공간의 시학> 개역본의 길고도 긴 서문에서 김현의 논문을 마구 깔아뭉개기 전에 나온 책이니, 두 사람의 공동저자는 이 책에서 흐뭇해 보였다.

 

고삐리 시절 더 또렷한 것은 촌놈이 서울 광화문에 와서 놀랍고 신기해하다가 들어간 헌책방. 당시 그곳의 간판은 기억나지 않으나 추후 몇 개의 기록을 보니 아마도 신촌으로 이전하기 이전의 ‘공씨책방’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는 서소문 삼성플라자 건너편 쪽이었던 듯 싶다. 거기서 나는 시인 신경림이 편집한 <反詩>(실천문학사, 1983년판)라는 제목의 파란책 표지의 반시 동인들의 시집을 샀다.  

 

충청도 시골의 고삐리에게 시집 제목이 풍기는 불온한 이미지는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시를 몰랐어도, 시집에 수록된 시인들의 면면을 알지 못했어도 헌책방이라는 음습한 문화에서 건져 올린 불온함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서울 공기가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고삐리였더 그 시절 읽은 박노해 <노동의 새벽>의 충격만큼은 못했어도, 뭔가 말랑말랑한 시와는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위험한 시인들이 많구나.(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반시 동인 중 문학적으로 주목을 받은 사람은 정호승, 김명인 쯤일 것이다.)

헌책방은 내게 옛 책을 찾는 ‘골취미’가 풍기는 역사적 퇴행성,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문화적 마이너리티(헌책방에 팔리는 책들이란 최초 주인에게 쓸모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받은 것들이다), 뒷골목의 음습하고 불온함 등의 이미지로 뒤범벅되어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감성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어둑한 공간. 마치 청소년기의 수음을 위한 골방 같은 곳. 그러고 보니, 헌책방은 내게 운동문화의 극성기에 스스로 찾아 들어간, 자발적 퇴영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때 연애하던 여자들은 헌책방 순례를 같이 즐기면서도 나중에는 한결같이 툴툴거렸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뻔질나게 헌책방을 드나들었다. 우선 신촌의 공씨책방. 총리가 된 이해찬과 장관을 지낸 남재희가 유별난 교유를 했던 주인 공진석 선생은 없었고, 두 딸이 번갈아가며 카운터를 맡고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건진 최대의 수확은 <박상륭 소설집>(1971년 민음사)의 초판이었다. 박상륭이 캐나다로 가기 직전 넘긴 원고를 김현이 맡아 민음사에서 펴낸 책. 발문에서 김현은 박상륭과 박태순이 서로 자기가 최고의 소설가라며 상대방의 이빨을 깨며 싸우다 다음날 다방커피를 마시며 히히덕거리는 모습을 희화적으로, 그러나 애정이 듬뿍 담긴 문체로 그려냈다. 하지만, 공씨책방은 책값을 너무 비싸게 불렀고, 옛주인 공진석 선생이 <옛 책 그 언저리에서>에서 묘사한 70년대 말의 지적 풍경, 가령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을 논하던 지적교유의 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용산의 뿌리서점, 도대체가 책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허름한 뒷골목에 서점 가득 책을 쌓아놓고, 건너편에 해묵은 LP판을 되는대로 쌓아두었던 곳. 내 눈이 밝지 못했던지, 거기서 산 책중 ‘감동스러운 발견’은 없었다. 그중 스튜어트 휴즈의 <의식과 사회>가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2007년 개마고원에서 서구지성사 3부작중의 하나로 재출간됐다) 아마 이 곳에서 나는 책보다는 LP를 더 많이 샀을 것이다. 어느 헌책방 매니아의 찬사와 달리 내게 이 곳은 이원수, 이원호 류의 70-80년대 싸구려 대중소설과 철지난 몽롱한 에세이 책들이 가득한 곳으로 기억된다.

외대 앞의 최교수네 헌책방. 내가 연고도 없는 외대에 왜 갔는지 모르겠다. 이 서점은 나중에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된 <겐지 이야기>의 한국어 번역판을 산 곳으로 기억된다.  <原氏이야기>(유정 번역, 한국출판사 1982년)로 제목을 단, 전집 중에 끼워진 두 권짜리 번역본이었다. 완역이라기보다 발췌본이었지만, 적어도 나남에서 <겐지이야기>가 최초 번역이라고 광고해댄 것은 오버인 셈. 근처 헌책방에서 <겐지이야기>를 샀다고 했을 때, 부러워하던 삐돌이 형의 표정이 떠오른다. 강남 대치동의 학원강사 알바를 하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은마 아파트 옆의 ‘책창고’. 강사료를 받으면 이곳에서 십여권을 한꺼번에 사 제꼈다.

헌책방에 가면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 창비 같은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명가들에서 펴낸 책은 헌책방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 한길사, 나남, 문학동네, 그리고 과거의 명가였던 일조각이나 신구문화사 같은 데도 마찬가지. 대신 흔히 그렇듯이 당대의 베스트셀러나 에세이류, 전집류의 책들은 어딜가나 한가득이다. 중고삐리들의 ‘수험용’ 한국문학 작품집 들도 즐비하다. 박영사의 문고본 시리즈 중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읽을만한 책들은 빠져 있다. 요컨대, 책의 내구성에 관한 문제다.  

 

적어도 헌책방에 잘 나오지 않는 책은 그만큼 ‘내구성’이 있고, 시간의 풍화작용을 잘 견디고 있다는 얘기다. 가끔 인터넷 사이트에 헌책방을 과잉낭만화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웃기는 건 그렇게 낭만화할 만큼 좋은 책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헌책방 매니아인 서양사학자 이광주 선생이 독일의 헌책방에서 막스 베버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저작을 샀을 때의 감회 같은 것은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헌책방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과학 책들의 상당부분은 80년대 일본어 중역을 통해 양산됐던 일본의 속류마르크스주의 관련 책들이거나 소비에트의 변유, 사유 교과서들이다. 한 시대를 증거하기에는 그 책들에 스민 지적 사유의 두께가 너무 얇다.

이런 류의 책들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전복과 한국사회의 혁명을 꿈꾸었다니, 하는 헛웃음만 나온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당시 쏟아져 나온 일본계 사회과학 책들은 ‘운동권 포르노서적’인 셈이다. 포르노가 해적판으로 수입되어 세운상가 뒷골목에서 팔리듯이, 해적판으로 번역된 책들은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에서 포르노처럼 유포되었다. 또다른 헌책방 매니아 연극평론가 안치운 선생이, 신촌의 ‘숨어있는 책’을 내게 추천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쓸만한 책을 고르고, 팔 줄 아는 서점 주인, 그런 사람 찾기 쉽지 않다. 내가 만난 서점 주인 중 최악은 10여 년전 서울대 앞의 ‘책상은 책상이다’의 주인이었다. 분명, 저울로 무게 달아 책을 사왔을 그는 납득이 가지 않는 가격을 매겨놓고, 고객 앞에서 그 책의 진가에 대해 아는 척을 해댔다. 책에 대한 그의 장광설은 무척이나 듣기 거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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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1-2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헌책방만 가면 눈이 희번득해서 찾아보는 책이 또 있잖습니까?
일본에서 판권 없이 마구잡이로 번역된 도미** 다케*의
여인추억 시리즈...포르노긴 한데 1950년대 일본 사회상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세태소설 아직 못 보았소.
사람마다 성정이 다르듯 헌책방에 얽힌 기억도 이렇게 다르네요.
제가 좀 잡스런 편이죠?ㅋㅋ

모든사이 2010-01-2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아직 '빨간책' 보던 중고삐리 시절 감성을 못벗어 났구나. 도미시다 다께오에게서 '세태'를 읽는 그 희한한 독법이라니, so*a 카페에 가면 다께오 형님들 두루 널렸느니라.

이진성 2010-02-0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께오의 후예들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