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의 힘 - 끊임없는 자극이 만드는 극적인 성장
켈리 맥고니걸 지음, 신예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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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일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걸어가다 작은 돌멩이가 발바닥 밑으로 숨어드는 것부터 밑 빠진 독처럼 불어나는 부채까지 스트레스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스카이다이빙처럼 어떤 극한 도전마저도 스트레스 작용이라고 하니, 어쩌면 사는 게 스트레스라는 말은 적절한 삶의 축약 표현이 아닌가 싶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말만큼 쉽지 않다는 것과 스트레스는 해롭다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당장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지?’ 같은 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되니까.

 

내가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고개 드는 해소법이 있다. 바로 흡연이다. 물론 담배가 스트레스 해소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니코틴이 뇌를 속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저 회피성으로 의존한다.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지연(止煙)’ 기간을 갖는다. 언제 다시 필지 모르므로 금기시하거나 끊는 게 아닌 잠시 멈춰두는 것이다. 지난달, 위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내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러다 책장에서 언젠가 구매해둔 켈리 맥고니걸의 스트레스의 힘을 발견했다. 일단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의 문제

 

이와 동시에 스트레스라는 단어의 포괄적 특성 때문에 생기는 이점도 있다. 인생의 매우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데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사용되므로,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삶을 경험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 p.19

 

그동안 나는 스트레스란 무조건 해롭고 안 좋다고 생각했다. 즉각 해소하지 못할 때는 그것으로 인해 다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장시간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기력해지고 구내염이 도졌다.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버텼지만, 그럴수록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다. 나에게 스트레스란 정말이지 만병의 근원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사후해석으로 버틸 만했다.’ 큰 병이 생기지 않았고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그럼에도 스트레스에 대한 믿음이 안 바뀌었다.

 

왜 바뀌지 않았을까? 나는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부분만 받아들였다. 단 한 번도 스트레스의 이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긍정적인 부분을 알려준 사람도 없었거니와 자극적인 기사들은 부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해 내 눈길을 끌었다.

 

스트레스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때란 강도가 매우 높아 생존에 위협이 될 때인 듯하다. 우리가 접하는 대다수의 해로운 영향 정보는 실험쥐 연구에서 제공하는 것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죽기 직전까지 몰아 세워진 쥐에게 비슷한 강도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긴 징후를 관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도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 있기에 의미 있는 연구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내뱉는 일상적 스트레스의 강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 강도 높은 스트레스가 가져오는 결과를 일상적 스트레스까지 포괄하여 생각하게끔 된 것이다.

 

보다 낮은 강도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가령, 어떤 일에 대한 실패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한없이 강한 스트레스가 촉발되어 세상 모든 곳에서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반대로 실패가 뼈 아프긴 하지만 뭔가를 배웠거나 이점을 발견했다면 스트레스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저자가 말하는 스트레스의 힘은 이런 양면성에 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스트레스는 이롭게 다가온다.

 

사고방식 중재

 

코르티솔은 당분과 지방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하며 신체 및 뇌 에너지 활용 능력을 향상시킨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에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소화나 성장 등의 생리 기능을 억제시킨다. 반면 DHEA는 신경 스테로이드의 일종으로 두뇌 발달을 돕는 호르몬이다. 테스토스테론이 신체 운동을 통해 신체가 더욱 건강해지게 돕듯이, DHEA는 스트레스의 경험을 통해 뇌가 더욱 건강하게 발달하도록 돕는다. 게다가 코르티솔의 영향을 일부분 상쇄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상처 회복 속도를 높이고 면역 기능을 강화한다. - p.36

 

스트레스 호르몬 중 대표적인 호르몬은 코르티솔‘DHEA’이다. 둘 다 인간에게 중요하므로 호불호의 선택사항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코르티솔 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만성피로, 만성두통, 불면증,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반면 높은 수치의 DHEA는 불안감, 우울증, 심장질환, 신경퇴화를 비롯해 우리가 흔히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질병들의 발생 비율을 감소시킨다.(p.37)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막상 호르몬 관리라고 하면 주사를 맞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은 놀랍게도 매우 간단하다. ‘사고방식 중재인데,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스트레스는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모의 취업 면접 참가자들에게 실험해본 결과,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들은 사람들은 DHEA를 더 많이 분비했다고 한다. DHEA 수치가 올라가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p.37)

 

사고방식 중재는 스스로 할 수도 있다. ‘가치관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굳건히 하면서 그것을 기준으로 스트레스를 대하는 것이다. 가치관을 기억하고 있으면 자신의 의지에 어긋나고 통제력을 벗어난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전환, 즉 우선사항들을 이행하고 이를 확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p.122) 예를 들면, 나의 현재 가치관은 성장이다. 그 관점으로 일기를 쓰면서 재확인하고 굳혔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변한 부분이 생겼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싫어하는 유형을 웃으며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감정싸움을 하거나 혼자 씩씩댔을 텐데. 서평을 쓸 때도 비슷하다. 언제나 이만한 스트레스가 없음에도 내가 보고 익힌 것을 아웃풋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다소 재밌어지기까지 한다. 덩달아 성격까지 밝아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몇 가지 스트레스 반응 덕분이라 생각한다. 보통 해소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면 투쟁-도피 반응이 먼저 발현된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언제까지나 싸우거나 도망치면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해결이 안 되면 더 큰 스트레스가 되어 다가온다. 이와는 반대로 도전 반응배려-친교 반응’, ‘전환-관철 반응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도전 반응은 자신감을 증가시키고 행동을 유발하며 경험에서 교훈을 얻도록 도와준다. 이에 비해 배려-친교 반응은 용기를 북돋아주고 배려심을 유발하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준다.(p.89) 전환이란 스트레스 수용과 스트레스의 근원에 대한 사고방식의 변화가 복합된 것이다.(p.270) ‘관철이란 심지어 역경에 직면했을 때조차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낙천주의를 유지하는 것이다.(p.271) 정리하면, 가치관을 굳건히 세웠다면 스트레스 상황을 전환해서 해소가 아닌 이용할 수 있게 바라봤고, ‘관철하여 나에게 어떤 긍정적 의미가 있는지 찾았다. 그것을 내재화시키기 위해 도전으로 대하면서 타인을 도와줄 수 있다는 배려-친교의 마음을 가지려고 했다. 한마디로 이기적 이타주의자의 마음가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성장형 사고방식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긍정적인 면을 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우리가 스트레스와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의 일환이다. 과거의 역경을 수용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의 어려움에서 성장의 용기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포용하고 전환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 p.299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회귀했다. 주제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이지만, 언제든 극복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지 않고서는 관점을 바꾸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고방식에 가장 가까운 행동은 반성이다. 책의 핵심은 스트레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인정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기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라면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않으므로 스트레스 상황을 자주 복기해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찾아야겠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내 속에서 고정형 사고방식이 고개를 들었다. 막막하다는 감정이 항상 앞서 있었고, 일시적 해방감을 위해 담배를 물었다. 생각해보면 무엇을 배울까보다 어떻게 버틸까를 더 고민했던 것 같다. 언제 또 그런 스트레스가 올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사고방식 중재는 누군가의 한마디로도 가능하기에, 저자는 스트레스의 힘을 읽는 것만으로도 독자가 이미 사고방식 중재를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내가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안 믿어서 손해를 봤으니, 지금부터 믿기로 결심했다.

 

P.S 내용은 좋은데 오탈자나 편집 실수가 거슬렸다. 번역가나 편집자, 출판사에 다소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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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북] 할머니의 여름휴가 창비 빅북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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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의 초복이 지났고, 장마 시즌이 다가왔다. 며칠 간 비가 오락가락해 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이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몸은 이미 땀에 절어 있고. 장마가 지나가면 또 다시 작년의 공포가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0도 언저리의 기온. 그런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바다로 탈출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성격 탓에 바다를 좋아해도 사람 많을 때는 가지 않는다. 광활한 수평선과 파도의 오고감, 그리고 파도 소리에 대한 느긋한 감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여름 바다는 멀리 하게 된다.

 

다음주면 끝나는 '독서심리상담'에서 얻은 정보 중 빅북(Big book)'안녕달' 작가가 있었다. 빅북은 말 그대로 보통의 책보다 세 배 가량 큰 책이고, 안녕달 작가는 주로 바닷가가 배경인 그림책을 짓는다. 빅북에 관심이 생겨 찾다보니 두 요소가 결합된 그림책을 찾았다. 바로 안녕달 작가의 할머니의 여름휴가이다. 바닷가 그림을 크게 보니 내가 다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

 

 

표지부터 시원한 바닷가가 배경인 이 책은 강아지와 함께 사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스포일러 주의!!!!!

 

어느 날 며느리와 손자가 찾아온다. 손자는 바다에 놀러갔다온 자랑을 할머니에게 하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지만, 며느리가 일축해 버린다. 그러자 손자는 할머니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바로 소라였다.

할머니는 소라에서 바다를 느꼈고, 손자는 그것을 선물로 드린다. 며느리와 손자가 떠나고 다시 혼자 남은 할머니는 티비로 시간을 보낸다. 그때 소라에서 나온 게 한 마리를 강아지가 쫓는데, 그러다 소라 속으로 쏙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결심을 하고, 휴가 채비를 한 채 강아지와 소라 속으로 들어간다.

수영복, 수박 반 통, 강아지, 그리고 바닷가. 할머니는 완벽한 휴가를 누린다.

 

강아지, 갈매기와 수박을 나눠 먹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기념품 가게도 들린다. 소라 속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시원한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림책, 빅북

 

그동안 나는 그림책을 '애들 보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고정관념은 독서심리상담 수업을 수강하면서 역전되었다. 오히려 어른부터 봐야 할 장르가 그림책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왜 그런가. 일단 접근이 쉽다. 글보다 그림의 역할이 커서 직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특히 그림책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복잡하지 않다. 행동이나 표정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편하다. 설명이 없기 때문에 독자가 상상력으로 해석할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문학이 으레 그렇듯, 같은 그림책이어도 읽었을 때의 심리상태나 주변 상황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책을 주제로 사람들과 (독서모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면 장서(長書)만큼이나 생각과 감성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여기에 빅북(Big book)이 더해진다면? 화룡점정, 금상첨화, 완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마다 제각각이겠지만, 내 사촌 동생 중 아직 한글을 못 뗀 동생은 그림책을 구석구석 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한글을 얼추 읽는 동생은 글밥을 슉슉 읽고는 책장을 넘긴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목을 사로잡는 그림에는 초점을 모은다. 반면, 내가 경험한 어른들은 대체로 글만 읽고 휘리릭 넘겨버린다. 그림책인데 그림을 안 본다. 마치 미술 전시회에서 작품 아래에 붙은 설명만 읽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격이다.

 

하지만 빅북은 이런 점을 상쇄시켜준다. 책의 크기 덕분에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본의 아니게 눈알을 굴려 구석구석 살피게 된다. 그러면 보통 그림책에서 지나쳤던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고, 느끼지 못한 감정선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책이 주는 감성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해지는 것이다. 수업에서 들은 바, 빅북이 주는 효과로 아이들의 상상력과 관찰력을 기르는 데 탁월하다고 한다. 동시에 빅북을 보는 연령이 높아져도 그 효과가 없어지지 않는다. ,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으면서도 나이가 어릴수록 극대화되는 것이다.

 

독서심리상담 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빅북의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라고. 내가 구매한 할머니의 여름휴가빅북이 결코 가벼운 가격은 아니다. 일반서 약 3권 값보다 비싸니까. 그러나 거기서 오는 정서의 안정감과 느낌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깊다. 사실 현실적으로 여러 권을 사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력이 된다면 몇 권 더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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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달 그림책을 접한 건 독서심리상담 수업 중 선정 도서였던 왜냐면…』 덕분이었다. 그때 그림체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빅북을 고르던 중 안녕달 작가의 이름을 보고 선택했다. 좋은 점을 알고 구매했음에도, 내 마음의 절반은 어린 사촌 동생에게, 절반은 처음 보는 가족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푹 빠졌다.

 

서해쯤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가 멀지 않아 직접 바닷가에 가서 보고 듣는 게 좋겠지만, 그속에 섞여 있는 별개의 음성들이 거슬린다. 동해는 뭐 뉴스 보면 엄두도 안 나고. 그래서 사람들 빠질 때까지 바닷가 여행은 미뤄두기로 결심했다. 대신 올여름은 할머니의 여름휴가빅북 그림책을 펼쳐 놓고 더위를 논할 예정이다. 언제든지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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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 죽어야 고치는 습관, 살아서 바꾸자!
사사키 후미오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정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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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NS로 네이버 블로그만 사용한다. 이웃들의 포스팅을 훑다 보면 좋은 습관을 가지거나 형성 중인 분들이 꽤 많다. 새벽 기상을 기록하시는 분, 감사 일기를 매일 쓰시는 분, 가계부를 공유하시는 분, 규칙적으로 달리시는 분 등등. 그분들의 성실함과 공개적으로 올리는 용기에 랜선 밖에서 감탄하곤 한다. 아마 이미 습관이 되어서 작성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분도 계실 것이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분도 있으리라.

 

그런 게시물들을 보면서 새로운 습관에 대해 자극받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면 더 피로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기존 습관으로 되돌아갔다. 내가 좋아서 들였던 몇몇 습관을 빼면 나는 예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러다 도서관 독서회 4번째 책으로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를 접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일단 뭐라도 해보기를 결심했다.

 

실패한 습관

 

블로그 게시물 중 가장 본받고 싶었던 습관은 새벽 기상이었다. 평소에도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긴 했다. 자정쯤 잠들어 오전 7~8시에 깨어났으니까. 나쁜 습관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시간 활용이 아쉬웠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밥 먹는 행위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또 독서심리상담 수업을 가는 날이면 바빠지는 몸과 마음도 불편했다. 그래서 과감히 기상 시간을 앞당겨 알람을 맞췄다. 슬프게도 그 시간에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고, 설혹 일어났다손 쳐도 다시 잠들기 일쑤였다.

 

아침에 늦잠을 자는 이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자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눈을 뜨지도 못한 상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 p.148

 

내가 실패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진입장벽이었다. 평소 자정쯤 잠들던 습관은 진입장벽이 낮았고, 바로 설정한 새벽 기상은 진입장벽이 높았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했으니 눈이 떠질 리 만무했다. 두 번째 걸림돌은 내 자신을 과신한 탓이었다. 그동안 자존감이 급상승하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기상 후 계획이 없었다.

 

찰스 두히그에 따르면 습관은 신호-반복행동-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나의 새벽 기상은 여기에 하나도 해당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다시 새벽 기상

 

실패한 새벽 기상은 이 책을 읽기 전이었다. 자정 취침, 7~8시 기상을 유지하면서도 새벽 기상의 꿈은 계속 간직했다. 그러던 중 만난 한 문장이 마음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몇 번이나 그 습관을 반복하면 어차피 5분 후에는 눈이 번쩍 떠질 테니까.’라는 기분이 들어서 으싸!”하고 일어날 수 있다. - p.123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만으로도 어떤 일을 하는 태도가 변한다. 나는 진입장벽을 낮췄다. 일단 눈이 떠지면 꾸물거리지 말고 벌떡 일어나는 것을 우선시했다. 그게 시간이 어찌 되었든 말이다. 그렇게 결심한 새벽 기상의 시작은 묘했다. 자기 전 독서를 하면서 뜨거운 물을 마셨는데, 그로 인해 새벽 4, 소변이 마려워 깨어났다. 순간 뇌리에 메시지가 번뜩였다. 이것은 습관의 시작인 신호이자 환경설정이다. 곧 정신 차려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잠자리가 아닌 의자로 향했다. 그리고 첫 시작의 보상을 줬다. 데일리 리포트의 기록과 새벽 독서. 다소 충동적이었지만 내적으로 굉장히 보람찼다.

 

다시 시작한 새벽 기상 덕분에 취침 시간도 당길 수 있었다. 오후 10~11시 사이에 잠들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나흘 동안 성공하면서 반복행동에 돌입했다. 작은 성공만으로도 동기가 충만해지는데 확 앞당겨 큰 성공을 거뒀으니 자기효능감이 어마무시하게 상승했다. 자기 과신도 고려해 목표를 잘게 쪼갰다. 희망 기상 시간은 5, 기본 기상 시간은 6시로 알람을 설정했다. 미리 정해두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기 때문에 자책감이나 자기부정감이 생기지 않는다.(p.161) 정리하면, 어쩌다 새벽녘에 눈이 떠지는 것과 알람은 신호이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반복행동’, 그것을 기록하고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은 보상인 것이다. 요즘은 새벽 기상에 어울리는 행동을 찾아 습관화하려고 탐색 중에 있다. 시작하기에 가장 빠른 시간은 지금이다.(p.165)

 

습관 만들기의 중요한 점

 

책의 3장에는 습관 만드는 방법 50단계가 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라 분리하기란 어렵지만, 내가 생각하는 우선순위 세 가지를 정리하려고 한다.

 

(1). STEP 45 자기효능감은 성공할수록 높아진다

 

자기효능감은 간단히 말해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자신이 바뀌고, 성장하고, 배우고, 새로운 난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 p.245

 

45단계를 처음 소개하는 이유는 작은 성공의 중요성 때문이다. 어떤 습관 만들기에 성공한다면 다음 습관을 만드는데 수월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자기효능감이 상승하는 습관은 데일리 리포트(DR)’이다. 이전 서평에서도 자주 언급했는데, DR은 내 행동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기록이면서 쉬운 행동이다. 나는 기상 후 1시간을 주기로 내 행동들을 적고 있다. 최대한 가감 없이 적는다. 내가 지양하는 행동을 했어도 적는 것이다. 가령, 유튜브의 유혹에 넘어가 1시간을 유튜브로 보냈다면 유튜브 시청이라고 적으면 된다.

 

DR은 솔직해야 효과가 좋다. 왜냐하면 하루를 마감할 때 일과를 돌아보면서 반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간혹 TV에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넋을 놓고 볼 때가 있다. 그것을 기록한 다음, 여백에 반성한 내용을 적는다. 그러면 다음번에는 조심하게 된다. 이렇게 하루를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반성이 끝나면 스스로를 칭찬한다. 끊이지 않고 쓰면서 습관이 되면 이보다 더 어려운 습관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록을 습관화했으니 다음 습관을 관찰하고 반성하기도 쉬워졌을 테니까.

 

좋은 습관 하나를 몸에 붙이면 다른 습관도 익히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자기효능감이 커지기 때문에, 다른 좋은 습관도 더욱 만들기 쉬워진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선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 p.247

 

(2) STEP 09 - ‘핵심습관을 먼저 공략한다.

 

핵심습관은 다른 습관에 도미노 같이 좋은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습관을 말한다. - p.120

 

나의 핵심습관은 역시 DR이다. 새벽 기상, 독서, 일기, 식사, 샤워 등 나의 모든 행동은 DR을 벗어날 수 없다. 좀 더 확장하면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습관화하고 싶은 것들을 죄다 기록한다. 예를 들면, 읽은 책을 플래너에 기록하기, 습작한 날을 캘린더에 동그라미 표시하고 분량 기록하기, 독서 하고 서평 쓰기, 그날의 행동과 감정, 생각을 일기에 쓰기가 있다. 지금 쓴 것 중 서평과 습작 빼고는 전부 습관이 되었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간헐적으로 하는 것들은 습관이 되기 어렵다. 그러니 핵심습관은 매일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3) STEP 49 언젠가 무너질 수도 있다

 

언젠가 무너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너진 습관을 계속해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 p.257

 

미끄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후의 대처이다. 저자는 그래서 습관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정성껏 기록해두라고 한다. 기록은 다시 습관 리듬을 찾을 때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도 DR을 강조하고 싶지만, 여기서는 사고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융통성을 갖춰야 한다. 만약 습관 만드는 방법이 나랑 맞지 않는다면 경로를 틀면 된다. 어떤 일로 인해 중단했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바꿔서 안 된다면 또 바꾸면 된다. 습관을 지속한다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습관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일과는 다르다.(p.259) 일관성은 소신으로 두고 습관은 유연하게 만들자. 습관을 만드는 게 목적이니까.

 

습관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썼지만, 결국 핵심은 꾸준히이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그 챌린지가 끝난 31일째에도 스쾃을 지속하는 것이다.(p.234) 습관은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행동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무의식적으로 좋은 습관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일단 뭐라도 해볼 요량이다.

 

P.S - 참신하거나 색다른 내용이 담긴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작가의 경험과 일상을 바탕에 두고 근거를 제시하며 썼기에 무리 없이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용기와 계기를 심어주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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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죽음 1~2 세트 - 전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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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은 지 얼마 안 지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죽음을 읽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공교롭게도 둘 다 죽음을 주제로 삼고 있다. 전자가 죽음이라는 현상을 다룬 다소 무거운 느낌의 에세이라면, 후자는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죽음을 심각하지 않게 풀어낸 소설이다. 원제는 DEPUIS L’AU-DELÀ어떻게 읽는지는 모르겠지만검색을 해보니 대략 저세상으로쯤 되는 것 같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죽은 후에 이러면 어떨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고정관념 내려놓기

 

앞서 말했듯이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신도, 귀신도, 천국, 지옥, 극락, 영혼 등등. 아주 강력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책을 접하니, 처음 읽을 때는 몰입이 잘 안 됐다. 신선하긴 한데 뭔가 내 취향이 아닌 느낌? 찝찝한 마음에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도입부의 글을 다시 만나 밑줄을 긋고 나서야 , 내가 너무 실용서처럼 읽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상상하고, 꿈꾸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멋진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 1권 도입부

 

소설은 일단 상상력의 산물이고,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소설로써 즐길 수 없다. 현실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소설의 허구성을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와 사후 세계관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그 부분을 놓쳤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작가의 도입부 글은 길잃은 나의 집중력에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이후의 독서는 몰입하여 아주 신나게 읽어내렸다.

 

누가 날 죽였지?

 

누가 날 죽였지?- p.15, 1

 

강렬한 첫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대중에게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가브리엘 웰즈는 새 소설의 시작으로 쓸 첫 문장을 얻었다는 즐거움에 눈을 뜬다. 그러나 즐거움은 여기까지.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자신의 주치의에게로 향한다. 그 병원에서 만난 뤼시 필리피니라는 영매에게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첫 문장은 죽은 추리소설 작가가 풀어낼 사건으로 변한다. 가브리엘은 뤼시에게 자신의 사인을 파헤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수사 도중 큰일을 겪은 뤼시가 포기를 선언하자, 가브리엘은 하나를 제안한다. 뤼시의 잃어버린 연인을 죽은 자신이 찾아줄 테니 수사를 중단하지 말아달라고. 둘은 모종의 계약 관계로 서로가 맡은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다. 여러 인물을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만나면서 가브리엘은 자신의 죽음에 관한 진실에 닿게 되는데…….

 

스포일러는 예의가 아니므로 여기까지가 줄거리로 적당할 듯 싶다.

 

작가의 문학관

 

책이라면 으레 따분한 줄 알았는데 글자와 단어, 문장의 경계를 뛰어넘자 머릿속에 영화 스크린이 펼쳐지더니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며 말하기 시작했어요. 평행 세계로 들어간 기분이었죠. 등장인물의 목소리, 바람 소리, 차 소리, 총소리, 천둥소리가 귀에 들렸어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고 냄새가 맡아졌어요.당신의 이야기에 써진 그대로 느껴졌어요. 문 닫을 시간이라며 교도관이 다가오길래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더군요. 그동안 쉬지 않고 책을 읽었던 것예요. 배가 난파되고 나서 널빤지에 매달려 바다에 떠 있는 사람처럼 나는 당신이 창조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부여잡고 있었던 거죠. - p.98, 1by 뤼시 필리피니

 

소설을 보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작가의 가치관을 엿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주장은 작가가 가지고 있거나 반박하거나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본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작가인 만큼 글쓰기나 독서, 문학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아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가브리엘 웰즈는 글쓰기를 이렇게 바라본다.

 

그에게 소설은 문인들의 직업어로 <인시피트>라 불리는 첫 문장과, 이것이 닦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지막 문장인 <엑스플리시트>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가지가 결정되면 플롯을 작동시키는 시계 장치를 구상하는 일만 남는다. 독자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서서히 자신의 삶을 잊고 주인공의 삶에 몰입하게 만드는 그런 장치. - p.17, 1

 

누가 되었든 글을 쓴다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첫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둘 명분이므로 중요하고, 마지막 문장은 글에 대한 여운과 완성도를 결정하므로 중요하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소설의 중심축이 되고, 중간 내용은 그 안에서 얽혀든다. , 내용이 산으로 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서평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내 경험으로는그리 길지 않지만시작과 결말을 미리 떠올려두면 작성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반대로 일단 써보자식으로 쓰면 먼 길 돌아가는 느낌이다. 나의 능력 부족이겠지만, 어쨌든 처음과 결말이라는 중심축을 정해두고 쓰는 편이 더 수월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작가의 가치관은 문학성이다.

 

()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문학의 다양성이에요. 그 자체로 나쁜 문학 장르가 있는 게 아니라, 장르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따로 있을 뿐이에요.- p.40, 2

 

나는 장르문학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판타지나 추리, 라이트 노벨 등 내가 한때 좋아했던 것들을 멀리하면서부터 생긴 편견이었다. 단순하게 내가 안 본다고, 내가 싫다고 안 좋게 바라본 것이다. 언제나 고전만 옳으며 고전만 읽어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였지만, 문제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는 점. 이해력 미달의 고전독서로 오히려 자가당착에 빠져 독서의 재미를 내려놓기까지 했었다.

 

「〈이해는 각자의 몫이라는 게 제 철학이에요.- p.299, 2

 

웰즈의 말처럼 좋은 책이 나오려면 일단 다양성이 지켜져야 한다. 쓰는 것은 작가의 몫이요,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도입부에서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상상할 수 있고, 꿈꿀 수 있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면 장르불문 나쁜 책은 아니지 않을까. 아마도 작가는 나처럼 문학으로 편 가르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나의 편협한 문학관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계속 고민하게 되는 부분으로 남아 있다. 좋은 문학, 나쁜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면 독서 역시 좋은 독서, 나쁜 독서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작가로서는 문학성의 다양성을, 독자로서는 독서의 다양성을 지키는 게 일단은 정도(正道)인 듯싶다.

 

살아 있는 자의 삶은 소중한 것

 

지난 서평 중 정유정의 진이, 지니에서 나는 일단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야 누구든 만날 기회가 있고, 무엇이든 할 기회가 있고, 어디든 갈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나오는 사후 세계관으로 상상한다면 역시 살아 있을 때 행복할 기회가 많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영혼 상태는 물질세계에 존재하지만 관여할 수는 없고, 환생하자니 원했던 삶이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이므로 큰 의미가 생기기 않는다. 특별한 영매를 만나 죽은 후에도 가브리엘처럼 생전의 삶을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니…… 죽고 나서 심심하지 않으려면 살아 있을 때 많이 즐겁고 행복해야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독서가 자리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인정했지만 소설은 거의 안 읽었다. 가지고 있던 편견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역시 살아 있음으로 인해 내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만드는 그의 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 다작가의 소설을 접할 때마다 하는 다짐인 그의 소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를 또 다짐해본다. (내가 살아 있고, 계속 다짐하다 보면 언젠가는 읽겠지.) 동시에 마지막 문장도 되새긴다.

 

나는 왜 태어났지?- p.313, 2

 

P.S 물론 삶도 죽음도 케바케이니 각자의 가치관으로 살고 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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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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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삶을 피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있는 자라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우리는 만큼이나 죽음에 대해 사색한다. 대상은 다양하다. 자신, 부모형제, 배우자, 자녀, 반려동물. 내용 또한 다양하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언제 죽고 싶은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 죽은 후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대부분 그 사색의 종착역은 그렇다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을 뭉뚱그리면 죽음의 정의에 대한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철학인 이상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이 된다. 개인에게 머물 뿐 절대적일 수는 없다. 죽음의 가치는 남들의 생각에 달려 있지 않다. 내 죽음은 오로지 내 소관이며, 내 죽음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p.77) 그렇기에 이 글은 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으며 고찰한 나만의 죽음 철학이다.

 

왜 죽느냐는 원초적 의문을 탐색하는 과정은 종교나 과학,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설사 만족할 만한 답을 찾더라도 대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탐색 과정을 뭐라고 부르든, 죽음의 이유에 대한 탐색은 각자가 수행해야 하는 과업이다. 죽음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타인의 임종 자리에서 강요해선 안 된다. 세상의 풍파는 함께 겪을지라도 빠져나가는 길은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 p.135

 

죽음을 오독(誤讀)하다

 

나에게 있어 죽음은 숨이 멎는 순간이다. 더 이상 산 사람에게 관여할 수 없고 몸의 처리만 남은 상태. 육신도 정신도 소멸하며 무()로 변환되는 상태. ‘좋은 죽음은 임종을 맞이했을 때 지나온 인생에 미련이나 후회가 남아서는 안 된다. 남더라도 스스로 털어내야 한다. 삶에 대한 집착을 주변 사람에게 보이지 말아야 하며 가능한 한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어렵겠지만 해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마지막 도리이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나와 연관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면 좋겠고, 나 역시 죽음이 도래했을 때 이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잘못 읽고 있었다. 오로지 철학적 측면에서만 바라봤다. 생각 내에서만 맴돌았으며 현상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그저 괴로워 보이고 겪기 싫고 안쓰럽게 여겨졌다. 건방지게도 전생(全生)으로써의 죽음이 아니라 일면으로써의 죽음으로 판단했다.

 

죽어감

 

좋은 죽음을 규정하기보다는 죽음을 둘러싼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게 낫다. - p.64

 

이 책의 부제는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이다. 나에게는 정말 실질적 조언으로 다가왔다. 단 한시도 깊이 떠올리지 않았던 죽어감에 대해 관점을 돌리도록 도와주었다.

 

생애는 두 가지 선이 평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선’. 다른 하나는 우리와 같은 속도로 그어지는 죽음의 선’. 인간은 삶과 죽음을 나란히 두고 살아간다.

  

 

언젠가 삶의 선이나 죽음의 선이 기울어 교점이 생기면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기울어진 선을 나는 죽어감의 선이라고 이름 지었다. 각도가 넓어질수록, 길이가 길어질수록 죽어가는 시간은 늘어난다.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은 이가 급격히 쇠약해지며 보호자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누가 되었든 힘든 시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 힘겨운 과정을 견뎌내려면 현상을 바라보는 확실한 관점을 세워야 한다. 죽음과 죽어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느냐 부정적으로 바라보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치관의 문제는 언제나 실상을 빗나가기 쉽다. 인생의 앞날을 모르듯 그 끝의 앞날 또한 모르는 법이다. 우리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p.96) 하지만 현상으로서 죽음과 죽어감은 다르다. 실질적인 공부를 한다면 당사자도 보호자도 조금이라도 더 후회 없는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이에게 배려를

 

우리는 그날을 가능한 한 늦추고 싶어 한다. 엄마나 아빠가 기계에 의지한 채살아 있기를 바라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면서도 우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다들 우리에게 얼른 결정하라고 다그치지만 우리는 결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 결정을 내려본 경험이 전혀 없다.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 p.175

 

죽음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살아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지만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가능성이 없는데도 가능성을 요구하거나 가능성이 있는데도 가능성을 거절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내가 이런 상황에 빠졌다면 대혼란이 올 것만 같다. 코로 튜브를 꽂아 영양분을 계속 주입하며 강제로 생이 연장되면서 죽어가는 이는 갈증을 호소하고 불편함을 호소하고 괴로움을 호소한다. 바라보는 보호자도 그 모습에 괴로워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저자의 의견에 백번 동의했다. 당사자를 존중하라. 보호자는 중용과 프라이버시, 침묵과 웃음 등 일상생활에서 놓칠 수 있는 온갖 일들의 옹호자요, 죽어가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p.98) 죽어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 이야기를 경청하고 처리하기 힘들어하는 일들을 해줘야 한다. 혼자 있고 싶다면 때론 혼자만의 시간을, 함께 있고 싶다면 같이 잠드는 일도 좋다. 죽음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므로 가능한 한 당사자가 괴롭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보호자가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죽어가는 사람의 갈증 호소일 듯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친할머니께서도 임종 직전 매 순간 갈증을 호소하셨다. 그때마다 고모들은 요양원 간호사를 불러 물을 마시게 해도 되냐 물었지만, 그들은 솜에 적셔 입술에 축여줄 뿐이었다. 나는 단순히 일반인처럼 마실 수 없어 그렇게 하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양원 간호사들은 죽어가는 이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처방했던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임종을 앞둔 환자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아야 오히려 더 편안하다. 그들도 때로는 갈증을 느끼지만, 물이나 음료가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한다.(p.167) 알면서도 물 적신 솜을 할머니의 입술에 묻혔던 까닭은 보호자들에 대한 배려였다. 죽어가는 사람은 오히려 물을 마시지 않아야 더 편안해 질 수 있다. 수분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나의 반성, 그리고 결심

 

독서 후, 나는 한 가지 후회가 생겼다, 친할머니의 죽음과 관련해서. 당신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다. 병세가 악화되어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교회와 관련된 일은 빼놓지 않고 다니셨다. 언제나 독서대에 성경을 펼쳐 놓으시고 읽으시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일어나셨을 때, 잠드시기 전, 매 식사 전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셨다. 그러나 나는 종교를 싫어해서 당신의 신실함에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할머니를 따라 종교를 가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종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내가 진정으로 후회하는 행동은 언제나 침상에 누워만 계신 할머니께 성경을 읽어드리지 못한 부분이다. 부끄럽게도 당신을 찾아뵈어 옛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어하는 몸을 배배 꼬며 억지로 듣는 척했다. 그 잠깐의 시간을 같이 있기가 힘들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만약 내가 할머니의 죽어감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공부해볼 겸 성경을 낭독해볼 텐데,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면 성경에 대한 할머니의 견해도 들어볼 수 있었을 것이고, 내 지식의 지평도 조금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런 후회를 안고 다른 죽어감을 마주하게 된다면, 또는 내가 죽어감의 선에 올라서게 된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요구를 탐색하고 내 요구 또한 명징하게 드러낼 것이다. 죽어가는 동안만큼 시간이 소중해질 수 있을까. 나의 직감은 없으리라 단정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대로,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대로 온 에너지를 쏟아부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다. 죽어감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그들 모두가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그 죽어감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될 때,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무슨 말이 필요치 않다. 환자는 문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p.204)

 

죽음을 숙고하는 것은 실제로 저항을 숙고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죽을 준비가 될까? 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 두려움을 오래, 아주 오래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 즉 우리 모두 미래의 시신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 p.60

 

죽음을 정독하려면 죽음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 죽어감 역시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육신이 영원히 멈추는 그 순간까지 사색은 멈출 수 없다. 삶에 대한 고민을 살아있을 때 한다고 죽음과 죽어감의 고민을 죽었을 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을 여기저기 권하려고 한다. 철학적인 고민은 개인의 영역이지만, 현상에 관한 고찰은 보편적인 영역이니까.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언제 올지도 모른다. 어떻게 맞이할지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누구나 예약된 시신이라는 사실이다. 정말 시신이 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 행운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내가 감동한 문학적인 문장들

 

죽음은 모빌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처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바람이 살살 불어오면 모빌 조각이 하나 움직인다. 조각 하나가 움직이면 연쇄적으로 다른 조각도 차례로 움직이면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람이 다 지나간 뒤에도 모빌은 한동안 더 돌아가다 서서히 멈춘다. - p.160

 

일본어 조오지(じょうじ)’는 항상 존재하는 것, 혹은 변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말을 영원히 변치 않는 것(everlasting)’이라고 옮기고 싶다. 이 단어의 이미지는 흔히 달(moon)로 그려진다. 밤마다 달라지는 달이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을까? 밤마다 달라지는데도 달은 늘 달이다. 끊임없이 변하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찾아오는 죽음처럼. - p.176

 

애통(grief)은 바로 , 뭐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상태이다.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 사라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눴던 일상까지 전부 다 사라졌다. 내가 이걸 하면 넌 저걸 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넌 저렇게 대답했는데. 손을 뻗으면 늘 거기 있었는데. 이젠 손을 뻗은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진실이 거짓으로 변했다. - p.267

 

도자기는 결국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한다. - p.292

죽음은 모빌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처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바람이 살살 불어오면 모빌 조각이 하나 움직인다. 조각 하나가 움직이면 연쇄적으로 다른 조각도 차례로 움직이면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람이 다 지나간 뒤에도 모빌은 한동안 더 돌아가다 서서히 멈춘다. - p.160

일본어 ‘조오지(じょうじ)’는 항상 존재하는 것, 혹은 변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말을 ‘영원히 변치 않는 것(everlasting)’이라고 옮기고 싶다. 이 단어의 이미지는 흔히 달(moon)로 그려진다. 밤마다 달라지는 달이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을까? 밤마다 달라지는데도 달은 늘 달이다. 끊임없이 변하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찾아오는 죽음처럼. - p.176

애통(grief)은 바로 ‘어, 뭐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상태이다.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 사라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눴던 일상까지 전부 다 사라졌다. 내가 이걸 하면 넌 저걸 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넌 저렇게 대답했는데. 손을 뻗으면 늘 거기 있었는데. 이젠 손을 뻗은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진실이 거짓으로 변했다. - p.267

도자기는 결국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한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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