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씽킹 WEALTHINKING (양장) - 부를 창조하는 생각의 뿌리
켈리 최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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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려고 산 책은 아니었다. 켈리 최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가끔 부모님께 찾아가면 어머니가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시고 내게 ‘켈리 최가 그러더라’라는 식으로 들은 게 전부였다. 어렴풋이 기억하던 이름을 책 쇼핑하다 발견하니, 어머니 선물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이 책을 담았다. 그런데 실수로 내 책과 함께 주문해버렸다. 읽을 생각이 없었으나 어차피 어머니께 드릴 책, 한 번 읽어 보고 갖다 드리자는 심정으로 펼친 것이 『웰씽킹』 독서 계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지만, 이내 흥미가 동했고, 이틀만에 완독하는 기염을 토했다. 1부에 하루, 2부에 하루 해서 말이다. 독서 자체가 재밌어서 잠까지 미룬 책은 오랜만이었다. 익숙한 내용이지만 저자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매끄러운 문장으로 풀어냈다고 할까. 한마디로 가볍게 읽으면서 얻어가는 게 많은 책이다.


저자 개인의 경험치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자기계발 분야에서 익히 보고 들은 내용들이 많다. 목표 설정, 습관 개선, 자기 관리 등등.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1000명의 스승을 두었다고 이야기한다. 책, 강연, 기사, 인터뷰, SNS 등 본받고 싶은 자의 행적을 추적하고 따라하면서 그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배웠다고. 그녀는 그들의 방법을 체화할 때까지 따라하고 반복했고, 결국 성공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험이 녹아 들었으니 어찌 보면 종합자기계발서로 볼 수도 있겠다.


내용적인 면도 좋았지만, 내가 혹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사업하다 약 10억을 빚지면서 망했을 때, 센 강을 바라보며 자살을 생각했다. 빚도 빚이고 갖은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으니 충분히 절망할 만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소중한 존재인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며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냈다. 당신을 위해 살겠노라 다짐하며 그녀는 재기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불과 얼마 전인데, 저자와 비교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이유다. 사업을 말아먹은 것도 아니요, 거대한 빚을 진 것도 아니었으니. 단순히 나 자신을 낮잡아 봐서 생긴 일이었다. 코딩 테스트를 공부하는데 알고리즘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예시 문제도 풀지 못하니 나처럼 쓸모 없고 멍청한 인간이 또 있나 싶었다. IT 교육을 받았던 6개월을 꽁으로 날린 기분이 들었고, 이게 진짜 루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낫지 않나? 살아있는 게 민폐인데. 그냥 죽고 편해지면 좋겠다……따위의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 했다. 어느 날, 진지하게 자살 이후를 고민해봤다. 나는 세상에 없으니 걱정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나는 내 정신머리를 붙잡을 이유가 필요했는 지도 몰랐다.


그림 하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정신이 무너진 어머니의 모습. 물론 상상의 영역이지만, 내게는 매우 현실적인 감각이었다. 나와 어머니는 지음(知音) 같은 사이로, 둘 중 하나가 세상에 없다면 남은 하나는 필시 외로워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니 역시 나에게 자살은 무리였다. 어쩌다 보니 내 최악이 이렇게 상정되었다. 살아있는 한 나의 삶은 최악보다 언제나 나았다. 나는 결론지었다. ‘내 멋대로 살아도 자살보다 낫다’ 라고. 그런 와중에 이 책에서 비슷한 맥락을 접하니 왠지 칭찬받은 기분이었다.


이왕 살기로 결정한 거, 열심히 살아보려고 다시 마음먹었다. 저자가 알려준 모든 방법을 따라하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내 체질과 안 맞다고 여겨 보류하기로 했다. 물론 한 번에 다 따라할 수 없는 것도 있고. 그래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을 추렸다.


가장 먼저 ‘세 가지 결단’이다. 저자는 성공하기 위해 세 가지 나쁜 습관을 끊었다. 음주를 끊고, 유희를 끊고, 파티를 끊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관리가 기본’이며, ‘자기 관리의 기본은 불필요한 시간 소모를 줄여 스스로 발전시키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p.58).’ 나도 결단을 내리긴 했다. 일단 게임을 끊었다. 내 노트북과 스마트폰의 용량을 차지하던 게임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유튜브 프리미엄 결제를 해지했다. 광고가 나온다면 아마도 불편해서 덜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돈을 아끼자는 마음을 합친 결과다. 하나가 부족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을 쪼개서 독서와 공부에 힘을 쏟는 중이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성장해 있기를 바라면서.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멈추지 않는다면 5년 후에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p.61)’이다.


다음은 ‘네 번째 뿌리, 믿음’이다. 총 일곱 가지 뿌리가 있는데 다 건너뛰고 왜 네 번째 뿌리만 이냐 한다면, 내게 가장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툭하면 나를 깎아내렸다. 위에서 언급한 자살 고민도 그 결과물 중 하나였다. 아마 과거 10여 년 동안 소설가를 꿈꾸면서도 이루지 못한 이유 중에 극심한 자기비하로 인한 의욕 부진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일의 핵심은 ‘없음’보다 ‘있음’에 집중하는 것이다(p.166).’ 내게 뭐가 있더라, 생각해 보니 가진 게 매우 많았다. 사지 멀쩡하고, 서울에서 지낼 곳 있고, 공부에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가족이 있고, 코딩 공부 가능한 노트북도 있고, 심심함과 호기심을 달래 줄 책도 있고, 물려 있지만 배당 나오는 삼성전자 주식도 있고…… 세기가 벅찰 정도였다. 지금 감상문을 적으면서 봐도 참 행복해야 할 놈이다, 나는.


그리고 ‘얼리버드 습관’이다. 얼리버드의 속뜻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자기계발을 하는 걸 의미한다(p.226).’ 일어나는 시간이 저녁이든 아침이든 상관없다. 내 하루 루틴을 돌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기계발을 하라는 것이다. 나는 언제 일어나든 간에 제일 처음 활동은 독서로 시작하고 있다.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책을 읽은 다음 계획한 공부를 한다. 개인적으로 공부 모멘텀 형성이 더 잘 되는 기분이다. 앞으로 자고 일어나면 책부터 떠오르는 습관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행동 방침은 아니지만, 위로가 된 문장도 있었다. ‘열심히 하는 건 하는 거고, 결과는 순리에 맡기겠다(p.255).’ 하루 빨리 취업해야 하지만, 내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너무 뚜렷해 취업 지원을 주저하고 있었다. 자소서도 개판이고, 이력서도 개판이라서 도무지 지원할 엄두가 안 났다. 내가 인사담당자여도 나 같은 사람은 안 뽑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위 문장을 읽고 ‘그래, 그냥 질러 보자.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하는 용기 넘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괜찮다 싶은 기업이 있으면 그냥 이력서부터 넣어보는 중이다. 물론 전부 불합격이지만, 지원 전의 불안보다 불합격의 안정감이 편했다. 취업 될 대로 되라, 까짓 거. 나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겠지. 그냥 내 공부나 열심히 하련다.


부를 이루고 싶다면 『웰씽킹』에서 제시하는 행동을 모두 소화해야 하겠지만, 현재 내 목표는 부나 성공이 아니다. 또한, 개개인에게는 기질이나 성향, 성격 등이 다양해서 누군가 제시한 방법이 모두에게 통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책의 내용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내 마음가짐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다. 왜 어머니께서 자주 언급했는지 알겠다.


어머니께 드리기 아까웠는데, 마침 어머니는 지인한테서 같은 책을 선물 받았다. 고로 이 책은 이제 내 것이다. 고향집 책장이 아닌 내 책장에 두고 가끔 다시 읽으면서 보물찾기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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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식 대신 달러를 산다 - 성공률 100% 투자자의 기발한 파이프라인
박성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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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휘청거릴 때면 안전자산인 달러를 사라는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들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나의 행동은 굼뜨기만 했다. 달러가 투자 대상이라는 사실이 체감되지 않았다. 그래도 하방 보호용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달러 ETF를 몇십 주 매수했었다. 코로나 터지기 직전에 매수한 탓에 양적완화에 밀려 최근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한 녀석이었다. 테이퍼링 소식이 들려올 즈음부터 환율이 오르기 시작했고, 이제야 겨우 양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달러는 이렇게 투자하는 게 아닌가벼?’ 하는 의구심도 생겨났다.


환율은 한창 오르고, 코스피가 3000천 아래로 내려가고 나서야 달러 투자가 궁금해졌다. 마침 무지성 책 구매 도중 사 놓았던 책, 『나는 주식 대신 달러를 산다』가 있어 이번 기회에 읽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간단한 역사와 투자 대상인 이유, 그리고 투자 방법까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역사와 투자 이유는 대강 알고 있어서 빠르게 넘겼고, 투자 방법에 집중했다.


저자가 제시하는 달러 투자 방법은 ‘세븐 스플릿 달러 투자 시스템’이다. 문자 그대로 7번에 나눠 달러를 구매하는 방법으로, 매수한 가격을 합친 평단가가 아니라 각 환율에 맞는 개별 구매로 기록해 매매한다. 예를 들어, 가장 처음 구매한 달러를 ‘넘버1’이라 칭하고 환율이 1100원이라고 하자. 만약 환율이 하락해 1050원이 되었다면 추매해 ‘넘버2’로 기록한다. 이런 식으로 하락할 때마다 총 7번을 추매한다. 다시 환율이 1000원이 되었을 때, 이 가격 미만으로 구매했던 달러를 매도하면서 환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높은 가격에 달러를 매수한 경우도 괜찮다. 달러는 주식이나 부동산과 다르게 현찰로 쓸 수 있는 ‘화폐’가 본 기능이기에, 환차익 실현을 못하더라도 여행을 가거나 미국 주식을 매수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절대 손실이 생기지 않는 투자인 셈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달러를 구매할 때 주의 사항은 첫 매수 환율이라고 한다. 투자의 기본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기준은 ‘52주 평균 환율’과 ‘52주 평균 달러 지수’, ‘52주 평균 달러 갭 비율’과 현재의 것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투자를 ‘시작’하기 .좋은 조건으로 총 4가지를 제시한다.


1. 현재의 원/달러 환율이 52주 평균 환율보다 낮을 때

2. 현재의 달러 지수가 52주 평균 달러 지수보다 낮을 때

3. 현재의 달러 갭 비율이 52주 평균 달러 갭 비율보다 높을 때

4. 현재의 원/달러 환율이 적정 환율보다 낮을 때


위의 조건에 따라 시작은 하되, 이후 추매 혹은 매도는 자신이 정한 목표 환율과 목표 수익률에 따라 실행한다.


달러 갭 비율은 ‘달러 지수 ÷ 원/달러 환율 × 100’으로 구할 수 있고, 적정 환율은 ‘현재 달러 지수 ÷ 52주 평균 달러 갭 비율 × 100’으로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달러 지수와 실시간 환율은 투자 사이트인 ‘인베스팅닷컴’에서 알 수 있다. 어디까지나 ‘시작’에 방점을 둔 저자의 공식이니 참고 정도만 하는 걸로.


인베스팅닷컴 달러 지수 : https://kr.investing.com/currencies/us-dollar-index

인베스팅닷컴 원/달러 환율 : https://kr.investing.com/currencies/usd-krw


그러나 나는 투자가 익숙하지 않을 때는 일단 머리부터 들이밀고 보자는 주의라 책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계산하고 환전하지 않았다. 한쪽 발을 들여놓으면 그 발 빼는 게 아까워서라도 계속 신경 쓰여 공부하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적정 가격은 해당 투자에 익숙해졌을 때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금액이 크지 않으니 가능한 이야기지만. 아무튼 투자를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니까.


이 책에서는 어느 은행 or 증권사 어플로 환전하는 게 유리한지, 현찰과 전산환에 어떠한 장단점이 있는지도 알려준다. 나는 그 정도 열의는 없어서 내가 사용하는 은행 어플로 진행했는데, 참고하실 분들은 책을 읽어 보시면 되겠다.


투자는 주식밖에 안 했는데, 범주가 하나 더 늘어나 개인적으로 뿌듯하다. 조만간 달러 ETF 다 팔아버리고 달러를 사야겠다. 내 선택에 유용한 팁을 준 고마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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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는 마음 창비청소년시선 36
이병일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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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더 구매할 생각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시집 사는 돈이 아까워졌고,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재미도 없거니와 도대체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건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시 읽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올해 정해진 기간 동안 새로운 교육을 들으면서부터는 독서 자체를 미뤘다. 그러다 보니 문학에 갈증이 생기는 순간이 더러 생겼다. 문학을 좋아해서 문창과를 진학했었으니 약간은 본능적인 갈구라고 여겼다. 그런 와중에 대학생 때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었던 교수가 연락해왔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간단한 안부와 함께 본인 새 시집이 나왔다며 카톡을 남긴 것이었다. 때마침 심신이 지쳐서 구매해 읽어 보기로 결심했다.


청소년 시집인 『처음 가는 마음』은 한창 학창시절을 보내며 성장 중인 청소년을 화자로 삼아 그의 일상과 내면을 시로 풀어냈다. 평범한 언어와 평범한 상황이 대다수이며 메타포를 어렵게 해석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가 많다고 느꼈는데, ‘내가 알던 시가 이런 거였나?’ 싶은 의구심이 자꾸 샘솟았다. 하긴, 마지막으로 읽었던 시집 대부분은 현대시로 난해하기 그지 없는 종류였으니 이런 느낌을 받는 게 타당했다.


안타깝게도 시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여전히 시 읽는 재미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는 생각이 읽는 내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마음이 삭막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청소년이 힘들든지 말든지, 고민을 하든지 말든지 내 코가 석자인데 뭘 느끼고 자빠졌겠는가.


나중에 다시 읽는다면 좀 다를 것이다. 독서의 재미란 읽을 때마다 다르다는 점도 있으니까. 아무튼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까지 시집을 다시 읽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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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0만 부 기념 윈터 에디션)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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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부터 하자면 나는 멍청이다. 30살이 다 지나가는 지금 내 본질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무능하게 지내온 이유는 전부 내가 멍청하기 때문이었다. 후,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지만 인정하니 마음이 편하다. 누가 보기에는 유난이겠지만, 내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10월 중순, 빅데이터 교육(을 빙자한 잡스러운 코딩 교육)이 끝나고 무지성으로 놀았다. 때마침 추억의 게임인 ‘디아블로2 레저렉션’이 오픈했다. 초딩 때 이루지 못한 통한의 앵벌 노가다를 즐기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밤새 게임에 몰두했다. 밤낮은 순식간에 바뀌었고, 시간은 빠르게도 지나갔다. 현실을 자각했을 때는 어느새 11월도 중순을 향해 가고 있었다.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 취업 준비하자, 라고 머리로는 생각해도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찼고, 나의 종특인 도피성향이 발동해 남은 11월도 게임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 좋은 증상이 생겼다.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된 것이다.


불면증은 아니었다. 누우면 잠들기는 빨랐다. 다만, 단면증이라고 해야 할지, 12시 내외로 잠들면 3시간 후 깨어나고, 모두가 움직일 시간에 다시 잠드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한 번도 안 깨고 자려면 날을 완전히 지새야 6시간가량 잘 수 있었다. 뭐 내가 뿌린 씨앗이니 투정일 뿐이지만, 이런 잡소리를 길게 하는 이유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마음에 든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읽게 된 이유’가 아니라 ‘마음에 든 이유’인 까닭은 이미 현실 자각을 했을 때 환기 차 교보문고에 들러 구매해 억지로 읽고 있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봤다.’ 다시 차례를 보니 다양한 철학자가 나온다. 내가 아는 소크라테스, 공자, 간디, 니체 등등부터 처음 들어보는 시몬 베유, 세이 쇼나곤, 에픽테토스 등등까지. 그래도 딱히 기억나는 철학이 없다. 각 잡고 읽은 적이 거의 없다. 잠들기 전 펴서 읽다 두어 장쯤 넘겼을 때 졸음에 못 이겨 접었다. 덕분에 불면증은 겪지 않았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잠들었을 때는 어김없이 3시간 후에 깼으니 짜증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렇게 무지성으로 읽어도 힐링이 되기 때문에 굳이 리프레쉬 장르로 철학을 선택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누군가 이미 생각해줬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 독서인가!


무지성으로 읽다가 딱 한 군데 철학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앞서 길게 이야기한 모든 부분을 관통하는 부분이었다.


「스토아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우리는 외부의 목표를 내면의 목표로 바꿈으로써 실망의 공격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놓을 수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를 펼칠 것. 자기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대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소설을 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말 것. – p.408 ~ 409」


5.5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고 해도 긴 시간동안 빅데이터 교육(을 빙자한 잡스러운 교육)을 수료하고, 전공자가 1명씩 끼어 있는 팀 사이에서 비전공자 셋이 뭉쳐 파이널 프로젝트 최우수상을 수상했어도 활용하지 못한 나 자신. 막연히 코딩 교육만 배우면 IT 업계에 취업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나 자신. 남들 스펙으로 이력 채울 때 게임으로 도피해 멍청함으로 이력을 채우던 나 자신. 내가 왜 멍청이인지 자각하게 해준 철학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세상에서 멍청한 존재가 가장 싫다. 멍청이가 멍청한 소리를 멍청하게 내밷는 것을 들으면 나도 멍청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멍청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허나 내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행동은 합리화에 불과한 멍청한 짓 뿐이었다. 행위 그 자체에 만족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내게 어떤 의무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그마저 행위보단 따라오는 보상을 기대한 적이 더 많았다. 그러나 어디서도 내가 바란 보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예를 들면, ‘멍청하지 않음’을 바라고 독서를 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더욱 멍청해지는 기분이었고, 독서는 괴로운 일이 되었다. 게임마저 플레이하면서 재미를 느끼기 보다 고급 아이템이 드랍되기를 바라면서 본질적인 재미를 버렸다.


정말 놀랍게도 나의 멍청함을 인정한 엊그제, 한 번도 깨지 않고 밀렸던 잠을 몰아서 잤다. 약 13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그와 함께 하기 싫어도 억지로 붙잡고 있던 공부들이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로 재미있어졌고. 반대로 게임은 다시 흥미를 잃었다. 어떻게 보면 확률형 도박과 비슷한데, 즐겁지도 않은 행위를 그저 아이템 하나 바라고 하는 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후에 새로운 캐릭터를 키운다면 모를까, 아마 당분간은 안 할 듯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게으르긴 했으나 독서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한 달에 두 권은 읽었으니까. 그러나 독서감상문을 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코딩 공부가 내 생각 외로 너무 힘들었던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멍청했으니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책에 대한 내용은 매우 적지만,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의미 있는 책이다. 이렇게 중구난방인 글이나마 다시 기록을 하도록 나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멍청한 내가 조급해져서 이리 저리 고민해봐야 풀리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일어나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멍청이의 의무를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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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 짐 사이먼스가 일으킨 퀀트 혁명의 역사
그레고리 주커만 지음, 문직섭 옮김, 이효석 감수 / 로크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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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 교육 과정 따라가기도 벅차 독서 비중을 줄인 요즘이다. 교육장과 집을 왕복하는 전철에서만 책을 읽은 터라 진전이 더뎠다. 최근에는 일주일짜리 간단한 미니 프로젝트였지만, 난생처음 웹 프로그래밍 프로젝트를 진행해 더더욱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틈틈이 읽은 덕분에 오늘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사실, 3주에 걸쳐 읽은 까닭에 내가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짐 사이먼스뿐 아니라 그가 세운 르네상스 테크놀러지에 관여한 주요 인물들 이야기까지 나열되어 있어 더욱 헷갈리는 것도 있다. 아마 읽기 전 마음 먹었던 대로 내용을 정리하거나 반추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나마 내가 현재 코딩을 공부하고 있어 일부분 상통하는 맥락이 존재했다. 투자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온갖 대단한 과학자, 수학자, 개발자가 노력하는 모습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게 큰 응원이 되었다. 나는 기껏해야 수백 줄짜리 코드를 만지지만, 그들은 수만 줄짜리 코드를 살핀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그들처럼 프로그램을 잘 살피기 위함이기에 연습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고생을 견딜만 했다.

 

코드의 난도가 전혀 다르겠지만,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그들도 힘들어한다면, 비전공자이면서 이제 막 시작한 내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알고 보면 간단하더라도, 밤을 새워 나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닌가. 독서하는 내내 이런 마음가짐을 되새기며 위로를 받았다.

 

나는 투자에 관심이 많기에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는 호기심에 집어 든 책이었지만, 읽으면서 투자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자기계발서로 받아들여 노력하는 고수들의 자세를 배우는데 초점을 맞췄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너무 오랜 기간 붙잡고 있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헷갈린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서 밑줄 친 문장을 정리하면서 감상문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읽었다는 기록을 남기는데 만족하고, 차후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다시 보든지, 다른 책을 보든지 해야겠다.

 

돈을 벌면 내가 마치 천재처럼 느껴진다네. 하지만 돈을 잃으면 난 그냥 멍청이야.” - p.116, 짐 사이먼스

 

“() 가장 중요한 본질은 항상옳은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자주 옳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p.138, 르네 카르모나

 

여전히 이 모델은 곤경에서 벗어난 주식이 대개의 경우 원래대로 회귀한다는 데 베팅하는 식으로 큰 수익을 올리는 트레이드들을 충분히 찾아냈다. - p.287

 

섹스나 살인이 아니라 돈에 대한 열정을 지닌 금융 시장 분석가를 위한 북클럽을 결성한 셈이다. - p.298

 

“ () 안 좋은 해도 있었고 끔찍한 해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발견한 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 p.327, 짐 사이먼스

 

사이먼스는 논리와 합리성, 과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매일 확률과 씨름하며 트레이딩에 베팅했고 대개의 경우 승리했다. 하지만 사이먼스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두 번의 비극을 겪었다. 그 사고들은 확률이 아주 낮은 특이한 경우이며 전혀 기대하지 않았으며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이먼스가 무작위성에 무너진 것이었다. - p.359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존입니다. 우리가 틀렸다면 나중에 언제라도 (투자 포지션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 p.384, 짐 사이먼스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교사들을 비난하는 대신 훌륭한 교사를 칭찬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들의 위신을 높여 주고 금전적 혜택을 제공했으며, 그들은 학교 교육 분야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 p.399, 짐 사이먼스

 

사이먼스는 청중들에게 몇 가지 인생 교훈도 얘기했다. “가능한 똑똑한 사람들과 일하세요. 여러분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면 더 좋습니다. (……)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아름다움을 추구하세요. (……) 기업을 운영하거나 실험을 실행하거나 수학 정리를 만들 때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뭔가가 잘 되면 심미적 관점에 가까운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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