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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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한국역사]라고 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누구나 지겹도록 공부해왔을 것이다. 무슨 빗살무늬토기니 청동용봉봉래산향로니 뭐니 해서 외울 것은 그렇게 많던지…. 그래서 본인의 경우는 [한국근현대사] 이외에는 한국역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뭐 우리나라가 과거 광개토대왕 시절에 강력‘했었다’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런 사실은 현재 대한민국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현재 우리나라가 4대 강국 사이에 끼어서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단지 위안을 받기 위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실 [민족]이란 개념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19세기 이후이며 우리가 흔히 [한민족]하지만 이 책에서 함석헌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우리는 단일민족, 한 핏줄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개념들이 세계화 시대에 따른 [다문화]에 대한 '타자화’로 나타나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과연 우리나라 역사가 ‘빛’나는 역사인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면서 굉장히 불편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는 쥐꼬리만큼 밖에 없으면서 반만년 역사라고 자랑하는 것이 왜 이렇게 웃기던지…. 또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정말 최악이다. 대체 [위대한 조상님들]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셨는지 이해도 못하겠고 왜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이 고생인가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정의 내린 함석헌 선생님의 정의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고 있다. 그리고 p.18에서 “과학과 종교가 충돌되는 듯한 때에는 과학의 편을 들어 그것을 살려주고”라는 부분은 요새 생명공학 발전에 따라 과학과 종교가 충돌되는 상황에서 유용한 충고라고 생각한다. 과거 중세 교회가 절대권력을 소유하고 있을 때 과학의 발전이 더딘 점은 바로 이런 태도가 바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 37과 p.50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와 정통주의에 대한 비판“기독교가 결코 유일의 진리가 아니다”란 말씀도 의미가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정통주의에 대해서는 미국의 그 유명한 [원숭이 재판]을 통해 이미 충분히 비웃음을 사게 되었으며 성경을 해석하는 함석헌 선생님의 태도가 참으로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p.240과 p.485에서 종교의 세속화, 권력화와 귀족주의 종교를 비판한 점이나 p.256, p.269에서 조선시대 유교와 이른바 [엘리트]에 대한 비판은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p.411에서 천당 가기 전에 이 땅 위에 하늘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라는 주장은 요즘 교회의 목자가 꼭 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동감할 수 없는 의견이 존재한다. 일단 p.13의 “성경의 자리에서만 역사를 쓸 수 있다. 똑바른 말로는 역사철학은 성경밖에 없기 때문이다”는 자신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오만의 극치이며 p.53에서 유물사관을 비판하면서 성경이 역사의 근본이라는 이야기는 동의할 수 없다. 자연현상을 대하듯이 순전히 원인, 결과의 관계로 설명하는 과학적인 사관이 결국 유물사관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의견도 그렇지만 유물사관이 근대 인간을 정신적으로 파산시켜 오늘의 혼란에 이르게 한 큰 원인의 하나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해서 예루살렘에 이스라엘을 세워서 하루가 멀다하고 테러가 일어나는 것은 혼란이 아니란 말인가? 그리고 성경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던 중세에 오히려 인간성을 말살한 나머지 학문과 예술, 그리고 과학이 오랜 암흑기를 겪게 만든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솔직히 고백하면 글쓴이가 해방 이후 혼란기에 북한에서 많은 고생을 한 나머지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유물사관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앞서 나간 것일까?

 

 또한 “민족의 기질은 반영구적“(p.85)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책 안에서 분명히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니라면서 스스로 이야기 했으면서 민족의 기질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의 DNA 속에? 아니면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Meme을 통해서? 그리고 ”역사는 하느님의 뜻대로”(p.92)라고 주장하는데 앞에서 주장한 것과 종합해보면 일종의 패배주의, 순응주의, 운명주의적 사관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글쓴이의 주장대로 민족의 기질은 반영구적이고 역사가 하느님의 뜻대로 정해져있으면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든 민족의 기질을 바꿀 수 없을 것이며 하느님의 뜻에 거스르면 성공하지 못할테니 그냥 고민하지 말고 “Let it be”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글쓴이의 생각은 p.306에서 당쟁이 민족 성격에 대한 문제라고 주장하는데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한국근현대사 부분에서도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이 있다. 일단 p.419에서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6.25전쟁(사실 나는 6.25전쟁보다는 한국전쟁이라고 부르고 싶다.)을 몰랐다는 점은 사실이 아니다. 최소한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현재 사학계의 견해이며 이승만 대통령 또한 김일성처럼 사정이 허락하면 분명 북한을 침략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밝혀진 바이다. 그리고 “남북한의 싸움이라지만 북한이 남한을 칠 까닭이 없고, 남한이 북한을 대적할 까닭도 없다”(p.422)라고 말씀하시는데 일단 6.25 전쟁은 남북한의 싸움이 아니었고 서로 대적할 까닭은 넘쳤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곳곳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에 대한 과도한 찬양이 눈에 띈다. “자본주의 꽃필 대로 활짝 꽃이 피었고, 공산주의는 그 위에 서리를 칠 대로 쳤다”(p.432)는 표현이 대표적인데 이건 함석헌 선생이 해방 직후 북한에서 소련에 의해 구금되는 등 고생을 한 끝에 1947년에 월남하고 1950년에 부산에서 비난생활을 하시면서 이런 생각이 고정관념이 된 것 같은데 이런 것은 앞서서 유물사관을 비판하는 것에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런 점은 역시 함석헌 선생 또한 당시 살았던 사람들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결국 함석헌 선생님의 사관은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국 역사를 분석하여 [고난의 역사]라는 정의내리고 우리나라가 “뜻”을 잃어버리게 만든 세속화된 유교, 엘리트주의, 당쟁 등 여러 가지 원인을 철저하게 고찰하여 다음 세대의 주인공인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다시 한번 “뜻”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성경”, 혹은 “뜻”, 아니면 “알 수 없는 손“에 의해 이어간다는 점을 강조하여 자칫 우리로 하여금 패배주의, 순응주의, 운명주의적 사관을 가지게 만들 위험도 상존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역사를 봄에 있어서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제 3의 힘‘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만 과학적,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사실에 입각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편이 더 좋은 역사 서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어떻게 생각할련지 궁금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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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Gavin Degraw
게빈 디그로 (Gavin DeGraw) 노래 / J Records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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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과거 Gavin Degraw에 대해서는 KTF 광고 배경음악에 삽입된 "Fellow through"를 부른 가수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앨범을 듣기 전메 미리 "Fellow through"를 들어 보았다. 이어서 데뷔 앨범 이후 무려 5년 만인 오는 4월에 발표 될 셀프 타이틀 앨범 [Gavin DeGraw]의 첫 싱글인 [In Love With A Girl]를 듣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음반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내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개빈 디그로우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이번 앨범의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마치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태지]가 자신의 컴백 앨범 제목은 [서태지]라고 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대체 얼마나 음악에 자신이 있어야 자신의 이름을 앨범 제목으로 할 수 있을까? 사실 데뷔 앨범의 경우 상업적 성공을 위해 아무래도 대중의 취향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뷔 이후 약 5년만에 내놓은 이번 앨범에서 개빈 디그로우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록]이라는 음악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 같다. 그 만큼 단 한 곡 [In Love With A Girl]에서도 개빈 디그로우만의 락 특유의 힘이 가득하면서도 감각적인 멜로디가 절묘하게 어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본인은 [록]를 많이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냥 '시끄러운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하지만 이 음악은 귀에도 익숙해지고 입에도 속된 말로 '달라 붙을' 정도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5년 만에 돌아온 개빈 디그로우가 과연 자신의 이름을 앨범 제목으로 내걸 정도로 이 앨범에서 [Gavin Degraw]를 느낄 수 있는지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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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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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간디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즉 간디만의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었다. 간디의 유토피아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p.8),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p.12),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p.40~41), 마을 스와라지(p.61),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p.66), 비폭력과 탈중심화(p.70), 보호무역(p.94), 전인교육(p.113) 등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이런 삶이 [이상적인 삶]인지 부터 의문점이 생기고 또한 과연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일단 간디도 자신의 꿈꾸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p.108) 분명히 고백하건데 아직 젊은 나로서는 간디처럼 <이상주의>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본인도 전세계 사람 모두가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지만 이럴 때 대부분 알고 있는 체게바라의 명언이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그래서 나는 과연 간디의 꿈꾸는 삶이 [불가능한 꿈]인지 하나 하나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먼저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 단일 세계 정부 수립이 최선이 될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단일 세계 정부 구성의 시초가 될지도 모르는 UN을 보면 현실 정치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1학년 시절에 현재는 호주대사로 임명된 정치외교학과 김우상 교수의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는 UN도 미국의 단일패권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만약 UN(united nations)이 속된 말로 말을 잘 듣지 않을 경우 UC(united country)라도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결국 개인적으로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어서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디도 이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p.13) 그래서 대안으로 “국가를 분산시키는” 마을 스와라지를 제시하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국가를 분산시킨” [마을 스와라지]가 바로 또 다른 [국가]가 아닌지 궁금하였다. 대체 두 개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마을 스와라지]라 함은 단순히 이름만 바꾼 [국가] 자체가 아닐까? 그냥 단순히 권력만 분산시킨다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마치 [마을 스와라지]에 대해 간디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과거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 그럴까?



또한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디는 굉장히 기계와 산업화를 반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특히 사악함은 산업주의에 내재하는 것이어서 산업을 아무리 사회화해도 그 사악함을 제거할 수 없다(p.42)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초창기 [천민 자본주의]로 인해 많은 사악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의 [천민 자본주의]는 많은 도전을 받으면서 점진적으로나마 사악함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간디가 다시 살아난다면 산업화를 통해 인간의 수명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특히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이 많은데 개인의 지적 능력은 오직 인류에 봉사하는데 쓰여져야 한다(p.66)는 간디의 견해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간디도 너무 앞서 나가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간디로 아래 글을 쓰고 나서 아차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디는 우리의 시간의 대부분은 육채노동에 바쳐져야 하고, 오직 조금만이 독서에 주어져야 한다(p.67) 라고 주장하는데 뭐 이건 반론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부자들의 재산 신탁(p.69)을 주장하는데 이 부분의 논리도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간디는 평등한 분배가 이상이므로 공평한 분배를 차선으로 추구하는데(p.68) 과연 부자들의 재산 신탁과 공평한 분배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부자들의 재산 신탁이라 함은 평등한 분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재산 신탁한 것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사회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나중에 사용하고 돌려줄 것인가? 절대 그럴 일을 없을 것이니 한마디로 그냥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말의 유화된 표현 아닐까?



이어서 비폭력과 탈중심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비폭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농업적으로 조직된 인도는 육해공군을 잘 갖춘 도시화된 인도보다 외국의 침입을 받을 위험이 적다(p.70)라고 주장하는데 이건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펴는지 궁금하다. 과연 인도는 과거에 농업적으로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는 도시화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인가? 그리고 인도가 왜 현재 다른 나라의 무시를 받지 않는가? 그것은 [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간디가 주장하는 보호무역(p.94)은 개인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원래 경제학과 경영학에 대해 경험이 미천한 관계로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에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을 통해 영국이나 미국이 IMF, 세계은행, WTO 3인방을 통해 각 국에 강요하는 자유무역의 허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나라들도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력을 키울 때까지는 보호무역을 하였으며 세계적인 산업 경쟁력을 갖추고 나서는 자유무역을 다른 나라에 강요함으로써 올라올 때 사용한 사다리를 치워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이탈림, 혹은 전인교육(p.113)으로 대표되는 간디의 교육관에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간디는 지력의 올바른 교육은 오직 손, 발, 눈, 귀, 코 등 신체기관의 적절한 운동과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p.113)고 말하고 있다. 즉 적절한 지능 발달에는 몸과 마음의 교육과 함께만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추구한 교육 목표인 전인교육(全人敎育)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빼자고 주장(p.117)하고 있는데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하는 판에 이런 주장을 했다가는 미친 사람 소리 듣기에 딱 좋을 것이다. 본인은 현재 영어가 일종의 학벌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어가 이른바 상류층으로 편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으며 영어를 통해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배우지 말자는 것은 너무 앞서간 생각이다. 영어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오는 논문의 대부분은 영어로 작성되고 있으며 영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입장에서 영어라 함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본어와 같이 인도의 문화를 왜곡할 수 있으며 당시 [친영파]의 주요 출세 수단이었던 만큼 이를 배척한 간디의 생각은 이해되지만 현제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인적인 생각으로 간디가 주장한 이상적인 삶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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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시클 다이어리 - 누구에게나 심장이 터지도록 페달을 밟고 싶은 순간이 온다
정태일 지음 / 지식노마드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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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글쓴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여행하는 [평범한 여행기]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취직을 위한 TOEIC책과 함께 책가방에 넣고 중앙도서관에서 보기 시작했을 때 글쓴이의 처지과 너와 오버랩되었다. 사실 우리 학교 교훈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과 같이 [진리 추구][자유]는 군대를 갔다오고 4학년 졸업반인 상태에서는 구름 위에 뜬 소리처럼 들렸다. 눈 앞에 닥친 취업을 위해 나도 글쓴이처럼 TOEIC책을 옆구리에 끼고 아침부터 중앙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취직을 위해 TOEIC을 공부하면서 나의 어렸을 때 꿈과 대학교 신입생 때의 각오는 이미 나의 마음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나의 고민과 같은 고민을 글쓴이는 더 많이 했음을 이 책에서 알 수 있었다. 29살에 40번이나 서류전형 탈락을 겪으면서 글쓴이는 좌절회의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면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필중이 아저씨를 만나서 잃어버린 [꿈][열정]을 찾기 해 60일간의 유럽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책에서도 평범한 [여행기]와 같이 유럽을 여행하는 다양한 사진과 에피소드들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으며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도움이 될 여러 가지 조언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 자전가가 보편적인 운송수단이면서 자동차 운전자보다 모든 신호에서 한발 더 빠르다는 것과 잘 구성된 자전거 전용도로는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우리나라 자전거 전용도로의 경우 고작해야 인도에 줄만 그어놓는 수준에 불과한데 유럽의 경우에는 아예 자전거만 다니는 도로, 말 그대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그러나 이 책이 기존의 [평범한 유럽 여행기]와 차별되는 점은 [유레일 패스]를 통하여 기차로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이용하면서 박물관이나 성 같은 것이 보이는 것 뿐이 아니라 유럽의 시골 모습이나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에피스드를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실패자' 취급을 받는 취업 장수생이 자신의 [꿈][열정]을 찾기 위해 스스로 힘든 자전거 여행을 선택하여 결국 60일간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여러가지 교훈을 배우고 다시 사회에 도전할 [열정]을 얻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평범하고 식상한 유럽 여행기에 지쳐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글쓴이나 나와 같이 눈 앞에 닥친 취직 때문에 [꿈][열정]을 잃어버렸다면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잊어버린 꿈과 열정을 찾아보려고 노력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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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평전
클로드 B. 르방송 지음, 박웅희 옮김 / 바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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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우리가 토번(土番)이라고 부르는 [티베트]에서 큰 민중 봉기가 있었다. 올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여러가지 고민할 변수가 많았던 중국 입장에서는 썩 달가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이런 민중 봉기는 비록 [완전 독립]이라는 소기의 성과는 얻어내지 못하였지만 티베트 국민의 독립 열망을 세계에 널린 알리게 되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국내에서는 <언론>이란 여러가지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국내 불교단체에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고자 하였지만 이를 불허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정확히 <티베트 문제><달라이 라마>에 대해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비교적 제 3자의 입장인 프랑스의 동양학자이자 저널리스트가 달라이 라마에 대해 평전을 서술한 만큼 우리를 현혹시켰던 [선입관][편견]을 벗어나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나의 기대는 충분히 절반 이상 만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달라이 라마의 삶을 시간의 순서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제도가 시작된 정치, 역사학적 분석과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티베트에 대한 문화적인 분석도 같이 포함되어 있어서 티베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은 마치 독자가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글쓴이의 질문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답변을 듣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전통][종교]의 알 수 없는 힘에 대해 다시 한번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글쓴이는 현실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티베트 독립]과 종교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환생] 등에 대해 거침없는 질문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답변 또한 '우문 현답'이라는 오래된 고사성어가 이야기하는 그대로이다.

 

 이 책을 통해 <달라이 라마>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굉장히 많다. 일반적인 독자라면 티베트 독립을 원하면서도 [비폭력]을 추구하는 모습을 첫 손가락에 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전히 독립운동에 있어서 과연 [비폭력]이 효과적인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이에 비해 <달라이 라마>가 설파하는 [중도(中道)]라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특히 요새 나를 둘러싼 상황이 [중도(中道)]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보면 같은 책을 봐도 독자의 상황과 지식 수준에 따라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교훈은 다양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최초로 프랑스어로 쓰여진 것이 1986년이고 게다가 중역본인 만큼 현재 달라이 라마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리고 과연 번역이 성공적이었는지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글쓴이도 [서양인]인 프랑스인인 만큼 악명 높은 <오리엔탈리즘>의 영향력 아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도 아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맞아 [티베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서구의 물질 문명이 우리에게 채워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 '정신 문명'의 최고봉인 <달라이 라마>를 간접적이로나마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으로써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직접 대한민국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과연 기독교를 신봉하는 대통령 아래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을지… 그 때까지 이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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